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4평짜리 나의 비밀

아무튼, 쉐어하우스 (3)

by 곽민주

쉐어하우스에 들어오기 전, 반년 정도 고시원에 머물렀다. 평균적으로 알려져 있는 고시원의 평수는 약 2평. 다리 한 뼘을 벌리면 꽉 차는 너비다. 그곳의 건물은 1층엔 편의점과 세탁소가, 2층과 3층엔 아이돌 소속사, 4층과 5층엔 여성전용/남성전용 고시원이 있었는데 이런 구조 탓인지 옆 방의 이웃들은 대부분 앳된 얼굴의 연습생이 분명했다. '실내정숙'이라는 낡은 종이간판이 무색하도록 그곳은 퇴근 후 돌아오면 작은 부엌에 저녁을 먹으러 모여든 이들과 복도에 두런두런 서서 수다를 떠는 아이들로 나뉘었다. 그 방에 있으면 익명은 보장되었지만 비밀은 없었다.


방 안에 있으면 옆 방과 앞 방의 대화 내용이 고스란히 들려왔다. 주로 주간 테스트에 합격했거나 기준에 미달되었다는 울음 섞인 푸념이었는데 뭐가 문제였는지, 또는 뭐가 이해가 되지 않는지 하는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나는 그 방의 비어 있는 벽면에 지도를 펼쳐 두고는 멍하니 바라보는 데 주로 시간을 썼다. 6폭으로 접혀지는 그 지도는 고등학교 1학년 때 팝업스토어인지 플리마켓인지 독립출판물을 제작하는 한 스몰브랜드에서 기획한 콘텐츠로 세상에 없는 환상의 나라에 대한 지도였다. 언덕을 오를 때마다 느껴지는 희열의 맛을 볼 수 있는 피자의 골짜기, 사랑의 묘약 해독제를 구할 수 있다는 이별의 늪. 열일곱의 환상과 도파민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스토리텔링 소재가 그 지도에 있었다. 나는 그 방에 앉아 TV를 보거나 소설을 썼다. 그 방에서 쓰여지는 소설은 주로 불쾌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었다.


이를테면 자신의 데이터를 그대로 복사한 로봇에게 질투와 경외심, 그리고 외로움을 느끼는 이야기, 세상의 모든 고통을 갈아서 주스로 만들어 먹는 할머니의 이야기, 인간성에 환멸을 느끼며 지구인에게 사기를 치고 다니는 외계인의 이야기… 돌이켜 보면 이제는 허허 웃고 말 것 같은 실망의 감정들이 그 소설에 녹아 있었다. 그때 내가 꿈꿨던, 세상에 없을 것 같은 지도는 바로 그 소설의 결실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세상에 내 소설이 공개가 되면, 내 목소리가 힘이 실리면 비로소 해방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해맑게 보이는 사람도, 행복하게만 모자람 없이 자라온 것 같은 사람 누구에게나 마음 깊이 간직하는 비밀이 있지 않은가. 내게는 그 두 평짜리 방이 나의 모든 비밀을 털어놓을 유일한 공간이었다.


나의 비밀은 내가 첫째라는 사실이었고, 어쩌면 첫째여서 첫째의 특성을 모두 다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지독한 첫째들. 마음을 쉬이 놓지 못하는 첫째들. 언제나 긴장상태에 있는 첫째들. 누구도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은 첫째들. 무엇도 책임지고 싶지 않은 첫째들. 수년이 흘러 돌이켜 보면 그건 내가 첫째여서가 아니라 나의 타고난 환경이나 조건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스무살이 되었을 때, 집안은 크고 작은 다툼들이 쌓여가기 시작했다. 이제 와 소설을 쓰는 입장에서, 세계관을 구축하는 입장에서 우리 집의 이야기를 잘 살펴보면 모두가 이해가 된다. 누구 한 사람의 잘못이라고 말할 순 없다. 양보의 문제라고 물어야 한다면 그것도 어렵다. 그저 인간사라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그 크고 작은 일들에 원치 않게 참여한 힘없는 축처럼 서 있었다. 한 사람으로부터 우울감이 들려올 땐 그것을 받아들여야 했고, 또 다른 사람으로부터 크게 격분했을 땐 쉽게 긴장에 빠졌다. 그 어린 시절에,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을 어른만큼 안다는 건, 그걸 어루만져야 한다는 건 생각보다 무거운 일이다. 그때 깨달은 것은 세상에는 사소하게 여겨도 되는 일들이 많다는 것이고, 물질적인 풍요보다 정신적인 평화로움이 더 소중한 것이며, 세상에 영원한 것이 없다는 것만이 영원하다는 것이다. 아마 집으로부터의 독립을 선택했던 건 내가 첫째였기 때문일 것이다.




리사와 내가 머무는 방은 부엌 바로 뒤편에 딸린 작은 방으로 싱글 침대 두 개와 옷장 두개, 그리고 책상과 TV, 냉장고가 있었다. 리사는 틈이 나면 최대한 서울의 이곳저곳을 놀러 다니는 편이었고, 의외로 독립을 한 뒤 나는 바깥 외출이 많이 줄어들었다. 언제나 집에 있으면 이 집을 드고 나는 룸메이트들과 인사를 할 수 있었다. 거실에 앉아 있으면 룸메이트들은 서울의 재미있는 동네를 구경하러 나가느라 바빴지만 나는 거실이나 방 안에 앉아 책을 읽거나 넷플릭스를 보거나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그 방에 있으면 마음이 느슨해지고 편했다. 시간은 제법 빠르게 흘렀다. 그 집에 있는 동안 누구도 내게 나에 대하여 묻지 않았다. 나는 그저 스물여섯의 ‘민’이었고, 한국인이었으며, 바로 뒷편의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이었을 뿐이다.


그 집의 장점이 있다면 비밀을 쉬이 소문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자라고 만난 친구들에겐 혹시나 약점이 될까 드러내지 못했던 고민이나 힘듦 같은 것들을 그 애들에게는 과감 없이 드러낼 때가 있었다. 우울할 땐 차분히 앉아 책을 읽다 차를 마시기도 했고, 기분이 들뜰 땐 언어도 알아듣지 못하는 이국의 노래에 어깨를 들썩이며 춤을 췄다. 종종 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두려울 땐,


“민은 막걸리를 좋아해?”


주로, 막걸리를 마셨다. 술을 마시면 금방 취하는 편이었지만 마음을 편히 내놓고 나눠 마셨던 몇 잔의 술은 쉽게 취하지 않았고, 술을 마실 때마다 줄줄 눈물만 흘리던 주사를 그 무렵 고치게 되었다. 이러나저러나 술이 약해 금세 얼굴이 벌게지는 편이었으므로 주로 이른 새벽까지 물 한 잔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듣는 쪽이 되었다. 그 집에 있는 동안 한창 룸메이트들과 친해져 있을 때는 새벽 세네시까지 부엌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출근을 할 때가 잦았다.


20대 초반과 중반이었던 우리들은 국경에 관계없이 모두 공통된 비밀과 두려움을 안고 있었다. 그건 바로 시간이었다. 우리는 언제고 서른이 될 것이고 서른이 되었을 때의 우리를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나 역시 서른을 두려워했다. 서른이 된 지금은 마흔이 될 나를 두려워하고 있지만, 언제나 같은 고민을 한다. 그때에도 내가 쓸모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스물여섯의 나는 지금의 나를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다. 회사를 다니고 있었지만 직무를 크게 바꿀 거라고 상상한 적이 없었고, 신춘문예에 당선이 될 거라고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운이 좋아야만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조금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십 대의 나는 회사를 다니고 있는 나를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 집에 있는 동안 나는 온전히 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회사를 다니고 있었지만 나는 조금 더 내가 발전할 수 있을 거라는 긍정적인 확신이 생겼다. 친구들은 언제나 내 가능성을 봐주었고 나를 응원해 주었다. 갓 스물이 된 어리석은 이들이 가진 용기는 제법 큰 적을 물리칠 만큼 강력했다. 그 집에 있는 동안 나는 마음을 한결 편히 먹으며 이직을 준비했다. 그 시기가 없었다면 아마 나는 이전에 다니던 회사를 조금 더 오래 다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아마 내 인생도 크게 달라졌겠지. 그 당시에는 무모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동안 나를 가두고 있었던 건 나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한 가지 더 새롭게 발견한 재능이 있다면 내가 요리를 잘한다는 사실이다. 처음부터 잘했던 건 아니다. 요리에 크게 관심도 없었던 데다 끼니라고는 대충 때울 때우는 식의 식사를 해왔었기 때문이다. 챙겨야 하는 것이 많은 시기에 나를 위해 든든한 한 끼를 하기보단 그 시간을 아껴 조금 더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믿는 쪽에 시간을 썼다. 아마 룸메이트인 리사가 없었다면 영영 요리를 시도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처음 집에 입주했을 때 룸메이트들과 나의 온도차는 크게 달랐다. 외국에서 왔다는 공통점으로 금세 친해진 룸메이트들이었지만 정작 한국인인 나와는 거리를 두는 것 같았다. 이제 와 듣기로, 내가 오기 전 입주했던 친구가 굉장히 쌀쌀맞고 별로인 인상을 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한국인들은 외국인을 경계하는 듯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조금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건 외국인뿐만이 아니라 처음 보는 사람에게 처음부터 살갑게 다가가진 않는 편이라는 거니까.


서먹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리사와 친밀해진 특별한 계기는 호박전이었고, 코로나 이후 마지막까지 함께 시간을 보냈던 룸메이트들과도 결국 요리 덕분에 끈끈해질 수 있었다. 직접 다듬은 재료의 요리를 나누는 마음. 사과 한 알을 제대로 손질하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어느새 나는 집 안의 부엌에서 나를 돌보고, 타인의 허기짐을 돌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느 날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자 리사가 방 안에서 뜨개질을 하며 조용히 울고 있었다. 무언가를 깊이 참고 있다는 듯이.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애가 마음을 숨기면서까지 울 일이 뭐가 있나 싶었다. 혹시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나? 최근에 썸남인 것 같다고 하던 그 카페 알바생에게 차였나? 온갖 물음표가 머릿속에 떠도는데 클라리사가 미안하다며 눈물을 닦고는 황급히 방 밖으로 나가려 했다. 나는 잠시 씻고 저녁을 먹고 오겠다며 방 밖을 나갔다. 문을 닫자마자 그 안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짙어졌다. 화장실에 가서 울려고 해도, 샤워실이나 부엌에 가려고 해도 그때 그 순간만큼은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때 그 아이를 안아주었어야 했을까? 토닥이면서 영문도 모른 채 괜찮다고, 괜찮아질 거라고 말을 해주었어야 했을까?


그날 밤, 우리는 노래방에 갔다. 리사는 좋아하는 BTS의 노래를 실컷 부르고, 어디서 주문했는지 음료수도 가져와 마셨다. 엔딩곡은 다 같이 떼창을 하기 좋은 ‘걱정말아요, 그대’를 불렀다. 집에 돌아온 클라리사가 내게 품에서 뜨개질 거리를 꺼내 내밀었다.


“이거 우리 엄마 거야.”


리사가 만들고 있던 것은 니트조끼였다. 엄마가 한국에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 알게 되었다. 그 약속이 또 지켜지지 않았다는 걸. 리사는 어릴 때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고 한다. 리사의 이야기는 꽤 복잡하다. 그때 리사를 다시 봤던 것 같다. 리사는 내게는 한참 동생이었지만 적어도 그 집에선 첫째였다. 여유로운 환경에서 걱정 따윈 없을 거라고 맹신했던 나를 질책했다. 한국어가 서툴고, 수줍어하는 첫인상 덕분에 모두들 그 애가 어리다고 놀릴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리사는 독하고 강한 친구였다.


그 방에서 우리는 비밀이랄까 위로였달까 하는 것들을 오래 나누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비밀보다는 성장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 밖에도 부엌에 모여 시시콜콜 떠드는 이야기의 수준이라곤 지금에 비하면 가볍게 느껴지는 것도 같지만. 그 당시 그 집엔 아마도 성장통이 전염되고 있었던 모양이다.





스물여섯, 2년 가까이 다니던 회사에 처음 퇴사 면담을 하고, 진짜 퇴사일이 결정되기까지는 꽤 시간이 많이 걸렸다. 퇴사의사를 밝힌 지 한 달이 지나도록 인수인계는커녕 아무런 피드백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회피당하는 것 같았다. 연봉을 올려주신다고 했고, 어려운 점들을 해결해주신다고 했지만 나는 좀체 한 번 내린 결정을 바꾸지 못했다. 이후에는 내가 상사를 불러 퇴사일을 결정해 달라고 떼를 쓰듯 면담을 신청했다.


그리고 퇴사일이 되었을 때 집 안은 분주해졌다. “’민’ 언니가 퇴사를 한대!” 모델 일을 하는 친구가 웬일로 아침 일찍 벌떡 일어나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애는 방 안에 모셔두고 있던 각종 화장품 파우치(무슨 촬영하는 줄 알았다)를 꺼내더니 내 얼굴을 가장 화려하고 빛나게 해주겠다는 게 아닌가. 평소 차분하게 화장을 하고 다니던 나와 달리 스모키하고 화려하기만 한 그 친구의 얼굴을 보며 못 미더운 듯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나 그 애가 해준 말이 기억에 남는다.


“민주 언니. 오늘 가면 그 사람들한테 고마웠다고 말해. 그리고 더 잘 될 거라고 말해주고 와.”


그 애는 십 대 시절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연차로는 오래된 데다 꽤 인지도가 있는 편에 속했다. 이 쉐어하우스에 들어온 이유는, 오랜 타지 생활에 외로움을 느꼈기 때문이었으리라. 나는 그 애의 말에 처음엔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입을 비죽였다. 거짓말 못하는 성격이기도 하니까.


“퇴사가 결정되는 시점에서 그 사람들은 나한테 짜증을 냈는 걸. 그리고 진짜 고마웠으면 내가 퇴사를 하지 않았겠지.”


내가 입꼬리를 쭉 내리자 그 애가 식탁 위에 앉아 나를 내려다보며 붓으로 콧대를 쓸었다.


“이래서야, 언니! 모든 건 비지니스라구. 그래도 언니가 진짜 못했으면 무언가를 그만두고 새로 시작하려는 마음가짐조차 갖기 어려워. 나도 처음에 내가 속한 소속사를 나올 때 원망도 있었지만 웃는 얼굴로 나왔어. 일이라는 거 어떻게 다시 만나게 될지 몰라.”


그 사이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깬 다른 룸메이트가 내 얼굴을 보더니 낄낄 웃었다. 그 애는 곧 거울을 가져왔다. 아니나 다를까, 세미 스모키라 했는데 내가 보기엔 토시오 한 명이 거울 안에 있었다.


“언니, 울지 마. 이 메이크업이 번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와. 오늘 저녁은 닭발을 먹자!”


그날 회사는 내 얼굴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했고, 근엄하게 퇴사하려던 나의 결심은 결국 윗사람들의 귀여움을 받으며 무력하게 막을 내렸다. 그리고 나는 그날 룸메이트들과의 약속을 아주 잘 지켰다. 이른 저녁부터 시작된 닭발과 족발 파티는 성대하게 막을 내렸다. 그러나 다음날부터 현실은 시작되었다. 쉐어하우스는 운영 종료 공지를 했고, 나는 새로 머물 곳과 회사를 찾아야만 했으니까. 마음이 안정된다 싶을 때마다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그 때 흩어진 친구들은 지금 모두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자신이 갈망하고 원했던 꿈을,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잘 이루고 있으니까. 그리고 때로 용기가 필요할 때마다 가장 도전에 가까운 결단력이 필요할 때마다 나는 4평짜리 나의 비밀, 나의 공간을 떠올리곤 한다. 한국인이 아니라, 외국인이었다면… 혹은 내가 스물 또는 스물여섯이었다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생각해보다 보면 다시 돌아와 세상에 사소한 일들은 많다는 결론으로 모아지게 된다.


내게 그 쉐어하우스는 단지 성장과 연대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곳에선 물건이나 공간만 쉐어한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마음을 나누고, 비밀을 나눴으며, 세상을 나눴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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