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공기는 축축했다. 전날 일기예보를 확인했을 때 아침에 비가 올 것 같다는 문구를 읽은 것 같기도 하다. 이제와 나, 이준오는 차례차례 화장실에 가는 척 교실 문밖을 나왔다. 우리 중에 가방을 멘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이제는 말했다. 진짜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눈물만 줄줄 흘리는 수도꼭지 따윈 아무 소용없는 거라고. 그러니까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학교 밖을 나서는 거라고.
“이래도 되는 걸까?”
복도 계단을 내려가며 나는 이제와 이준오의 눈치를 쓱하고 살폈다. 그러나 이내 아무 소용없는 걱정을 하고 있는 거라는 걸 깨달았다. 이 애들이야 말로 나 같이 최악의 상황이라거나 걱정 같은 건 하지 않는 애니까.
“당연하지. 뭘 걱정해? 여기서 지하철 타고 바로 공항철도로 가. 거기서 인천공항으로 가면 돼. 아마 지금 출발하면 딱 맞춰서 엄마랑 마주칠 수 있을 거야.”
“마주치면?”
“소원을 이뤄야지.”
“내 소원이 뭔 줄 알고?”
이준오는 졸린 눈을 비미며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곧 무언가를 꺼냈다. 이준오의 주머니에서 나온 건 내 휴대폰이었다.
“나는 멀리 못 가겠다. 너무 졸려. 지금 계단이라도 금방 엎어질 수 있음.”
“그래 보인다.”
“네 소원 아직도 모르겠어? 공부 잘하는 거 진짜 아무 때에도 필요 없구나.”
이제가 내 어깨에 맨 가방을 고쳐 매주며 말했다. 이것도 가져가. 졸릴 때 자꾸 뭐 먹으면 좋거든. 나는 몇 번 거절하다 이제가 내민 초콜릿을 손에 들었다.
“그런 건 수능에 나오지도 않아. 네가 정답도 아니고.”
“그런 말들은 척척 잘하면서.”
“정답이니까.”
“그럼 네 마음도 좀 잘 알아줘. 너는 엄마가 미운 게 아니야. 누군가를 미워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세상을 너무 정확하고 불편하게 살아가고 싶은 것도 아니야. 아직도 모르겠어?”
“그러니까...”
“너는 그냥, 엄마가 보고 싶은 거야. 무언가 엄마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쉽게 말하면 엄마가 보고 싶은 거라고. 잘 지내고 있는 건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거잖아. 그런데 뭐 하러 뻗대고 있어? 지금 당장 공항에 가도 모자랄 판에. 도대체 이 캠프는 왜 온 거야?”
이제는 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우리는 명예롭게 학교의 정문을 통해 나가고 싶었지만, 어스름히 빛이 들어오는 유리문의 손잡이는 쇠사슬로 단단히 잠겨 있었다. 결국 우리는 복도 끝에 난 창문 틈으로 나가기로 했다. 이준오와 이제는 지하철역까지만 우리를 데려다주고, 지하철역에서부터 첫차를 타는 순간 완전히 혼자 가야 할 것이다.
새벽 다섯 시. 첫차가 오기까지는 삼십 분 남짓한 시간이 남아 있다. 우리는 신고 있던 신발을 손에 든 채 양말차림으로 살금살금 계단을 내려가고 복도를 걸어갔다. 얇은 양말 안쪽으로 찬 기운이 느껴졌다.
한창 계단을 내려와 1층에 도달했는데 1층 복도 끝에 경비아저씨가 앞서 걸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벽 너머에 고개를 빼꼼히 내밀며 경비 아저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나는 벌써 소원 이뤄진 것 같아. 홍이제, 너 의외다.”
이준오가 쿡쿡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네 소원이 뭐였는데?”
“세화고 졸업식에 오는 거. 벌써 이뤄진 것 같아.”
“그런 걸 소원으로 빌다니. 졸업식 같은 건 마음만 먹으면 올 수 있는 거잖아.”
이제가 한심하다는 투로 말하자 이준오가 멀리 창밖에 시선을 두며 말했다.
“알아. 그런데 그런 마음을 먹을 만한 일들이 잘 없었거든. 근데 오늘은 아마 나의 십 대에 있을 만한 일 중에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일 것 같아서. 진짜 추억이네.”
글쎄, 지금 이 순간이 진짜 추억이 될지 상처가 될지는 알 수 없다. 엄마를 만나면 엄마는 나를 보고 어떤 표정을 지을까? 반가운 얼굴? 아니면 실망한 얼굴? 그 어느 쪽도 자신할 수 없다. 엄마가 나를 만나고 싶어 했던 마음이 책임감이었을지 아니면 그리움이나 이미 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인지도 알 수가 없다. 곰곰이 생각하는데 이제가 창문의 잠긴 문고리를 내리며 문을 열었다. 그 바람에 끼익 하는 소리가 조용한 복도에 울려 퍼졌다. 조용한 복도에 울린 소리에 누군가 복도 쪽으로 빠르게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야, 빨리 뛰어 넘어가!”
이제가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는 제 입을 틀어막았다. 이준오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깔깔거리는 소리까지 내며 웃었다.
“서진아, 빨리 뛰어! 밑에 생각보다 낮으니까 조심하고.”
어둠 속에 바닥이 얼마만큼의 높이에 있는지 가늠할 순 없었지만 그런 걸 고민할 새가 없었다. 무조건 뛰어내려야 했으니 말이다.
“이거 도와줬으니까 나중에 가지덮밥인지 오므라이스인지 그거 사줘야 함. 알겠지?”
“일단 알겠어! 나 간다!”
경비아저씨의 걸음이 빨라지는 소리와 더 이상 뒤를 돌아보지 않고 와다다 달려가야만 했는데 이제와 준오도 웃으면서 빠르게 계단 위쪽으로 뛰어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 다 무언가 재밌는 모양이었다. 나는 손에 쥔 휴대폰을 쥔 채 일단 달렸다. 완전히 닫혀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교문의 작은 문이 열려 있던 덕분에 바로 지하철역까지 뛰어갈 수 있었다.
예정되지 않은 가출, 아니 교출이었기 때문에 책가방에 든 것은 지금 내가 떠나는 이 길에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휴대폰, 휴대폰충전기, 화장품파우치, 공책 몇 권... 다 쓸모가 없네.”
그리고 주머니에 이제가 넣어준 초콜릿. 그나마 초콜릿이 있어 졸린 기운을 회복할 수 있었다. 나는 교통카드를 찍고 무사히 지하철 첫 차를 탔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시간은 십분 정도. 허겁지겁 뛰어오느라 숨을 가다듬기만 해도 시간은 훌쩍 흘렀다.
다시 휴대폰을 확인한 건 지하철을 떠난 지 다섯 정거장 정도 지나서였다. 꺼져 있던 휴대폰을 켜자 엄마로부터 연락이 몇 통 더 와 있었다.
[서진아, 엄마 내일 여덟 시쯤 공항에 도착할 거 같아. 경유지에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하루정도 연착이 됐어.]
[서진아. 아빠한테 연락받았는데 오늘 학교 행사 참여한다며? 새벽까지 책 읽는 행사라고.. 끝나고 엄마가 학교로 갈까?]
[서진아, 엄마 출발했어.]
마지막으로 온 연락이 두 시간쯤 전이었으므로 어쩌면 시간이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아빠한테는 학교 행사에 대해 말한 적이 없었는데 어떻게 알았지? 아빠는 나에게 관심도 없고 제대로 알지도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마 학교 공지를 읽었거나 학원 선생님한테 미리 연락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가장 완벽하고 유력한 가설은 학원 선생님의 공지니까.
지하철을 타는 동안 텅 비어 있었던 좌석은 공항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붐비기 시작했다. 환승구를 지나 공항철도를 탈 때까지 외국인도 보이고, 이제 막 여행을 시작할 것으로 보이는 사람도 보였다. 캐리어와 배낭을 멘 사람들 사이 교복에 물건이 많이 들어 있지 않은 가방을 멘 내 모습은 퍽 이질적으로 보였다. 특히 외국인들의 시선이 느껴지는 게 불편해 이어폰을 귀에 꽂고 멍하니 창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인천으로 가는 길에 지상으로 연결된 지하철은 시간이 흐를수록 어스름히 해가 밝았다.
[김서진. 잘 가고 있어?]
이제에게서 온 연락이었다. 나는 그렇다는 답장을 보내고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비로소 긴장이 풀리는 듯했다.
[근데 문제 생기긴 함. 너 없어진 거 들킴. 쌤이 너네 아빠한테 연락한대. 알고 있으라고.]
시간을 보니 여섯 시 반. 지금쯤이면 아빠는 일어나 씻고 옷을 갈아입고 있을 거다. 평소와 다름없이 커피를 마시면서 셔츠의 단추를 꿰고 있겠지. 그런 와중에 불청객처럼 휴대폰 알람이 울렸을 거다.
나는 선생님이 보냈을 메시지의 내용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서진이 아버님, 서진이가 행사 도중에 이탈 행동을 했다고 해서요. 그렇게 시작하는 첫 문장이었을까? 다른 버전도 있다. 서진이 아버님, 서진이가 새벽 첫 차를 타고 어머님을 만나러 갔다고 하네요. 너무 걱정은 마시고... 이것도 최악이다. 나는 알고 있었다. 아빠가 엄마를 불편해하는 이유는 엄마가 가족으로서의 책임이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걸. 사랑이 식었다거나 엄마가 큰 잘못을 하지 않았다는 걸 우리 모두는 알고 있었지만 엄마가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건 사전에 고지하지 않은, 그러니까 예측할 수 없는 엄마의 행복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캠프가 끝나기 두 시간 전에 학교를 이탈해 버린 나처럼 말이다.
내 입장에선 지금이 아니면 또 엄마를 언제 볼지 모른다는 조급함과 불안 그리고 보고 싶은 마음 같은 것들이 이전에도 절대 하지 않을 것 같은 행동을 하게 했다면 아마 당시에 엄마도 그러지 않았을까? 어릴 때부터 엄마는 온종일 집에만 있었다. 내가 학교에 간 사이 엄마는 컴퓨터를 앞에 놓고 일을 했고,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에도 엄마는 언제나 같은 옷에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저녁 늦게 되어서야 아빠가 집에 들어오면 엄마는 엄마대로, 아빠는 아빠대로 피곤해 멍하니 TV만 보며 멍을 떄렸다. 가끔 같은 순간에 웃기도 하고, 같은 공간에서 서로 휴대폰만 바라보고 있는 시간도 있었지만 나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는 여전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의 마음이나 생각들이 냉장고에 넣어둔 치즈케이크처럼 점점 그 온도가 낮아지는 것을 미묘하게 느꼈다.
나만 느낀 것인지, 아빠만 느낀 것인지 모르겠지만 엄마는 이 반복되고, 변화 없는 하루하루에 지겨움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같은 게임을 오래 하면 흥미가 떨어지는 것처럼. 그런 엄마에게 우리 가족은 어떤 노력을 해왔던 걸까? 그런 건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만 있었을까? 아니면 언제 터지지 모를 폭탄을 서로 간에 조심스러워하면서 회피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무엇이 엄마를 암스테르담으로 가게 만들었던 걸까? 지금까지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저기.”
고개를 푹 숙인 채 교복 치맛자락만 만지작 거리고 있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톡톡하고 쳤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아주머니 한 사람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내게 잠시 이어폰을 뺄 수 있겠느냐는 시늉을 했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이어폰을 뺐다.
“이렇게 이른 아침에 공항을 가? 여행을 가?”
아주머니는 나를 수상한 듯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나 역시 모르는 사람이었기에 경계하는 눈빛으로 괜히 품에 안은 가방을 더 세게 쥐었다.
“공항으로 가기는 해요.. 뭐, 사정이 좀 있지만.”
“부모님이 허락은 했고? 나도 학생만 한 딸이 있거든. 지금 마중 가고 있어. 그 애도 내게 말하지 않고 떠나기 전날 통보를 했지.”
아주머니는 휴대폰을 열어 딸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아주머니의 딸은 올해로 스물한 살이 된다고 했다. 수능이 끝난 다음날, 여행을 간다고 둘러댔던 출국준비는 실은 2년 동안 해외에서 공부하는 걸 목표로 했대나 뭐래나. 당시에는 크게 싸웠는데 정신을 차린 후에는 이미 배웅도 하지 못한 채 딸이 떠나버렸다고 했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비슷한 거냐고. 눈빛을 보면 꼭 몰래 나온 사람같이 보인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오히려 내 상황은 반대였으니까.
“내가 그때 후회되는 게 있다면 잘 모르는 환경에 가서 고생 많이 할 텐데 좀 더 챙겨줄걸. 우리 딸은 너무 어린 애로 생각했다는 거야. 그리고 가족이 마치 나에게 무조건적으로 맞춰야 한다고만 생각했던 것도 같아. 가끔 그게 마음이 아파. 이미 내 딸은 스무 살이 훌쩍 넘은, 자기 인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어른인데 말이야.”
아주머니는 갑자기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조금 흘렸다. 지하철 내 전광판을 보니 어느새 공항터미널에 도착하기까지는 2정거장 정도가 남아 있었다.
“울지 마세요. 저는 그런 게 아니라.. 오히려 엄마를 만나러 가는 거니까.”
“그렇구나.”
아주머니는 민망하게 너스레를 떤 것 같다며 부끄러워했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내 이야기를 해주어야 할까 고민하다 입을 다물었다. 내가 어떻게 공항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늘어놓기엔 밤을 새워서 말해야 하는 것들이 많을 테니까. 그러는 사이 내가 미처 챙기지 못한 한 가지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읽음 처리 뒤에 답장하지 않은 엄마와의 메신저를 터미널에 내려서야 발견했다. 허겁지겁 터미널 안쪽으로 들어가니 도착을 알리는 전광판엔 엄마가 타고 올 비행기의 편명이 적혀 있었다. 엄마의 비행기는 20분 전에 이미 공항에 도착했고, 나는 그대로 자리에 얼어붙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엄마는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아직 공항에 있기는 한 걸까? 이미 모든 것이 너무 늦어버린 건 아닐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