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꿈꾼 나의 마지막 모습

의미와 재미가 교차하는 공간

by 산호

어릴 때 ‘어디에서 죽어야 할까’라는 생각을 하다가 ‘내가 만든 공간에서 죽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시절 다른 드라마는 보지 않았는데 유독 사극만은 좋아해서 공간의 이름을 ‘서원’으로 정했다. 내가 꿈꾼 마지막 모습은 아무도 없는 조용한 작은 방이었다. 사극을 떠올렸기에 공간의 이미지는 한옥이었다. 한옥 정중앙에는 꽃이 피고 지는 정원이 있었고 정원을 둘러싸고 여러 방들이 있었다. 나는 희미한 실눈으로 천장과 창문을 바라보며 옅은 웃음을 짓고 있다. 멀리서 아이들의 웃음소리, 사람들의 노랫소리, 삶에 대해 갑론을박하는 소리가 들린다. 어릴 때 심어둔 이 이미지는 나의 작은 삶에서 여러 차례 펼쳐졌다. 10대 시절의 아지트였던 ‘하탑’과 ‘비밀의 화원’이 시작이었다.

‘하탑’은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탑’을 줄인 이름이다. 산꼭대기에 있는 빌라 옥상에서 물탱크탑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돗자리를 펼치고 놀았던 장소다. 주로 친구는 그림을 그렸고 나는 시를 적었다. ‘비밀의 화원’은 도심 한가운데에 숨겨진 폐교였다. 산책하다 수풀을 헤치고 들어가 발견한 공간이었는데 어린 시절 좋아한 동화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부서진 2층에는 헤진 음악실 칠판이 있었다. 이 두 곳에서의 기억이 너무 좋아서, 원래는 죽기 전에 만들려고 했던 서원을 시범 삼아 미리 해보자고 했던 게, 20대의 ‘몸냥’(제주 말로 ‘마음대로’)이었다. 친구들과 모여서 책모임하고, 바느질하고, 기타치면서 노래 부르고, 플리마켓을 열고, 인디밴드를 초대해서 음악회를 열곤 했다. 카페와 술집이 아닌 곳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자는 게 모토였다. 월세는 후원도 받았지만 거의는 내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충당했다.

여기에 추가된 공간에 대한 이미지가 태국 여행을 하면서 만난 ‘타컴빠이’다. 타컴빠이에는 적정기술(첨단 기술보다 지역의 자원, 기후, 경제 상황을 고려해 누구나 이해하고 유지할 수 있는 기술)을 활용한 장치가 많았다. 예컨대 값비싼 정수장비 대신 햇빛으로 물을 소독하게 하는 태양광 물 소독법, 흙과 대나무 등의 지역 재료로 짓는 친환경 주택이 있다. 여행하면서 만난 게스트하우스들을 좋아했기에 캠핑장과 펜션을 만들면서 즐거웠다. 고민은, 여기에 어떻게 의미를 입혀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 적확하게는, 의미와 재미가 교차하는 지점을 만들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예전에 했던 ‘몸냥’처럼 수익화를 전혀 하지 못하는 공간은 내가 계속해서 유지할 수 없다. 밖에서 배워보자고 미약하게나마 나가보면 보통 의미만 추구하는 곳과 재미만 추구하는 곳으로 나뉜다. 내 안의 이야기가 합쳐지지 않는다. 재미도 아직 확실하지 않은 데다 의미를 추구하고 싶은 게 맞긴 한지도 헷갈리는 요즘이라 적어봤다. 우선은 재미를 위해 여타의 강의를 듣는 중이다. 언젠가 의미와 재미가 교차하는 공간을 만들 수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당신은 어디에서 가장 많이 자기 자신을 확인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