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를 보고
“내가 답답한 건 시간이 지나면 너도 원하게 될 거라는 거야.”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에 나오는 대사다. 결혼과 출산에 의문을 가지는 율리에에게 나이차 많은 악셀이 하는 말이다. 왜 날 결정하려고 하냐며 반발하던 율리에, 그와 헤어지고 한참의 시간이 지나 다시 그를 찾아와 묻는다. “왜 내가 좋은 엄마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 가정을 원하는 그에게 답답함을 느끼고 떠나서는 자신과 비슷하게 미래에 회의적인 에이빈드를 만났지만 결국 질문은 자신과는 달리 자신을 ‘믿어준’ 악셀에게 해야 했던 것이다. 아니, 사실 질문이라기보다는 요청 아닐까? 미래에 대한 불안을 잠재워달라는.
악셀에게도, 에이빈드에게도 정착하지 못한 그녀의 옆에는 사진기가 놓여 있다. 선택지가 많았던 청춘을 지나 사진작가라는 직업을 담담하게 마주하며 주어진 일을 해낸다. 무엇 하나 끝까지 한 적 없었던 이력에 빗대면 사진기는 성장이자 안정일 터다. 이제 그녀에게 나타날 인연이 그전과 같을까? 여행스케치의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산다는 건 그런 게 아니겠니. 원하는 대로만 할 수는 없지만, 알 수 없는 내일이 있다는 건, 설레는 일이야, 두렵기는 해도. 산다는 건 다 그런 거야. 누구도 알 수 없는 것.’ 그렇다. 누구도 알 수 없다.
악셀은 율리에의 가능성을 믿었고 에이빈드는 그녀의 현실에 공감했다. 그러나 그들 어느 쪽에서도 답을 얻지 못한 건 그녀가 물어야 할 질문이 그들을 향하는 것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향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떤 삶을 원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삶은 정리되지 않은 채로 계속된다. 불확실성을 견디는 힘이 생긴다는 위안을 주면서. 우연히 마주친 에이빈드의 와이프와 아이를 보다가 자리로 돌아와 묵묵히 사진을 편집하던 율리에의 마지막 모습은, 마치 사랑의 안팎을 나란히 보여주는 듯하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사랑할 때 반드시 최고가 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