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적어도 우리 사이에

아무튼, 쉐어하우스 (4)

by 곽민주

그녀의 이름은 ‘린코’. 일본의 어느 작은 도시에서 왔다고 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방 중에 유일하게 어느 방과도 인접해 있지 않는 곳에 위치한 독방을 썼다. 그녀가 한국에 온 이유는 단 하나. 남편, 아니 남자친구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 당시에 린코 언니는 나보다 세 살 정도가 많았다. 서른. 그녀는 한국에 온 지 이제 반년이 되어가고 있었고, 특징이 있다면 매일 밤 아홉 시가 넘어가는 시각에 와인 한 잔과 치즈를 먹는다는 사실이다.


열 명이 넘는 룸메이트를 마주하다 보면 제각각의 특징이나 개성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온종일 방 안에서 보사노바 풍의 음악을 틀어놓고 생활하는 룸메이트, 새벽 두 시가 되면 약속이라도 한 듯 방 밖으로 나와 컵라면을 끓여 먹는 룸메이트. 자신이 호주의 유명 유튜버라며 언제나 삼각대를 들고 다니며 무어라무어라 떠드는 룸메이트. 몸매 관리가 필요하다며 매일 같은 시간에 옥상에서 요가를 하는 룸메이트. 개성의 긍정적인 면에 대해서만 언급했지만 실은 맞지 않는 성향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이를테면 추위를 많이 타는 방과 더위를 많이 타는 방은 새벽 무렵까지도 보이지 않는 발자국의 움직임이 이어졌다. 한쪽이 온도를 낮추면 한쪽이 온도를 내렸고 냉장고에 구비된 공용물품이 순식간에 개인물품으로 둔갑하는 일도 있었으며, 주인이 정해진 개인물품을 상습적으로 몰래 사용하는 룸메이트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단톡방엔 하우스매니저를 통해 날마다 민원이 이어졌다. 그 밖에도 메이크업이나 패션 스타일도 룸메이트마다 극과 극이었다. 그런 면에서 ‘린코’ 언니 역시 눈에 띄는 룸메이트였다. 언니에게선 뭐랄까… 스타일이나 대화 속에서 엿보이는 사고체계가 매우 미니멀하게 보였는데 어딘지 모르게 기품이 넘치고, 우아함이 있었다.


언니가 나오는 시간에 노트북을 들고나가 앉아 있으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했다. 둘 다 영어를 잘하는 편이 못 되었지만 언니가 한국어를 제법 할 줄 알아 한국어로 소통하는 몇 안 되는 룸메이트이기도 했으니까. 그 당시 언니는 한국에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 면접을 보러 다니고 있었다. 언니는 뭐든지 여유가 있어 보였다. 그리고 언제나 좋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옷이나 가방, 신발까지. 괜히 이 집에서 가장 좋은 방을 쓰지 않는 게 아니게 보였다. 언니는 하루 중에 가장 좋아하는 시간을 샤워 후에 와인 한 잔을 마시며 부엌 맞은편의 통창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했다.


“뭔가… 멋있어요. 일주일마다 새롭게 열어보는 와인, 하루를 회고하며 잔잔하고 여유 있게 보내는 시간들.”


언니는 내 말에, 이런 마음가짐을 먹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고 했다. 처음에 한국에 왔을 때에는 뭐든 경계하면서 와인은커녕 물 한 잔을 마실 때에도 제대로 앉지 못하고 서서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고 했다. 언니가 처음 한국에 온 것은 남자친구가 한국에서 함께 살 것을 제안했기 때문이었다. 당시에 언니는 일본의 소도시에 있었던 데다 가까운 한국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니까 다른 나라라는 개념뿐, 살면서 한 번은 올까 생각하는 정도로 지식도, 인연도 없었다.


“처음엔 왜 그렇게 마음이 불안한 걸까 생각했는데, 이제는 좀 알 것 같아요. 나는 낯설고 무서웠던 거예요. 이곳이. 남자친구를 따라왔다고 했지만 나는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잖아요.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죠. 그 친구는 이곳이 익숙했고 안전감을 느꼈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고 충분히 한국에 대해 공부하지 못했어요. 연고도 없는 이곳에 나는 한 사람을 믿고 어느 날 유령처럼, 내 인생의 전부를 던졌던 거예요. 우리가 일본에서 한국으로 왔을 때, 그 친구는 일상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지만 나는 모든 게 바뀌었죠. 그때 나한테는 내가 한국에서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남자친구, 그러니까 조금 더 친절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그걸 깨달았을 땐 남자친구는 내 옆에 없었죠.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죠.”


언니는 일본에서 한국에 들어온 순간 자신이 바보가 되어 버린 것만 같았다고 했다. 일본에 살 때는 어려움 없이, 부족함 없이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결정하고 책임졌다면 한국에 온 순간,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불안의 연속이었다고, 자신의 선택에 대해 후회도 많이 했다고 했다. 함께 이야기를 듣던 다른 룸메이트가 훌쩍이며 눈물을 보였다. 그녀 역시 최근에 남자친구와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언니는 이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을 선택했을 때 너무 많은 가치를 뒤바꾸고 왔다고. 이제는 일본에서의 일들은 접어두고 한국에서 처음부터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가야 한다고, 걱정이나 불안 같은 걸 더 가지고 있기엔 시간이 모자르다는 말도 덧붙였다. 언니의 하루는 늘 취업으로 정신이 없었지만 그중에 아홉 시가 넘은 시각만이 유일하게 언니 스스로에게 부여한 자유였던 것이다.




그 무렵, 나 역시 쉐어하우스도 독립도 모두 낯선 환경에 오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근처에 회사가 있는 데다 나고 자란 서울이라 익숙한 면도 있었지만 내 스스로 내 인생을 책임지며 살아간다는 사실은 분명 낯설었다. 내 인생의 모든 결정을 스스로 해나가면서 나를 돌보는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언니를 만나기 전까지의 나는 나를 위해 내가 무엇만큼은 포기하면 안 되는 것인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지 그런 것들은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 사람들 속에서 내 이름이 잘 기억되지 않는 것. 다수처럼 살아가는 것. 내가 추구하고 원했던 것은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언니를 만나기 전과 후의 나의 쉐어하우스 생활기는 조금 변화가 있다. 이전의 생활이 그저 친구들과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즐기는 데에만 시간을 썼다면 언니를 만난 이후부터는 내 인생에 조금 더 도움이 될만한 일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언제고 멋진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때부터 구체적으로 어떻게 멋진 할머니가 될 것인지에 대해 계획했다. 그리고 또 생각했다. 멋진 할머니란 무엇일까. 스물여섯에서 일곱으로 넘어가던 겨울. 그 시절에 사회생활과 친구들을 봐오며 내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멋진 할머니란, 바보가 되지 않는 것이다. 바보가 되지 않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지 않는 것이다. 언제나 생산적인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 아주 작은 사회의 울타리에서도 존재감을 잃지 않는 것.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것. 낯선 환경을 마주할 때마다 언니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곤 한다.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거라고. 그럴 땐 천천히 내가 가야 할 길을 그려 놓고 조심스레 내딛으면 된다고.


그래서 멋진 할머니가 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돈은 무엇을 표현하는 데 있어 빈칸 같은 역할을 했다. 어떤 단어와 바꿔도 말이 되었기 때문이다. 멋진 할머니가 되기 위해서는 여유가 필요하고, 멋진 할머니가 되기 위해서는 스타일이 필요하며, 멋진 할머니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좋고 나쁜지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멋진 할머니가 되기 위해서는 다룰 줄 아는 취미가 있어야 했으며, 멋진 할머니가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이 있어야 했다. 멋진 할머니란 언제나 자신이 지닌 빛을 잃지 않아야 했다. 독립을 위해 쉐어하우스를 택했지만, 이후에 나는 멋진 할머니가 되기 위해 다시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간 대신 쉐어하우스 월세의 두 배 혹은 세 배만큼의 비용을 들여 학원을 다녔다. 그게 내가 멋진 할머니가 되기 위해 스스로의 자존심이라거나 신념을 꺾은 첫 번째 타협이었다. 멋진 할머니가 되기 위해서는 배움과 소속감, 그리고 타협이 필요했다.




언니는 쉐어하우스 운영 종료 공지를 하자마자 첫 번째로 이 집을 떠난 친구였다. 언니는 비싼 동네를 떠나 조금 더 저렴한 동네의 쉐어하우스로 거쳐를 옮겼다. 언니는 얼마 되지 않아 원하던 곳에 취업을 했다. 취업이 되면 가끔 감바스를 포장해 와 와인과 먹겠다는 다짐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있을까. 언니는 취업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결혼 소식을 알렸다. 한남동의 어느 식당에서 요리를 대접받으며 정신을 차려 보니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듬해 만난 언니는 배가 불룩해져 있었다.


언니는 두 딸의 엄마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언니를 만났을 때 언니는 한국과 일본의 문화 차이에 대해 불편한 점을 은근히 털어놓았다. 우리가 아니면 이런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사실 그날 언니가 이야기를 해준 것들은 문화 차이라기보다는 쉐어하우스에 살면서 다른 룸메이트들과도 종종 부딪히는 일들이기도 했다. 그리고 네 명의 가족이 된 언니는 당시에 1인가구를 책임지던 나와는 다른 깊이의 고민을 하고 있었다. 언젠가 내 앞에서 와인잔을 흔들며 나누던 그 멋진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잊혀진 지 오래인 듯 보였다.


“적어도 우리 사이에 ‘나’는 있어야 해.”


언니가 두 번째 임신을 했을 때, 내게 해준 마지막 이야기는 그것이었다. 그때 나는 서른이 되어 있었고, 내가 동경하던 언니 같은 사람이 되었다고, 그런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를 보호할 수 있는 직업이 있고 멋진 할머니가 될만큼의 여유가 있었으며 취미라 말할 수 있는 운동이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방황이랄까 방랑이랄까 마음을 한 곳에 제대로 두지 못했다. 이리저리 여행을 다니며 무언가 불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아마도 나를 잃고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내가 생각하던, 내가 동경하던 언니의 삶은 비로소 나 자신이 아닌 내가 멋있다고 생각했던 언니였고, 나는 언니와는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쉐어하우스에서 겪었던 크고 작은 일들 중에 기억에 남는다거나 인상적이라거나 이곳에 머물며 행복하다거나 후회 없이 잘 지냈다고 생각되는 일들은 불편이든, 즐거움이든 룸메이트 각각의 개성을 발견했을 때 든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언제고 다수에 속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해 왔지만 인생을 산다는 건 세월의 흐름에 몸을 맡길 줄도 알지만, 내 속도에 맞게 내 외형에 맞는 방향을 찾아 흘러가야 한다는 것도 이제는 알겠다. 함께 사는 공간에서도 마찬가지다. 룸메이트간 매너는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의 개성이 받아들여지는 순간에 나를 감추는 것만큼 지루한 일은 없을 거다.


지난밤에도 멋진 할머니에 대해 생각했다. 자신감 넘치고 씩씩한, 귀엽고 건강한 할머니. 그런 이미지의 원천은 어디에 있을까? 그 할머니가 지금의 내 나이를 떠올릴 때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미래에서 과거를 더듬어보니 답이 나왔다. 멋진 할머니가 되기 위해서 빈칸이라 생각했던 것은 돈이 아니었다. 멋진 할머니가 되기 위해서는 사랑이 필요하다. 그런 건 돈으로 대체될 수 없기 때문이다. 멋진 할머니가 되기 위해서는 돈으로 나의 이미지를 사랑스럽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멋진 할머니가 되기 위해서는 실패라던가 불안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멋진 할머니가 되기 위해서는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는 쉼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멋진 할머니가 되기 위해서는 낯설고 무서울 때마다 그것이 어렵다고 말할 줄 아는 용기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미래의 예측되는 방황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 진짜 나이가 드는 일이구나. 좋게 말하지만 실은 단단해지고 담담해질 준비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적어도 우리 사이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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