영자(影子)야

by 정온



내가 아는 영자는

빛이 구부러진 채

내 발끝에서 시작해

하루 종일 나를 따르다

몰래 사라진다


언제부터인지

빛보다 먼저 나타나

이내 나를 앞질러 버린다


영자야

네가 남기고 간 그림자는

도무지 담을 수 없는 마음이라

분명히 버렸는데도

어째서 이토록

형체 없는 흔적들로

다시 모습을 드러낼까


어둠 짙은 밤

내버린 기억을

되찾아 주면 안 되냐며

애써 물었지


희미한 조각들을

“지금 깨워봐도 되냐”고...


힘껏 주먹을 쥐어보지만

참을 수 없는 용기는

끝내 입을 열지 못했다


죽지 않는 불씨를 남긴 널 보며

얼른 쫓아가 보지만

내 걸음으론

따라잡을 수 없었다


한동안 흔적의 파장이 요동치고

다 아문 줄 알았던

그 무엇이

온통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차마

뿔난 심보 앞에서

이 깨어난 조각들을

모두 꺼내어 놓고

나는

잠시 무릎을 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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