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택배가 쌓이는 집

아무튼, 쉐어하우스 (5)

by 곽민주

내가 보았던 외국 영화 속 크리스마스는 언제나 선물과 함께하는 행사였다. 우선 크리스마스엔 벽난로 앞에 두런두런 모여 앉아 선물을 뜯는다. 트리 아래 선물은 산타가 가져다준 것이다. 어릴 때 보았던 영화 <해리포터>에도 이런 장면들이 있었다. 호그와트에 배달되는 선물을 열어보던 아이들. 론에게 배달된 스웨터. 집에서 온 선물꾸러미를 기대하는 아이들의 눈빛과 오지 않을 선물 앞에 시무룩해져 있던 해리포터의 표정을 기억한다. 그러니까 크리스마스는 산타를 기대하는 행사이기도 하지만, 보고 싶은 사람의 소식을 기다리는 행사이기도 하지 않을까?


12월이 되자 쉐어하우스에도 트리가 생겼다. 주말 아침,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식탁에 앉아 있는데 하우스 매니저가 끙끙거리며 트리를 들고 오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우리의 키보다 한참은 큰 트리를 들고 거실까지 옮겼다. 이어 오너먼트가 잔뜩 들어있는 상자도 옮겼다. 동글동글한 오너먼트부터 양말 모양, 루돌프 모양, 별까지. 금세 트리는 화려하게 변신해 있었다.


점심 무렵, 하나둘 일어난 룸메이트가 물을 마시러 부엌으로 나오자마자 "와!"하고 소리를 질렀다. 트리를 보고 설렜구나 싶어 고개를 돌리는데 트리 옆에 놓여져 있는 택배 상자. 캐나다에서 온 룸메이트에게 배달된 선물이었다. 그 밖에도 프랑스, 이탈리아, 브라질, 독일 등 가족에게, 연인에게, 친구에게 택배가 하나둘 오기 시작했다. 저녁 시간이면 룸메이트들은 자신들에게 배달된 택배를 개봉하는 시간을 보냈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우리는 택배 속 물건을 구경하며 호기심을 보였다.


각기 다른 내용물과 문화가 들어 있더라도 택배에도 유형이 정해져 있었다. 가족에게서 온 택배에는 주로 한국의 추위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의류나 티백이 있었고, 룸메이트가 즐겨 먹는 사탕이나 과자, 향신료가 들어 있었다. 택배 상자의 윗부분에는 룸메이트들이 키우는 강아지의 사진이나 친구들이 함께 보낸 생일선물 따위의 물건들이 들어 있었다. 친구에게서 온 택배 상자에는 주로 화장품이나 간식거리, 그리고 편지가 들어 있었다. 평소에도 자주 휴대폰으로 메신저를 주고 받을텐데 편지지에 빼곡히 적힌 메시지를 품에 안으며 눈물을 글썽이던 룸메이트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연인에게 온 택배 상자에는 (그 당시에 연애를 해본 적이 없었으므로) 내 기준에서 대체로 쓸모없는 선물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쿠션이라던가.. 사진 액자라던가... 편지더미라던가...


"이런 쉣, 나쁜 놈! 한국까지 반지를 보냈어."


혹은 헤어진 남자친구가 자신이 끼고 있던 반지를 덜렁 보냈던 상자도 있었다. 그 룸메이트는 몇 날 며칠이고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고, 내 기억에 그 당시가 시험기간이었으므로 나와 방을 함께 쓰던 리사가 그 애를 달래느라 애를 먹었을 것이다. 시험을 3일 앞둔 날, 내게 고민을 해오던 리사에게 나는 "수육과 소주"를 추천해 주었다. 뭘 잘 알아서 추천한 게 아니었다. 보통 드라마에서는 헤어진 연인들이 소주랑 뭔가를 먹던데, 당시에 내가 좋아하는 게 수육이었을 뿐이다. 한국의 돼지요리란 삼겹살 밖에 모르던 친구들에게 '수육'은 처음 들어보는 음식이었을 것이다. 집 근처는 회사 건물들과 상권이 밀집해 있었던 지역이었기에 수육을 파는 식당이 여럿 있었고 다음날 리사는 내가 엄지를 척 내보이며 수육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이별한 룸메이트 역시 수육의 맛에 반해서는 다음날부터 다시 학교에 갔다. 리사의 말로는 한국의 소주는 도수가 낮아 그냥 그랬고, 수육이 정말로 맛있었다고. 된장도 수육도 새로운 한식을 발견한 데다 서빙하는 직원이 잘생겨 금세 괜찮아졌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우리 중에 "리틀 클로버"라는 친구가 있어?"


크리스마스를 3일 정도 앞둔 날, 집에는 의문의 상자가 왔다. 새로 올 룸메이트의 짐인 것인지, 아니면 우리 중에 택배를 받을 사람이 있는 것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저녁이 지날 때까지 택배는 제 주인을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부엌 식탁에 앉아 택배 상자를 흘깃거리며 노트북을 하고 있으면 물을 마시러 온 룸메이트들 역시 노란색 박스테이프로 꽁꽁 싸매여 있는 선물을 한 번씩 툭 치고 갔다. 이번엔 어느 나라에서 온 택배일까? 누구의 물품일까? 처음부터 주소를 들여다봤으면 되는데 우리는 하나 같이 주인이 제 것을 찾아가기를 기다릴 뿐 누구도 그 택배가 누구의 것인지 찾아주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 택배는 크리스마스이브까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크리스마스이브가 생일인 나는 그날 오후가 되도록 침대에 누워 유행 지난 넷플릭스를 보고 있었다. 20년 넘게 기념일에 생일을 보내다 보면 소란스럽고, 북적이는 분위기를 즐기지 않게 된다. 1층 문 밖으로만 내려가도 떼를 지어 북적이는 사람들, 창문을 닫아도 반복되는 크리스마스 분위기의 음악들. 그런 날엔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며 조용하고 가만히 보내고 싶었다. 룸메이트들은 나와 달랐다. 어쩌면 한국에서 보내는 처음이자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궁금해했고, 어디든 가보고 싶어 했다. 명동이나 강남, 이태원이 그들이 주로 찾는 곳이었다. 집 안엔 나와 하우스매니저, 그리고 당시에 입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다른 한국인 친구만 남아 있었다. 택배 상자는 주인을 찾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거 누구 거일까요?"


점심을 먹고 거실에 앉아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던 내가 물었다. 내 말에 하우스매니저도 갑자기 궁금증이 생겼는지 택배 상자를 들고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는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 택배는 미국에서 온 것이었다.


"리틀 클로버."


택배에 커다랗게 쓰여 있는 주인의 이름. 하우스매니저가 몇 번 되뇌어 보더니 짝- 하고 박수를 쳤다.


"리사!, 리사인 것 같아요!"


생각해 보니 리사(이 글에서는 리사라고 쓰고 있지만 실제 리사의 이름과 비슷한 명칭이다)의 이름과 비슷한 데다 미국에서 온 택배라면 범위가 한창 좁혀졌다. 이번 크리스마스엔 자기는 택배를 받을 일이 없을 거라고 단정 짓던 리사의 얼굴이 겹쳐졌다. 리사는 친구들과 강남에서 시간을 보낼 예정이라고 했다. 리사? 리사라면 얼마 전까지 엄마가 한국에 온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울지 않았던가. 나를 포함해 리사의 이야기를 알던 룸메이트들은 모두 긴장 반 기대 반의 얼굴로 그의 귀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저녁에 떡볶이에 소시지 넣어 먹을까?"


독일인 룸메이트가 가장 먼저 귀가했다. 그녀는 밖은 얼어 죽겠다며 말하며 푸-하고 입술을 떨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는 칸칸이 룸메이트들의 방 호실 번호가 적혀 있었지만 소스나 떡 같은 대용량 식품들은 간혹 포스트잇에 "Share"라고 적어두며 나눠 먹기도 했었다. 언니가 장바구니에서 소시지를 흔들어 보였다. 나는 떡과 고추장을 찾아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리사는 그날 룸메이트 중에서 가장 늦게 들어왔다. 크리스마스가 되기 20분 전. 부엌에는 먹다 남은 떡볶이와 외출 한지 얼마 안 된 룸메이트가 가져온 케이크. 친구들에게 선물 받은 내 생일케이크 등등이 놓여 있었다. 대화 소재도 거의 떨어져 가는 밤. 리사가 문을 열자 우리는 하나같이 리사에게 시선을 주었다. 리사가 무슨 일이냐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이것 봐. 리틀 클로버. 너 맞지?"

'클로버'라는 말에 리사가 왓? 하며 방으로 가던 발걸음을 돌려 빠르게 부엌까지 달려왔다.

"그건 엄마가 나를 부르던 별명이야!"


리사의 어머니는 승무원으로, 어릴 때나 지금이나 만날 때마다 비행시간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이번에 한국에 오지 못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리사가 두 손을 모으며 매우 설레어하는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케이크 상자만큼의 크기. 리사는 상자의 박스테이프를 거침없이 벗겼다.


택배 상자 안에 든 것은 한국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치토스 맛이 나는 과자. 코코넛맛 캐러멜. 땅콩버터… 그리고 몇 장의 사진과 편지들. 사진 속의 리사는 지금보다 훨씬 작고 어렸고 리사의 엄마는 한참이나 젊어 보였다. 상자 속 물건을 다 꺼내는데 거짓말처럼 찾아온 크리스마스. 누군가 핸드폰의 시계를 보여주더니 "메리 크리스마스"하고 외쳤다.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동안 그렇게 특별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그날만큼은 크리스마스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낭만적이고 선물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리사는 선물을 받고 며칠 동안 마음이 들떠 보였다. 리사의 기분은 부엌에 있을 때 가장 잘 드러난다. 칼질하는 소리만 들어도 이 애가 화가 났는지, 기쁜지, 어딘지 고민이 있는지. 함께 방을 쓰고, 밤을 새워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잠버릇을 공유하는 사이가 되면 알게 된다. 리사는 내가 밤마다 이를 드르륵드르륵 가는 것을 아주 시간이 많이 지나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 조심스레 말해주었다. 평생을 혼자서 방을 써봤던 리사는 그날 '이를 가는 버릇'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고 했다. 나 역시 리사의 코 고는 소리를 알고 있지. 리사가 학교를 마치고 집에 들어올 때마다 사 오는 간식만 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느 동네를 놀러 갔다 왔는지 나는 안다. 부엌의 싱크대에서 인덕션에 가는 발걸음만 봐도 한눈에 보인다.


나에게 온 택배는 주로 내가 시킨 것이었지만 외국인 친구들은 내가 주문한 택배도 많이 궁금해했다. 로컬인인 내가 한국의 인터넷 쇼핑몰에서 무언가를 주문하니까. 나는 주로 과자를 주문했다. 시리얼이나 (당시에 완전 비건을 지향했으므로) 오트밀 우유를 주로 주문했다. 비건을 지향하다 보면 주문할 수 있는 품목이 퍽 제한적인데, 그래서 내가 주문하는 택배도 남다르거나 혹은 외국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만 한국에서 구하기 어려운 품목들도 있었다. 그리고 당시에 주문하던 옷에 대해서도 질문을 많이 받았지. 대신 쇼핑을 해줄 때도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아 쉐어하우스에는 택배보다 더 반가운 특별한 손님이 왔다. 리사의 엄마였다. 부엌에서 인사를 나누고, 그날만큼은 방을 비워주었다. 리사는 어릴 때부터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에 자랐다고 한다. 승무원이었던 엄마는 (리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외진 시골에 사는 리사를 자주 만나러 오지 못했다. 그래서 리사에게 엄마는 이곳 쉐어하우스에서 받는 택배만큼이나 기쁜 존재. 그날 리사는 엄마와 함께 수육도 먹고, 노래방도 가고, 네 컷 사진도 찍어왔다.


언젠가 나도 미국으로부터 온 택배를 받은 적이 있다. 리사가 우리 집으로 보낸 것이었다. 라면박스만 한 크기의 꾸러미 속에는 미국에서 유행한다는 화장품과 각종 간식, 그리고 한국어로 쓰인 편지가 들어 있었다. 치토스부터 초콜릿까지. 내가 미국에 여행을 가지 않는다면, 아마 평생 알지 못할 브랜드의 제품이겠지 싶었다. 그날 페이스타임을 하며 리사와 나는 서로가 서로에게 꼭 소개해주고 싶은 과자와 화장품을 이야기했다. 김치찌개를 먹고 달콤하다고 말했던 나의 첫 미국인 친구. 새해에 떡국을 나눠 먹고, 팬케익을 만들어 먹었던 룸메이트.


리사와는 1년밖에 함께하지 않았는데 그런 기억들이 층층이 쌓여서인지 그 애가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왠지 모르게 바로 어제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자매처럼 함께 방을 쓰고, TV를 보며 하하호호 웃고, 때로는 상처 앞에 함께 울기도 하는 그런 사이였었기 때문인 걸까? 그때 집으로 쌓였던 택배들은 모두 자신들의 첫 번째 룸메이트, 그러니까 가족이나 연인을 떠올렸을 것이다. 요즘은 자주 생각하는데, 나의 다음 룸메이트와는 어떤 관계들이 쌓이게 될지 궁금하다. 그 친구와도 시간이 더더 지나 마흔이 되어갈 즈음에 기억을 더듬어가며 집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풀어낼 수 있을까? 아마도 첫 이야기는, '오리무중'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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