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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치 Jan 08. 2020

 「명사」 아무런 관계가 없거나 관계를 끊은 사람.




영화 <도쿄 오아시스>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영화가 끝나고 관객들이 하나둘씩 나온다. 그때 한 할머니가 극장 뒤편 휴게실로 향한다. 이상함을 느낀 여자 직원은 뒤따라가, 할머니의 말에 귀 기울인다. 할머니는 어떤 사람과 둘이 나란히 앉아서 영화를 봤는데 객석에 불이 켜지자 그 사람이 사라졌다고 여자 직원에게 말했다.


여자 직원은 그 사람은 원래 할머니와 모르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전혀 모르지만, 우연히 옆에 앉은 사람. 하지만 할머니는 영화 내내 그 사람이 ‘남’이 아니었다. 나란히 앉아 같은 극장에서 같은 영화를 본 아는 사이로 여겼다. 할머니의 자세한 사정은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할머니는 왜 모르는 사람을 아는 사람으로 취급했을까. 할머니에겐 고독이 있었을 것이다. 지인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이 떠나가거나, 마음이 불편해지는 고독. 내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운 순간들. 진짜 나를 보여주기 두려운 순간들.


 이 고독은 비단 할머니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여도 내 이야기가 입가에 머물 때가 있다. 상처받았던 이야기마저 쿨한 척 넘겨버린다. 그렇게 스스로 고독을 만들고 뱉어내지 못한 말들로 인해 탈이 나곤 했다. 그럴 땐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남에게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진다. 이 이야기가 다시 곱씹어지지 않게 넘겨버릴 수 있는 남이 필요해진다. 영화 속 할머니도 그렇지 않았을까. 같은 영화를 함께 본 그 사람의 존재가 마음 한구석을 채워버려서 그의 존재를 찾아 헤맸던 게 아닐까.


 고독 속에 살아가는 우리. 가끔은 한 발자국 물러서 남이 되어 서로의 마음을 채워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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