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밤의 얼굴들

아무튼, 쉐어하우스 (7)

by 곽민주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때. 거실 소파에 누운 듯 앉은 룸메이트들이 모인다. 누군가 결심한 듯 노트북을 들고 온다. 넷플릭스에 접속한다. 그리고 매주 한 개의 콘텐츠를 재생한다. 대체로 우리가 보는 넷플릭스는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영어 자막이 제공될 것. 둘째 일본어 음성이 제공될 것. 셋째, 느끼한 로맨스 영화는 질색할 것. 여자들이 모여 달콤한 멜로 영화에 각자의 낭만에 들뜰 것 같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이다. 나를 포함해 3층에 모인 룸메이트들은 하나같이 액션이나 스릴러, 공포영화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첫 영화는 <버드박스>였다. 리히텐슈타인에서 온 친구와의 마지막 식사 겸 송별회를 끝내고 아쉬움이 남았던 밤, 누군가 냉장고에서 와인을 한 병 더 꺼내고, 누군가는 과자를 한 봉지 더 뜯어먹다 자연스레 넷플릭스 얘기가 나왔다. 버드박스는 당시에 공개된 지 꽤 오래된 영화였지만, 각자의 영화 취향을 말하는 자리에서 나는 공포 영화를, 다른 친구들은 스릴러를 손에 꼽았다.


"영화 한 편 보고 잘까?"


누군가 가방에서 맥북을 꺼내 거실 테이블 위에 놓았다. 그리고 누군가 재빨리 방의 모든 불을 끄고, 현관의 가장 작은 불을 켰다. 방 안의 분위기는 금세 으스스해졌다. 쉐어하우스가 있었던 위치가 상권의 중심가였기 때문에 밤 열 시가 넘어가면 사위는 금세 모든 불이 꺼져 어두워지고, 조용해졌다. 우리는 숨을 죽인 채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하나도 제대로 알아들은 건 없었지만 급박한 상황에서 일본어 더빙이 얼마나 분위기를 공포스럽게 만들 수 있는 것인지 알게 되었다.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던 산드로 블록의 연기는 공존과 고립을 동시에 나타내고 있는 것 같았다. 영화를 본 뒤에 방으로 돌아가는데 1인실을 쓰는 룸메이트들이 무섭다며 방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날이 새도록 모두들 거실에 엎드려 꾸벅꾸벅 졸았다. 일주일이 지나자 또 누군가 영화를 들고 왔다. 우리는 매주 공포스런 밤(?)을 보냈다.


<부부의 세계>를 볼 때였다. 국적은 달랐지만 인물들의 행태나 심리상태쯤은 부연설명이 없어도 잘 이해가 되는 모양이었다. 사랑을 가장 관대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프랑스인 룸메이트가 가장 열을 냈고, 우리는 앞에 놓인 닭발과 꼼장어를 포크로 푹 찌르며 분노를 삼켰다. 영화를 보고 나면 각자 생각한 것들을 말하거나 넌지시 주제를 던지곤 했는데 문화나 환경을 알아가는 것보단 각자가 지닌 가치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가 많았고, 가치관과 환경이 부딪혀 내적으로 갈등을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함께 공통의 관심사를 나누고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이 깊어질수록 친밀감도 높아졌다.




그때 우리에겐 모든 밤이 기념일이었다. 어느 날은 룸메이트 중 한 명이 남자친구와 헤어진 것이 기념일이었고, 또 어느 밤은 오디션장에서 떨어진 것이 기념일이 되기도 했다. 또 어느 날은 아무 이슈가 없는 편안함 밤인 것이 기념일이기도 했고, 어느 날은 룸메이트와의 마지막 밤이라는 게 기념일이기도 했다. 우리는 각자의 관심사도 나눴다. 내 또래의 이탈리아인 모델 친구는 옷에 관심이 많았다. 그 애는 최근에 소속사를 나와 다음 소속사를 찾고 있었던 데다 함께 살던 남자친구와 헤어졌다고 했다. 어쩌다 보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친구가 생각하기에 나와의 친밀감이 매우 깊어졌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당시에 나의 룸메이트였던 리사가 떠나고 2인실 방은 나 혼자 쓰고 있었다. 룸메이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방으로 돌아가면 얼마 되지 않아 그 친구가 컵을 들고 와 조금 더 이야기를 하다 자고 싶다며 내 방 문을 두드렸다. 나는 책을 무릎 사이에 괸 채 이야기를 들었고, 그 친구는 주로 이야기를 했다. 아마도 생각하기에, 그때 그 친구는 이야기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사람에 대한 외로움이 더 깊었던 것 같다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 인간의 외로움을 알 때가 된 나는 생각한다. 그 애는 자주 리사의 침대에 누워 시간을 보내다 가곤 했다. 그 애는 항상 내게 친절하고, 내게 의지를 하는 것 같았지만 때로 나는 그것이 부담스러웠다.


생각해 보면 언제나 그랬다. 나는 친구들을 사귈 때마다 친구들과 너무 사이가 가까워지면 나도 모르게 부담감이 들었다. 그러니까 내게 친구는 함께 시간을 보내고, 즐거운 것들을 체험하고, 숙제를 함께하거나 사소한 고민 같은 걸 나눌 수 있는 존재. 우스꽝스러운 추억을 나눌 수 있는 존재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종종 혼란스러운 기분이 들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친구들은 내가 생각하는 관계 이상의 선을 넘는 것만 같았고, 그 선을 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들뜨고 기뻤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음을 느꼈다. 나의 판단오류일 수 있지만, 내가 친구들과 마음을 깊이 털어놓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지면 그때부터 나는 고민하는 존재가 되어야 했다.


왜냐하면 항상 무리한 부탁을 들어주었어야 했기 때문이다. 돈을 빌렸다가 갚지 않는다거나, 물건을 쓰고 망가뜨린 채 돌려준다거나, 개인정보를 요구할 때도 있었다. 어떤 친구는 함께 등교를 해야 한다며 떼를 쓰다 내가 억울하게 지각을 해도 전혀 미안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학창 시절의 추억거리가 생겼다는 둥 어떻다는 둥, 학교의 규칙을 위반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개근상을 놓쳐 속상했는데 말이다. 사소한 것도 있었지만 대체로 끝이 좋지 못했다. 순수하게 도움이 되고 싶고, 힘이 되고 싶어 건넨 호의는 언제나 좋지 못하게 돌아왔다. 그런 일로 부모님께 혼이 나기도 했다. 문제가 뭐였을까? 내가 예민한 사람엔걸까? 아니면 친구들이 나와 맞지 않았던 걸까? 언젠가부터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이유는 친구들과 너무 가까워졌기 때문일 거라고. 조금씩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나를 지키기 위해 내가 선택한 것은 그것이었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 나와 생일까지 같은 친구는 내게 매일같이 연락이 와서는 나와 시간을 보내기를 원했다. 중학교 때부터 알던 친구였는데 모든 일에 성실하지 못했고, 자기 인생에 책임감이 없다고 생각했다. 내 인생이 아니었기 때문에 친구에게 속상한 일이 있을 때면 함께 술을 마시거나 즐거운 체험을 많이 했는데, 그 친구와 시간을 보내고 나면 내가 해야 할 일도 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나는 내 인생도 중요했고, 친구와의 관계도 중요했는데 그 당시에 아무 노력 없이 기회를 얻은 친구와 너무 많은 노력이 필요한 내 환경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때 내 앞으로 펼쳐진 미래가 너무 무서웠는데, 그 친구는 학교만 졸업하면 걱정이 없을 것 같았다. 그 친구는 매 학기 성적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4학년이 되었을 때쯤 2년 정도 학교를 더 다녀야 하는 일이 생겼다. 친구는 그 사실에 내게 매일 같이 연락을 해 푸념을 하면서도 일을 수습하기보단 방치했다. 모두들 자격증을 준비할 때 다른 단과대의 동아리 엠티를 가기 바빴고, 공부하는 척 날마다 카페를 바꿔가며 예쁘게 사진 찍은 케익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바빴다. 전국의 행사란 행사는 모두 참여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나를 만날 때면 우울한 감정만 쏟아내기 바빴다.


10년쯤 지나 다시 생각해 보니 어쩌면 그 당시에 그 친구가 내게 차마 할 수 없는 어떤 시련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시간들을 보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때 내가 친구에게 따끔하게 충고하기보다 달래고 마음을 안아주었다면 조금 다른 결말을 맞이했을까? 어쩌면 그때 나는 친구보다는 내 인생이 더 중요했던 이기적인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줄리는 이탈리아에서 온 친구였다. 내게 이탈리아어를 가르쳐주던 그 애는 그 친구와 닮은 점이 많았다. 언제나 즉흥적이었고, 흥이 많은 편이었다. 모두가 자고 있을 시간에 거실에서 스피커를 크게 틀어두고 춤을 추는가 하면 어느 날엔 옷을 거의 걸치지 않은 채 옥상에서 요가를 하기도 했다. 자유로움의 대명사. 나와 한 살차이 밖에 나지 않은 친구였는데 도무지 속을 알 수가 없었다. 어느 날엔 어른 같았고, 어느 날엔 너무나도 철없는 아이 같았으니까. 그 친구는 소속사를 나와 다시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당시에 한국어로 된 계약서를 봐주며 그 애가 버는 수입을 보았는데 꽤 큰 프로젝트를 맡았었던 경력 덕분인지 벌이가 나와는 10배 정도 차이가 났다. 문제는, 모델 생활을 오래 해왔으면서 모아둔 돈이 없었다는 거다.


줄리는 쇼핑을 좋아했다. 옷장에 옷을 모두 넣는 걸로도 모자라 제 몸만한 크기의 캐리어가 꽉 차 있었다. 방 안엔느 그 애가 협찬받은 옷이나 가방 구두가 산더미였다. 그럼에도 집에 오는 날이면 매일 손에는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쇼핑백은 브랜드를 잘 모르는 나도 알 정도로 유명한 것들이었다. 쇼핑하기 좋은 거리, 가로수길 한복판에 있었으니 줄리에게는 덕업일치를 제대로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줄리가 방세를 낼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당시에 1인실 방을 쓰려면 약 100만원이 넘는 금액을 지불해야 했는데 줄리에게 당장 그만한 돈이 없었다. 줄리는 우리가 함께 나눠 먹는 상영회의 밤에서도 정산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상영회의 밤이 아닐 때에는 친하게 지내던 포토그래퍼나 스탭들을 만나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줄리가 나와는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친구들과 함께 집 근처의 카페나 식당에 갈 때면 줄리는 항상 고급스런 음식을 주문하고, 당시 우리 또래의 수준으로는 매우 비싼 음식을 주문했다. 수습은 뒤에 하는 일이었고, 그 당시에 그 순간을 잘 즐기는 게 그 애에겐 중요해 보였다. 선글라스를 머리 위에 걸치고,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은 사진을 한껏 찍어주면 집으로 돌아와 맨 얼굴에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밤중에 내 방의 문을 두드리던 줄리가 내게 말했다.


"10만원만 빌려줄래?"


그러니까 줄리의 잔고가 정말 바닥이 난 것이다. 줄리는 이탈리아에 있는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해 돈이 마련되기까지 일주일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 사이에 생활을 해야 하는데 10만원 정도면 될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때 나는 줄리의 계좌로 10만원을 입금해 주면서 왠지 모르게 줄리와 조금씩 멀어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바로 전날만 해도 10만원짜리 술을 아무렇지 않게 주문하던 애였다. 그날 저녁 두 시간 만에 줄리는 옷을 사는 것으로 그 10만원을 몽땅 써버렸다. 줄리는 곧바로 다른 친구에게 또 같은 금액의 돈을 빌리려는 듯 보였다. 누구도 줄리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 다음날 줄리는 심한 감기에 걸려 심하게 기침을 했다. 열이 오른 모양이었다.


줄리는 방이 아닌 거실에서 콜록이며 누군가 자신을 도와주기를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주말 아침, 장을 보러 동네의 슈퍼마켓에 장바구니를 들고 가는데 줄리가 말했다.


"언니, 나 아파. 약이 필요해."


줄리는 자신이 감기에 걸린 것 같다며, 마스크와 약을 사다 달라고 했다. 나는 눈이 푹 꺼진 채 누워 있는 줄리와 줄리의 머리맡에 놓인 담배를 번갈아보다 한숨을 푹 쉬었다. 내가 한숨을 쉬자 줄리가 엉엉 울며 방으로 들어갔다. 그날 문을 닫은 약국을 세 곳을 지나며 타이레놀과 마스크를 사다 줄리의 방문 앞에 놓아두었다. 그리고 줄리에게 말했다.


"줄리, 방을 조금 더 저렴한 곳으로 옮겨. 이 동네는 너무 비싸. 내가 조금 더 컨디션이 괜찮은 방을 알아봐 줄게. 그리고 이제 일을 해. 줄리, 너는 어리지 않아."


줄리는 당장 이사를 가기보단 아직 룸메이트들의 곁에 있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내 방의 옆 침대를 쓰기를 원했고, 나와 룸메이트가 되기를 원하는 것 같았는데 그럼에도 금액이 꽤 높아 줄리가 장기적으로 감당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줄리와 내가 룸메이트로써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새벽녘에 술에 취해 들어오는 줄리, 모두가 편히 쉬는 시간에 불청객처럼 스피커의 소리를 크게 틀어놓으며 춤을 추는 줄리. 줄리의 일 이후로 상영회의 멤버들은 흩어지는 것을 택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줄리가 또다시 내 방문을 두드랴왔다. 새 소속사와 계약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이전보다 조건이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포트폴리오로 쓸만한 프로젝트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줄리는 크게 기뻐했다. 나 역시 기뻤다. 다시 스튜디오에 서서 멋지게 포즈를 잡는 줄리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게. 그 일로 다시 룸메이트들과 기념 상영회를 열었다. 특별하게 보는 영화는 없었지만 우리는 모두 줄리의 복귀를 축하했다.


문제는 다음날이었다. 줄리가 내게 봐달라고 해주었던 한국어 계약서에는 부당한 조건들이 군데군데 껴 있었다. 그중에 하나는 외국인 모델들의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할 것.(일종의 매니저 업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가슴 확대 수술을 강제에 가깝게 권유했다는 거였다. 내 말을 들은 줄리가 크게 분노했다. 한낮의 부엌 테이블에서 우리는 오래도록 침묵했다. 줄리는 그날 방에 들어가 한참을 나오지 않았다. 다음날에도 줄리는 룸메이트들과 파티를 명목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나눴다. 그 밤, 상영회에 참여하지 않고 조용히 방에서 이직 준비를 하던 내게 줄리가 와 방문을 두드렸다. 줄리가 말했다.


"나 이거 고발할 거야. 민주, 함께하자."


그때 스물일곱이었던 나는 줄리에게 그만두라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너를 위해서 지금은 네 생존이 더 중요하다고. 그때 우리는 '권력'이라는 워딩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내가 생각하는 권력이란 말 그대로 "힘"을 의미했다. 힘을 다루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고, 힘을 가지려면 힘을 사야 했다. 힘을 사는 데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그때 줄리가 힘을 다루기엔 성숙하지 않게 보였다. 나는 줄리에게 다른 소속사를 찾아 우선 생계를 유지할 방법을 찾자고 말했다. 내 말에 줄리가 얼굴 표정을 점점 굳히더니 내게 말했다.


"위선자. 언니는 위선자야. 언니는 작가가 아니야."


줄리는 그 말을 마치며 제 방으로 빠르게 들어갔다. 문을 쾅하고 닫았다. 그런 줄리의 뒤에 대고 내가 말했다.


"그래!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니까 뭐라도 되어야 해. 너 당장 다음 달 방값도 걱정하고 있잖아. 나는 모델 네트워크를 잘 알지 못하지만, 어쩌면 너 한국에서 일을 못할 수도 있어. 왜 그렇게 짧게 생각하니."


줄리는 일주일 뒤 쉐어하우스를 떠났다. 줄리의 안부를 묻는 친구는 없었다. 줄리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시간이 조금 더 흘러, 이제는 내가 그때 무엇을 잘못한 것인지 안다. 내가 줄리에게 주었던 상처가 무엇인지, 그때 줄리에게 필요한 말들이 무엇이었는지 이제는 안다.


밤이 되면 룸메이트들은 대체로 차분해졌다. 인생에 그렇게 즐거운 일들은 잘 일어나지 않고, 해가 거듭될수록 당연한 일보다는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수습해 가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에 닥친 문제들은 대부분 스스로 해결을 해내어야만 한다. 룸메이트에게 필요했던 건 어떤 해결책이 아니라, 힘들 때 외롭지 않게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임을,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 이제 나는 깨닫는다.




서른이 지나 종종 내게도 그런 어려움들이 닥친다. 지나고 보면 어린 마음에 한 걱정들일 뿐인 것들도 그 당시에는 차분히 생각할 여유 없이 두려움으로 똘똘 뭉친다. 이제 좀 안정이 되었다 싶으면 새롭게 풀어야 하는 문제들이 생겨나는 것 같고, 그만 좀 알고 싶은데 자꾸만 머릿속에 넣어야 하는 지식들이 너무 많고, 세상을 바보같이 살아가고 싶지 않고. 복잡한 마음이 이유도 없이 눈물이 줄줄 흐르는데, 내가 스스로 이겨내고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에 막막한 기분이 먼저 들었다.


그러나 그런 불안한 마음이 드는 때에 남자친구가 옆에서 가만히 숨을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외로운 마음이 한결 덜어졌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의 불안은 대체로 외로움에 대한 걱정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구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하고, 힘이 날 수 있다니. 이런 감정을 더 일찍 알았더라면 친구들에게 말없이 옆에 있어주는 시간의 중요성을 잘 알았을 텐데.


룸메이트로 매일 얼굴을 마주하며 지내는 것은 서로의 비밀이나 다른 성향을 조금씩 이해하는 일 이상으로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함께 산다는 건, 항상 밝고 빛나는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함께 사는 것은 언제나 밤의 얼굴을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속사정을 목격하는 일. 잠버릇을 공유하는 일. 종종 생각한다. 그때 룸메이트들에게 나의 얼굴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모든 것이 불확실하던 시기, 나의 밤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었을까?



작가의 이전글6. 작전명! 대청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