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여자 스무 명이 사는 집

아무튼, 쉐어하우스 (2)

by 곽민주


대체로 나의 하루는 루틴화되어 있는 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루틴이 있는 편이 성실하고 자랑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는 것이 귀찮아 루틴을 선호하는 종류의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대체로 나의 하루 루틴은 이러하다. 오전 6시 눈을 뜬다. 오전 7시까지 꼼지락거리며 누워 있거나 간단히 운동을 한다. 오전 8시 출근 준비를 마치고 출근을 한다. 오후 18시 30분. 헬스장에 도착해 운동을 하거나 씻고 집에 복귀한다. 오후 20시 30분 간단히 유튜브를 본다. 오후 21시 30분 남자친구와의 안부를 묻다 잠들기 전까지 계속해서 유튜브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잠을 잔다. 작년 한 해는 거의 이런 생활을 했다. 반복이다.


하루 루틴 중에 가장 전쟁 같을 때는 오전 7시에서 8시 사이. 모닝쾌변과 세수, 그리고 간단한 화장을 하는 데는 화장실 독점권이 필요하건만 화장실은 역시나 룸메이트와의 공용공간이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출근 전쟁에 배려심을 깊이 가질 수 없다. 그러나 대체로, 나는 이 집의 가내정치에서 밀려나 있는 편이다. 변수에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고등학생 때부터였다. 동생과 등교시간이 한창 겹치던 고등학생 때에는 언제나 동생에게 먼저 양보를 해야 했는데, 집 앞에 학교가 있었던 동생과 달리 버스를 타고 여덟 정거장 정도 가야 했던 나는 늘 1시간 정도 일찍 준비해야 했고, 그것이 지금까지 습관이 되었다. 성인이 된 지금도 그렇다. 항상 출근시간보다 30분 정도 일찍 준비해 놓고는 책상 앞에 앉아 출근 시간이 되기를 기다린다.


유독 출근 준비가 하기 싫어질 때면 쉐어하우스의 화장실을 생각하곤 한다. 내가 머물던 방은 화장실을 공용으로 써야 했는데, 게스트하우스를 리모델링해 만든 쉐어하우스는 화장실의 구조를 고스란히 사용하고 있었다. 이를 테면, 화장실은 사우나의 샤워시설처럼 네 개의 칸막이가 있는 구조였고, 마주 보고 있는 구조의 화장실엔 각각 세면대 네 대와 변기 4개가 이웃하고 있었다. 공용화장실의 좋은 점은 따로 관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인데 덕분에 매일 샤워를 편하게 하면서 출근시간의 강박을 느끼지 않고 준비할 수 있었다. 그 당시 대학교 1학년이던 룸메이트는 내가 출근할 시간에도 한밤중인 때가 많았다. 아침이면 간단히 화장도구를 들고 살금살금 방을 나와 공용화장실에 가 씻고 출근을 했다.


자주 누수가 되어.. 정전도 잦았던...!


그러다 보니 매일 아침 마주치는 두 명의 룸메이트가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나보다 언니였는데 한 사람은 K-컬처를 주제로 한 콘텐츠를 브랜딩해 판매하는 영국인 스타트업 대표였고, 나머지 한 언니는 독일인으로, 대사관에서 인턴을 하러 왔다고 했다. 우리는 매일 아침 출근 전 부엌 앞 커다란 테이블에 마주 앉아 나란히 커피를 마셨다. 당시 나는 독일 브랜드의 상품 카탈로그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본사에서 원본 자료를 받으면 번역업체에서 1차 영문 번역본을 받고, 영문 번역본을 또 국문 번역으로 2차 가공하여 일을 해야 했다. 문제는, 절차상으로는 번역본을 받아 한국인 카피라이터가 워싱 작업을 하는 것이었지만 실질적인 작업기간을 감안하면 번역 작업이 끝나는 시점에는 카피라이팅 스케치 작업본이 나와야 하는 타이밍과 겹쳐 파파고를 적극 활용했던 기억이 있다. 디자이너 열 명에 카피라이터가 1명인 구조였으므로 혼자 사무실에서 늦게까지 일을 하거나 집에 와 일을 하곤 했는데 내가 작업물을 가져와 업무를 하고 있으면 언니가 슬며시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거, 우리나라 회사인데! 민, 독일어를 읽을 줄 알아?"


어느 날 아침, 바질페스토에 파스타를 섞어 먹던 언니가 내 일에 호기심을 보였다. 나는 고개를 크게 가로로 저었으나 이내 눈을 번뜩였다. 당시 내가 함께 일했던 번역업체는 크게 두 가지 단계로 상품을 판매했는데 첫 번째는 직역만 해주는 상품과 의역을 프리미엄하게 해주는 상품이 있었고, 회사에서는 조금 더 합리적인 가격의 직역본을 원했는데 직역본은 파파고 번역기와 크게 다른 점이 없었다. 그래서 독일 관용구문에 취약한 편이었는데 언니를 만난 뒤로 내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언어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또다른 언니는 한국의 유행과 트렌드를 알고 싶어 했는데 서울의 중심에서 20대인 내가 언니에게 알려주는 정보는 그다음 콘텐츠의 영감이 되기도 했다.


아침 언니들과 출근을 한 후에 나는 점심시간마다 다시 집으로 왔다. 그 회사는 점심시간이 11시 30분부터 13시까지였는데 회사 바로 뒷건물에 있었으므로 집에서 충분히 청소나 세탁기를 돌릴 수도 있는 시간이었다. 쉐어하우스에선 쌀과 라면이 무료로 제공되었으므로 매일 점심이면 밥을 해 먹거나 간단히 라면을 먹고 복귀했다. 점심시간이면 유학생 신분의 룸메이트들이 대부분 등교 준비를 하고 있었다.


"민, 오늘 점심은 라면?"


학생 룸메이트들의 점심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었다. 탄수화물이 주식인 한식은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며 레몬 넣은 요거트만 먹던 룸메. 김치를 사와 부대찌개를 든든하게 해먹고 가던 룸메. 옆 친구의 음식을 조금 나눠 먹는 룸메. 점심 무렵이면 하우스매니저가 와 집 안을 관리했는데, 내가 들어온 후로 일이 훨씬 줄었다며 좋아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할 일이 없는 저녁이면 굳이 집안 구석구석 청소기를 돌리고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던 소파의 쿠션을 정리했으며, 누가 버려두었는지 모를 그릇을 설거지해 두었기 때문이다. 정리를 착착 잘 해내는 건 어릴 때부터 굳어져 있던 습관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척척 체계화를 시키는... 몇 안 되는 나의 자랑이랄까.

점심 동안에는 다 같이 TV를 보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주로 연애와 아이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낭만적일 것만 같았던 편견과 달리 한국이나 외국이나 연애사가 찌질한 이야기만 가득한 건 마찬가지였다. 하우스매니저와 나는 이야기를 듣는 동안 몇 번이고 눈을 끔뻑이며 웃음을 참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Hello."라는 인사 한 번에도 호들갑을 떨었기 때문이다. 물론, 하우스매니저도 자신의 연애에선 예외자가 아니었다.


퇴근 후엔 아래층의 룸메들이 주로 위로 올라왔다. 매 층마다 부엌이 있었지만 가장 큰 공간인 데다 여러 친구들이 모여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층이 내가 있는 층이었고, 대부분 저녁에 포장해 온 음식을 먹거나 전날 저녁에 꼼꼼히 찾아본 레시피를 토대로 요리를 했다. 내가 주로 음식을 포장해오는 편이었다면 나와 함께 방을 쓰던 진짜 룸메이트인 '리사'는 매끼 요리를 하는 편이었다.


"오늘은 부대찌개를 해보려고!"


서툰 한국어로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던 리사는 미국인으로, 불어와 스페인어, 일본어와 한국어를 할 줄 알았다. 더 놀라운 건 4개 국어에 버금가는 요리실력이라는 거다. 리사는 조미료를 넣지 않고도 한국의 맛을 곧잘 따라하는 편이었고, 불고기나 잡채 등 한국 음식에도 관심이 많았다. 리사에게 오히려 내가 배운 한식도 많다. 리사는 요리를 하고 나면 내게 맛 평가를 부탁했는데, 덕분에 저녁이 여러 번 굳기도 했다. 첫 만남에 리사와 잘 지내보겠다는 마음으로 대접했던 요리는 애호박전. 한국의 파전을 먹어본 적은 있어도 애호박전이나 깻잎전, 산적 같은 요리가 있는 줄도 몰랐다고 한다. 재료가 많이 들어가지 않아 간단하게 만들며 식비까지 줄일 수 있는 든든한 메뉴이기도 했는데, 리사는 내가 한 음식 중 애호박전을 가장 좋아했다.


처음 리사와 마주 인사하던 날을 기억한다. 주말 아침, 한가득 짐을 들고 택시에서 내려 커다란 타포린 백을 집 안에 두었다. 하우스매니저는 부엌 바로 뒤편의 방문의 열쇠를 주며 내게 이쪽 방을 쓰면 된다고 했다. 방 안에는 침대 2개와 고등학교에서 쓸법한 책상 2개, 그리고 옷장 2개만 있었다. 본가에서의 내 방보다 훨씬 작은 방이었다. 내가 처음 짐을 풀어놓을 때까지 리사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미국인이면서 불어와 스페인어를 할 수 있는 친구라는 게 내가 아는 정보의 모든 것. 머릿속에는 백인의 파란 눈의 이미지를 떠올렸으나 곧 내 착각임을 깨달았다. 리사는 멕시칸계 미국인이었던 데다 남미의 분위기가 물씬 나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오후쯤 필요한 물품을 구매해 왔을 때 침대 위에 앉아 휴대폰을 하는 리사와 처음 만났다. 리사는 나를 경계하는 듯하면서도 수줍게 인사를 했고, 나 역시 내가 아는 모든 영어를 총 동원해 인사를 했다. 내가 영어에 대해 애쓰는 만큼, 리사 역시 나와 한국어로 소통하기 위해 무척이나 애쓰는 편이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리사는 내가 생각했던 첫 이미지와 달리 서울을 구경하는 것도 좋아했지만 내가 잠들어 있는 밤 시간 동안 밤을 새 공부를 할 만큼 공부를 좋아하는 친구였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리사는 한국 드라마를 보며 뜨개질을 하는 것도 좋아했고, 한국의 재래시장에서 잡다한 주방용품을 사는 것도 좋아하는 등 여러모로 나와 취향도 잘 맞았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서로 책에는 나와 있지 않은 관용구나 트렌디한 표현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지면서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다. 이 당시에는 잠재적 공용어가 (어쩔 수 없이) 영어였기 때문에 한창 영어를 쓸 때는 머릿속으로 1차 해석을 해보는 과정 없이 영어로 생각하고 영어로 뱉는 경지(!)까지 오를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은 퇴화했다)


"한국어는 정말 어려워. 파랗다. 푸르다. 푸르뎅뎅하다. 청청하다.... 그뿐인 줄 알아? 있었다. 있다. 있었었다. 이다. 하다.... 내가 보기엔 다 똑같아 보이는데 상황별로 써야 하는 단어가 너무 많아. 민, 언니는 한국인이라서 다행이다. 글을 쓰는 일엔 한국어를 쓰는 편이 아주 좋은 것 같아."


6년의 시간. 리사와는 지금까지 종종 안부를 물으며 잘 지내고 있다. 대학교 1학년이던 리사는 어느새 나를 몹시 공감하는 월급쟁이 직장인이 되어 있고, 아주 가끔, 한국에 들어올 때면 아직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연애에 대해 푸념을 털어놓으며, 한국의 신상 라면과 메뉴에 대해 관심이 많다. 아이돌은 물론 메이크업 제품에도 관심이 많다.


쉐어하우스에 사는 동안 여러 직업, 여러 전공의 사람들을 만났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여러 프로젝트를 하게 되며 일의 종류나 시선, 그리고 태도에 대해서도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마도 쉐어하우스에서 시간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아마 나는 그 당시 내가 다니고 있던 회사를 조금 더 오래 다녔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퇴사를 마음먹은 이유 중 하나는 룸메이트들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이미 되돌릴 수 없고 더 나아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미래가 조금 더 나은 쪽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집에 살았던 여자 스무 명은 내게 그런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일깨워주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그때 만났던 룸메이트들의 나라에 가보고 싶다고, 언젠가 나도 유럽에 가볼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은 결국 10년도 되지 않아 현실이 되었다. 그때 룸메이트들은 내게 언제든 자신들의 나라에 오는 것을 환영한다며 이곳에 간다면 꼭 들려보아야 하는 곳에 대해서도 알려주었다. 종종 그 시절이 그리울 때면 여행콘텐츠 영상을 보곤 한다. 그리고 내가 아는 나라가 나오면 작게 눈짓한다. 잘 지내고 있지?


맨 앞줄 왼쪽 후리스..!!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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