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집에서 물건을 찾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하루 평균 55분 정도라고 한다. 처음에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렇게 까지야 들까 하다가, 생각해보면 맞는 말 같았다. 자주 주문하는 핸드폰 액정보호 필름은 2개가 한 세트다. 1개를 갈아주고 나머지 한 개를 집안 어딘가에 두었을 텐데, 도무지 기억이 안 난다. 놔뒀을 법한 곳을 뒤지다 포기하고 지쳐 드러눕는다. 물건들이 제 자리를 찾지 못해 이리저리 집안에서 이동한다. 밖에서 입고 온 외투는 언제든 옷걸이로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트랜스포머 의자, 안마의자같이 걸쳐놓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옷이 허물을 벗어놓는다. 물건들도 자신만의 자리가 필요하다.
며칠 전 하루 일과가 이동으로 찬 하루였다. 집을 급히 나서면서 차키를 찾았는데 눈에 띄지 않았다. 으레 차에 놔두고 왔나 싶어 차를 들여다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끼리만의 비밀을 말하자면, 차 4개의 문 중 하나가 잠기지 않기 때문에 문을 열어 시동을 걸어보았다. 차 어딘가에 차키가 있다면 시동은 걸릴 테니까. 시동은 걸리지 않았고, 약속 장소로 가야 할 시간은 지체되고 있었다. 다시 집으로 올라가 키를 찾아보았지만 꼭꼭 숨었는지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택시 어플을 켜고 택시를 잡았다. 멀쩡하게 집 앞에 서있는 차를 두고 택시를 타다니, 스스로 한심스러운 순간이었다. 그 일이 겪기 전 어떤 모임에서 60대 한 분이 그룹채팅에 차키를 찾지 못해 교육을 들을 수 없다는 메시지를 남긴 것을 보고, 말도 안 되는 변명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 생각을 한지 한 달도 안되어 내가 차키를 못 찾아서 나가질 못하고 있었다. 역시 사람은 겪어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다.
얼마 전에는 이비인후과를 갈 일이 있어서 병원의 점심시간 바로 코 앞에 도착해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무언가 시간을 밀도 있게 쓴 것 같아 뿌듯함까지 느껴졌다. 그 뒤로 며칠 뒤 이비인후과를 다시 갔다.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급히 나섰고 도착하니 병원에 불이 꺼져 깜깜한 곳에 크리스마스트리만 반짝거리고 있었다. 점심시간이라 1시간 뒤에 오라는 말을 들었다. 생각하고 있던 점심시간과 달랐다. 당황한 나머지 차로 향했다.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면 주차도장을 받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주차시설에 기본료인 1,000원을 지불했다. 곧장 집으로 향하면서 허무함이 밀려왔다. 먼저 점심시간을 다시 확인하지 않고 내가 알고 있는 시간이라고 굳게 믿은 점, 왔다 갔다 시간을 족히 왕복 40분 버리고, 주차료 1000원을 지불한 것 그리고 나온 김에 근처 다른 병원을 갈 수 도 있었는데 왜 그 생각을 못하고 바로 차를 타고 집으로 오고 있는 거지라며 한탄했다. 예전에는 대안을 곧잘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쪽으로는 뇌가 활성화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물건들이 제 자리를 못 찾아 집안을 배회하듯이 내 정신도 있어야 할 곳이 아닌 다른 곳을 떠돌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키는 문에 붙어있는 자석 걸이가 자기 자리라고 한다면, 나의 제자리는 어디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