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 - (1)

by 곽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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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아, 더운 날이 곧 지나갈 것 같아. 그때는 우리 볼 수 있을까?]


겨드랑이에 맺힌 땀을 슬쩍 닦아냈다. 집 안의 모든 문을 열어두었는데도 여전히 답답하고 더운 기운은 빠지지 않았다. 덥다. 작게 중얼거리며 휴대폰 화면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때는 보자. 엄마는 서진이가 언제든 부르면 갈 수 있는데.]


엄마가 있는 곳은 여름이 아닌데 엄마는 언제나 내가 사는 계절에 함께 있었다. 서울에서 암스테르담까지. 그곳의 6월은 추울 것이다. 찬 바람이 불고, 털모자와 장갑을 끼고, 푸른 눈의 사람들은 핫초코와 야채수프를 마시며 6월을 보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여름은 6월이 아니라, 그저 여름인가. 6월 하면, 모두들 여름을 떠올리는데 실은 그건 그 한 사람의 생각일 뿐이고, 엄마에게 여름은 조금 더 빠르거나 느릴 수도. 나는 엄마가 보낸 메신저에 답장하지 않고 몸을 일으켰다.


“서진아, 더우면 에어컨을 켜고 있지 왜 문을 열고 있어. 문을 연다고 더위가 해결되는 게 아닌데.”


그때 안방에서 아빠가 나와 손부채질을 했다. 아빠는 거실 협탁에서 리모컨을 꺼내 에어컨을 켰다. 금세 위잉하고 에어컨이 가동되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는 내가 열어놓은 모든 문을 꽉꽉 닫았다. 아빠의 겨드랑이에도 땀이 맺혀 있을 것이다.


“서진아, 아빠 오늘 늦는다. 그리고 엄마가 잠깐 한국에 온다고 하는데 엄마 만나러 갈 거면 나한테도 얘기해 줄래? 그 사이 아빠는 여행을 좀 가 있고 싶은데.”


아빠가 달력을 바라보며 말했다. 달력에는 조그마한 동그라미가 세 날짜 연속으로 쓰여 있었다. 아마도 엄마가 한국에 오는 날일 것이다. 엄마가 서울에 오면, 아빠는 서울을 떠났다. 엄마 앞에서 아빠 이야기를 하지 않고, 아빠 앞에서 엄마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된 지 겨우 한 계절이 흘렀다. 엄마는 겨울에 떠났고, 봄처럼 오지 못했다.


[서진아, 곧 이준오 생일이라는데?]


다시 휴대폰 알람이 울려 보니 이제였다. 홍이제. 또 이준오 얘기지. 나는 교복을 입은 채로 배 위에 휴대폰을 올려놓고는 눈을 감았다. 이마 위로 에어컨 바람이 솔솔 불어왔다. 그 바람에 단정하게 빗어놓은 앞머리가 훌훌 날렸다. 이준오라. 이준오 역시 봄에 갑작스레 우리 반으로 찾아들었다. 생각지 못하게 굴러 들어온 존재. 콩 주머니에 들어 있어야 할 세 개의 콩을 제치고 예상을 깬 네 번째 콩알 같은 애.


이준오는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일주일쯤 되었을 때 우리 반으로 전학을 왔다. 보통 전학생들은 새로운 학교에 오면 반 아이들의 눈치를 보느라 바쁜데 이준오는 캐릭터부터 강렬했다. 키가 커서 그런가 목소리도 크고, 외향적인 성격 탓인지 자리에 앉자마자 온갖 장난과 애교를 부렸으니까. 이준오의 곁으로 반 애들이 모이지 않으면 이준오가 반 애들 곁으로 먼저 다가갔다. 이준오는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학교에 완벽 적응했다.

[이따가 수업시간에 이준오한테 뭐 필요한 거 없을지 한 번 봐줄래?]


이제의 마지막 메시지엔 답장하지 않았다. 등교 시간이 가까워졌는데 나는 여전히 소파 위에 누워 있다. 어차피 일찍 가봤자 교실에서 하는 일이라곤 멍하니 창밖을 보거나 엎드려 있는 게 전부일 거다. 게다가 지금 나가면 아빠의 차를 타고 학교까지 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건 너무 어색했다. 할 말도 없는 데다 아빠는 괜히.

나를 가르치려 드니까.


“아빠 먼저 출근한다. 서진아 낮에 용돈 보내줄 테니까 저녁도 잘 챙겨 먹고.”

“응. 고마워.”


아빠는 셔츠 단추를 목까지 잠그고는 현관문을 열었다. 집 안은 조금 전보다 빛이 조금 더 들어왔다. 그리고. 정적이 찾아왔다. 째깍째깍 시곗바늘이 돌아가는 소리와 수도꼭지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짙어졌다. 엄마와 아빠는 마치 그런 소리들 같았다. 함께 있으면 들리지 않는 것들이 떨어져야만 들리는 무언가가 있는 존재들. 함께 있으면 좋겠는데 지금은 영영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 두 사람. 엄마와 아빠가 잘 지냈으면 했는데 초등학교 때부터 두 사람은 잘 지내지 못했다. 나와 한쪽씩 손을 잡고 있으면 잡힌 손의 온도가 너무 달랐다. 아빠는 언제나 손이 찬 편이었고, 엄마는 손이 따뜻하다 못해 땀이 배어 나오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래서. 겨울 나라로 떠나버린 것이었나. 나는 이제에게 알겠다고 답장을 보내고는 몸을 일으켰다. 한층 시원해진 집에서 에어컨을 켜고, 다시 창문을 열어두어야 하는 사람은 언제나 나였다.


신발장에서 운동화를 꺼내 신었다. 손가락의 반 정도가 커 헐렁이는 신발이었다. 그건 작년 겨울에 아빠가. 내게 사준 것이었다. 흰색 운동화를 갖고 싶다고 했더니 내 사이즈도 물어보지 않고 대뜸 아빠가 사 온 신발은. 내게 큰 편이었다. 나는 아빠에게 바꿔오라고, 나한테 제대로 물어보고 돌아가서 다시 내 것을 갖다 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내 방에서는 세화고등학교의 운동장이 한눈에 보인다. 침대 머리맡에 등을 기댄 채 손톱으로 ‘세화’라는 이름을 꾹 누르면 도미노가 무너지듯 학교 건물이 뒤로 넘어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창문을 바라보며 학교의 실루엣을 따라 그리는 것은 잠들기 전, 습관처럼 하는 행동이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와 맞닿은. 몇 개의 단지 사이에 있는 학교는 경사로에 있어 내 방이 있는 아파트 층의 높이와 같았다. 단지와 학교를 잇는 통로가 있다면 집 앞에서 걸어서 1분 거리면 학교에 도착할 텐데 철망으로 학교와 단지 사이를 막고 있어 언제나 10분 거리로 둘러둘러 학교를 가야 했다. 학교에 가려면 적어도 몇십 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유독 여유가 있는 날, 지각을 할 것 같은 날이면 벌써부터 아파트 단지와 철망 사이를 뚫고 지름길을 찾는 아이들이 있다. 어딘가에 반드시 학교로 가는 구멍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은 정말로 지름길을 찾아 지각을 면하거나 그 앞을 지키고 있는 경비 아저씨에게 혼이 나기 일쑤였다. 나는 아직 한 번도 지름길을 가려 시도해 본 적이 없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제가 가끔 하굣길에 나를 꼬드기긴 하지만 굳이 지름길로 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니까.


“서진아, 김서진! 오늘 좀 늦게 나왔네?”


뒤에서 숨을 헉헉대며 계단을 오르는 목소리. 홍이제다. 이제는 한 손에 거울을 든 채로 내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세화고등학교 100m’ 이제의 뒤로 학교를 둘러싼 외벽에 그려진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더워서. 에어컨 바람 좀 쐬다가.”


내 말에 이제가 손 선풍기를 꺼낼 때가 되었다며 손부채질을 했다. 그리고는 목에 메고 있던 넥타이를 조금. 풀었다.


“맞아. 늦봄인데 벌써 더워. 엄마가 그랬는데 이제 봄은 없는 계절이라고. 확 덥거나, 확 춥거나.”

“지구가 망하려나.”

“세상은 쉽게 망하지 않아. 뭐든.”


이제는 가방 속에 손거울을 넣으려다 마음이 바뀌었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이제는 중학교 2학년 때 나와 같은 반이 되었는데 운이 좋게도 중학교 3학년 때도 같은 반이 되었다. 2학년 때는 데면데면하다 두 번째. 학기 때 조금 친해졌는데 3학년 때 주변에 앉아 있기도 하고 첫 순서 번호와 끝순서 번호를 자주 짝지었던 담임 선생님 때문에 유독 더 친해졌달까. 이제가 우리 아파트 단지의 바로 옆옆 동에 산다는 사실 또한 3학년이. 되어서 안 사실이다.


이제는 삼 남매 중 막내딸이다. 그리고 귀여움을 많이 받았을 것 같은 늦둥아라고 한다. 이제는 언니와는 무려 열 살 차이가 나고, 둘째 오빠와도 여섯 살 차이. ‘이제’라는 이름도 이제 왔다고 해서 ‘이제.’ 홍이제. 이제는 나와 다르게 속에 이야기도 쉽사리 하고, 언제나 내게 먼저 다가와 말문을 튼다. 점심시간에도 내가 운동장에서 관중석에 앉아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으면 어느새 쫑알쫑알 나타나 초콜릿을 내민다. 그리고 혼자. 이런저런 이야기를 떠드는 것이다.


이제의 성격은 반쯤은 꽃밭에 사는 것 같은데 가끔 마음에 기상이변이 일어나면 얼음장보다 차갑고 냉정해진다. 이를테면 내가 지구가 망할 것 같다고 할 때, 논리적으로 지구가 망하려면 어떤 일들이 더 벌어져야 하는지 이야기해 준다거나 내가 이제의 집은 가족도 많고 늘 소란스러울 것 같다며 부러워할 때면 목소리부터. 착 가라앉는다.


이제는 우리 엄마가 서울을 떠난 걸 유일하게 아는 친구였다. 처음 이제에게 엄마에 대해 이야기를 했을 때, 이제는 괜찮냐는 말도, 엄마가 멋있다는 말도, 아빠와는 어떻게 되느냐는 말도 묻지 않았다. 그 애는 당시 집에 왔었던 친척들과는 다른 질문을 했다.


‘그럼 너는 지금 마음이 어떤데? 네게는 뭐라고 말했는데?’


그날은 이제와 집 앞 카페에서 르뱅쿠키와 마들렌, 그리고 각자 레몬티를 주문해 놓고는 마주 앉아 있었다. 카페 안쪽에서 흰색 털을 지닌 강아지 한 마리가 애완동물용 소파 위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가끔 음악이 끊길. 때마다 안쪽에서 강아지 특유의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말을 더듬더듬 뱉었고, 기억은 파편적으로 떠올랐다. 이제에게 우리 집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기억은 자꾸만 조각나서나 어떤 이야기는 이제에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를테면 엄마와 아빠가 언성을 높여 싸웠던 이야기. 엄마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엉엉 울던 이야기. 아빠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뭉치를 바닥에 던져 놓으며 현관문을 나서던 이야기. 문이 닫힐 때 쾅 울리던 소음. 이야기를 하는 내내 이제는 내게 그럴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서진아, 어느 집에나 위기는 있어. 그나저나 네 마음이 안 좋아서 어쩌니.”


이제가 내게 그런 말을 했을 때 나는 물끄러미 이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하얀 피부를 지닌 이제의 볼이 분홍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제는 요즘 핑크빛 블러셔에 관심이 많았는데 유독 아기 같은 인상 뒤로 이제의 입술이 무겁게 느껴졌던 건 나만의 착각인 걸까. 이제는 할머니 같은 부모님과 너무 어른인 언니 오빠들 사이에서 빠르게 어른이 되어 버린 걸까. 이제 만큼 귀여움을 받고 이제 만큼 아기 같을 수 있는 환경이 없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이제가 마들렌이 부드럽다며 칼로 빵의 반을 잘라 내게 내밀었다.


“먹어, 달다.”


나를 위로해 주는 건 좋은데, 너는 끝까지 내 마음은 모를 거야.

이제에게서 포크를 받아 한 입 베어무는데 날카로운 포크의 촉감이 입술 사이로 느껴졌다. 나는 이제에게 어떤 것들은 말하고 대부분의 것들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어차피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반이 나눠질 테고, 이제와 서서히 멀어질 테니까. 괜히 내 이야기를 아는 사람이 많은 것은 좋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너무 많은. 것들을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도 그렇지만 내게는 아빠도 잘 모르는 사람, 엄마도 잘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내 마음을 누군가 함부로 돌보려 할 때마다 알 수 없는 화가 났다. 그것이 두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누군가 내 것을 함부로 돌보면 나중에 정말로 혼자가 되었을 때 어쩌지 못할 테니까. 나는 그런 순간이 올까 두려웠다.




내 자리는 교실에서 맨 왼쪽 중간지점. 창문과 창문을 잇는 기둥 옆 자리에 있다. 그래서 쉬는 시간마다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거나 주로 엎드려 있을 때가 많다. 수업시간엔 필통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내고, 쉬는. 시간이면 주르륵 엎드리기. 쉬는 시간이고 수업시간이고 학교에 있는 동안엔 대부분 침묵하며 시간을 보낸다. 간간이 대화를 나눌 때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거나 옆반의 이제가 놀러 올 때다. 이제는 자주 우리 반에 놀러 오는데 체육시간처럼 쉬는 시간에 무언가를 준비해야 하는 일을 제외하면 거의 매시간 반에 찾아와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김서진. 이거 네 거.”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자 이준오가 내게 펜을 내밀고 있다. 뭔가 싶어 보면 내 이름이 라벨링 되어 있는 펜 한 자루가 그 애의 손에 쥐어져 있다.


“이게 뭐야?”

“네 거. 내 자리까지 굴러와 있길래.”

“아. 미안.”

“아니, 네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잖아. 그냥. 잃어버리지 말라고.”


나는 이준오의 손에서 내 볼펜을 가져갔다. 휑하니 가져간 뒤 필통에 넣고는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이준오는 그런 나를 보더니 머리를 조금 긁적이다 제 자리로 돌아갔다. 제 자리라고 해봐야 바로 옆자리이긴 하지만.


종례시간이 다가왔다. 선생님이 노트북을 연결하며 화면에 <밤샘독서캠프>라고 큼지막하게 적었다. 밤샘독서캠프? 반 아이들이 칠판을 따라 소리 내어 읽다 저들끼리 뭐가 재밌는지 껄껄 웃거나 장난을 치곤 했다. 또. 무슨 행사를 하는 거겠지. 나는 가방을 정리하다 문득 필통에 찔러 넣었던 볼펜을 만지작거렸다.


“밤샘독서캠프 알지? 우리 학교에서 진행하는 가장 유명한 행사잖아. 관심 있는 친구들 교무실로 와서 신청서 작성하고. 기말고사 근처라 참여율이 저조할 것 같지만. 올해는 특별히 간식도 작년보다 더 업그레이드되어 있으니까 많관부!”


담임은 작년에는 초코파이를 줬는데 올해는 파리바게뜨 빵으로 정해질 것 같다며 사뭇 진지하게 이야기를. 했다. 담임의 말에 아이들이 책상을 치며 방방 웃다 각자 휴대폰을 열어 달력을 보았다. 아마도 학원 일정을. 확인하거나 부모님께 허락을 받으려는 걸 거다.


“밤샘독서캠프라...”


밤샘독서캠프는 세화고등학교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행사일 거다. 십 년도 넘게 진행하는 거니까. 수련회. 다음으로 고등학생들에게 집을 나와 하룻 동안 밤을 보내는 일일 테니까. 그날만큼은 밤새 교실 어디든 불이. 활짝 켜져 있다. 도서관도, 시청각실도, 실험실도, 교실도, 강당도 환할 것이다. 하루 동안 정해진 몇 권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하면 되는 행사. 신청자들은 강당으로 모여 밤새 책을 읽는다. 책을 읽는다고 하지만 실은 돗자리를 펴놓고 수다를 떠는 일종의 밤소풍 같은 개념인 거다. 무리 지어 다니는 애들이야 말로 반가워하는 행사.


“오와. 예전에 인스타에서 세화고 야간캠프 본 적 있었는데. 내가 이걸 참여하다니!”


옆자리에서 이준오가 들뜬 듯한 목소리로 떠들었다.


“쌤 저 할래요!”


이준오는 손을 번쩍 들고 담임에게 소리쳤다. 이준오의 말에 근처에 있던 아이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소란을. 피웠다. 기말고사가 코앞이라지만 1학년들이라면 모두들 설레는 행사. 밤 동안 학교에서는 재밌는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소문에 의하면 어떤 선배들은 좀비 분장을 하고 강당을 난입하기도 했고, 또 아이돌로 데뷔했던. 어떤 선배는 기습으로 강당 단상에 올라와 공연을 하고 가기도 했다. 독서캠프라는 얌전한 행사 같지만 실은.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아이들이 준비한 장기자랑 공연으로 시작해 조를 나누어 알뜰 바자회 같은 것도 하고, 책을 교환하는 행사도 진행하니까. 선생님들도 자리를 바꿔가며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텐트만 치지 않았을 뿐이지, 그야말로 캠프인 것이다.


[서진아, 캠프 참여할 거지? 같이 하자!]


이제에게 메신저가 와 있었다. 홍이제는 이준오가 참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걸까? 홍이제는 이준오와. 대화 한 번 나눠본 적이 없으면서 이준오를 왜 짝사랑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생각해 보겠다는 답장을 보내놓고는 한쪽 손으로 턱을 괴었다. 그리고는 이준오의 얼굴을 슬쩍 바라보았다. 홍이제의 말에 따르면. 이준오는 잘 생긴 얼굴이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잘 모르겠단 말이지.


이준오는 얼굴도 동글동글하고, 피부도 가무잡잡하고, 턱끝에는 세 개의 점이 별자리처럼 찍혀 있다. 인중에는. 수염이 듬성듬성 자라 멀리서 보면 흙속에 파묻힌 감자 같다. 팔다리만 멀대 같이 길어서는 어찌나 수다스러운지 옆 자리에 앉아있을 때면 가만히 교실에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때마다 생각한다. 이준오는 나와는 너무 다른 사람 같다고. 내가 친구들에게 신경이란 걸 쓰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준오는 24시간 내내 친구가 없으면 안 되는 외향성을 타고났다고 생각한다. 이준오가 전학을 온 지는 이제 겨우 두 달이 조금 넘었는데. 이준오는 나보다 더 오래 이 학교를 다닌 것 같다. 슬그머니 이준오 쪽으로 시선을 흘겼는데 이준오와 눈이. 딱 마주쳤다.


“김서진, 너도 관심 있어?”


이준오의 물음에 나는 괜히 당황스러워 지우개 가루도 없는데 손끝으로 책상을 탈탈 털며 답했다.


“어? 나는... 시간 보고.”

“같이 하자! 반 애들 거의 다 하지 않나? 이런 행사.”

“글쎄? 기말고사가 코앞이라.”

“아 맞다. 김서진 너 성적 좋지? 그럼 더더욱 신청해. 네 점수 좀 낮춰 보자.”


별 웃기지도 않는 농담에 이준오는 배꼽까지 잡으며 낄낄거렸다. 홍이제는 이런 애의 어디가 좋은 걸까?


[우리 반 종례 끝남. 가다가 오므라이스 먹을래?]


이제에게 메신저를 보냈다. 오므라이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에 하나였다. 이제와 가끔 저녁을 먹고. 학원으로 간 지는 2년쯤 되어간다. 우리는 주로 학교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김가네에서 떡볶이나 김밥 같은 걸 먹고 헤어진다. 나는 아파트 단지에 있는 종합학원으로 가고, 이제는 지하철을 타고 동네를 벗어나 대학가에 있는 댄스 연습실로 간다. 이제가 댄스를 배우는 이유는 아이돌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저 이제가 그걸 원하기 때문이다. 이제네 부모님은 이제가 하고 싶은 건 다 하게 해 준다. 이제의 꿈은 대학생이다. 대학생이 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종종 이제를 부러워하기도 하고, 이해할 수 없을 때도 있다. 계획적이지 않은 사람, 목적지가 없다면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려고 하지 않을까?


이제네 집에 놀러 갔던 적이 있다. 이제의 집은 다섯 식구가 사는데 집의 평수는 우리 집보다 좁다. 어떻게 삼 남매와 부모님이 함께 지낼까 싶었는데, 이제의 집에 가니 이해가 되었다. 세 칸짜리 방에 이제네 부모님이 제일 작은 방을 쓰고, 이제와 이제네 언니가 제일 큰 방을 쓰고, 이제네 오빠가 방이 있다. 이제네 언니와 오빠는 이제를 귀여워하면서도 묘하게 질투를 한다. 첫째인 이제의 언니는 이제와 다르게 자랐다고 했다. 그 맘 때 고등학생이라면 반드시 가야 한다는 학원은 다 가보았다고. 끊임없이 공부를 하고, 과외를 받아 원하는 학교에 가긴 했는데, 결국 그만두고 다시 학교에 들어갔다. 그래서 이제네 언니는 스물여섯에 학교를 졸업하고, 스물여덟에 다시 신입생이 되었다. 이제네 오빠 역시 어찌저찌 대학교에 들어갔는데 군대를 제대하고 그만둬버렸다고 했다. 이제네 오빠는 몇 달 뒤에 해외에서 일을 한다고 하는데, 그 사이 이제와 이제네 언니가 각 방을 쓰게 된 것이 절호의 찬스라고 얼마 전에 이제가 내게 해준 이야기다.


나도 이제처럼 한때는 먼 미래를 바라보지 않고 선택을 해왔던 것 같은데, 내가 계획을 세우고,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시작된 건 부모님 때문이다. 이제네 부모님이 이제네 언니 오빠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아 이제의 선택을 존중해 주기 시작했다면, 나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 미래라고 생각해서 예상 밖의 사건들을 만들고 싶지 않다. 어느 쪽이 더 나을까 생각하면, 역시나 이제보다는 내가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적어도 앞으로 나는 더 이상 상처받을 일을 만들지 않을 테니까.


이제가 먼저 자리를 잡아놓겠다며 메신저를 보내왔다. 나는 알겠다는 손짓을 하는 이모티콘을 보내고는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책상 위에는 그날 해야 하는 중요한 일들을 파란색 포스트잇에 써서 붙여둔다.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책상 위에 ‘밤샘독서캠프’라고 쓰여 있는 쪽지가 눈에 보였다.


“밤샘독서캠프...”


가방을 한쪽 어깨에 메다 말고 중얼거리는데 누군가 어깨를 툭 쳤다. 고개를 휙 돌리니 이준오가 대걸레를 손에 든 채 고개를 까딱했다.


“집에 가?”

“아니.. 응.”


오므라이스를 먹으러 간다고 말하려다 굳이 그렇게까지 얘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도리도리 흔들던 고개를 다시 끄덕였다.


“같이 하자. 밤샘.”


이준오가 책상 위에 놓여 있던 포스트잇을 손으로 가리켰다. 나는 포스트잇과 이준오를 번갈아 바라보다 이준오에게 눈을 흘겼다.


“너랑? 내가 왜?”

“아니, 나랑 하자는 게 아니라. 그냥 참여하면 재밌잖아. 되도록 아는 사람이 많으면 좋은 거고.”

“아.”

“너랑 둘이 하고 싶다는 게 아니라.”

“알았다고!”


내가 발끈하자 이준오가 피식하고 웃으며 대걸레를 내쪽으로 내밀었다. 뭔가 싶어 보니 비키라는 뜻이었다.


“갈 거면 빨리 가. 나 네 자리까지 밀면 나도 갈 수 있어.”

“어디를?”
“집에 가려고 그러지.”

“아.”


나는 황급히 쪽지를 뜯어 주머니에 쑤셔 넣고는 자리를 비켜주었다. 이준오가 그런 나를 돌아보며 엄지를 척하고 내밀었다. 쓸데없이 쟤는 밝단 말이지. 괜히 이준오가 말 걸어서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밤샘독서캠프. 굳이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데, 교실에서 밤을 새어볼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 솔깃하긴 했다. 그런 이벤트는 우리 학교에만 있는 일일 테니까. 그렇지만 동시에 괜히 캠프를 신청해 일어나지 않아도 될 일들을 마주할까 두려웠다.


중학생 때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학교에서 열리는 다양한 행사나 이벤트에 곧잘 참여를 하는 편이었다. 과학경진대회는 물론이요, 학교에서 소소하게 열리는 답사 체험까지. 이제가 나를 알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세상에 호기심이 많은 편이었다. 새로운 것들은 모두 체험해 보고 싶었고, 그걸 체험해 봤다는 사실이 내 손에 들어왔다는 게 즐거웠으니까. 그런데 엄마가 집을 떠나 암스테르담에 가겠다고 할 때부터, 엄마를 떠나게 만든 사람이 아빠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나의 모험에 대한 욕심은 사그리 사라져 갔다. 내 생각에, 엄마와 아빠가 더 함께하지 못하는 이유는 두 사람 모두 모험심이 높았던 데다 각자의 욕심만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니까. 양보를 하지 않아서 두 사람이 함께할 수 없는 거라고, 예측 불가능한 길을 원했기 때문에 내게 그런 일이 벌어진 거라고 나는 확신했다. 내가 진로를 정하고, 매일매일 학교에서 할 일들을 정리해 두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가 계획적이고, 정해진 길만 가면 더 이상 생각지 못한 운명이 내게 다가오지 않을 테니까.


[서진아, 엄마랑 그날 저녁 같이 먹을 거지?]


교문에서 나와 이제가 있는 분식집으로 가는데 엄마에게 연락이 와 있었다. 암스테르담의 시각을 보니 새벽 무렵. 엄마가 일부러 나와 시차를 맞춰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고 있었다는 걸 안다. 엄마도, 아빠도 두 사람은 잘 지내지 못하지만 내게만은 끔찍하게 잘해준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엄마도 밉고, 아빠도 밉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것에 대해 질문하는 것도 지치고 싫다.


내가 엄마를 미워서 보기 싫다고 말해도 어차피 엄마는 암스테르담에 있어 나를 자주 볼 수 없고, 아빠가 밉다고 말해도 아빠 역시 일 때문에 바빠서 자주 얼굴을 보지 못한다. 친구들이라고 해봤자 겉으로만 어울려 다니는 척하는 것 같고,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는 관계가 있다는 건 다 거짓말 같다. 그냥 다들 따돌림당하고 싶지 않으니까, 소속감을 느끼고 싶으니까 거짓된 얼굴과 마음으로 손을 붙잡고 있는 건 아닐까, 마치 한때의 엄마와 아빠처럼.


입을 비죽이며 주머니에 손을 넣는데 바스락, 하고 주머니에서 무언가 만져졌다. 손을 꺼내어 보니 아까 주머니에 넣었던 그 포스트잇이었다. 밤샘독서캠프. 포스트잇에 써 있는 날짜는 공교롭게도 엄마가 나를 만나러 오겠다고 약속한 날이었다. 내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 엄마는 내가 엄마를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나는 누구도 이해하고 싶지도, 그저 그렇다며 모든 것을 수용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이제와 다르게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 하나도 없었는데 세상이 멋대로 내 마음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분식집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교무실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담임 선생님을 보자마자 말했다.


“선생님, 저 신청할래요. 밤샘독서캠프!”




파란식당. 이제와 처음 오므라이스를 먹었던 곳도 이곳 파란식당이다. 이제는 오므라이스를 좋아했고 나는 가지덮밥을 좋아하는데 파란식당은 분식집처럼 생겨서는 이것저것 다 판다. 창문이 열린 오픈형 식탁에는 떡볶이와 튀김을 팔고 가게 안으로 들어오면 가지덮밥이나 돈가스 같은 걸 팔았다. 그래서 가게 밖에는 주로 교복을 입은 애들로 붐벼 있었고 가게 안에는 대학생이나 선생님 같은 어른들이 주로 있었다.


나와 마주 보고 앉은 이제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내게 화면을 내보였다. 매주 화요일마다 가는 댄스학원에서 야외공연을 할 크루를 모집하는데 이번에 이제도 지원을 했다는 거였다. 나는 이제와 휴대폰 화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해가 지는 틈을 타 이제의 눈동자를 비추고 있었다. 이제의 눈동자는 옅은 갈색빛으로 반짝였다.


“여기 나가면 유튜브에도 출연할 수 있대. 그 왜 있지? 유명 아이돌 안무가 공식 채널에 연계해서. 재밌을 거 같아.”


이제는 몇 번이고 재밌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반복했다. 그렇지만 크루에 반드시 끼고 싶어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해도 좋고, 못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 정도 같아 보였다. 나는 이제의 휴대폰 화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작게 하품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나는 가끔 그런 면에서 이제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제는 나와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사람 같았고, 나는 언젠가 이제가 후회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원하는 대로, 마음대로 살 수 있다고 하지만 두고 보라지. 결국은 조급하게 미래를 준비하다 다 망쳐버릴지도 몰라.


그런 생각을 하는데 파란식당의 주인아주머니가 이제 앞으로 오므라이스를 내어 주었다. 부드럽게 익은 달걀말이 위로 별 모양의 케첩이 뿌려져 있었다. 뒤이어 가지덮밥도 나왔다. 고슬고슬한 밥 위로 물큰하게 잘 익은 가지가 올려져 있었는데 달콤한 냄새가 올라왔다. 이제와 나는 서로 숟가락을 들고 이른 저녁을 먹었다.


“아, 이제야. 나 신청했어. 밤샘독서캠프.”

“진짜? 나 너 안 할 줄 알았는데.”

“그냥. 한 번쯤 해서 나쁘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숟가락을 들고 괜히 양념된 가지를 휘휘 젓다 반으로 쪼갰다. 가지의 섬유질이 세로로 길게 찢어졌다. 그냥 구워 먹기만 해도 맛있는 가지에 달콤하고 매콤한 양념이 제대로 배어 있어 보기에도 맛이 좋아 보였다. 나는 가지와 밥을 섞어 크게 한 입 떠먹다 이제를 바라보았다. 이제 역시 흘러내리는 오므라이스를 보고 입맛이 돋는지 침을 삼켰다.


이제는 항상 밥을 먹을 때마다 세 입에 한 번씩 물을 마시는 습관이 있었다. 그렇게 먹어야 소화가 더 잘 된다나 뭐래나. 처음엔 이제의 그런 모습이 어린아이 같아서 조금 우습기도 했다. 이유식을 앞에 두고 끙끙 대고 있는 어린아이 같았으니까. 이제가 그런 습관을 가지게 된 것이 어릴 때 밥을 먹다 목에 방울토마토가 걸려 죽을 뻔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나는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눈앞이 캄캄해지는 경험. 이제는 그때의 기억을 말할 때마다 캄캄해지는 경험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고 내게 말해주었다.


“정말로 앞이 안 보이는 거야. 숨은 쉴 수 없고, 아빠가 내 발목을 잡고는 거꾸로 세워서 등을 두드리는데, 눈앞은 까맣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초록빛의 소용돌이가 점점 커지며 나를 집어삼킬 것만 같은 기분. 그러고 나서 한동안 밥을 먹지 못했어. 무언가를 씹어 삼키는 게 무서울 때도 있다는 걸, 나는 여섯 살에 알게 된 거지.”


이제는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지 이야기를 하면서도 몸을 부르르 떨었다.


“무서웠겠다.”


나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말했다. 그리고는 이제의 앞에 놓인 물컵을 바라보았다. 투명한 컵에 담긴 물은 이제가 무어라 말할 때마다 미세하게 진동을 일으키며 찰랑거렸다. 창가에서부터 시작된 빛이 투명한 유리잔을 지나 이제의 앞에 놓인 그릇 위까지 그림자가 날카롭게 늘어져 있었다.


“지금은 괜찮아.”

“어떻게 괜찮아졌는데?”

“언제든 그런 때가 와. 어쩔 수 없이 당연한 것들을 받아들여야 하는 때가.”


그 이야기를 해주었던 곳도 이곳, 파란식당이지. 이제가 내게 그 말을 하던 날은 내가 알던 이제가 아닌 것 같았다. 생각 없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놀고 싶은 대로 사는 철없는 아이가 아닌, 무언가 크고 깊은 비밀을 감추고 있는 아이 같았달까. 평소 같았다면 이제에게 더 궁금한 것들을 물었겠지만 어쩐지 그날만큼은 내가 궁금한 그 ‘때’에 대해 물어볼 수 없었다. 그러나 내게도 곧 그런 때가 왔다.


가지덮밥.


사실 가지는 내가 먹지 못하는 음식 중 하나다. 엄마가 암스테르담으로 떠나기 전까지 나는 가지를 단 한 입도 먹지 못했으니까.


가지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를 묻는다면, 이제처럼 가지와 관련된 안 좋은 기억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가지는 좀... 생긴 것부터 별로지 않나. 여기저기 제 몸의 색을 입히는 민폐 캐릭터에, 속은 노래서 물큰하기만 하고, 심지어 맛도 조금 이상하다. 고구마 같이 생겨서 고구마 하고는 또 다르고, 오이처럼 시원하지도 않고. 말하자면, 고무찰흙을 불에 익혀 씹어 삼키는 느낌이랄까.


가지가지한다.


게다가 어릴 때부터 집에서 엄마가 자주 하는 말 중에 하나였다. 서울에 있는 동안 엄마는 항상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식탁 위에 앉아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모습도 ‘가지가지한다’라는 말을 작게 내뱉었던 것 같다. 가지라는 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인지 가지라는 단어의 가짓수가 많은 걸 알면서도 거짓말처럼 다 가지로 들렸다. 맛도 없고, 성가신 단어가 있다면 그게 내게는 가지였다. 가지를 먹지 않게 된 것은, 가지 편식을 하게 된 것은 그런 단순한 이유다. 가지를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누구도 나를 혼내지 않았으니까. 급식에 가지가 나와도 먹지 않으면 그만이니까. 아니면... 가지 알레르기가 있다고 말해버리면 그만이니까.


그런 가지를 먹게 된 것은 역시나 나 역시 아빠를 닮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엄마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의 쓸데없이 고집스럽고 가지가지하는 성격 때문이다. 엄마는 내게 가지를 강요하지도 않고, 가지를 먹지 않겠다고 한다면 가지를 먹지 말라고 했지만, 엄마가 아빠의 가지가지한 모습이 싫어서 암스테르담으로 떠난 거라면, 나는 되도록 아빠의 편을 들고 싶었다. 가지를 사랑하면 가지가지한다고 말할 필요도 없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


사실 내가 가지를 먹기 시작했다는 걸 엄마도, 아빠도 알지 못한다. 애초에 내가 가지를 먹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없었으니까. 나는 가지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뿐이고, 가지를 먹지 않았을 뿐이지 누구에게도 내가 가지를 싫어한다고, 먹기 싫다고 말한 적이 없다. 그저 많은 음식 중에 그날 내가 가지를 먹지 않았을 뿐이라고, 아마도 부모님은 그렇게 생각할 거다. 나는 늘 그래왔고, 우리 가족은 늘 그런 상태였으니까.


그러나 분명한 건, 나는 엄마보다는 아빠를 더 닮았다는 사실이다. 스리슬쩍 가지볶음을 엄마 쪽으로 밀어놓는 아빠를 보면서 나는 알 수 있었다. 아빠도 분명 가지를 좋아하지 않는 거라고. 우리 가족 중에 가지를 좋아하는 사람은 엄마뿐이다. 엄마는 참기름에 들들 볶은 가지볶음도 좋아하고, 튀김가루를 묻힌 가지튀김도 좋아하고, 가장 좋아하는 건 가지에 소금을 쳐서 프라이팬에 구워 먹는 가지구이다. 그래서 엄마와 함께 밥을 먹는 식탁 위엔 가지가 올려져 있었는데 접시 한가득 가지가 있어도 아빠도, 나도 그걸 부러 먹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가지가지한다.”


엄마는 아빠와 내가 가지를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때때로 생각한다. 어쩌면 엄마는 앞으로도 영영 모를 수도 있다고. 암스테르담엔 가지가 있을까? 가지가 열리는 계절을 찾아 떠난 걸까? 가지가 없어도 엄마는 잘 지내겠지. 내가 없어도 잘 지내고 있는 것처럼. 나는 괜히 야속한 마음이 들어 내 앞에 놓인 가지덮밥을 괜히 숟가락으로 짓이겼다. 금세 눈물이 차오를 것 같았다. 나는 절대 울지 않으려고 눈밑에 힘을 주었다. 눈꺼풀을 꾹 누르면 곧바로 눈물이 주륵 볼을 타고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야, 김서진. 너 울어?”


이제가 내쪽으로 얼굴을 내밀며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괜히 가지덮밥을 시켜가지고는. 이제는 괜찮냐며 내게 물잔을 내밀었다. 마셔. 이제는 내게 울지 말라고, 네가 울면 소화가 더 안 될 것 같다는 둥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너도 나도 조금 있으면 학원 가야 해. 퉁퉁 부어가지고 가려고.”

“울어도 어차피 아무도 나한테 관심 없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눈물이 툭 하고 가지덮밥 위로 떨어졌다. 짠맛 나겠네. 이제가 물잔을 제 쪽으로 끌어당기며 벌컥벌컥 마셨다. 나는 다시 숟가락을 쥐고는 가지덮밥을 크게 한 입 먹었다. 파란식당에서 만든 가지덮밥은 유일하게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가지는 싫어하지만 이곳에서 먹는 가지덮밥은 맛이 좋고, 어쩌면 내가 가지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엄마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지는 본래 맛있는 재료인데 엄마가 너무 요리를 못해서 맛이 없는 것이라고 오해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러니까 내가 가지를 편식하게 된 것도 다 엄마 때문일지도 몰라. 다음에 아빠를 파란식당에 데려와야지. 그때 같이 가지덮밥을 먹자고 해야지.


이곳 가지덮밥은 고슬고슬하게 지은 밥에 달짝지근한 간장양념을 더한다. 와사비를 조금 올려놓고, 계란물을 묻혀 노릇하게 구워낸 가지에 또다시 두부양념에 쓰일 법한 간장양념을 더한다. 함께 먹는 밑반찬으로는 오이지가 나오는데 오이지는 신맛보다는 짠맛이 강하고 오독하게 씹히기보다는 오이의 겉면이 질겨 쫄깃한 맛이 난다. 가지는 물컹하기보단 바삭하고, 고소하기까지 하다. 아마 엄마가 좋아하는 진짜 가지구이의 맛은 이런 게 아니었을까? 파란 식당에서 가지덮밥을 먹을 때마다 생각해 본다. 엄마가 가지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엄마는 아빠의 가지가지한 모습에 자주 화를 냈지만, 가지처럼 입맛에 잘 맞는 사람이라서 결혼했던 것 아니었나? 엄마는 가지보다 암스테르담이 더 좋고, 아빠보다 나보다 암스테르담이 더 좋은 건가? 그러니까 나는 그날 엄마를 보고 싶지 않은 거다. 그날은 밤샘독서캠프에서 시간을 보내야지. 내가 속상한 만큼 엄마도 나 때문에 속상해져야지. 그날은 절대 집에 들어가지 않을 테다. 마지막 남은 한 입의 가지덮밥을 먹고 난 뒤에 손을 털고는 습관처럼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주머니 속엔 펜이 들어 있었다. 교무실에서 캠프 신청서에 이름을 적고 깜빡하고 필통에 넣는 것을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이제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나는 주머니 속에 넣은 펜을 만지작거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