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샘독서캠프는 세화고등학교에서만 진행하는 유일한 행사로, 이미 인스타그램에도 잘 알려져 있는 이벤트 중에 하나다. 그러니까 재밌는 졸업사진을 찍어 남기는 어느 학교처럼. 이제는 행사가 시작되기 며칠 전부터 준비물이랍시고 메모지에 이것저것 써 놓고 챙겼다. 이준오는 그날 이후로 나랑 내적인 친밀감이라도 생긴 것인지 반에서 마주칠 때마다 손까지 흔들며 인사를 했다. 이준오는 그냥 이준오일 뿐인데 어쩐지 이준오가 인사를 해올 때면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괜히... 낯이 뜨거워진 것 같다는 느낌이랄까.
엄마는 이틀 전에 네덜란드 공항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남기고는 그 뒤로 답이 없었다. 엄마가 탄 비행기는 암스테르담에서 출발해 오사카를 경유해 온다고 했다. 오사카에 간 김에 잠시 시내까지 나갔다가 서울에 오게될 것 같다고, 나는 엄마가 보낸 메시지에 답을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하지 못했다고 보는 편이 맞았다. 어차피 나는 엄마를 만나지 않을 테니까. 나는 그날 캠프에 참여하고 있을 테니까. 어쩔 수 없이 그날은 일정이 겹쳐서 엄마를 보지 못할 거라고 말하면 되는데 나는 엄마에게 그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이건 살짝 양가적인 감정이다. 엄마를 만나지 못하는 건 정해져 있는 사실인데, 엄마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를 보러 와줬으면 좋겠는 마음. 비뚤어진 감정. 열일곱이나 되었으면 이런 마음 같은 게 얼마나 유치한 지는 알고 있다. 그리고 내가 그런 선택을 함으로써 엄마에게 얼마나 큰 실망과 아쉬움주게 될지도 알고 있다. 엄마 입장에선 내가 그날 일부러 캠프에 참여한다고 생각한다거나 행사가 있어도 자신을 보기 위해 학교는 기꺼이 한 번 정도 빠져도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만약에 아빠였다면 어땠을까. 아빠였다면 내게 학교를 가라고 했을 것이다. 아빠는 때로 가족보다 일을 더 중요시 했었으니까. 멀뚱한 표정으로 저 멀리 교문을 바라보며 걸었다. 무리지어 다니는 애들 앞으로 이제의 화려한 가방이 눈에 띄었다. 이제는 한쪽 어깨로 메는 에코백에 책들을 넣어 다녔다. 이제의 가방엔 알록달록한 뱃지와 인형들이 줄줄이 매달려 있다. 내가 보기엔 세탁기에 돌릴 때 걸리적거릴 것 같은데 이제는 그 뱃지들이 다 상징이 있대나 뭐래나. 어떤 건 팬클럽 같은 곳에서 만드는 거라고 했고, 또 어떤 건 자기가 지향하는 커뮤니티에서 만드는 거라고 했고. 따지고 보면 이제가 달고 다니는 인형들도 다 의미가 있었다. 책가방에 아무것도 달고 다니지 않는 이제와 나는 퍽 다르면서도 서로를 가장 편하게 여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에게 내 생각들을 다 털어놓지 않는데, 이제는 항상 나보다 한 수위인 것 같다. 내 마음을 다 궤뚫고 있는 것 같으니까. 나는 뒤에서 이제를 부를까 하다 괜히 목소리를 크게 내고 싶지 않아 가만히 입을 다물고 이제의 가방을 멍하니 바라보며 걸었다.
“뭐야? 어깨 좀 축 쳐져 있네? 설레서 잠 못 잠?”
이준오였다. 이준오는 방금 머리를 감고 왔는지 머리털이 삐쭉삐쭉 날이 서 있었다. 로션도 퍽퍽 바른 것인지 피부가 유독 반질반질해 보였다. 면도를 하다 상처가 났는지 고개를 들자 이준오의 턱에 난 상처가 눈에 띄었다.
“내.. 내가 너 때문에 왜 설레?”
내 말에 이준오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갑자기 와하하하고 웃었다. 그 바람에 앞에 가던 무리의 아이들이 다들 한 번씩 뒤를 돌아보며 수근댔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이제도 뒤를 돌아보고는 나와 이준오를 번갈아보았다. 이제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나는 이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준오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깔깔대길래 팔꿈치로 이준오의 복부를 푹 하고 쳤다. 이제가 다시 등을 돌려 서둘러 학교로 가는 게 눈에 보였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나 때문이 아니라, 오늘 학교에서 밤새니까. 캠프 때문에 말이야.”
“아하.”
이준오가 웃기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괜히 민망하고 머쓱해져 걸음을 조금 빨리했다. 그러나 이준오의 걸음보다 나는 항상 느렸다. 시간 나면 경보하는 연습 좀 해야겠다.
“근데 캠프 때문에 다들 오늘만 기다리는 애들 많더라. 매년 캠프에서 재밌는 일들이 일어나니까.”
“나는 잘 몰라. 사실 별로 관심 없었거든.”
“몰라도 돼. 나는 이 캠프에 관심이 많거든.”
“그렇구나. 아직 책도 못 정했는 걸.”
“응? 김서진 너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구나. 책은 정해져 있어. 우리는 그 책을 찾아야 하고, 그 책을 읽고 퀴즈를 맞추면 캠프 통과야.”
“아, 몰랐네.”
“뭐, 몰라도 되지 않을까 설명 한번 더 해주실 거고. 또 애들끼리 찾느라 룰을 알게되겠지.”
“그렇구나.”
“캠프에선 괴담도 있고, 연애담도 있고. 재밌더라구. 너도 나도 재밌는 일 한 가지쯤은 만들어갈 것 같은데.”
“네가 생각하는 재밌는 일이 뭔데?”
“뭐긴. 당연히 이런 캠프에선....”
이준오가 주변을 두리번 거리더니 손을 모아 쉿, 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리고는 내 귓가로 얼굴이 가까워졌다.
“비밀 만들기.”
이준오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퍼졌을 때 ‘비밀’이라는 단어보다 그 애의 간질거리는 숨소리가 더 신경이 쓰였다. 나는 목을 움츠리며 이준오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밀어냈다.
“야, 무슨...”
이준오가 씨익 웃으며 몸을 바로 세웠다. 이준오는 제 머리를 매만지더니 교문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나도 이준오를 따라 걸었다. 운동장 위의 모래알갱이가 바삭하게 밟혔다.
“그래서, 소원은 정했어?”
“소원...”
“내 소원은 비밀은 아니지만, 조금의 비밀이 있기는 하지.”
이준오와 함께 교문을 통과하고 계단을 오르고 복도를 걸었다. 교실을 들어서는데 이제가 옆반의 문앞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에게 무어라고 말을 하려 걸음을 옮기는데 이제가 홱하고 몸을 돌려 제 반으로 들어갔다. 이제에게 무슨 일이 생긴건가 싶었다. 이제답지 않게 샐쭉한 표정.
쉬는 시간에 이제의 안부를 물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하필 오늘따라 쉬는 시간마다 일이 생겼다. 밤샘독서캠프에 참여하는 애들끼리 조도 짜야 했고, 선생님이 나를 지목하는 바람에 교무실까지 짐을 같이 옮기기도 했고, 체육을 앞두고 옷을 갈아입느라 점심시간이 훅 지나가버렸다. 그 사이 이제에게선 한 통의 연락도 오지 않았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준오는 평소와 다름없이 애들 무리에서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준오가 전학을 온 뒤로, 아니 내가 이준오를 신경쓰기 시작한 뒤로, 한 가지 분명하게 알게된 사실은 이준오는 한 번도 외로워보이는 표정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 역시 이제의 결정들 만큼이나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수도꼭지 빌고 싶은 소원 따위가 더 이상 전학을 가지 않는 것인데 어째서 이준오는 항상 싱글벙글한 얼굴인 걸까? 어째서 이준오에겐 항상 재미있는 일들만 일어나는 걸까. 세상에 외롭지 않고, 기분이 별로지 않고, 우울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이준오는 마치 광고 속에 잘 만들어진 연출용 음식 같다.
이준오는 나와 대각선 자리에 앉아 있다. 이준오의 자리에선 내가 보이지 않지만 내 자리에선 이준오가 잘 보인다. 창가쪽에 앉아 있는 나는 종종 칠판을 보는 척 이준오를 힐끔거리며 바라보기도 했다. 이준오는 공부에는 영 취미가 없는 것 같다. 수업시간엔 대놓고 엎드려 자거나 책에 낙서를 하는 편이다. 그러나 선생님한테 혼이 나기도 하는데, 선생님이 엄한 표정으로 이준오에게 잔소리를 해도 이준오는 특유의 귀여운 표정으로 상황을 재치있게 모면한다. 나는 항상 심각한데. 나는 선생님이 나에게 무어라 잔소리를 해도 심각하고, 이제가 평소와 다른 태도를 보여도 심각해지고, 엄마나 아빠와 조금의 갈등을 빚어도 심각해지는 캐릭터인데. 내가 물가에서 꿈쩍 않는 돌이라면 이준오는 부피가 커질수록 가벼워지는 풍선 같다. 그래서 이준오와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 이준오의 풍선이 내 돌에 연결되어 있다면 중력이든 약속이든 정해져 있는 모든 룰이 깨지고 나도 왠지 하늘로 두둥실 떠오를 것 같다. 그런 거짓말 같은 일들이, 절대로 이뤄지지 않을 소원 같은 것들이 이뤄질 것 같다는 기대가 두둥실 생겨버리는 것이다.
그 수도꼭지에 소원을 빌면 정말로 이뤄질까? 그런 기대 한번쯤 품어봐도 괜찮을까?
*
이제의 반에 가 보는 때는 드물다. 대개는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이제가 나를 찾아오기 때문이다. 이제는 반에 들어오면 이준오가 서 있는 위치를 한번 스윽 훑고는 곧장 내 자리로 온다. 그리고는 잡다한 이야기들을 한다. 이를테면 편의점 신상 라인업이나 아이돌 얘기. 화장품같은 얘기다. 주로 이제가 이야기하고 나는 듣는다. 듣다가 가끔 아침에 이르게 편의점에 들릴 때면 이제가 말했던 신상 간식을 사놓고는 나눠 먹기도 한다. 지난달엔 자두와 콜라보한 디저트가 많았고, 이번달엔 메론. 인터넷에 검색하지 않아도 그런 건 척척 잘 알게 된다. 이제와 같이 다니면.
내가 이제의 반에 가는 때는 체육복을 빌리러 갈 때라거나 급하게 이제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다. 그런 때가 아니라면 대체로 나는 반에 혼자 있는 편이다. 10분간의 휴식시간. 10분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간다. 때때로 반 애들이랑 필통 구경을 하며 사소한 수다를 떨 때도 있고, 미리 해오지 못한 학교 숙제를 하느라 시간을 보낼 때도 있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껏 엄마와 아빠를 미워하기만 해도 시간은 금방 흐른다. 살면서 몹시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 상실했다는 기분이 들 때, 온종일 그 생각에만 골몰해 있을 때 시간부터 흐른다는 걸 나는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알지 못했다. 이제의 반에서 이제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아침에 그렇게 휙하고 먼저 나를 떠난 뒤로 이제는 무슨 일인지 쉬는 시간마다 반에 찾아오지 않았다. 이제에게 무슨 일이 생긴걸까? 그러고보니 요며칠 집 생각만 하느라고 이제를 살피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가방에서 메론맛 필링이 든 마카롱을 꺼내고는 이제의 반으로 갔다. 이제의 반은 내 옆반, 나는 4반이고 이제는 5반이다. 대체로 이제가 반에 있을 때는 엎드려 잠들어 있거나 무언가 일을 하고 있어 정작 이제의 반에서는 수다를 떨어본 적이 없었다. 이제에게 마카롱을 건네면서 무슨 일인지 물어볼 생각이었다. 이렇게 하루치를, 오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까. 3교시가 끝난 무렵의 쉬는시간이었다.
사람은 대체로 타인에겐 자신의 보이지 않는 면까지 알아주었으면 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다른 타인의 이면을 두루 살피려 하지 않는다. 그렇게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다, 자신의 상처와 이해만 구하려 하다 어느날은 이해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휙 몸을 돌리기도 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때 내가 외면당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타인의 이면을 외면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이다. 지금 내가 그렇다.
그러고 보니 이제는 자신의 반에 대해 내게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학년 전체가 모여 행사를 진행할 때에도 대체로 이제는 반에서 혼자였다. 등하굣길에, 그리고 내 앞에서는 외향적인 성격의 이제가, 춤연습을 하는 학원에서는 깔깔거리며 웃을 줄 아는 이제는 반에서는 존재감이 없는 애 같았다. 내게 이제는 아이돌 같고, 반짝반짝 빛이 나는 애인데, 그래서 잘생긴 이준오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드는 애인데 이제의 반에서 이제는 회백색으로 칠해져 있는 움직이지 않는 석고상 같았다.
“홍이제.”
이제의 엎드린 책상 앞의 의자에 앉아 이제를 흔들어 꺠웠다. 이제는 으음, 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들었다. 이제의 입술이 체리색 립글로즈로 번들거렸다. 이제는 나를 보더니 순간 반가운 표정을 짓다 이내 무언가 생각이라도 난 듯 시무룩한 얼굴을 했다.
“왜. 체육복?”
“아니. 그냥.”
“네가 그냥도 오네.”
나는 이제의 주변을 둘러봤다. 이제의 반은 우리반과 분위기가 비슷했다. 애들은 대체로 교실 뒤편의 사물함 앞에서 몸을 던지며 놀거나 창가에 걸터앉아 수다를 떨거나, 칠판 앞에서 의미없는 낙서를 한다. 그 중 몇몇은 책상 앞에서 노트에 무언가를 적어가며 공부를 하거나, 태블릿으로 넷플릭스를 보거나 엎드려 잠들어 있다.
“왜. 무슨 할 말 있어?”
“아니, 너 무슨 일 있나 해서.”
내 말에 이제가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나는 손에 든 마카롱을 이제 앞으로 내밀었다.
“이번 달 신상. 이따 캠프 때 같이 먹으려 했는데.”
“캠프? 아, 오늘이었지. 이따 엄마한테 이야기해야 겠다.”
“너 이거 먹고 싶어했잖아. 오늘 기분 좀 별로인 것 같다?”
“아니야. 네가 나를 잘 모르는 것 뿐이지. 내가 너를 잘 모르는 것처럼.”
이제는 묘하게 심통이 난 듯 보였다. 이제가 내게 이유도 없이 그런 식의 태도를 한 적이 없었기에 나는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너를 왜 몰라? 우리가 친구가 된지 얼마야.”
“나는 너 잘 모르겠는데?”
“뭐?”
“잘 모르겠다고.”
이제가 피곤하다며 다시 책상 위에 엎드렸다. 그때 다시 수업을 알리는 알림이 흘러나왔다.
“일단 이따 캠프 때 얘기하자.”
나는 이제의 앞에 마카롱을 올려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이제가 다시 내 손에 마카롱을 쥐어주며 말했다.
“됐어. 이따 이준오랑 같이 먹어. 점심시간에.”
나는 이제의 자리에 다시 마카롱을 놓고는 반으로 돌아갔다. 뒷문을 열자마자 이준오가 바로 앞의 책상에 걸터앉아 애들과 게임을 하고 있었다. 이준오는 나를 흘깃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며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함께 게임을 하던 애들이 갑자기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이준오를 향해 욕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준오를 지나쳐 자리로 돌아갔다. 좀전까지 이제가 내게 하던 말과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이제는 내게 화가 나 있는 것 같았다. 그것도 나 때문에 화가 난 것이지 다른 이유인 것 같지는 않았다. 이제가 평소에 세상에 불만이 많긴 했어도 그게 애써 내게 튀지는 않을 테니까.
그게 아니면 이제에게 정말 무슨 일이 생긴거다. 이제가 어떻게 해도 감당이 되지 않는 일. 그런 일이 생긴 게 아닐까. 그래서 누구와도 마음을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상태. 그게 설령 아주 가까운 친구라 하더라도 말이다. 나는 그 마음을 잘 안다. 불과 1년 전의 내가 그랬으니까. 중학교 3학년 때의 나는 지금의 나와 달랐다. 그때는 이제와 가장 친하다고 말하기도 조심스럽다.
그때 내 주변에는 친구들이 아주 많았다. 이준오의 모습이 1년 전까지의 내 모습이라 해도 좋을 거다. 쉬는 시간이면 교문을 통과해 학교 근처 편의점으로 달려가 애들과 간식을 사먹으며 깔깔대는 것이 내 성격이었다. 그런데 정확히 1년 전 여름. 부모님이 내게 들려준 이혼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풀 수 없는 숙제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정확히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고, 나중엔 왜 두 사람이 그런 결정을 하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는 하고 싶은 공부가 있다고 했고, 아빠는 그걸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듣기로는 그게 전부이지만, 실은 엄마와 아빠가 내가 보이는 곳이든 보이지 않는 곳이든 얼마 동안 서로를 원망하고 있었다는 걸 안다. 그래도 이런 상황이 우리집에 생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혼을 하기에 엄마는 겁이 많은 사람이니까. 아빠는 촌스러운 사람이니까.
그건 내가 정말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친구들 사이에서 입을 다물어버렸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이,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다 귀찮았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세상에 영원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도, 친구도, 그 무엇도. 내가 웃지 않게 되자, 더 이상 놀지 않으려 하니 애들도 금세 나를 시시하게 여기는 듯했다. 무슨 일이 생긴 거냐고 묻는 친구들이 있었으나 그걸 일일이 피곤하게 이야기하고 다니고 싶지 않았다. 누구도 나를, 우리 가족을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친구들은 조용해진 나를, 어두워진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 아이들은 나보다는 어쩌면 나의 이미지를 좋아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 무렵, 내 주변에는 나를 떠나는 친구와 떠나지 않는 친구가 남아 있었다. 그 한 명이 내겐 이제였다.
괜히 답답하고 속상한 마음이 들어 책상 앞에 철푸덕 하고 고개를 묻었다. 소란스럽던 복도는 점점 잠잠해지고 있었다. 내 앞자리 애도 의자에 철푸덕 하고 앉는 소리가 들렸다. 점심시간에도 이제의 반에 가 봐야 하나? 고민하는데 앞자리 애가 나를 꾹 하고 눌렀다. 고개를 드니 이준오였다. 얘는 요며칠 왜 자꾸 나를 괴롭히는지.
“무슨 일인데.”
나는 이준오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고개를 바꿔 다시 엎드렸다. 잠시 후 선생님이 앞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준오는 제 머리카락을 몇 번 만지작거리며 자리로 돌아갔다. 수업시간 내내 이준오는 종종 나를 돌아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노트에 의미없이 책 속 내용들을 옮겨 적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건 내가 방해받고 싶지 않을 때마다 하는 유일한 쓸모없는 습관이다. 아무 의미 없이 노트에 글을 옮겨적는 일. 문장이 좋아서라거나 기억해두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정말로 의미없이 하는 거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집에 있을 때나 학교에 있을 때나 학원에 있을때나 사람들은 내가 가만히, 멍하니 있을 때면 자꾸만 내 상태를 묻고 걱정하는 척 무슨 일이 있는거냐고 물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만히 생각의 잠 속에 빠져 있는 것 뿐인데 사람들은 나를 깨우려 한다. 이 나이에는 이 나이에만 보여야 하는 행동이 있다는 것처럼. 그래서 공부하는 척 책 속의 글을 옮겨 적으며 나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 있으면 뭐라도 하는 것 같으니까 누구도 나를 건들지 않았다. 건들지 않으면서 나는 여전히 유쾌하고, 발랄하고, 사람들이 기대하는 모습을 채워줄 수 있으니까. 물론 손은 좀 고되지만.
점심시간이 되어 이제네 반으로 갔는데 이제가 자리에 없었다. 나는 이제의 반을 몇 번 들여다보다 복도쪽 창가에 등을 기댔다. 창가에서 급식실로 가려면 운동장을 가로 질러가야 한다. 뙤약볕 아래 눈에 띄는 아이. 이제였다. 나는 한 손으로 햇빛을 가리며 급식실로 걸어가는 이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기대고 있던 등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이준오와 마주쳤다. 이준오가 나를 위아래로 훌더니 지나치던 발걸음을 되돌렸다. 나도 모르게 먼저 가는 이제를 가렸는데 이준오는 나보다 훨씬 키가 커서 이미 이제를 본 것 같았다.
“너네 싸웠냐?”
나는 대답 대신 이준오를 홱하고 지나쳤다. 그러자 이준오가 나를 따라왔다. 내 앞으로 드리워지는 그림자에 자꾸만 이준오가 겹쳐졌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내가 왜 이준오를 피하고, 이제와 같이 밥을 먹지 않는다는 걸 부끄러워해야 하지? 나는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그러자 뒤따라 오던 이준오가 급하게 제 몸을 멈추다 휘청거렸다.
“몰라, 나도. 갑자기.”
이준오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급식실로 향했다. 누가 보면 이준오와 내가 나란히 점심을 먹는 것이라고 오해할 수 있겠지만 실은 각자 가는 것인데 걸음의 속도가 비슷한 것일 뿐이라고 나는 주장하고 싶다.
급식실로 가는 길에 이준오는 우리 반의 아이들, 그리고 다른 반의 아이들과 쉽게 인사를 주고 받았다. 얼굴은 기억해도 말을 해 본적 없는 애들과는 말을 섞지도 않는 나와는 다르다. 이준오는 나보다 한 걸음 뒤에 서서 나를 따라오다 말고, 또 따라오다 마는 식으로 주변을 서성였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급식판을 놓고는 음식을 담았다.
자리에 앉으려는데 이준오가 맞은편에 급식판을 놓았다. 그러자 이준오와 얼굴을 트고 지내는 애들이 이준오 주위로 몰려들어서는 소란스럽게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나는 멀리 이제의 테이블을 흘깃 보다 테이블에 시선을 고정한 채 조용히 밥을 먹었다. 옆에서는 이준오를 향해 비행기를 날리듯 입으로 슈웅하는 소리를 내며 포물선을 그리듯 친구들의 입에 숟가락을 갖다대고 있었다. 이준오는 뭐가 웃긴지 그 모습을 보며 피식하고 웃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금세 표정을 굳혔다.
이준오는 밥을 느릿하게 먹는 편이다. 내가 반찬 두 입을 먹는 동안에도 이준오는 입 속에 담긴 음식을 잘근잘근 씹고 있다. 밥을 먹는 동안 옆에 있는 애들과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그보단 속도가 느린 편 같았다. 입 안에 음식이 들어가면 오래도록 곱씹는 타입. 그 덕분에 내가 이준오보다 훨씬 빨리 밥을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판 위에는 가지와 어묵을 달달하게 볶은 반찬과 고구마 필링이 꽉 찬 돈가스, 그리고 미역국과 청포도 몇 개가 담겨 있었다. 내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자 이준오가 조금 기다려달라며 입 속의 음식들을 힘겹게 씹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저와 내가 친구라고? 나는 한심하다는 듯 이준오를 바라보다 몸을 일으켜 그대로 식당을 빠져나왔다. 등 뒤로 이준오가 입 속의 음식을 잔뜩 우물거리며 무어라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준오의 옆에 앉아 있던 애들이 이준오의 등을 치며 깔깔 웃기 시작했다. 그 상황에서 웃지 않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평소 같았으면 이제와 운동장을 둘러싼 계단에 앉아 노래를 듣거나 의미없는 말장난을 주고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이제가 없는 점심시간은 생각보다 길었다. 나는 혼자 운동장을 걷고, 화단을 따라 걸었다. 운동장에는 이미 점심을 먹은 애들이 축구공을 가져와 재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그바람에 금세 흙먼지가 일어나 있었다. 텁텁한 냄새. 그건 운동장에서나 나는 냄새다. 아주 뜨겁고 건조한 여름이면 더 짙어지는 냄새 말이다. 나는 휴대폰을 열어 이제에게 전화를 할까 하다 그만두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카톡을 주고 받았던 이제가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알 수 없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관계에 대해 절실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세상엔 영원한 건 없다고. 뭐든 쉽게 시작되고, 쉽게 끝나는 거라고, 그러니까 속상한 일이 생겨도 상처받지 말자고 다짐했던 시기가 있었다. 중학교 때에도 초등학교 때에도 애들은 퍽하면 삐지고, 퍽하면 이유를 모르게 화를 내거나 입을 다물었다. 무리지어 다닐 때에도 누군가 한 명이 희생하거나 포기하지 않으면 관계는 쉽게 끊어지는 것 같았다. 그건 아이들만의 세계는 아닌 것 같다. 문득 엄마와 아빠에 대해 생각했다. 두 사람도 하루 아침에 이제와 나처럼 생각하게 된 건 아닐까. 나와 이제, 나와 친구들, 나와 이준오 사이에 틈이 있는 것처럼 언젠가부터 가족이라는 울타리에도 틈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주 미세하고, 사소한 틈 같은 것. 모눈종이의 그 한 칸 같은 틈 말이다. 그 틈은 멀리서 보면 오밀조밀한 면처럼 보일지 몰라도 틈은 어찌됐건 틈이고, 틈은 이어져 있지 않은, 맞닿아 있지 않은 선이다. 그런 건 언제고 쉽게 벌어지거나 서로를 찌를 수 있다. 이제와 나처럼. 엄마와 아빠처럼. 그런 생각을 하다 시간을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10분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지금쯤 엄마는 인천에 들어왔겠지. 아직 연락이 없는 걸 보면 이제 막 비행기가 이륙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 모르겠다. 열일곱의 내가 다 감당하기엔 고민의 수가 너무 많은 것 같다.
한숨을 쉬며 학교 건물 앞의 계단에 철푸덕하고 주저앉았다. 그 바람에 교복치마 아래 허벅지가 계단 참의 금속에 고스란히 닿았다. 차갑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잠시 눈앞으로 헉헉거리는 소리를 내며 이준오가 달려왔다. 쟤는 또 왜 저래. 이준오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손을 흔들어 보였다.
“뭔데.”
“헉...헉... 좀 기다려주지.”
“우리가 언제부터 점심 같이 먹는 사이라고.”
“같이 먹을 때도 있고, 아닌 때도 있는 거지. 또 전학간다고 대꾸할 필요도 없다 이건가?”
“그런 게 아니라... 어색하니까.”
“뭐가 어색해. 친해진 지 얼마 안되어서? 그럼 난 항상 어색해야 하더라.”
“그게 무슨 말이야?”
“전학 갈 때마다 느껴. 매번 새로운 애들과 인사해야 하잖아? 처음엔 좋았어. 별로라고 생각했던 내 이미지, 친구관계 다 리셋되는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아니야. 모든 관계에는 축적된 시간이라는 게 있더라. 내가 아무리 친한 친구, 진짜 친구를 만들겠다고 노력해도 그 시간이라는 벽을 무너뜨리는 건 쉽지 않더라고. 나는 늘 파고드는 존재, 사이. 그런 거더라.”
이준오가 말을 마치고 계단 옆 화단에 엉덩이를 조금 걸쳐 앉았다. 이준오의 말에 끄덕이는데 내 앞으로 이제가 지나갔다. 이제는 나와 이준오를 번갈아 보더니 입술을 앙다물며 내 앞을 지나갔다. 순간 마음 속에 작은 불꽃이 터진 듯한 기분이 느껴졌다. 나는 이준오의 등을 툭 치며 말했다.
“시간, 그거 중요하긴 한 거 같은데. 꼭 그렇지도 않아. 관계라는 거. 쉽게 무너지기도 할 수 있는 거거든. 생각보다 아주 사소한 순간에서 말이야.”
이준오가 무슨 말이냐는 듯 계단참에 앉아 있던 나를 뒤돌아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아, 하며 제 이마를 짚었다.
“진짜 너네 뭐 때문에 싸운 거냐. 곧 행사인데 너네 또 붙어다녀야 하는 거 아니야? 여자 애들은 그렇잖아.”
이준오의 물음에 나는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나도 모르겠다.”
“그럼 지금 물어봐. 뭘 눈치를 봐.”
이준오의 말에 나는 순간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이제를 향해 달렸다. 복도쪽으로 달려가자마자 이제가 보였다. 나를 지나친 이제는 복도 저 멀리 가 있을 것 같았는데, 아니었다. 이제는 복도로 향하는 코너를 돌자마자 자리에 주저앉은 채로 얼굴을 묻고 있었다. 마치 나와 이준오의 대화를 엿듣고 있는 것처럼.
“홍이제.”
내 목소리에 이제가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키고는 나와 눈을 마주쳤다.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이제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물었다.
“이게 뭐야? 너 오늘 이상한 거 알아?”
“내가 뭐.”
“뭐 때문에 그러는 거야.”
“너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어?”
이제의 눈엔 원망이 가득해 보였다. 나는 정말 이제가 무엇 때문에 화가 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이것 한 가지는 안다. 내게 한 번도 화를 낸 적 없는 이제가 단단히 골이 난 상태라는 것쯤은.
“어. 모르겠으니까 말해봐. 내가 잘못한 거면 고칠게.”
내 말에 이제가 한숨을 쉬었다. 내 뒤로 이준오가 성큼성큼 걸어왔다. 이준오를 바라보는 이제의 동공이 조금 커졌다가 줄어들었다. 이준오는 나와 이제를 번갈아보더니 피식 웃으며 우리 곁을 지나갔다. 이제가 주먹을 쥐었다.
“너... 이준오랑 무슨 사이야?”
이제가 물었다. 사이? 내가 갸우뚱하자 이제의 눈에 금세 눈물이 맺혔다.
“너, 내가 이준오 좋아하는 거 알지.”
“알지. 이준오도 알고. 앗.”
나는 순간 실수한 듯 입을 틀어 막았다.
“아니, 그러니까 네가 너무 티를 내니까...”
“그걸 걔도 알아? 알면서 그래?”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고!”
“너네 애들이 수군거리는 거 알아? 이준오랑 김서진이랑 썸 타는 거 같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이준오. 되게 인기 많잖아. 그래서 이준오한테 관심 많은 애들 다 이준오랑 너만 보고 있어.
“이준오는 곧 전학 가. 그리고 나는 이준오한테 관심 1도 없고. 그냥, 어쩌다보니까 캠프 때문에. 이준오도 그거 캠프 하니까...”
“진짜야?”
“그럼 진짜지. 나 이준오 완전 내 스타일 아니야.”
고개를 세차게 가로로 젓는데 문득 이준오의 얼굴이 눈에 어른거린다. 이준오는 다정한 성격에 얼굴도 잘생겼다. 그런 이준오한텐 홍이제 같은 애가 어울릴 거다. 그리고, 이준오 같은 애들은 이제처럼 예쁘고 귀여운 애들한테 반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울렁거리고 속상해졌다. 이제는 내게 그럼 아침의 일들은 다 뭐냐고 물었다. 나는 이제에게 딱히 숨길 것들이 없어서 다 털어놨다. 전학생인 이준오가 실은 보는 것보다 외로움도 많이 타고, 그렇게 강한 애는 아닌 것 같다는 얘기들. 그리고 소원을 이뤄주는 수도꼭지가 있다는 얘기도. 이제는 내 이야기를 가만가만 듣더니 웃기도 하고, 얼굴을 굳히기도 하고, 진지해지기도 했다. 이제는 이준오만큼이나 그 수도꼭지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이제의 얼굴을 살피니 어느새 오해는 다 풀린 듯 보였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다시 수업시간. 나는 수업보다는 애들과 눈짓을 주고 받으며 장난을 치는 이준오를 뒤에서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준오가 도대체 뭐길래 이제가 그렇게 날카롭게 등을 돌릴 정도로 푹 빠져 있는 걸까.
이준오는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이제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는 걸 나는 캠프에서 알게 되었다.
캠프는 석식을 먹은 후 1시간 뒤인 6시부터 시작된다. 캠프가 시작되기 전까지 해야하는 건 도서관에서 책을 찾는 일이다. 밤샘독서캠프는 세화고에서 매년 진행되는 행사이기 때문에 신청자 대부분이 책을 생각했을 것이다. 이제에게 물어보니 이제 역시 책을 골랐다고 했다. 전교생이 참여하는 행사이기 때문에 도서관에 있는 인기 있는 책들은 이미 대여가 모두 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아무 책이나 고를 수 없었다. 왜냐하면 밤샘독서캠프에서 읽은 책으로 반드시 글을 써 내어야 하기 때문이다. 써내어야 하는 글은 크게 두 종류다. 책을 읽은 후 독후감을 쓰거나, 책 속의 인물에게 편지를 써야 한다.
이제는 편지를 쓸 예정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편지는 학교가 아닌 이준오에게 전달될 것이다. 이제가 고른 책은 짝사랑을 담은 소설이었다. 나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외국 작가의 글이었는데 이제는 책을 읽는 것보다는 글을 쓰는 일에 더 열심히일 모양이었다. 나는 아직 책을 고르지 못했다. 고민이 됐다.
아직 여름이 다 지나지 않아 창 밖은 훤했다. 해가 조금 저물고 있었으나 사물의 풍경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아이들이 하교한 뒤 열기가 조금씩 저물어가는 학교 복도. 복도를 따라 쭉 걸어가면 나오는 도서관. 도서관을 와 본 게 언제였더라? 나는 이르게 불이 켜진 도서관의 문을 두드렸다. 도서관 안쪽의 공기는 문 밖과 확연히 달랐다.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는 도서관은 마치 수업이 끝나고 텅 빈 교실의 풍경 같았다. 도서관 안에는 나처럼 아직 책을 빌리지 못한 애들 몇몇이 책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나는 고요히 긴 숨을 내쉬며 책장과 책장 사이를 걸었다. 신고 있던 실내화 소리조차 들리지 않도록 종아리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갔다. 사실 읽고 싶은 책은 없다. 나는 엄마를 피해, 그리고 아빠를 피해 여기까지 온 거니까. 아무 책이나 읽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마주한 도서관은 마치 내 마음 속 비밀금고를 열어보러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100번 대부터 900번대까지 이어진 기다란 책숲 사이엔 내가 홀로 앉아 몇 시간이고 시간을 보내도 아무도 알지 못할 것 같았다. 도서관에선 내가 어떤 책을 읽어도 아무도 알지 못할 것 같았고, 내가 울거나 웃고 있어도 누구도 나를 발견하지 못할 것 같았다. 완벽하게 숨을 수 있는 곳. 혹여 책이 상할까 해가 잘 들지 않는 곳. 약속이라도 한 듯 침묵하게 되는 곳, 애써 괜찮은 척, 어떤 척을 하지 않아도 되는 곳. 나보다는 책들이 주목받는 곳. 도서관에 있으면 어쩐지 ‘김서진’이라는 이름도 평면적인 책 한 권에 불과하지 않을 것 같았다. 지금 내게 일어난 이 모든 심각하고 별로인 사건들이 이 도서관의 책들이 겪는 대단한 일들 중에 아무것도 아니게 될테니까.
나는 책장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책을 조금씩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두꺼운 책도 있었고, 얇은 책도 있고, 소설도 있고 시도 있고 산문집도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면... 이준오도?
“너도 책 안 골랐구나.”
또 이준오다. 이번에도 이제의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아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준오의 손에도 책이 한 권 들려 있었다. 그러니까 이준오가 보고 있는 책은...
“만화책이네?”
“응. 이거 내가 좋아하는 책이야. 이거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다들 이 책에 빠져 있더라.”
이준오는 책을 펼쳐 책장 사이에 올려놓고는 몇 권의 책을 더 골랐다. 같은 종류의 만화책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책장으로 자리를 올겼다. 캠프까지 이제 한 시간 남짓. 책장과 책장 사이를 넘나드는데 아직 읽고 싶은 책이 없었다. 손목에 찬 시계를 바라보았다. 정해진 시간까지는 사전에 안내 받은 교실로 가야 하는데 아직 책을 고르지 못했다는 사실이 초조해졌다. 나와 같은 시간대에 도서관에 온 아이들 역시 하나둘 책을 골라 교실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아직 책 고르고 있어?”
같은 책장을 몇 번이고 두리번거리자 이준오가 제 품에 책을 한아름 담은 채 내게 다가왔다. 역시나, 이준오는 조금 전에 살펴보던 만화책 시리즈를 새벽 동안 다 읽어버릴 생각인가 보다.
“아니, 골랐는데.. 그냥 시간 떄우려는 거야.”
“책은 어딨는데?”
이준오가 비어 있는 내 손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냥 지기 싫은 마음 같은 거랄까. 괜히 이준오에게 그런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아서 나도 모르게 등 뒤로 손을 감췄다. 이준오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뭐... 교실에 뒀어. 근데 만화책...”
“만화책이 뭐?”
나는 만화책 읽어도 되나? 반문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 보면 만화책도 틀린 건 아닌 것 같았다. 어차피 밤샘독서캠프는 밤을 새서 책을 읽으면 되는 행사니까. 어쩌면 잘 읽히지 않는 책을 찾는 것보다 술술 읽히면서 쉬운 책을 읽는 게 이 캠프를 잘 즐기는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매번 어려운 쪽으로만 일을 해결하는데, 이준오는 뭐든 쉬워보인다. 그래서 나는 이런 것들이 이준오 답다고 생각한다.
“나 책 다 골랐는데, 너 뭐 없으면 먼저 교실 가 있자.”
이준오가 한쪽 손으로 책을 받치며 나머지 손으로 학생증을 꺼냈다. 한쪽 팔에 힘을 꽉 주자 팔안쪽으로 핏줄이 드러나 보였다.
“야, 됐어. 내가 몇 권 들게.”
나는 이준오에게서 뺏다시피한 책 몇 권을 들었다. 고마워. 뒤에서 이준오가 말하며 따라왔다. 그러는 사이, 나는 내가 책을 빌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깜빡했다. 그리고 그 사실은 교실에 들어와서야 알게되었다.
교실에 들어왔을 때 가장 먼저 보였던 것은 나를 향해 손을 마주 흔드는 이제였다. 점심 때와 달라진 태도에 이준오가 재밌다는 듯 피식하고 웃음을 보였다. 나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이제 옆에 앉아 가방을 내려놓았다. 캠프에 참여하는 인원은 약 80명 정도. 두 개의 반으로 나누어 책상에 앉아 책을 읽으면 되는 것이 이 캠프의 규칙이었다. 이제와는 같은 반에 배정을 받았고, 이준오도 같은 그룹으로 배정이되어 우리는 책상을 붙이고 앉게 되었다. 왼쪽에는 이제가, 오른쪽에는 이준오가.
이준오가 화장실을 간 사이 이제는 이건 어쩌면 운명일지도 모른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리고는 가방에서 파우치를 꺼내 립밤도 바르고, 괜히 기름종이를 꺼내 번들거리는 피부결도 정리했다.
“서진아, 이따가 이준오랑... 알지?”
이제는 눈까지 찡긋해보였는데 아무렴 나는 이제가 말하는 그 알지의 뜻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빌렸다. 돈키호테. 책을 많이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돈키호테가 뭔지는 안다. 그건 엄마가 좋아하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 엄마와 아빠 사이, 나란히 누워 내가 잠을 자지 않고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으면 엄마가 돈키호테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는 엄마가 들려주는 돈키호테와 둘시네아 공주 이야기를 듣는 걸 세상에서 가장 좋아했는데, 그건 바보 같은 돈키호테도 좋고, 틱틱거리면서도 돈키호테와 어울리는 둘시네아의 이야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둘시네아가 돈키호테에게 속아준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더 커서 내가 직접 그 책을 읽게 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실은 둘시네아는 없는 인물이다. 돈키호테가 둘시네아라고 지칭하는 여자주인공은 있었어도, 그건 다 돈키호테 혼자 중얼거리는 가상의 짝사랑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그런 건 새드엔딩이라고 했고, 자신은 언제나 새드엔딩에 마음이 더 간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는 엄지공주나 신데렐라보다도 인어공주에 더 마음이 간다는 이야길한 적이 있었다. 언젠가 엄마는 내게 그런 이야길 했다.
‘서진아, 우리 마음 속에는 누구나 둘시네아를 만들고 살아간단다.’
그때 나는 너무 어려서 엄마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어쩌면 이제에겐 이준오가 둘시네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지. 나에게는 엄마가 둘시네아 같은 존재다. 내 멋대로 사랑하고, 내가 원하는대로 사랑해줄 거라고 믿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엄마에게는, 아빠에게는 어떤 존재가 둘시네아인 걸까? 어쩌면 두 사람도 서로가 서로에게 둘시네아인 걸까?
휴대폰을 꺼내려는데 문득 선생님이 우리가 앉은 자리로 와 바구니를 내밀었다. 바구니 속에는 이미 휴대폰이 수북했다.
“우리 캠프 시작하기 전에 전자기기를 모두 제출하기로 했거든.”
그 말에 이제도, 이준오도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바구니에 던져 넣었다. 얼떨결에 나도 휴대폰을 집어 넣고는 가방을 정리하다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챙기지 않은 것이다.
교실 안은 이미 웅성거림으로 가득했다. 아이들은 책상 위에 각자 챙겨온 책을 올려두었다. 아이들은 맞닿은 자리에 앉아 있는 애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바빴는데, 선생님이 책상을 돌며 휴대폰을 다 걷어갈때쯤엔 다시 잠잠해졌다. 곧 스피커를 통해 수업을 시작하는 종이 울렸다. 창밖으로는 이미 해가 저물어 어둑어둑 했다. 밤에 울리는 종소리는 무언가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자, 매번 진행하는 세화고 대표 행사라 다들 알겠지만, 지금부터 책 읽고 독후감 제출하면 돼. 무슨 일 있으면 교무실로 오고, 이 층만 불이 켜져 있으니까 괜히 위험하게 다른 층에 가서 헤매지 말고. 알겠지?”
애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저마다의 비밀스러운 웃음을 지어보였다. 순간 이준오의 표정을 스윽 살폈다. 이준오가 들려준 수도꼭지 이야기가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이준오 역시 눈썸을 꿈틀대며 금방이라도 장난을 벌일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캠프는 대단히 특별하거나 긴장이 되는 건 아니었다. 그저 교실 안에 갇혀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내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주위를 둘러보자 이제도, 이준오도 책을 펼쳐 읽고 있었다. 이제는 책을 한 줄 읽다 말고 눈을 비비고, 또 한 줄 읽다 말고 이준오를 훔쳐봤다. 이준오는 만화책을 보며 킬킬거리고 웃느라 정신이 없어보였다. 다른 아이돌도 모두들 각자 준비한 책을 읽고 있었다. 교실 안에는 간간히 애들이 기침을 하는 소리나 펜으로 무언가를 적는 소리, 그리고 소곤대며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만 들렸다. 나는 가방에서 대충 교과서를 한 권 꺼내 공책 사이에 끼워 놓고는 멍하니 책장만 넘겼다.
다들 각자의 책이 있는 이 곳에서 읽을 만한 이야기가 없는 사람은 나 한 명 뿐인 것 같았다. 독후감을 제출해야 하는데 읽은 책이 없으니 어쩌면 캠프를 무사히 마치지 못하는 쪽도 나 혼자만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처럼 엄마가 암스테르담까지 멀리 가버린 사람도 나만의 이야기겠지. 그나저나 책 없이 새벽까지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가늠지 되지 않았다.
한시간쯤 지났을까. 창밖으로 자동차와 버스가 달려가는 소리가 문득문득 들려왔다. 졸음이 몰려왔다. 교실 앞쪽에서 우리를 감독하는 선생님도 슬슬 지겨운지 휴대폰을 보기 시작했다. 유튜브를 보는지 릴스를 보는지 귀에는 이어폰도 꽂았다. 하품을 하며 시계를 보자 옆에서 이제가 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알지?”
이제가 작게 속삭였다. ‘이준오랑 나랑 둘만 있게 해줘!’ 이제가 노트에 대충 쓴 쪽지를 밀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선생님과 이준오 사이 눈치를 살폈다. 그 순간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 참에 화장실에 가는 척 도서실에 몰래 들려 책을 빌려와야지. 나는 자리에서 스윽 일어나 교실을 나섰다. 교실의 왼편에는 화장실로 향하는 불빛이 켜져 있었지만 도서실로 가려면 불이 꺼진 복도를 한참이나 지나야했다. 그 복도를 쭉 지나면... 참, 이준오가 말한 그 수도꼭지를 문지르며 소원을 빌 수도 있다. 그래, 진짜 캠프란 이런 것 아니겠어? 17년 인생에 처음으로 김서진답지 않은 선택을 해 보자. 나는 용기를 조금 더 내 보기로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