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에게 하는 수 없이 골똘한 사람을 남녀불문 애정한다
“너 장원영 좋아하지?”
“응. 왜?”
“그럴 것 같아서...”
친구의 말줄임표에 웃어버렸다. 무표정한 얼굴에 언제나 떨떠름한 반응이 매력인 그녀는 아마 장원영을 좋아하지 않는 듯했다. 더 물어보진 않았지만 집에 돌아와서도 ‘장원영’을 좋아하냐는 질문으로 다른 말을 사뭇 아낀 그녀가 귀여워 계속 혼자 키득거렸다. 장원영의 외모도 멋있지만 그것만큼이나 장원영의 럭키비키를 좋아한다. 요즘 가장 싫은 게 뭐냐는 기자의 질문에 특유의 꼿꼿한 자세와 약간은 어색한 미소로 “그런 걸 생각하지 않아서, 저는 럭키비키인 것 같아요.”라고 답하는 고집스러움이 내겐 킬링 포인트다. 장원영이 무언가를 진짜로 깨달았는지 아닌지는 관심 없다. 내가 아이유에게 빠진 이유가 열여섯의 나이에도 스스로 생각해 ‘아이돌의 조공 문화’를 거절한 것이었듯, 나는 자기 자신에게 하는 수 없이 골똘한 사람을 남녀불문 애정한다.
내 친구가 무슨 말을 아꼈을지 완전히 모르진 않는다. 좋게, 긍정적으로 보려는 삶의 태도는 자신이 놓인 상황에 따라 짜증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또는 상황에 맞지 않게 억지스럽다 여겨질 수도 있다. 나는 나의 방어기제 중 강한 패턴 중 하나가 이상화라고 생각한다. 이상화는 불안하거나 불편한 감정을 느끼지 않기 위해 타인이나 어떤 대상을 과도하게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단기적으로는 불안을 줄이고 안정감을 주지만 장기적으로는 현실을 왜곡하여 이상화가 깨지는 순간의 배신감과 혐오를 더 키울 수도 있다. 예전에 언뜻 누구나 방어기제가 있다는 유튜브를 본 적 있다. 배우자는 방어기제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라는 내용이었다. 이상화를 주의하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내릴 역은, 럭키비키 역이다. 어차피 어딘가에 살아야 하고 무언가는 반복되어 지겨워져야 한다면, 나는 럭키비키 역에 살 것이다.
이유가 있다. 시니컬하게도 살아봤기 때문이다. 그것도 내게 있어서는 참으로 매력적인 풍경이었다. 사람들이 불평불만이라고 일갈하는 사람들을 어렴풋하게 이해할 수 있었던 그 시절은, 가끔씩 떠올리는 그리운 여행지다. 행복을 진정으로 추구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걸 느꼈던, 어쩌면 언젠가는 다시 방문하게 될 곳이다. 그러나 나는 집에 가는 골목길이 갑자기 유난히 예뻐보이는 평범한 행복을 지극히 아낀다. 그래서 누군가가 가만히 가라앉으면 조용히 바라보게 된다. 상대는 바라지 않을 수도 있는 이해를 해보려고 때로는 많이, 때로는 잠시 애쓰다 이윽고 중단한다. 이사를 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번 역은 럭키비키, 럭키비키 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