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실패에서 배우는 중이구나
펜션 이불들을 들고 세탁소에 왔다. 이불들이 돌아가는 동안 세탁기 앞에 놓인 탁자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빨래 돌아가는 둔탁한 소리와 타자기에서 나는 조약돌 소리가 예뻐서 웃음이 나온다. 기분 좋은 김에 ‘세탁소에서 만나요’라는 노래를 튼다. ‘이젠 지워내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대도 함께 할래요? 세탁소에서 만나요. 색이 바랜 기억들 모두 모아서 다 지워버려요.’ 가사는 명랑하다. 마치 모든 얼룩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처럼. 하지만 우린 알고 있다.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 얼룩도 있다는걸. 당신에게도 지워지지 않은 얼룩이 있나? 나에게도 있다. 20대 후반에 처음 생긴 얼룩. 그 얼룩은 시간이 지나서 흐릿해졌지만 사라지진 않았다. 머리로는 실패는 누구나 한다는 걸 알고 있는데 마음은 여전히 그때의 나를 받아주는 일에 인색하다.
20대 후반 이전의 나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강해서 실행에 주저함이 없었다. 사람들이 망설이는 이유를 공감하지 못했다. 지금은 전보다 행동 속도가 느려진 만큼 주변을 보는 시야는 좀 더 넓어졌다. 사람들이 왜 때로 한참을 주저앉는지 이해한다. 이건 흔히 우리가 실패에서 얻는 신중함이자 겸손함일 것이다. 그러나 문득 내가 주변을 본다는 명목에 기대서 실패에서 완전히 배우고 넘어가지 못한 상태는 아닐까 생각도 들었다. 실패가 준 감정의 얼룩을 계속 손가락으로 문지르고만 있었던 게 아닐까. 실패를 과거형으로 바꿔 부를 수 있게 되는 것, 그 얼룩을 나의 전부라고 착각하지 않게 되는 것, 그래서 다시 시도할 때 이전의 공포가 기준이 되지 않게 되는 것. 실패로부터 배운다는 건 아마 이런 상태일 것이다.
촉촉한 이불들을 꺼내 건조기로 옮긴다. 그 안에서 이불이 뒤집히고, 구겨지고, 펴지는 모습을 본다. 원래는 실패에서 무엇을 배웠는지를 ‘세탁소에서 만나요’ 노래처럼 발랄하게 돌아보려고 했는데, 쓰면서 느꼈다. 나는 아직 실패에서 배우는 중이구나. 엄마에게 전화해서 물어봤다. “엄마, 실패에서 뭘 배웠어?” “실패는 다시 더 강하게 일어날 수 있는 전환점이 돼. 멀리뛰기하기 전에 몸을 움츠리듯이.” “어떻게 다시 일어날 수 있어?”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으니까.” “그래? 그럼 내가 되게 멀리 뛰려나 보네.” “(웃음)” 실패한 이후에도 나를 전과 같이 100% 믿어주고 싶다. 하지만 나는 실눈을 뜨고 나를 보는 중이다. ‘잘할 수 있겠어?’라고. 부모님이 나를 믿는다고 하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 ‘무슨 근거로 저를 믿으시나요…?’ 시간에만 맡기지 않고 마음의 세탁소를 부지런히 다니면 나도 말하게 되겠지. ‘이젠 지워내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대도 함께 할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