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마지막 꿈은 새가 되어서 날아가는 거예요
학창 시절 우리 집 앞에 있는 작은 카페는 수풀에 가려져 있었다. 밖에서 볼 때는 카페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수풀이 무성했다. 집 앞이었으니 자연스레 내 아지트가 됐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고인이 된 어느 작가의 생가를 개조한 카페라고 했다. 주말마다 그곳에서 책을 10권씩 쌓아놓고 집히는 대로 읽거나 메모를 했다. 하루는 중년 남성분이 넌지시 말을 걸었다. “넌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니?” 그때 내가 한 질문이 “자본주의가 뭐예요?”였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가 쭉쭉 길어졌다. 그분은 드라마 감독님이셨고 종종 주말에 마주치면 함께 대화했다. 그분은 내게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올라가야 한다며 10년 치의 계획을 세워주셨다. 나는 피라미드의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이 더 중요하다고 항변했고, 10년 치의 계획을 부담스러워했다. 혹시라도 살면서 그분을 다시 만나게 되면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 “뜨거울 때는 뜨겁게, 차가울 때는 차갑게 살아야 한다.”라는 말을 기억하고 있다고.
우연히 만나 내 물음에 귀를 기울여준 사람들이 있다. 그게 모두 ‘봄’이었다. 계절상으로도 봄이라는 은유가 적당하지만, 말 그대로 ‘봄’, 나를 발견해 준 순간이기도 했다. 스물 언저리에 길에 주저앉아 울면서 일기를 썼던 날도 그랬다. 검정 밴이 멈춰 서더니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내게 다가왔다. 왜 울고 있냐며, 혹시 뭘 쓰고 있는지 봐도 되냐며. 텔레비전을 안 봐서 누구인지는 몰랐지만 연예인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서서 일기장을 주르륵 읽던 그들은 거금이 든 흰 봉투를 건넸다. 일기장에 나온 사람들에게 이 돈을 가져다줄 수 있냐고. 고개를 끄덕이고 카페에 들어갔는데 그중 한 명이 다시 카페로 찾아와 3시간 남짓 대화를 나눴다. 그는 내게 “불광불급, 미쳐야 미친다. 무슨 일을 하게 되더라도 미친 듯이 해보면 좋겠다”라며 강조하듯 눈을 큼지막하게 떴다. 그냥 지나갈 수도 있는데 굳이 마음을 내고 눈도장을 찍어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덕택에 늘 눈물이 우뚝, 그쳤다.
내가 어린 봄을 발견한 적도 있었다. 버스킹을 하던 시절 만난 7살 여자아이. 버스정류장에 앉아있는데 아까 나를 봤다며 불쑥 내 옆에 바짝 앉았다. 아이가 나와 얘기하고 싶다고 하자 엄마는 웃더니 잠시 병원에 다녀오겠다고 했고 엉겁결에 그 친구와 베스킨라빈스에 들어갔다. 그 친구는 내게 돌연 진지한 눈빛으로 꿈이 뭐냐고 물었다. 아이스크림 한 입, 두 입 새초롬한 입에 집어넣더니 자신은 7개의 꿈이 있다고 했다. “언니는 죽으면 뭐가 되고 싶어요? 제 마지막 꿈은 새가 되어서 날아가는 거예요." ‘새가 되어 날아간다.’ 혼자 부산을 여행하다 바다 사진을 찍어보냈더니 엄마에게 온 답문이 떠올랐다. [황새가 되어 저 바다를 가르고 싶다.] 그 후로 새만 보면 내 안의 소녀, 여자, 할머니가 활짝 날아간다. 작은 친구의 물음이, 마지막 꿈이 오랜 여운으로 남아.
‘작은 잎새들을 가만히 흔들어봅니다. 처음 당신이 나의 마음을 흔들었던 날처럼 깨어난 잎새들은 다시 잠들고 싶어합니다. 나도 잎새들을 따라 잠들고 싶습니다. 잎새들의 잠속에서 지친 당신의 날개를 가려주고 싶습니다. 그러다가 눈을 뜨면 깃을 치며 날아가는 당신의 모습이 보이겠지요. 처음 당신이 나의 마음을 흔들었던 날처럼 잎새들은 몹시 떨리겠지요. - 이성복, 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