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이 감탄하다

다정함은 새로운 저항의 방식이다

by 산호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이라는 주제를 보자마자 ‘My favorite things’라는 노래가 떠올랐어요. 이 노래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OST에요.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에 겁에 질린 아이들이 마리아 선생님의 방으로 찾아와요. 그녀는 아이들을 안심시키며 무섭거나 슬플 때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려보라고 하죠. 장미 꽃잎에 맺힌 빗방울, 새끼 고양이의 콧수염, 반짝이는 구리 주전자, 따뜻한 털장갑, 노끈 묶은 갈색 소포 꾸러미, 크림색 조랑말, 바삭바삭한 사과 파이, 초인종 소리, 썰매 종소리, 국수 곁들인 슈니첼 요리, 달밤에 높이 나는 기러기, 흰 치마에 푸른 공단 허리띠를 맨 소녀, 콧잔등과 속눈썹에 떨어진 눈송이, 봄을 맞아 녹아드는 은백색 겨울. 마리아가 좋아하는 것들이란 이런 것들이라네요. 읽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지 않나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은 이런 것들이에요. 강아지와 고양이의 보드라운 털을 만질 때 느껴지는 따뜻함. 보기만 해도 눈이 편안해지는 숲과 바다. 노을에 물든 주황색의 구름. 쉽게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백열등으로 된 스탠드. 사람들과의 깊고 잔잔한 대화.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기. 엄마랑 누워서 떠드는 수다. 다정한 인사말을 건네거나 받을 때 느껴지는 흐뭇함. 어른이 아이의 시선으로 고심해서 쓴 동화책. 담백한 문장이 담긴 수필집. 내 방의 침대와 소파. 잘 접힌 수건. 책상 위의 작은 꽃 한 송이. 뜨거운 물로 샤워하면서 듣는 노래. 집에서 갓 만든 김밥. 전기장판 틀어놓고 까먹는 귤. 언제 먹어도 맛있는 소고기. 점심 후에 매일 먹고 있는 아메리카노와 두바이쫀득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쓰는 손편지. 지금 쓰고 있는 핸드폰케이스의 알록달록함. 은행 대기번호표 1번. 한적한 고속도로 휴게소. 좋은 영화를 보고 났을 때 느껴지는 여운. 춤을 출 때 차오르는 감각. 요가 후에 느껴지는 나른함. 아로마오일의 향긋함. 세차 이후 차가 깨끗해진 모습. 벌써 27개가 채워졌네요. 앞으로 좋아하는 것 100가지까지 추가해서 적어보고 자주 보면서 기분을 채워주려고 해요.

최근에 본 문장 중에 가장 좋았던 문장은 “다정함은 새로운 저항의 방식이다(Tenderness is the new punk)”였어요.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말인데요. “우리가 서로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 화해할 수 있다는 감각을 믿어야 한다. 극단화, 분노, 마초성은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네요. 제가 이 문장에 공감한 이유는 냉소에 빠질 수 있는 순간에도 세상을 따뜻하게 살고 싶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좋아하는 것들을 적어두는 일은 단순한 취향 정리가 아니라 작은 훈련이기도 해요. 일부러 느린 목록을 만드는 거죠. 천천히 생각하고, 쉽게 등을 돌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있는 배울 점을 발견하는 연습으로요. 일상 속에서 저를 더 많이 아껴서 그 힘으로 주변을 더 아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저의 올해 키워드는 '감탄'입니다. 작은 것에 더 많이 감탄하고, 저 스스로에게 감탄할 수 있게 행동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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