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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민주 Nov 20. 2024

좋은 곳 보다 좋아하는 곳으로 가자

#01 프롤로그


처음 퇴사가 결정되었던 여름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공항 라운지에 앉아 글을 쓰고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한 번 들으면 잘 잊혀지지 않는 성씨 때문에 어릴 때부터 자기소개를 할 때면 이름만 밝히는 것은 부지기수였고, 어떤 일이 있으면 뒷자리에서 조용히 손을 흔들며 필요할 때만 존재감을 드러내는 사람이었으니까.

어느 정도였느냐면, 학과 MT 때에 게임을 하던 도중에도 내가 남아 있는 줄 모르고 술래잡기를 끝내버린 적이 있을 정도로 나는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내가 지금, 포털 사이트에 이름을 검색하면 검색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신춘문예에 당선된 지 1년이 되어가고 있다. 그 사이에 내겐 너무나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다섯 권의 책이 만들어졌고, 직접 출판사도 운영해 보았으며, 모임장이 되어 문학을 주제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보았고, 덕분에 방과 후 선생님이 되어 학교에서 강의를 해보기도 했다.


일 외적으로도 변화가 있었다. 연애를 했고, 달에 한 번씩 여행을 다녔다. 모르는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넉살이 생겼고, 러닝과 웨이트에 본격적으로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불의에 더 이상 참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5년 동안 다닌 회사를 퇴사했다. 나답지 않은 시간들을 보내왔다.



2024년은 내가 다시 스물아홉이 된 해다. 12월 24일에 태어나 숫자 '12'를 좋아하는 편이다. 2024년도엔 언제나 감사한 일들만 가득했다. 나는 나의 스물아홉 번째 12월을 여행하며 보낼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그저 회사에 다니고 있겠지, 싶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 내가 상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생각해 보면, 이 모든 일들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무심결에 뱉었던 나의 말들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이제는 말을 뱉는 것이 조금 무섭다. 내가 말하는 대로 모두 이뤄져 버리는 것 같아서.

  

  실은 지난달에 마지막으로 떠날 예정이었던 홍콩 이후로 더 이상 여행에 대한 욕구가 생기지 않긴 했다. 길을 잃었다고 생각했으나 도쿄와 홍콩 사이 나는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점차 잡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행은 방랑하기 위해, 혹은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해 떠난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방랑자가 아니다. 나는 이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한 달간의 유럽행을 또다시 택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한 달 정도 더 여행 다녀도 되지.'라는 친구의 한 마디가 방아쇠가 되었는지도. 지금 아니면 길게 여행을 가지 못할 것 같으니까. 다시 회사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으니까. 그러니까 후회 없이 여행하고, 다시 돌아와 내 자리를 찾으려 한다.


  언제나 좋은 곳을 꿈꿨지만 이제 나는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여행을 하면서 나는 '좋은 곳'을 찾아다니기만 했지, 진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잘 알아주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 시리즈의 제목은 '좋은 곳 말고 좋아하는 곳으로 가자.' 내가 좋아하는 곳이 어딜까.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어떤 풍경을 좋아하며, 어떤 사람을 좋아할까. 내가 나에게 손을 내밀어 보려 한다.

  

많은 사람의 응원과 도움을 받고 떠나는 여행이다.

나의 여행이 모두에게 행복을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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