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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다리가 조금 더 길었다면...

 엄마의 하원 시간을 간절히 기다리는 아들을 위해서

"엄마,
나는 맨날 거의 꼴등이잖아.
그런데 꼴등이 아니었던 적이 두 번 있지?
엄마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더 노력해주면 좋겠어.."


다섯 살 아들을 재우기 위해 우리 세 식구는 한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나는 '그래, 이게 가족이지. 우리 가족은 이렇게 셋이 똘똘 뭉쳐야 진짜지! 우리셋이 완전체로 함께 할 수 있어 너무나 행복하다.'라며 눈을 감고 감상에 젖었다. 그때 원래의 내 자리에 누운 남편에게 아들이 말했다. "거기는 엄마 자리잖아, 아빠는 내 오른쪽으로 와야지이~" 까랑까랑한 목소리 톤이 졸리기 시작해서 짜증이 가득한, 딱 그 상태이다. 이 상태라면 불을 끄고 3분 안에 레드선 상태로 아들은 꿈나라로 갈 것이다.


'아, 내일 출근을 앞두고 이렇게 일찍 평화가 찾아오다니, 오예! 소리 질러~ 나 뭐하지? 오랜만에 글을 좀 써야겠어. 이런 기회는 또 오지 않을 테니 오늘은 꼭 글 한편을 써야지!'라며 굳은 다짐을 하는데 갑자기 아들이 내게 묻는다. "엄마. 내일 어린이집 가는 날이야?" 나는 말했다. "응, 굉장히 새삼스럽지만 내일은 다시 월요일이야. 그래서 아빠 엄마는 회사에 가고 OO이는 어린이집에 가야 해. 내일도 엄마가 후다닥 일 마치고 빨리 데리러 갈게!"


그러자 아들이 약간의 체념이 섞인 목소리로 내게 다시 답했다. "엄마, 난 거의 꼴등이잖아. 꼴등 아니었던 적 두 번 있지? 엄마 매일 빨리 온다고 해 놓고 약속도 안 지키고, 엄마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더 노력해 주면 좋겠어." 그 순간 나는 너무 놀라서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내 눈에 뜨거운 액체가 고이더니 핑- 하고 관자놀이로 주르륵 흘렀다. 토르가 소유한 엄청난 괴력의 망치에 한방 맞은 느낌이랄까. 소중했던 내 삶의 제자리를 찾은 감사와 기쁨으로 한 달을 보내면서 꽤나 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은 한없이 부족한 엄마라는 생각에 미안했다.


내일은 진짜 무슨 일이 있어도 아들을 꼴찌로 하원 하는 일은 없어야겠다고 굳게 다짐한다. 다시 은행으로 복귀를 하고, 2주간 원래처럼 아들의 하원을 담당하면서 매일의 삶에 최선을 다했다. 선생님이 "OO아, 엄마 오셨다! 양말 신자!" 이렇게 말해 주기만을 간절히 기다리면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을 아들의 얼굴을 생각하며 매일마다 경보 같은 걸음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는데 아들의 마음속에는 저런 생각이 늘 자리 잡고 있었구나.. 너무나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다다다 다다. 출근길 양쪽 귀에 에어팟을 끼고 음악을 듣고 있는 내게, 에어팟 너머로 뭔가 뒤에서 거슬리는 소리가 들려서 이상하게 생각하고 뒤를 돌아봤다. "엄마야, 깜짝이야!" 바로 뒤에 직장 동료인 남자 대리와 여자 차장님이 서 계셨다. 그러면서 영업점 동료들이 마실 모닝커피를 사 들고 오는 두 사람은 내 어깨를 한 번씩 두드리며 말했다.


"아니, 뭔 걸음이 이렇게 빨라?
무슨 축지법 써?  따라잡으려는데
아무리 빨리 걸어도 잡히지가 않네? 휴~"


"아이고, 숨차. 백골부대 출신인 나보다 걸음이 이렇게 빠른 여자는 처음 봤어. 왜 이렇게 빨리 걷는 거야?"라며 지각한 것도 아닌데 왜 이리 뛰어가듯 걷느냐고 의아하게 묻는 질문에 나는 의연하게 말했다. "그래? 내가 그렇게 빨리 걸어? 난 그냥 걷는 건데.... 아마 매일 퇴근하고 아들 하원 시간이 마음에 걸려서 경보하듯이 걷는 게 습관이 되어서 그런가 봐. 벌써 이렇게 산지도 3년이 다 되잖아. 난 숨도 하나 안 차는데 너무 웃기다!"라며 나는 씁쓸하게 자리에 가서 앉았다.


지난주 금요일에 나는 알았다. 내 걸음이 거의 뛰다시피 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냥 몸에 배어버렸나 보다. 나는 특별한 일이 없다면 보통 6시 정각이 되기 5분 전쯤에 퇴근을 한다. 야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어린이집에 도착하는 시간은 늘 6시 45분에서 50분 사이. 은행 지점과 직장 어린이집의 거리가 아주 먼 것은 아니지만 교통이 불편하여 버스와 지하철, 또다시 버스를 타야 하는 상황으로 시간이 낭비되는 부분이 상당하다.


그럼에도 마음 편히 눈치 보지 않고, 아들의 저녁까지 챙겨주는 직장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늘 감사한다. 내 몸의 육체적 피로보다 아들의 심신안정을 중요시하는 나로서는 이보다 더 좋은 어린이집이 없다. 육아를 전적으로 도와주는 누군가 없이 우리 부부가 오롯이 담당하는 이상 이것이 최선이다. 직장 어린이집의 규정상 최장 4년까지가 재원기간이고 이번에 1년 더 재원 할 수 있게 선발이 되면서 6세까지는 걱정 없이 보낼 수가 있게 되었는데, 여전한 걱정은 아들의 마음이다.


거의 늘 꼴찌로 하원 하는 아이들은 정해져 있다. 끝까지 남아있는 아이들 4-5명 정도에서도 가장 늦게 부모가 데리러 오는 경우에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자그마한 조각의 상처들이 조금씩 쌓여가는 모양이다. 그중에 우리 아들도 포함된다는 것이 상당히 미안하지만, 언젠가 지금의 엄마의 기록들을 보고 엄마의 최선을 조금이라도 알아주기를 소망해 볼 뿐이다.




내가 있는 지금 우리 영업점은 이런 나의 상황들을 다 이해해 주는 좋은 동료들과 함께이다. 상당수가 아이를 둔 부모이다 보니 서로가 서로에게 발생되는 여러 가지 상황들에 대해 공감하고, 이번에 내가 코로나 확진자가 되었을 때에도 아들의 확진 여부를 가장 많이 걱정하고 기도해줬던 동료들이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만큼 큰 복이 있을까.


허리 디스크 수술 후 4개월 가량의 병가기간을 거쳐 현재의 지점으로 복귀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큰 어려움 없이 동료들과 최고의 팀워크를 만들어 가며 지내고 있다. 인복이라면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내 주위에는 늘 좋은 사람들이 가득하다. 이번에 코로나 확진으로 인한 병가 끝에 40일 만에 복직했을 때에도 그랬다.


다시 출근을 하기로 한 전날, 밤늦도록 이런저런 고민과 생각으로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밤새 잠을 설쳐가며 새벽부터 일어나서 출근을 준비했고 오랜만에 걱정 반 설렘 반으로 영업점에 발을 내디딘 순간, 내 눈에 비친 광경에 웃음과 눈물이 동시에 일어났다. 한쪽 벽면에 플래카드와 풍선장식이 이렇게 되어 있었다.


"보고 싶었어요. 아프지 말자!"

라고 쓰인 문구를 보자 가슴이 찡-했고, 한 명씩 다가와서 따뜻하게 나를 안아주고 맞이해 주는 마음, 마음들에 가슴속 무언가가 큰 파도를 일으키며 일렁거렸다. 그 후로 출근한 지 열흘 가량 동안 여전히 동료들은 내게 어려움이 있는지 살펴봐 주고 내 상태에 귀 기울여주고 그간의 묵혀뒀던 에피소드들을 하나씩 꺼내며 매일매일 행복한 추억들을 함께 쌓아가고 있다. 내가 참 복이 많다.


<코로나 옥중일기> 마지막 편을 쓰면서 남겼던 여러 가지 생각들은 굉장한 기우였고, 세상은 여전히 따뜻하고 관대하며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요즘 들어 새삼 느끼고 있다. 혹여나 코로나 확진의 아픔 중에 내 글을 보는 이들이 있다면, 지금의 글을 통해 세상은 생각보다 온화한 곳이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을 뜬금없지만 전하고 싶다.




내일은 모두가 싫어하는 월요일이다. 월요병 가득한 하루가 두 시간 뒤부터 펼쳐지겠지만, 내일만큼은 내게 지루한 월요일이 아닌 희망찬 월요일이기를 소망해본다.  왜냐하면 161cm라는 내 키가 밤새 늘어날 일도, 다리가 길어질 일도 전혀 없을 거지만 내일 나는 출근을 해서 오늘 밤 우리 아들이 내게 했던 말을 동료들에게 전하면서 좀 더 이른 칼퇴를 선포할 것이고 아들의 꼴등 하원을 면피하기 위해 전력투구를 할 예정이니깐 말이다.


아들에게 엄마가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여야만 한다. 그러니깐 좌절이 아닌 희망의 노래를 불러야지! 내 다리가 조금 더 길어질 건덕지는 없겠지만, 아들을 향한 내 마음씨앗은 밤새 한 뼘 더 자라 있을 테니 앞으로 아들과 함께 키워낼 마음씨앗의 꽃 모양이 너무나 궁금한 밤이다.


나는 이렇게 다시 인간 김OO로 돌아왔고, 여전히 정답은 하나인 걸 깨달았다. 결국 모든 것에서 사랑이 이긴다. 그 장애물이 무엇이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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