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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치 Jan 23. 2019

Call me by your name

뜨거운 여름밤은 지나가고 남은건 볼품 없지만

1. 배경지

 1980년대 이탈리아 북부를 배경으로 영화는 이루어진다. 헤어, 옷, 신발, 담배까지 그 시대를 반영할만한 아이템들은 모두 담겨져있다. 실제 1980년대 이탈리아 사진들과 이 영화를 비교해보면 색감이나 질감까지도 모두 비슷하다. 그래서인지 시간여행을 하는 느낌도 주었다. 내가 가보지 못한 그 시간과 장소에 초대받은 기분이었다. 이 영화를 한 번더 보고싶은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이다. 더 깊게 여행하고 싶다.        


   

2. 사운드트랙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대부분 피아노 연주곡이다. 오프닝부터 클로징까지 귀 기울일 수 밖에 없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음악은 ‘M.a.y in the Backyard’. 올리버를 바라보는 엘리오의 순수한 마음과 가장 닮아있다. 이 마음이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인지 아닌지 혼란스러운 그런 귀여운 순간들이 있다. 그 순간을 대변한 듯한 곡이다. 만일 이탈리아 북부를 가게 된다면 이 음악부터 들어야겠다.      



3. 고백     


 비가 장대같이 쏟아지고 정전까지 되어버린 어느 날, 엄마는 아빠와 엘리오에게 책 한권을 읽어준다. 한 공주와 기사의 사랑 이야기. 서로 사랑하고 있었고, 서로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기사는 공주에게 묻는다. “말하는게 나을까요 죽는게 나을까요?” 엘리오는 그 말을 듣자 “저는 그런 질문할 용기가 없을 것 같아요.” 라고 한다. 아빠는 그런 엘리오를 지긋이 바라보며 “아닐거다. 언제든 우리에게 얘기해도 되는거 알지?” 라고 한다.       

 엘리오의 여린 마음이 여기서 드러난다. 대답도 아닌 그런 질문의 시도조차 할 수 없을 것 같다며. 나도 지금이야 여러 사랑을 거치고 보니 차라리 말하고 죽겠어! 라는 심정이지만 처음 사랑을 할때를 떠올려보면 나도 엘리오의 마음이었던 것 같다. 내 마음을 내 입 밖으로 꺼낸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말하는게 나을까 죽는게 나을까. 많은 사람들이 안하고 후회할 바엔, 차라리 말하고 후회하라고 한다. 말하는 게 낫다. 당장 후회가 밀려오더라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그때 말하길 잘했다며 언제 불안했냐는 듯 평화롭다. 다만 그 타이밍엔 정답이 없기에, 말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언제’ 말하느냐가 늘 난제이다. 한 지인의 말이 생각난다. 지금의 아내에게 고백을 했었던 이유는 말하지 않으면 내 마음이 터져버릴 것 같아서였다고 한다. 그 말이 저 책 속의 질문에 답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네 마음이 터져버릴 것 같을 때 말하는게 낫겠어.    


           

4. “아셨으면 해서요”      


 올리버와 엘리오가 자전거를 끌고 마을로 갔다. 올리버는 엘리오가 유창한 지식을 뽐내자 넌 모르는게 없구나 라며 칭찬한다. 엘리오는 자신은 정작 중요한 걸 모른다며, 그 중요한게 너도 뭔지 알지 않냐며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올리버는 묻는다. 왜 이런 이야길 하냐고. 엘리오는 중얼거리며 몇 번이고 대답한다. “아셨으면 해서요.”


 남몰래 누군가를 사랑할 때, 숨기고만 싶지 않다. 하나씩 아주 조금씩 흘리면서 상대방 혹은 상대방에게 내 마음을 전달할 수호천사 같은 존재에게 들키고 싶다. 엘리오는 터져버릴 것 같은 마음을 중얼거림으로 표출했다. 혼자하는 사랑은 힘들다. 말 그대로 모든 감정들을 홀로 마주하고 버텨내야하니까. 그렇기에 더 들키고 싶은 것이다. 차라리 실수인척 내 마음을 네가 알아버려서 무슨 말이라도 듣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날 좋아한다는 것은 기적이라고 칭할 정도로 사랑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고통이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이 장면의 연출 또한 기억에 남는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후반부에서 개울 건너편에 있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다 전달하자 개울 끝에서 두 사람은 포옹한다. 둘 사이의 거리감이 없어진 것이다. 이 장면 또한 앞서 말한 연출과 유사했다. 엘리오의 고백으로 두 사람이 가까워진 것은 아니지만, 울타리에 둘러싸인 정원을 두고 따로 걸어가며 대화를 하는 장면은 지금 서로에게 얼마나 조심스러워하고 있는지에 대해, 함부로 다가갈 수는 없는 거리감에 대해 표현했다고 생각했다.           



5. 여긴 제 영역이에요     


 마을 깊숙이 위치한 작은 개울에 도착한 엘리오와 올리버. 그 곳은 엘리오 자신만의 공간이었다. “여긴 제 자리에요” 라며 온전히 홀로 보냈던 공간을 소개한다. 올리버는 그 곳에 함께 들어간다. 물장난을 치며 한참을 웃는다. 엘리오는 중얼거림으로 마음을 표현했고 올리버는 엘리오의 공간에 발을 담그며 작게나마 한걸음 다가갔다고 느껴졌다. 사랑한다는 것은, 나 혼자만 쓰던 공간, 시간에 그 사람을 초대하는 것이다. 너는 마음껏 이 공간에 들어와도 괜찮다며 한도 없는 초대장을 내민 것이다. 그 초대를 올리버는 조심스레 받아들였던것이 아닐까.           

6. 조각상을 닮은 엘리오     


엘리오의 아빠 팔먼교수와 올리버가 프락시텔레스의 조각품들을 보며 대화를 나눈다. 팔먼교수는 조각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늘어놓으며 “마치 자신을 갈망해보라고 부추기는 것 같죠” 라고 한다. 조각품과 엘리오는 무척이나 닮았다. 올리버는 생각이 많아진 듯 했다. 엘리오가 그의 옆에서 나를 갈망 좀 해보라며 외치는 듯한 기분과 동시에 작품에게만 집중하지 못했을 것이다.      


     

7. call me by your name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후 사랑을 나눈 엘리오와 올리버. 올리버는 서로에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고 한다. 마치 그들만의 애칭처럼. 자신의 이름으로 상대방을 부른다는 것의 의미는 “나를 사랑하는 만큼 너를 사랑해” 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반대로 “너를 사랑하는만큼 나를 사랑해줘” 라는 뜻도 되겠지. 욕심 많은 나는 뒷말이 더 와닿는다.       


   

8. 과일


 홀로 방안에 있던 엘리오는 복숭아로 자신의 성적욕망을 푼다. 이후에 올리버는 이를 알게 되었고 부끄러움에 괴로워하는 엘리오를 바라보며 그 복숭아를 한입에 베어 먹어버린다. 영화 전반적으로 과일, 특히 살구는 자주 등장한다. 첫사랑은 달콤하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어서였을까. 오반의 <과일> 이라는 노래도 생각난다.


 엘리오의 복숭아 씬은 원래 삭제하려고 했던 장면이라고 한다. 원작인 소설로 그 장면을 읽어내니 배우에게 꽤나 부담이 될만하다.           




9. 마르치아    

 

 가장 안타까웠던 캐릭터이다. 엘리오가 혼란의 감정을 느낄 때, 옆에 있어주며 사랑을 나누던 여자친구였다. 마르치아는 엘리오를 꽤나 오랫동안 좋아한 듯 했다. 엘리오가 데이트 신청을 하자 에쁜 원피스를 입고 설레는 표정을 감추지 않은채 나타났다. 아마 그 날의 데이트를 위해 열심히 공들인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는 것은 기적이니까. 그 기적을 만끽했을 것이다. 하지만 엘리오는 올리버의 곁으로 가고 마르치아는 나는 네 여자친구가 맞냐며 상처받고 돌아선다. 영화 후반부엔 우연히 마주한 엘리오에게 악수를 청한다. 평생 우정을 지켜나가자고. 대단한 인내심이다.     


 내가 마르치아였다면 벌써 노발대발하며 한바탕 난리가 났을 것이다. 상처받았을 때 대응하는 것에 정답은 없지만 확실한건 마르치아의 악수는 멋있다. 마르치아가 그에게 화를 냈어도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냥 진심어린 사과만 돌아왔을 것이다. 그녀는 그걸 알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영화에서는 마르치아의 감정을 담아내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홀로 이 상황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고통의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그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으로 결론을 낸 듯하다. 마르치아가 엘리오를 사랑했음과 동시에 그가 정말 소중하기에 우정 또한 선택했다.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으려는 것, 마르치아가 유일하게 고집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10.  아빠가 엘리오에게     

 

 “가장 예상치 못할 때 본성은 교활한 방식으로 우리의 약점을 찾는단다. 아빠가 여기 있다는 거 기억해

지금은 아무 감정도 느끼고 싶지 않을 수도 있어. 평생 느끼지 않고 싶을지도 몰라. 어쩌면 이런 이야기를 내게 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지만 네가 분명히 느꼈던 것을 느껴라. 아름다운 우정 나눴잖니. 어쩌면 우정 이상이었는지도.. 난 네가 부럽다. 내 위치에 있는 부모 대부분은 이런 일이 없길 바라겠지. 아들이 난관을 극복하길 바라며 기도했을 거야. 하지만 난 그런 부모가 아니야. 우린 빨리 치유되려고 자신을 너무 많이 망쳐. 그러다가 30살쯤 되면 파산하는 거지. 그러면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줄 것이 점점 줄어든단다. 하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고 아무것도 느끼지 않게 만들다니.. 그런 낭비가 어디 있니? 어떤 삶을 살든 그건 네 마음이다. 다만 이것만 기억해. 우리 몸과 마음은 단 한 번만 주어진 것이고 너도 모르는 사이 마음이 닳고 닳게 된다는 걸. 지금은 슬픔과 아픔이 있어. 그걸 없애지 마라 네가 느꼈던 기쁨도 말이야.“          


 누군가 힘들어할 때 위로를 해줘야한다면, 그리고 내가 위로가 받고 싶을때면 엘리오 아빠의 대사가 생각 날 것 같다. 그리고 딱 지금 내가 듣고싶었던 말들이 대사 속에 모두 담아져있다, 지금 이 감정을 소중히 느껴보라고. 억지로 떨쳐내지 말고 마주하라고.      


 영화 속 엘리오 부모님은 존경스럽다. 아들의 성적취향을 해서가 아니다. 아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지켜봐주기 때문이다. 많은 부모들이 자식을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려고 하고 자녀들은 그게 싫어 발버둥친다. 한 핏줄로 연결이 되어있어도 우린 모두 다른다. 각기 다른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부모, 친구, 연인 등 모든 인간관계에서 필연적으로 존재해야하는 것은 ‘존중’이다.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상대방으로 하루라도 살아보고 싶을만큼 이해가 가질 않아 지치기도 한다. 바로 이때 어렵게 형성되고 있는 것은 존중인 것 같다. ‘너는 나와 다른 점을 가진 사람인거야.’ 나와 다른 상대를 받아들이는 시간을 지나다보면 존중이 형성되고 이전보다 더 성숙한 관계가 되어있지 않을까. 알면서도 참 어려운 시간들.           



11. 사랑해도 괜찮아     


 영화는 나에게 사랑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 했다. 그 사랑이 어떤 형태이던지 상관없이 그저 사랑하고 아파하라며 격려해준다. 영화는 해피엔딩도 아니고 사랑해서 행복한 모습만을 담지 않는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사랑받을때의 모습들을 투명하게 보여준다. 누구나 사랑에 울고 웃는 것이니 마음껏 사랑하세요.    


      

12. 엘리오가 올리버에게


 올리버. 처음엔 당신이 나를 싫어하는 줄 알았어요. 당신을 볼때면 자꾸만 기분이 이상해지는데 나만 이런 것 같아 너무 미웠어요. 그런데 나에게 기적이 일어나더군요. 당신도 날 좋아한다니. 내겐 너무 완벽한 당신이여서 참 과분하지만 그래도 자꾸 나를 보여주고 싶어요. 철없는 모습도, 어린아이다운 모습도 다 보여주고 싶어요. 이게 나란 사람이고, 이런 나를 사랑하는 만큼 당신을 사랑하니까요. 처음 느껴보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차근차근 함께 걸어가줘서 고마워요. 우린 더 이상 이루어질 수도, 어쩌면 마주할 수도 없겠지요. 당신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모닥불 앞에 앉아 얼마나 한참을 울었는지 몰라요. 그만큼 제가 당신을 사랑했다는 증거이겠지요. 지난 여름, 나에게 사랑을 알려주어 고마워요. 앞으로 어떤 사랑을 하던, 저답게 할게요.         


 

13. 올리버가 엘리오에게


 엘리오. 네가 용기 있게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다면 우린 사랑할 수 없었고 오랫동안 후회했을거야. 나에게 용기를 내주어 고맙다. 당당하고 솔직하게 사랑하는 네가 참 좋았어. 때로는 동생같기도 어른스럽기도 했어. 너를 만나는 날들 모두 동화처럼 맑았어. 우리가 같이 수영했던 그곳의 물처럼.

 엘리오 아니 올리버. 이렇게 떠나버려 미안해. 그리고 혼자 울게해서 미안해. 단 한 순간도 잊지 않을게. 프락시텔레스의 작픔을 닮은 네가 어딜가나 존중받고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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