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작전명! 대청소!

아무튼, 쉐어하우스 (6)

by 곽민주


일요일 아침이면 집 안의 모든 창문을 연다. 가장 먼저 거실에 있는 쿠션의 먼지를 탕탕 털어본다. 화분에 물도 주고, 쌓인 먼지를 닦는다. 청소기로 바닥을 닦고 복도 구석구석을 돌아다닌다. 비뚤어진 액자를 제자리로 맞추고 커피머신 아래 쌓인 찌꺼기를 비워내고, 세탁기를 돌린다. 금세 섬유유연제 향기가 온 집안에 퍼졌다. 냄새 좋다. 룸메이트인 리사가 외출준비를 하다 돌아서서 내게 말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창문을 바라본다. 열어놓은 창문 틈으로 옆 상점가의 고소한 버터냄새와 앞집과 옆집에서 흘러나오는 스피커의 음악 소리가 뒤섞인다. 가로수길 한복판. 사람들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온다. 커피 한 잔을 내려놓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아, 편하다. 그게 내가 주말을 온전히 쉬는 방법이었다. 행복했다. 그렇게 보내는 주말이.




처음 쉐어하우스에 왔을 때 아무렇게나 쌓인 접시나 크기나 용도에 맞지 않게 나열된 컵이 눈에 보였다. 짝이 맞지 않는 젓가락과 코팅이 벗겨진 프라이팬도. 쉐어하우스에 온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 어느 날 나는 결심한 듯 주방의 상부장을 열었다. 상부장과 하부장에는 룸메이트들이 남기고 간 그릇이나 주방용품이 정리되지 않은 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모든 용품을 꺼내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그중에는 금이 갔거나 끈적임이 심해 쓸 수 없는 것들도 있었다.


“주방이 이렇게 깔끔해진 건 처음이야.”


바로 옆방에서 지내고 있는 미아가 말했다. 미아는 리사보다 한 살이 어린, 모델이다. 아이돌을 꿈꾸며 한국에 왔는데 모델이 됐다. 어느 날의 밤에 울면서 내게 말해준 적이 있다. 미아는 호주와 일본 혼혈이라고 처음 자신을 소개했다. 미아는 수줍음과 호기심이 동시에 많은 친구였다. 미아는 내가 주방에 있을 때면 내가 하는 모든 것에 호기심을 보이며 나와 대화를 나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게서 한국어를 배우려고 열심히 노력했던 것 같다.


“그냥… 일요일인데 심심하기도 하고, 약속도 없고.. 꺼낼 때마다 불편한 것들도 있고 해서.”


공용으로 쓰는 공간이다 보니 공간 구분이 제대로 되질 않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룸메이트 중에는 자신이 집에서 가져온 향신료를 그릇 사이 아무렇게나 둘 때도 있었는데 쓰고 난 뒤에 제대로 뚜껑을 닫지 않아 애먼 그릇 사이에 향신료가 조금 묻을 때도 있었고, 접시가 있어야 할 자리에 접시와 물컵이 한데 섞여 있어 사용할 때마다 번거로울 때가 있었다. 유리로 된 제품을 사용할 때에는 급하게 두 개를 꺼내다 깨먹는 룸메이트도 있었다. 그런 변명들을 해서 내가 정리를 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정리를 할 때마다 스트레스가 풀린다.




얼마 전 집안 정리를 하다 초등학교 때 받았던 생활통지표를 발견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던 것 같다. 생활통지표에는 정확히 이렇게 적혀 있었다. 맡은 일에 성실하게 임하며, 항상 정리정돈을 잘함. 어느 학년에는 정리정돈에 투철하다는 표현도 있었는데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오래 생각했다. 내가 정리, 청소를, 살림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말이다. 그리고 답을 얻었다. 정리를 좋아한다기보다 나는 정리로 얻는 성취감을 좋아했던 거라고. 정리 이후에 운동에 한동안 빠져 있었던 것처럼. 내가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가성비 가장 확실하고 소소한 성취가 정리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면 내가 내 소유의 것을 스스로 책임지고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었던 공간이 (내가 기억하는 어린시절의 최초로는) 사물함이었던 것 같다. 나는 언제나 주변을 깔끔히 하는 편이었다. 필통 속, 가방 안, 사물함. 책상 위. 학교에 도착했을 때 필요한 물건만 꺼내 썼고, 필요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정리하는 편이었다. 집에 돌아와 가정통신문을 받았을 때에도 매일매일 가방을 꺼내어 정리하고, 다음날 필요한 물건만 챙겨서 학교에 갔다.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고등학교 1학년쯤이었던 것 같다. 함께 등교를 하던 옆동의 친구가 가방에서 무언가를 급히 찾았던 적이 있는데, 글쎄 가방에 중학교 2학년 때 받았던 가정통신문을 한뭉치로 들고 있는 게 아닌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물어보니 집에 오면 가방 정리를 아예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그 친구는 집에 오면 가방이란 걸 절대 열지 않는 것 같았다. 항상 가방이 무거워 엉덩이 아래로 축 쳐진 데다 땀을 뻘뻘 흘리며 다녔으면서. 열몇 권이 넘는 책을 사물함에도 넣지 않고 이고 지고 다니는 것이다. 그때 처음 알았던 것 같다. 모두가 나와 같은 것이 아니라, 내가 남들보다 정리를 잘하는 편이라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는 걸. 나는 정리하는 게 귀찮지가 않았다. 정리하는 게 재밌었다.


그래서 또 생각했다. 부모님이 나를 키울 때 정리를 강요했나? 이 글을 쓰다 말고 문을 열고 집안을 살펴보았다. 우리 가족은 나를 빼고 정리를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다. 자라면서 내게 돈을 아껴 써라, 열심히 살아라. 이런 잔소리는 들었어도 청소 좀 하라는 잔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동생은 일상으로 듣고 있다) 그러면 나는 왜 정리가 좋은 걸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때 방을 한바탕 뒤집으며 차곡차곡 옷을 개고, 버릴 물건을 만들고, 낡은 것들을 정리하는 게 왜 개운할까?


아마도 성취감. 그리고 잘 정돈된 공간을 갖는다는 건 좋은 물건을 들일 때 느껴지는 즐거움과 같다. 마치 내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은 성장감이 든다. 단정함, 우아함, 여유로움. 그것이 정돈된 이미지에서 느껴지기 때문이고 내가 그것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쉐어하우스에서는 정리가 좀 시급하긴 했다. 내가 입주하기 전부터 있었던 유통기한 지난 식료품도 있었고, (주인이 없어 버려진 것이었다) 찬장 여기저기 먼지도 쌓여 있었으니까.


그날 몇 시간 동안 접시를 꺼내어 크기별로 놓고, 향신료와 물컵과 그릇의 위치를 구분했다. 하부장에는 쓸 수 있는 주방용품과 쓸 수 없는 용품을 정리했다. 그 후에 주방 문을 열 때마다 깔끔하게 정리된 공간을 보고 있으면 속이 다 시원했다. 접시의 자리, 물컵의 자리, 향신료의 자리가 생기니 곧 규칙처럼 다들 제자리에 물건을 놓게 되었다. 하부장 구석에 박혀 있던 칼도 제자리를 찾았다. 전자레인지 안쪽에 식초를 담은 그릇을 돌려 살균을 하고, 치즈가 튄 윗부분을 닦고 전자레인지 바닥의 접시를 닦았다. 음식을 돌릴 때마다 묻어 나오던 음식 냄새가 사라졌다. 그렇게 집 안의 공간들이 조금씩 정리됐다. 정리를 한 후엔 하우스매니저가 가져다 놓은 책을 읽기도 했고, 룸메이트 중에는 디퓨저를 가지고 와 거실에 오면 향긋한 비누냄새가 은은하게 퍼졌다.


리사와 함께 쓰던 공간에도 변화가 조금씩 생겼다. 처음 방에 왔을 때 가장 눈에 보였던 건 바닥이었다. 시멘트인지 콘크리트인지를 그대로 덮은 바닥은 겨울철 남방이 돌 때 크게 벌어져 갈라진 틈이 상당했다. 하우스매니저의 말로는 건물주거나 인테리어 업자의 실수라던가 뭐라나. 아마도 건물주가 셀프 인테리어를 했던 것 같다고 언젠가 말한 적이 있다. 벌어진 틈으로 벌레가 기어올라오기도 했는데, 이러나저러나 보기가 흉하고, 리사와 내 침대 사이 공간에 작은 테이블을 놓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인터넷에서 카페트를 하나 샀다. 분홍색에 패턴이 들어간 카페트였다.


카페트를 놓고, 근처 상점에서 캠핑용 테이블을 사고, 또 근처 패브릭숍에서 천을 사 와 위를 덮었다. 그 위에서 과자를 올려놓기도 하고, 침대에 등을 기댄 채 마주 앉아 책을 읽기도 하고, 리사의 친구들이 오면 자리를 잠시 비켜줬다. 그들은 그렇게 앉아 카페에 온 것처럼 수다를 떨었다. 내 친구들이 올 때도 리사가 자리를 비켜줬다. 친하게 지내던 직장동료가 온 적도 있었는데 회사 바로 뒷건물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하는 것 같았다. 그때 우리는 서로가 모든 게 처음이기도 하고, 낭만은 풍부했던 20대였어서 정말 영화나 드라마 속에 나올 법한 시간들을 보냈던 것 같다. 삭막했던 회색빛 방에 장식이 조금씩 늘어갔다. 방 안의 작은 냉장고 앞에는 엽서나 사진들이 붙었다. 거울 앞에도 전시회에서 보고 인상 깊었던 그림을 걸어두었다. 방에는 작은 불을 켤 수도 있고, 큰 불을 켤 수도 있었는데 모두 백색등이어서 또 시장에 가 조명을 하나 사 왔다. 여름에는 리사가 유독 더위를 많이 타는 것 같아서 선풍기도 사 왔다. 그리고 그때 리사와 함께 보냈던 시간들, 방 밖의 룸메이트들과 보냈던 시간의 기억은 내게 첫 등단작의 경험으로 녹았다.


<인어의 시간>. 그 작품 속에는 두 명의 룸메이트가 등장한다. 연인으로 묘사했지만 두 사람은 실은 나의 과거와 현재를 그린 것이었다. 우혁은 미래를 그리고, 주영은 현재를 그렸는데 그 작품 속에서 나눴던 대화나 갈등은 생각해 보면 당시에 리사와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결과 유사한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그때에 리사는 나에게 우혁 같은 친구였는지도 모르겠다. 리사는 너무 인프피스러운 친구였고, 당시에 내 입장에선 낙관적인 면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그게 조금 비뚤어진 나의 오만이라고도 생각하지만 리사가 사회경험이 많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리사의 긍정적인 조언들이 당시에 내게는 붕 뜬 소리로만 보였다. 나는 내게 허락된 성취감이 어쩌면 정리까지만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작품을 쓰면서 우혁이 낙담과 포기, 주영이 현실과 가능성을 품고 있다고 오래도록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쩌면 낙담과 포기는 현재인 주영이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그 작품에서도 연인이 싸우는 이유 중에 하나는 정리를 하지 않아서다. 이건 부모님이 싸울 때의 모습을 참고했는데 내 눈에는 두 사람 다 그렇게 정리를 잘한다거나 깔끔한 것 같지는 않다.


어젯밤에도 나는 청소를 했다. 이제 나는 본가에 산다. 1년 동안 입지 않은 옷이나, 내 나이에 맞지 않는다고 여기는 발랄한 옷을 처분했다. 정리를 하고 나니 마음이 개운해졌다. 꼭 필요한 만큼의 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퍽 마음에 든다. 조심스레 방 밖을 나와본다. 스리슬쩍 그릇장을 열어본다. 흠, 정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뒤를 돌기도 전에 엄마의 잔소리가 시작된다.


“샤워 하고 나면 머리카락 좀 정리하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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