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쉐어하우스라는 선택

아무튼, 쉐어하우스 (1)

by 곽민주

내 인생 첫 가출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그래봤자 네 시간 남짓한 가출이었지만, 그 당시 내 인생에선 아주 큰일이 일어난 것만 같았다. 방과 후, 수학학원에 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원래의 일정이었다면 그날은 친구들과 종로에서 음악회를 보고 왔다. 그냥 집에 들어가면 수학학원에 갔다 온 것처럼 보일까 봐 바로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다시 학교로 가는 버스를 탔다. 그리고 학교 앞의 도서관에서 책을 뽑아 읽으며 해가 저물 때까지 기다렸다.


이쯤되면 집이 발칵 뒤집히겠지? 생각하며 문을 열었는데 집 안에는 우아하게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저녁 여덟 시가 막 넘었을 시간. 창밖은 이미 해가 저물어 서늘하고 무섭다는 생각까지 들었는데, 그 당시 어른들에겐 아직 초저녁이었나 보다. 아마 그날 부모님은 내가 가출을 한 지도 몰랐을 거다. 수학학원에서 그 사실을 부모님한테 알렸더래도 소용없었다. 전날 성적표를 가지고 집에 들어가자마자 휴대폰부터 빼앗겼다. 엉엉 울다 문을 쾅 닫았는데 그다음 날까지 밥을 먹지 않았다. 교통비를 제외하고 용돈은 추석과 설날에 친척에게 이래저래 받은 걸로만 생활할 수 있었는데 당시 수중에는 반항심으로 돈을 다 써버리기엔 미래가 창창하다고 생각했던 열일곱 콩알간만 남아 있었다.




"나 진짜 독립이야. 이제 다시는 집에 돌아가지 않을 거야."


10년 뒤, 캐리어 한가득 짐을 싸들고 가로수길의 쉐어하우스를 올려다보았다. 그 집은 당시 근무하던 회사의 바로 뒷건물이어서 집의 옥상에 올라가면 회사가 한눈에 보였다.(회사는 옥탑방에 있었다)


"민주 씨? 여기가 한국인은 오래 버티지를 못해서. 우선 3개월만 단기계약을 해보는 게 어때요?"


하우스 매니저와의 첫 인터뷰. 총 3층 건물에 20명 가까이 되는 여성 전용 쉐어하우스. 이 집의 규칙이 있다면 여성만 출입할 수 있다는 거다. 그 외에는 정해진 룰이 없었다. 과거 게스트하우스로 쓰였던 그 집은 리모델링을 새롭게 하지 않아 세탁실이나 욕실이 공용 공간에 적합했다. 3층 중 2층은 공용으로 쓸 수 있었고, 나머지 프라이빗한 룸에는 출입할 수 없는 구조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방에는 잡지에서나 볼 법한 마네킹 같은 외국인 모델이 살고 있었다. 처음 신발장에 내 신발을 구겨 넣고 건물주가 만들었다는 커다란 나무 테이블 앞에 앉자 그 모델들과 눈이 마주쳤다. (아마도 내 동생뻘이었을 텐데) 나를 귀엽다는 눈으로 바라보며 손가락을 작게 흔들었다. 당시 토익과 토스를 졸업한지 오래된 데다 영어 실력이 영 꽝이라 긴장했다. 그 눈치를 알아챘는지 하우스매니저가 입주조건을 조금 더 합리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하우스매니저도 공간임대 사업이 처음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서툰 부분이 많았고, 인정에 손해를 볼 때가 많기도 한 것 같았다.


"2인실, 지금 선택한 방은 룸메이트가 미국인이에요. 민주 씨보다는 다섯 살이 어리고, 대학교 1학년. 이 친구가 바로 직전에 나간 친구와 트러블이 있어서 민주 씨랑도 잘 맞을지 모르겠네."


하우스매니저는 전에 있었던 이슈로 꽤 골머리를 앓았는지 내가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기도 전에 이마를 짚었다. 그 집에 2인실은 각 층마다 1개씩 있었는데, 1인실과 2인실의 차이가 20~30만원 정도 났다. 여기에 관리비를 더하면 (그 당시) 나의 한 달 월급의 절반을 쓰는 셈이었다. 이러나저러나 생활비를 더하면 실제 저축하는 금액은 4분의 1도 채 되지 못했다. 그렇더라도 그 집의 장점이 있다면 외국인들과 생활을 해볼 수 있다는 것이었고, 독립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고, 회사까지 걸어서 5분도 채 되지 않는다는 거였다.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스물여섯. 그즈음에 주변에 세계여행을 다녀오거나 워홀을 가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유튜브나 블로그에도 워홀을 떠나 유럽을 여행하는 후기를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설렜다. 가끔 세계여행을 장기간 하는 상상을 하기도 했는데 콩알간이라 그런지 지금은 그런 건 꿈도 꾸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모든 건 회사의 커리어를 단단하게 만들어둔 후에, 경력직으로 이직이 한결 수월해지는 위치까지 간 후에 선택할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 가능보다는 불가능에 더 큰 추를 달고 있었나 보다. 대신 이 쉐어하우스가 내겐 마치 여행지와 같은 설렘을 안겨다 주었다. 실제로 1개월 단위로 계약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이 가져온 향신료와 레시피도 머릿속에 선명히 담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쉐어하우스를 선택한 이유는 독립이 너무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 선택을 독립이라고 할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다. 집에서 겨우 두 정거장 거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조금만 더 마음이 모질고 독했다면 쉐어하우스가 아닌 진짜 독립을 해서 지금까지 지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한창 독립을 하겠다며 집을 알아보고 있던 때, 집에서는 꼭 이렇게 해야겠느냐고 여러 번 내 그림자 한 축을 붙잡았다. 괜히 갔다가 가족으로부터 크게 비난을 받는다거나 말을 듣지 않는 나쁜 자식으로 보일까 겁이 났다. 쉐어하우스는 기간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다시 집에 돌아올 수 있었기 때문에 괜한 걱정들까지 보완할 수 있는 여러모로 괜찮은 선택지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스물일곱은 어리지 않다. 그러나 그 집을 선택하게 된 건 이런저런 이유들이 겹겹이 쌓인 운명이지 않았을까 싶다.


태어나 오래도록 함께 살던 가족을 떠나는 일은 비로소 독립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선택이 쉐어하우스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만나는 일이라는 건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 집에선 1년이 조금 넘는 기간을 보냈다. 코로나19로 인해 친구들이 떠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더 오래 지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쉐어하우스의 운영 종료 소식을 듣고 난 뒤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입주자였으니까. 그리고 종종 그때 만난 친구들과 연락을 하곤 한다.


쉐어하우스에 살면서 '타인'이라는 존재에 대해 제대로 직면할 수 있었다. 우리는 가족과 함께할 때에도 타인과 함께 살아간다. 그러나 가족에게는 배려가 당연시해진다면 쉐어하우스의 룸메이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질투나 경쟁, 그리고 미묘한 갈등이 있기도 했다. 주로 교환학생 친구들이나 아이돌 또는 모델 지망생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에 모두 또래였던 데다 대화의 주제나 관심사도 비슷했다. 하우스매니저는 달에 한 번씩 한식을 펼쳐놓고는 파티를 열어주었다. 내가 머무는 2인실은 이 집에서 가장 공용공간이 큰 층이었고, 문을 열고 나와 화장실에 가거나 TV를 보겠다며 거실로 나오면 자연스레 친구들과 얼굴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굿모닝."

"오!"

"왓츠디스!"


업무를 위해 사무실에 있었던 시간을 제외하고 그 시간 동안 보냈던 기억은 여행자의 시간 같다. 몇 번이고 가로수길을 걸었던 것 같은데도 현관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와 장을 보러 가는 길마저도 이상하게 마음이 붕 떴다. 그건 1년이 지나서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인은 보름도 버티지 못한다는 그곳에서 말이다!





그로부터 또다시 7년 남짓한 시간이 흘렀다. 다시 가족과 함께 살며 집을 공유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언젠가 지구 반대편으로 떠나가 다시는 볼 일 없을 것 같은 관계가 의외로 비밀을 많이 털어놓게 만든다는 걸. 지구에서 작다면 작을 한국의 서울에서, 문화와 국적은 달라도 웃음 버튼과 울음폭탄이 같았던 쉐어하우스의 생활기를 풀어보려 한다.

이제 나는 쉐어하우스보다는 조금 더 독립된 공간을 원한다. 여전히 가족과 함께하고, 점점 더 비밀이 많아지는 것 같지만. 그리고 이제는 가족으로부터 떠밀리는 듯 붙잡히는 듯 독립과 강제 퇴거사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미운 룸메이트가 되어 버린 것 같지만, 앞으로 다시 캐리어를 한가득 채우며 "진짜 독립"을 외치는 날이 얼마 안남지 않았을까?


내 연봉으로 받을 수 있는 대출범위를 알아보고, 서울에서 점점 멀리 떨어진 곳의 집의 시세를 알아보다 보면 아직은 독립할 때가 되지 않은 것 같다며 마음의 불안이 스멀스멀 차오르는 상태로 귀가를 하게 된다. 독립을 하려거든 더 빨리 했었어야 한다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또 운명처럼 새로운 예비 룸메이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요즘 나는 머릿속으로 이 집에서 가져갈 것과 버리고 갈 것에 대해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직 뭐든 결정된 건 없지만, 아마도 새로 만나게 될 가족들이야 말로 평생의 룸메이트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친구와도 오래전에 쉐어하우스의 룸메이트들과 있었던 갈등처럼 크고 작은 싸움을 하게 될까?


.... 아마도? 내가 이기겠지.




오래 전 요린이였던 나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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