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은 예쁘다

‘기억하고 있어’가 ‘사랑해’보다 로맨틱해요

by 산호


스물일곱에 친한 오빠가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나는 한 번도 외로움을 느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최근 소개팅에서도 같은 질문을 받았고, 그때도 외롭지 않다고 답했다. 말하고 나서 문득 의심이 들었다. 혹시 내가 부재의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닐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나는 나를 헤매느라 분주하다. 대체로 만족스럽고 자주 웃는다. 그런데도 가끔 설명하기 어려운 곤궁함이 찾아온다. 오늘은 그 곤궁함을 들여다보려 한다. 일명, 외로움 브이로그.


보통 한 달에 하루 이틀쯤 외롭다. 그럴 때면 이상하게 분식이 먹고 싶어진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자주 먹던 음식이라서일까. 겨울 포장마차에서 피어오르던 입김, 교복 치마 아래 얼어 있던 종아리를 떠올리며 떡볶이와 김치만두를 꿀꺽 삼킨다. 매운 국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면, 마음도 같이 데워지는 기분이 든다.


마음을 달래기 위해 듣는 노래도 있다. 노영심의 〈별 걸 다 기억하는 남자〉. 새끼손가락의 매니큐어, 봉숭아물, 커피에 넣는 설탕과 프림의 순서까지 기억하는 사람에 대한 노래다. (p.s. 노영심의 모든 노래를 좋아한다.) 최근에서야 이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를 설명해줄 말을 찾았다. 프레스턴과 소피의 인터뷰에서였다.


S: “‘기억하고 있어’가 ‘사랑해’보다 로맨틱해요. 기억하는 것은 행동이기 때문이에요. 누군가를 사랑하는 척하는 건 가능하지만, 기억하는 척하는 건 불가능해요. (…) 어떤 기억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마음속에 깊이 남아버려요. 사랑도 꼭 그런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 같아요.”

P: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사랑해온 모든 사람들로 이루어진 모자이크 같은 존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맞다. 복숭아물도, 떡볶이 국물도, 프림 하나도, 노래 한 곡도 모두 모자이크다. 분식의 온기와 노래의 리듬으로 나를 채우고 나면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외로움이라는 단어로는 납작하게 눌러 담을 수 없는 감각들에 대해 조잘거린다. 평소엔 눈에 띄지 않던 나뭇잎이 유난히 천천히 흔들리던 순간이라든가, 매번 순식간에 괜찮아지는 내가 오늘은 조금 별스럽게 느껴졌다는 이야기 같은 것들. 어쩌면 이 말들은 미래의 어느 날, 나를 가장 외롭게 만들 사람을 보내는 연습일지도 모르겠다. 누구보다 그리울 사람에게. 나의 가장 큰 모자이크가 될 사람에게.


오늘의 결론.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외로움은 예쁘다. 그것은 지나간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고, 다가올 사랑을 위해 자리를 비워두게 하며, 언젠가 맞이하게 될 떠남과 보냄을 미리 품게 한다. 소중한 것들이 많아서 혼자인 시간에도 나는 오래 비어 있지 않다. 함께해준 사람들에게 우표를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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