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이야기 두 번째
동생은 다섯 살까지 발톱을 깎을 수 없었다. 하루 종일 뛰어다니는 바람에 발톱이 닳아서 깎을 게 없었으니까. 아마 동생의 어린 시절 활동반경은 활발한 햄스터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정말 조용하게 자랐던 나와 달리 동생은 세상의 모든 것들을 신기해했다.
걸음마를 막 시작했을 때는 수성 페인트를 찍어먹고 파란 똥을 쌌고, 어떤 날은 엄마가 핸드백을 드는 모습이 부러웠는지, 기저귀를 잠시 벗은 틈을 타 자신의 생산물들을 주전자에 넣어 들고 다녔다. 방바닥에 뜨끈한 응가들이 남긴 김이 군데군데 서려있었지만, 엄마는 동생의 생산물들을 하루 종일 찾지 못했다. 그러곤 저녁에 설거지를 하다가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그토록 찾던 동생의 생산물들이 주전자 안에 있었으니까.
조용하면 이상한 하루하루였다. 어떤 날은 보행기를 타던 동생이 대범하게 탈출을 시도했고, 현관문 턱에 걸려 보행기가 전복되는 '경미한 사고'를 내는가 하면, 걸음마를 떼고 자유를 얻었는지 베란다에서 세탁 세제를 집어먹은 적도 있다. 파란 알갱이와 빨간 알갱이가 맛있어 보였다나. 여름이 절정일 때는, 엄마 몰래 냉장고 음식들을 다 꺼내놓고, 냉장고 안으로 들어가 앉아있거나 냉장고 문에 매달려 타잔 놀이를 했다.
어느 화창한 주말, 아빠는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굉장히 평화롭게. 그런데 아빠는 동생에게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고 깊은 낮잠에 빠져있었다. “아빠가 이따 동물원 데려갈게.”
그랬다. 동물원은 일요일 아침 디즈니 만화동산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거래였다. 놀이기구와 동물들이 가득하고 솜사탕도 먹을 수 있는 곳이니까.
동생은 여러 가지 방법들로 아빠를 깨우기 시작했다. 깨물기, 흔들기, 위에서 누르기 등등. 저런 원시적인 방법들로 아빠가 일어나지 않을 것을 알자 동생은 꾀를 냈다. 그 당시 볼펜 촉 주위에서 불빛이 나오는 볼펜이 유행이었고, 그 볼펜은 동생의 의사 놀이에 상당한 도움을 주었다.
생각을 해보자. 곤히 자고 있는데 누군가가 눈꺼풀을 까뒤집고 불빛을 비춘다면? 아빠는 놀라서 단방에 깼던 것 같다. 갑작스러운 진찰에 놀란 환자는 의사 선생님의 엉덩이를 팡팡 때리고 다시 잠들어버렸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은 씩씩거리더니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리고 약 한 시간 뒤 환자가 소리를 지르며 기적처럼 깨어났다.
그 의사 선생님은 피로가 한가득 쌓인 환자에게 흔하지 않은 처방을 남겼다. 충격요법.
동생은 엉덩이를 맞고 껌을 열심히 씹었다. 그리고 그 껌을 아빠 배꼽에 꾹꾹 눌러 붙여버렸다. 하나면 불행 중 다행이었겠지만 두 개씩이나! 정말 사랑이 넘치는 처방이 아닐 수 없다. 또 불행 중 굉장히 불행이었던 것은 아빠의 상반신은 거의 아마존을 떠오르게 한다. 껌과 시커먼 그 무엇들이 뭉쳐 만들어 낸 부조화는 아빠를 참 힘들게 했다.
어떻게 그 주말이 끝났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이 기억의 끝은, 화장실에서 열심히 껌을 떼며 씩씩거리던 아빠의 모습과 굉장히 태연한 동생의 얼굴이었다.
<아빠의 봉변>
<어린 시절 나에게 전주 동물원은 일요일 디즈니 만화동산 그 이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도 이유없이 예쁘다.>
<사진은 아이폰이 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