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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민주 Jul 18. 2024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가 남고 피해자는 떠났다

#프롤로그

“무엇이 비정상적인 건데요? 가해자에게 팀장 권한을 주는 거? 아니면 연차 높은 직원을 제치고 팀장을 다는 거?“


 불이 꺼진 회의실, 길어진 침묵. 그 정적을 깬 것은 나였다. 회사 생활 5년 차. 총 경력 7년 차. 잡지사 에디터로 시작해 출판사 편집자, AE, 카피라이터, UX라이터 등 여러 회사와 직종을 거쳤다. 언제나 글쓰기의 영역에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의 회사를 오면서 회사를 대하는 태도, 회사 인간으로서의 마인드는 완전히 바뀌었다. 나는 내 월급의 90% 이상이 감정노동이라고 생각한다. 결국은 인간관계의 값. 회사에서 친구 같은 사이가 되는 걸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있던 조직은 절대적인 복종, ‘도게자’를 원했다. 심지어 동료 사이에서도. 실력으로 승부하고 싶다고? 물론 실력으로 승부할 수 있다. 실력이 된다면 적어도 회사에서 도태되진 않으니까. 정신만 잘 차리면 가 ‘족’가튼 회사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아도 그럭저럭 다닐만하다는 거다. 물론, 함정에 빠질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런 함정들은 업무상의 과실이라기보다는 그저 바로 옆자리에서 귓속말로 속닥거리다 킥킥 거리며 은근한 따돌림을 견디면 되는 거다.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커피 심부름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명확하게 발언했다는 이유로.



  2020년, 네 번째 회사에 입사했다. 직전 회사에서도 열심히 일하다 사직서를 내고도 1년을 붙잡혀 일을 더 해주고 퇴사를 했다. 그 전의 회사에서도, 그 전의 회사에서도 퇴사 의사를 밝힌 이후 몇 개월씩 더 일을 해주고 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회사의 사정’을 봐주는 사람이었다. “이번 한 번만 도와줘. 이번 마감까지만 같이 하면 안 될까?” (당시만 해도) 마시지도 못하는 뜨거운 커피를 앞에 두고 내게 사정하는 사수들의 간절함에 나는 마음이 약해져 쉬이 넘어갔다. (지금도 이것은 나의 단점이다) 일머리 하나는 있다는 거. 나도 알고 있다. 어릴 때부터 손이 빠르고 (야무지지는 못하지만) 상황이 돌아가는 눈치가 빨라 결단력이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학교’라는 테두리, 도합 17년 동안 나는 언제나 ‘~장’의 자리에 있었다. 조별과제를 할 때마다 조장이 되었고, 팀전이 있을 때면 팀장이 되었으며, 반장 선거가 있으면 먼저 손을 들고 나가버리는 사람이었다. 좀처럼 잡을 수 없는 기회일수록 내게 어떤 순간들이 찾아올 때마다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나에게 역할이 부여된다는 사실, 무언가 새로운 경험을 해낼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나는 좋아했던 것 같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를 심장 깊숙이 집어넣고 녹여 먹는다고 하더라도, 비인간성에 인간성이 먼저 녹아버리는 경우도 분명히 있다. 직전 회사에서 퇴사를 결심했던 가장 큰 이유는 사수가 고작 입사 2년 차인 사원급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며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디자이너 7명에 AE 겸 카피라이터 한 명. 피드백을 조금이라도 늦게 받고 싶어 7명이 힘을 모아 퇴근 무렵에 작업물을 각각 보내오면 18시 이후부터가 진짜 나의 업무시간이었다. 모두가 퇴근한 옥탑방 사무실에서 나는 홀로 남아 여름이고 겨울이고 할 것 없이 해가 지도록 업무를 봤다. 다음날이 되면 거래처와의 미팅과 외근. 이벤트 기획을 해야 할 때는 진이 빠지도록 섭외를 위해 전화를 돌렸다. 야근수당? 야근식대도 없었다. 그러다 보면 얄궂은 어른들도 다수 마주하게 된다. 행사 당일에 무작정 펑크를 내는 일은 기본이요, 인쇄물 제작 중 오류가 난 일을 두고 무작정 화를 내며 내게 위협하듯 따지던 어른. 회의실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나자며 별 요상한 카페에서 시답지도 않은 수다를 떨기만 하던 어른 등 별일을 겪다 보니 나중에는 마음이 단단해져 사소한 일에는 웃음도 나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중에 가장 못된 어른은 바로 나의, 사수였다.


  바로 코앞에 사람이 앉아 있는데 굳이 굳이 전화를 해서 사람을 자기 자리로 오라고 시킨다. 그렇게 자리로 가면 왜 불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돌려보내고, 자리에 앉자마자 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알면서도 당해주며 꾸역꾸역 여보세요,라고 대답하면 “목소리가 왜 그렇게 좋냐”고 별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며 다시 자기 자리로 오라고 시킨다. 건물 관리인이 떡하니 있음에도 내게 화장실 청소를 하라며 대걸레를 손에 쥐어준다. 처음엔 멋모르고 열심히 했다. 나중엔 경력직원들이 쿡쿡 웃는 걸 보고 모든 게 장난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다짜고짜 종이를 던지거나 소리를 지를 때도 있었다. 그러고 나면 나중에 슬그머니 다가와 ‘실은 내가 부부싸움을 했는데..’하며 사과를 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어도 나는 참는 사람이다. 참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면접을 볼 때마다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예술대학 출신치고 이런 스펙도 있네요? 성적이 꽤 좋은데? 근데 이런 데는 완전 놀자판 아닌가? 어디까지 놀아봤어요?“ 인문학을 다루는 출판사에서 받았던 면접 첫 질문이었다. ”예대 출신이라 그런지 외모가 아이돌 같네. 근데 우리 돈을 많이 못 줄 것 같은데, 명예롭긴 해.“ 논술학원 교사 면접에서 받았던 마지막 질문이었다. 그렇게 고르고 골라 잘 골랐다고 생각한 회사에서 나는 늘 분노하고, 참고, 분노하고, 참기를 반복했다. 야근은 목놓아했다. 밥은 못 사줘도 일 잘하는 멋진 사수는 동화책 속 이야기였다.



  믿기 어렵겠지만, 다음 회사로 이직을 하면서 정확히 연봉을 1천만 원 올렸다. 이직 결정이 난 후 내게 남은 것은 독기와 불안 밖에 없었다. 새로운 조직에선 절대로 우스운 취급을 당하지 말아야지. 동료들이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늘 긴장했고, 집에 돌아오면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런데 웬걸, 첫날의 싸하던 눈빛과 분위기가 잊히질 않는다. 그냥 메신저로 자료 하나 보내주면 될걸. 10만 개의 파일을 다 열어보고 작업을 완료해야 한단다. 인수인계는 없다. 전임자의 흔적이 묻은 PC에는 노란 폴더가 빽빽하게 도배되어 있다. 그 PC는 보안팀에 의해 금방 반납되었으나 나는 어쩐지 찜찜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때 퇴사를 했으면 결말은 조금 달라졌을까.



  직장 내 괴롭힘. 법적으로 ‘괴롭힘’을 단정할 수 있는 기준이 있을까. 몸에 상처가 나야, 과실이 일어나야 괴롭힘일까. 무조건적인 증거를 확보할 수 있어야 괴롭힘일까. 정서적인 괴롭힘은? 문제가 없는 프로젝트를 두고 끊임없이 반려를 시킨다. 유관부서에서는 작업 일정이 한참을 넘겼는데 도대체 왜 기한 내에 완료하지 못하느냐고 성화다. 팀장에게 피드백을 달라고 요청하면 마땅한 피드백이 없다. 이 회사에서만큼은 할 말은 해야겠다는 생각에 참지 못하고 구체적으로 말해보라고 따지면 ‘은/는/이/가’의 조사 하나를 붙이며, 이제 넘기면 될 것 같다고 말한다. 유관부서에서 나는 우스운 사람이 된다. 휴가를 쓰겠다고 하면 다른 직원이 먼저 썼다며 동시 휴가를 못쓰게 한다. 휴가일에 임박해 그 동료는 휴가를 취소한다. 2020년대. 백번 양보해 나도 먹지 않는 커피심부름은 그렇다고 치자, 미팅도 없는 사수의 스타킹이나 생리대를 사 오는 일에는? 거부했다. 그런 건 할 수 없다고 했다. 반복됐다. 그에 반해 나보다 입사시기가 3개월 정도 더 빨랐던 동료는 먼저 나서 쓰레기통까지 비우는 수준이었다.


  직전 회사에서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별 말 같지도 않은 태클이 들어오면 웃으며 넘기는 정도의 근력은 생겨 있었다. 그랬기에 5년을 꾸역꾸역 참을 수 있었다. 그 사이에 사람은 이곳이 회전문인가 싶을 정도로 빠르게 들고나갔다. 새로운 직원이 들어오면 내게 뻗쳤던 기싸움이 새로운 직원에게로 옮겨갔다. 몰래 새로운 직원을 도왔다. 새로 온 직원이 정시 퇴근을 하면 그걸 이상하게 생각한 팀원들은 어떻게 해서든 그를 곤란하게 만들 궁리를 해댔다. 타자기 소리가 빨라지고 옆자리에서 또다시 쿡쿡 웃는 소리가 들린다. 해는 거듭되었고, 문화는 바뀌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팀장이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로 징계를 받았다. 증거는 명확했고, 팀 자체가 해체될만한 위기의 순간이었다.



팀장은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다. 징계를 받은 상황에서도 얼굴을 판판하게 들고 다니며 한때 내가 밤낮으로 야근하며 만들었던 자료들을 마치 자기가 한 것인 양 쏠쏠하게 이용하며 밥만 잘 먹고 다녔다. 나의 부사수님, 회사에서 일어나는 부조리한 일들에 대해 전혀 부사수님의 잘못이 아니라는 말을 해주며 격려하고, 응원했던 것이 무색하게 그는 상처를 받은 채 회사를 떠났다. 너무 착한 사람이 회사를 떠나는 것이 마음이 아팠고, 화가 났다. 회사에 출근하면 뒷머리부터 뻐근하게 아파왔다. 같은 예술 계열의 친구였기 때문에 취업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생계와 연결되었기 때문에 최대한 도와주고 싶었다. 그렇게 잃은 부사수님이 벌써 셋이나 된다. 회사는 인력감축을 명목으로 더 이상 인원을 충원하지 않기로 했다. 남은 사람들은 지옥불처럼 한 명을 타깃 삼아 헐뜯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남은 사람은 또 내가 되었다. 나는 지금 이 회사에서 가장 오래 근무한 장기 근속자다.


  팀장을 할 인력이 없어 신규 직원을 채용하겠다는 말에 처음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팀장 대행으로 징계를 받았던 사람의 권한을 복원해 준다고? 바로 올해 2월에 징계를 받았는데? CD(Creative director)는 다른 부서에서 보기에 서열이 제대로 잡혀 있어야 하며, 대리급이 과장급을 제치고 먼저 팀장을 다는 것은 이례적이며 비정상적이라는 말만 반복한다. 그럼 가해자가 팀장으로 복귀하는 건 당연하고요? 무엇이 비정상적인 건데요? 팀장은 권한을 받자마자 목소리부터 높아졌다. 나는 얼마 전에 정신과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는 부사수님을 떠올렸다. 힘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팀장이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나에게도 회사에서의 염증은 분명히 존재했고, 이것은 지금까지 나의 인생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빈틈을 보이지 말 것. 언제나 도태되지 않도록 눈에 띌 것. 주도권을 내게로 가져올 것. 어쩌면 타고난 성향일 수도 있겠지만 ‘불안’을 억누를 만한 요소가 이 방법 밖에 없기도,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하는 것이기도 할 테다.


  회의실을 나오며 나는 ‘퇴사’를 다시 한번 머릿속에 그려 넣었다. 모두가 나오라고 외치는, 심지어 부모님마저도 그만두라고 응원하는 이 회사를, 나는 무슨 오기로 꾸역꾸역 다니고 있는 거지?


  퇴사 결정 십초 전, 나는 속초행 티켓을 예매했다.

  어디로든 떠나야 했고, 무엇에든 휩쓸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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