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녁, 가을비가 촉촉이 내렸다.
낙엽 위로 스며든 비는 가을 향기를 더 진하게 머금고,
바람을 타고 밤공기 속으로 퍼져간다.
밤 산책길,
마른풀 내음처럼 아련한 옛 추억의 향기가 감돈다.
어쩌면, 문득 바다 냄새가 그리워지는 밤일까.
낙엽 냄새는 가을을 더욱 재촉하고,
내 마음은 어느새 순수한 소녀 감성으로 돌아간다.
이 마음, 어쩌지. 혼자 웃음 짓는 밤이다.
공원엔 불이 환하게 켜져 따뜻한 밤 분위기를 연출하고,
아이들 웃음소리, 연인들 다정한 대화가
가을밤을 더욱 정겹게 채워간다.
마치 저기 모닥불 앞에 앉아 속삭이는 연인들처럼
따스한 밤 풍경이다.
그런데, 머리 고무줄은 왜 맨날 사라질까?
알 수 없는 미스터리.
양말 한 짝처럼... 이사를 가면 잔뜩 나오려나.
고무줄도 사고, 다이소도 들를 겸
밤 산책길에 나섰다.
오늘은 날씨마저 포근해서
가을밤이 마치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느껴졌다.
낮에 장 보러 마트에 다녀오다 본 은행나무,
은행잎이 샛노랗게,
어디 하나 빠짐없이 완벽하게 물들어 있었다.
요즘 우리 집 식탁은 부추김치에 푹 빠졌다.
경상도에선 '전구지'라 불렀는데,
어릴 적엔 텃밭에서 쓱쓱 베어다가 바로 먹곤 했었지.
엄마가 "전구지 베어 온나" 하시면
소쿠리 하나 달랑 들고 가서 쑥 캐는 작은 칼로 뜯어오곤 했는데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조그만 조막손으로 어찌했을까.
지금도 서툰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부추를 소풀이라고도 불렀었네.
고기와도 잘 어울리고,
따끈한 밥 한 숟갈 위에도 찰떡처럼 어울리는
그야말로 만능 김치다.
가는 길에 본 단풍 때문일까.
갑자기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남양주 축령산의 단풍이 참 예뻤는데,
주말은 복잡하니 평일에 한 번 다녀와야겠다.
예전엔 가을이면 꼭 설악산으로 갔는데,
이젠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가까운 곳이 좋은 나이가 되어버렸나 보다.
... 아이고 어쩌나.
어쩌긴 뭘 어째.
보편적으로, 이렇게 나이는 먹어가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