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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비 Feb 19. 2018

십백 원

그리고 운수 좋은 날

 용돈으로 ‘십백 원’을 받으면 무얼 할지 항상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다 결국 내 오른손에는 ‘십백 원’, 왼손으로는 동생 손을 잡고 슈퍼마켓에 포카칩을 사 먹으러 갔다. 동생은 치토스를 먹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치토스는 육백 원이다. ‘아 어쩌지...’ 잠시 망설이던 찰나, 단 것을 참 좋아해서 앞니에 조금씩 갈색 줄이 생기던 동생이 삼백 원을 꺼냈다. “형아, 나 새콤 새코미도 먹을래.”      



 머리 속에 써 본다. 어제 엄마한테 숫자 백까지 세는 법을 배웠는데 조금 어려웠다. ‘포카칩 오백 원 더하기, 치토스 육백 원 더하기, 새콤 달콤 이백 원 하면... 하면... 음... 십삼백 원!’ 다행히 돈이 맞다. 엄마께서 학원에 일하러 가시면 동생과 늘 슈퍼마켓을 오지만, 계산대 앞에만 서면 익숙하지가 않았다. 만약 일백 원을 실수로 안내면 '경찰청 사람들'에 나오는 경찰 아저씨가 잡아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언제나 괜찮았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콧구멍이 벌렁거린다. 엉덩이도 좀 간지러운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슈퍼 아줌마께서 나를 부르시는데 뭔가 느낌이 썩 나쁘진 않다. “한비야, 요거 큰 거는 오백 원이야. 백 원짜리 다섯 개랑 똑같은 거야. 이거 두 개랑 백 원짜리 두 개만 주면 돼.” 그랬다. 동생이 가져온 동전 뒤편엔 장군 할아버지가 아니라 꼬끼오가 날아가고 있었다.      



 동생은 아빠가 장롱에 양복바지를 거꾸로 걸어 놓으시면서 떨어진 동전을 주워 나왔는데, 그 동전이 마침 셋 다 오백 원 짜리였던 것이었다. 길거리에서 먹을 것 먹고 다니면 거지라고 말한 엄마 말을 철썩 같이 믿고, 치토스를 까달라고 칭얼거리는 동생 손을 잡은 채 일단 슈퍼마켓 밖으로 나왔다.      



 갑자기 큰돈이 생겼다. 십백 원이 내 손안에 들어오는 가장 큰돈이었는데, 지금 내 손에 십이백 원이 생긴 것이다. 손바닥에 있는 동전을 멍하니 들여다보다 고개를 들었는데, 웬걸, 뽑기 기계가 날 유혹했다. 칭얼거리는 동생 입에 새콤달콤을 하나 물리고, 빨간 뽑기 기계 앞에 쭈그려 앉았다.      



 화가 나거나 슬프면 색깔이 변하는 반지가 나오는 뽑기도 있고, 탱탱 볼이 나오는 뽑기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동전을 넣은 뽑기는 미니 자동차 뽑기였다. ‘은색 판에 200w이라고 쓰여 있는 걸 보면, 백원이 두 개 필요하나 보네.’ 잠시 일어나서, 숨을 고르고 뽑기 기계 위에서 어떤 자동차가 갖고 싶은지 내려다본다.      



 동전 두 개를 슬며시 밀어 넣고 동생은 신이 나서 레버를 돌렸다. 형아들이 뽑기 기계 앞에서 플라스틱으로 된 뽑기 알을 ’팡‘ 소리가 나게 밟는 모습이 떠올랐다. 멋있었는데 자동차가 부서질까 봐 다음으로 미루기로 한다. 뽑기를 뽑았는데 내가 갖고 싶었던 자동차가 아니네. 형이니까 멋지게 동생에게 양보하는 척 동생에게 건넸다. 그리곤 다시 돌렸는데 원하는 뽑기 자동차가 나왔다. 기분이 참 좋았다.      



 ‘그런데 엄마가 이거 어디서 났냐고 물어보면 어쩌지?’ 엄마가 볼링핀을 들고 나 쫓아오면 어떡하지? 갑자기 불안해진다. 동생 손을 잡고 집으로 걷는 걸음이 제법 빨랐다. 남은 팔백 원은 어쩌지?





<연필로 그린 그림. - 7살 꼬맹이에게는 너무나 큰 고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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