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두 앞에서 산책을
오사카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시작한 지 한 달쯤, 한국에 있는 친구가 후쿠오카로 여행을 가자고 했다. ‘살고 있는 척 여행’을 벼르고 있던 나는 친구와 일박을 하고, 이틀 동안은 혼자 여행을 했다(친구는 다른 친구들과 여행을 했다). 아무래도 첫 혼자 여행이다 보니 처음부터 홀로 있는 것보다는 일단 누군가와 하루 있어 보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오사카 하면 도톤보리(道頓堀)와 우메다(梅田)가 유명하듯이, 후쿠오카 하면 보통 하카타(博多)와 텐진(天神)이다. 하카타역은 공항선의 종착역으로, 여행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곳이다. 텐진은 지하상가만 해도 하루 종일 구경할 수 있을 정도로 상가와 음식점이 즐비한 번화가이다. 다이묘 거리에는 다양한 편집숍과 힙한 카페들이 가득하고 저녁이 되면 놀러 나온 젊은이(?)들이 거리를 채운다.
하지만 내가 좀 더 낭만적으로 생각하는 곳은 하카타다. 라멘의 본고장 하카타. 하카타에는 강이 흐른다. 밤에는 일렁이는 강물에 건물의 네온사인이 비치고, 강가에 앉은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젊은 사람들은 보드를 타며 퍼포먼스를 한다. 그 풍경만으로 이미 낭만적이지만, 내가 처음으로 여행지에서 혼자 거닐던 늦은 오후의 시간이 떠올라서 나에게는 더 애틋한 도시인 것 같다.
점심을 샌드위치로 때우며 고양이 섬에 다녀온 나는 저녁을 먹으러 부두 쪽에 있는 완간시장을 찾아갔다. 싱싱한 수산물을 파는 실내 시장인데, 입구의 입간판에 <초밥 한 개 97엔. 가서 한번 먹어보세요 정말 맛있어요>라고 한국말로 쓰여 있어서 혼자 웃었다. 그 말대로, 완간시장에는 초밥을 개당 97엔(약 천 원)에 자기 맘대로 팩에 골라 담아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다!
그저 싼 맛에 많이 먹으러 간 초밥은, 예상치 못하게 내 인생 초밥이 되어버렸다. 이게 부두 앞 수산시장의 클래스인 걸까? 엄청난 감칠맛에 초밥이 하나하나 사라져 갈 때마다 아쉬울 정도였다. 추가로 시킨 새우튀김은 달콤바삭하고 된장국에는 생선이 푸짐하게 들어있었다. 당시 썼던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후쿠오카를 꼭 가야 한다면 여기가 그 이유 중 하나라 할 수 있을 듯.'
맛있는 식사, 그 역시 중요한 낭만 포인트이다.
행복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와 보니 해가 질 무렵이었다. 마침 부두 근처에는 작은 공원이 있어, 벤치에 앉아서 노을을 구경하기로 했다.
넓은 하늘과 바다가 주홍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진한 색의 노을이 정말 감격스러웠다. 내가 사는 동네는 높은 산이 있어, 한 달 동안 노을을 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기 때문에. 떨어지는 해와 반짝이는 바닷물을 한없이 멍하니 바라보았다. 난 주황색을 싫어하는데 노을의 색은 왜 이리 아름다운 걸까. 조용한 공기 사이로 끊임없이 지나가는 비행기 소리와 잔잔한 물소리가 여행 중에 어지럽던 내 마음을 가라앉히는 듯했다.
외국인 부부가 산책을 하고, 남자 두 명은 낚시를 하고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계속 비행기가 지나갔다.
그 모든 장면이 하카타의 낭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해가 점점 사라져 가면서 맞은편에서는 달이 떴다. 주황색, 분홍색, 보라색 하늘을 맘껏 구경한 나는 바로 앞의 온천에 들렀다. 물이 그다지 뜨겁지 않아 좀 아쉽긴 했지만, 온천에 오는 이유는 탕에서 나와서의 뽀송함을 즐기기 위해서, 그리고 병에 든 커피우유(중요)를 꿀떡꿀떡 마시기 위함이니까.
상쾌한 기분으로 강가를 걸었다. 이어폰을 끼고 좋아하는 노래를 대놓고 흥얼거렸다. 지나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이따금씩 저녁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을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맞아, 이런 여행이 하고 싶었어!'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마치 열 번은 더 이 길을 걸어 본 사람처럼, 익숙하게 걸어가는 것. 이 곳에 산다면 어떤 일상을 보낼지 상상해보는 것. 나의 '살고 있는 척 여행'은 시작된 것이다.
게스트하우스 언니가 현지인도 줄 서 먹는다며 추천해 준 라멘집에서 돈코츠 라멘을 먹으며, 꽤 만족스러운 혼자 여행 첫 날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