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쉐어하우스 (9)
"민주씨, 오늘 회의는 무조건 부러뜨려야 해!"
"부러뜨리는 게 뭐예요?"
"회의 내용을 결정짓자는 뜻이야. 고객이 계속 A안, B안으로 고민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하지 않도록 부러뜨려야지."
광고대행사에 다니면서 알게된 여러 표현이 있다. 그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표현은 "부러뜨리다." 회사에서 처음 "부러뜨린다"는 표현을 쓴 이래로 내게는 입에 착착 붙어 자주 사용하는 표현 중에 하나가 되었다. 백 번을 테스트해도 변하지 않는 엠비티아이. ENTJ 유형인 내게 항상 결론을 내는 일은 성격에 딱 맞았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생각을 부러뜨리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여러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목적지만을 바라보다 보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고, 그것을 제거하면 결론에 다다르는 건 금방이다. 내가 가진 의견을 사람들에게 설득하는 일, 꼬여 있던 문제를 해결하는 일. 결국 일에도 정리가 있고 무엇을 부러뜨린 건 정리하는 일과 같다.
부러뜨릴 줄 안다는 건, 다시 말해 부러뜨리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꺾일 줄 모르는 마음을 뜻한다. 좀체 자신의 생각을 꺾을 줄 모르는 사람. 어쩌면 다른 방법이란 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아서 한 길만 아는 사람이 되어 버렸을 수도 있다. 그게 바로 나였으니까.
룸메이트인 리사와 함께 1년 남짓한 시간을 보내면서 갈등이 없었느냐고 묻는다면 너무 많은 갈등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더위를 타는 리사와 추위를 타는 나는 추워지는 계절에 만나 서로 다른 온도차에 불편을 안았다. 그뿐인가 회사를 가는 나와 학교를 다니는 리사는 아침에 일어나는 시각과 깨어 있는 시간대도 크게 달랐다. 우리는 한 공간 안에서 각자의 개성을 지닌 서로 다른 인간이라는 걸 그 시간 동안 여러 번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국적이나 문화가 달라 생각하는 관점에도 크게 차이가 있었는데, 대화를 나누다 보면 리사는 자주 "낯설다..!"라는 말을 하곤 했다. 나 역시 리사를 이해할 수 없는 순간들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하고 있었기에 어떤 결정들은 부러뜨려야 했고, 대체로 많은 것들은 꺾여야 했다. 리사가 더위를 타기에 내가 찾은 방법은 보온주머니를 들이는 것이었고, 내가 잠을 자는 동안 리사는 아주 작은 불빛에 의지해 공부를 하곤 했다. TV를 보다 서로 다른 의견이 나오면 각자의 생가을 가감없이 이야기했고, 방 안은 때로 낯선 공기가 흐르기도 했다.
리사가 아니더라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와 맞지 않는 무수한 관계를 만났다. 생각해 보면 나와 맞는 관계를 찾는 게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들 만큼, 나를 비난하거나 혐오하지 않아 주는 것이 다행일 정도로 세상에는 나와 다른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때마다 나는 관계를 부러뜨리기보다는 휘어지는 것을 선택했던 것 같다. 피할 수 없는 관계들, 반복되는 상황들, 조금 더 멀리 내다보고, 때로는 내게 불편한 것이 오직 내 입장에서만 그랬던 것은 아니었는지 되돌아보기.
리사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처음 리사를 만났을 때, 리사는 방 안에 신발을 신고 들어왔다. 그리고 그 신발을 신은 채로 침대부터 화장실까지 온 집을 돌아다녔다. 나와 함께 지내고, 실내용 슬리퍼를 챙겨 신는 나를 보면서 리사 역시 자신이 살아오던 문화와 습관을 양보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우리가 함께 지냈던 시간들을 그저 잘 맞는 관계였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실은 맞춰가는 관계였다고 말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른다.
리사와 함께 지내면서 다녔던 회사에선 선택받아야 하는 일이 흔했다. 비딩이 몰아치는 달이면 카피라이팅을 주요로 담당했던 나는 마치 성적표를 받는 학생처럼 의기소침해 지곤 했다. 평가받는 일상들, 선택이 곧 생존이 되는 경험. 쉐어하우스에서의 시간은 즐거웠지만 걱정 때문에 잠을 쉽게 자지 못하는 날도 이어졌다. 잠을 자면 쉽게 꿈을 꿨고, 꿈은 언제나 회사 이야기로 가득 찬 악몽이 이어졌다. 3만장의 인쇄물 중에 심각한 오류를 발견하는 내용들, 연이어 비딩에 떨어지는 꿈... 무쓸모하고 무능력한 취급을 받는 꿈... 그 무렵엔 학부 때처럼 다시 소화제를 달고 살았다.
당시에는 내 능력이 부족해서 A, B안에 대한 공포가 있었는데 당시에 "부러뜨러야 한다"는 의미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와 욕망이 있었다는 걸 이제는 안다. 여러 개의 시안을 제안해야 하는 달이면 광고주가 속한 조직에도 각자의 영향력을 행사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는 걸, 옳고 그름을 정하는 게 아니라 욕망이 충족되어야 하는 순간이 있었다는 걸 이제는 안다.
처음 회사에 들어와 몇 계절을 보내는 동안 퇴사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한 번 회사에 들어가면 어지간하면 버텨야 하는 거라고, 이직에 성공할 거라는 보장이 없기도 하거니와 돈을 버는 일에는 언제나 힘듦이 당연하게 따라붙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사이, 회사에서 친하게 지내는 동료들이 하나둘 줄줄이 퇴사를 하기 시작했다. 쉐어하우스에 놀러 왔던 동료도, 퇴근 후 자주 저녁을 같이 먹었던 동료도, 점심시간마다 사소하게 잡담을 나누거나 짓궂은 농담을 건넸던 직원도. 그동안은 업무를 하느라, 경력을 채우느라 앞만 보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사무실에는 모두 모르는 얼굴들 뿐, 내가 이 회사에서 가장 오래된 직원이 되어 있었다.
퇴사를 해도 될까?
퇴사를 하지 않아도 될까?
머릿속에는 끝없는 의문이 이어지고 있었다. 첫 취업까지 너무 어렵고 힘든 시간들이 주어져 있었기에 다시 그때의 불안정한 시기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평가받는다는 감각이 너무 끔찍해서 다시 그 선상으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다. 이제 좀 안정감을 찾고 싶다고, 언제나 긴장된 상태에서 잠깐 좀 쉬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기회 같은 건 생각지 않고, 시간을 죽인 채 마음을 편안히 좀 쉬고 싶었다. 그러나 동시에 생각했다. 시간이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이제 다음 단계에 진입해야 한다고. 언제나 그랬다. 나는 버림받기 전에 먼저 떠나는 걸 택하고 싶었으니까. 지금 돌아보면 스물일곱은 그렇게 많은 나이가 아니었던 데다 이미 3년의 경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때 나는 내 인생이 앞으로 변함없이 정해져 있도록 지지부진하게 설계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스물일곱에서 스물여덟 사이, 그 무렵 자의든, 타의든 원치 않는 이별이 이어졌다. 쉐어하우스를 떠나는 룸메이트들, 퇴사를 택하는 직원들, 방향이 너무도 다른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 친구들. 사회뿐만이 아니라 나 자신의 마음속에서도 무언가 사라져 가는 것을 느꼈다. 매일 같이 계속되는 업무들, 언제까지나 나를 막내로 바라보는 사람들, 피로감, 무시당하는 듯한 감정들. 오르지 않는 연봉, 비전 없는 포트폴리오. 그리고 무엇보다 견딜 수 없었던 고립감.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어느새 나를 '이별'이라는 구간에 데려다 놓고 있었다.
나는 나를 참고, 참는 것만이 꺾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때 처음으로 진정으로 꺾이는 것은 두려움을 무릅쓰고 끝을 맺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던 것 같다. 끝이라는 건 내가 애써 맺지 않아도 운명처럼 그 타이밍을 알려주게 된다. 이제 그만 끝을 내어야 한다는 신호가, 그다음으로 향해야 한다는 기한은 정해두지 않더라도 몸으로, 마음으로 알게 된다. 중요한 건 끝을 마주했을 때 손을 들고, 그다음을 기꺼이 마주할 줄 아는 용기를 지니는 것이라는 걸, 중요한 건 꺾이는 마음이란 걸 그 무렵 알게 되었다. 회사에서 퇴사를 생각한 것은 더 크게 나아가기 위해서였다. 결국 나는 꺾이기 위해 내 스스로를 부러뜨러야만 했다. 무엇도 정답이 없기에 A안이든, B안이든 다음으로 향하기 위해 지금 단계의 끝을 택하기.
퇴사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내가 지냈던 쉐어하우스에도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건물주의 명령으로 집 전체를 비워주어야 하는 위기가 왔기 때문이었다. 하우스매니저 역시 갑작스런 통보에 다른 공간을 알아보면서도 속상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다음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새로운 공간에 대한 기대도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지금 지내고 있는 공간과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졌다. 하나둘 룸메이트들이 떠나기 시작했다. 큰 집에는 어느새 내 목소리가 울릴 만큼 큰 공허함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사를 했다. 새로운 집은 원래 살던 곳에서 동네도 멀리 떨어져 있던 데다 소수인원이 함께 사는 아파트였다. 그곳은 시설은 더 좋았지만 대체로 무료했다.
그때 나는 상실감을 크게 느끼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이후로도 무수히 많은 끝을 마주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끝은 더 빠른 속도로 찾아왔고, 내 인생을 설계해나가는 데 있어 빠른 결정과 판단을 요구했다. 여전히 나는 내 앞으로 놓인 수많은 갈래 속에 끝이 보이는 일들을 가늠하고 있다. 그것은 끝과 동시에 새로운 시작일 수 있고, 딱 거기까지였을 끝일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래서 삶을 계속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끝을 내야만 나를 더 성장시킬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중요한 건 꺾이는 마음. 이제 나는 정체되어 있다고 느낄 때마다 끝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오래전 쉐어하우스를 떠날 때처럼, 무엇을 떠나고 또 떠날 때처럼. 아마 떠나는 일이야 말로 끝이 없는 탐험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