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초점을 맞추며

소란을 끄고 본질을 담는 일

by 오래 사랑하는 일

오랫동안 덮어두었던 브런치 서랍을 엽니다. 그리고 새로 산 가죽 다이어리의 첫 장을 넘깁니다. 빳빳한 종이의 질감과 은은한 가죽 향이 기분 좋게 번집니다.


이 빈 페이지를 마주하기까지, 지난 한 해 제 마음속에는 유난히도 거친 비바람이 지나갔습니다.


"나의 지난 시간은 어디로 흘러간 걸까."


사회복지사로서, 그리고 홍보 담당자로서 현장의 이야기를 전하며 15년을 달려왔습니다. 진심 하나면 통할 거라 믿었던 제게, 지난여름은 유난히 가혹했습니다. 조직의 논리 앞에서 나의 노력은 부정당하는 것 같았고, 믿었던 관계에서 오는 서운함은 뾰족한 가시가 되어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도망치고 싶은 순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도망치는 대신 제 자리를 지키는 것을 택했습니다. 그것은 오기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15년 동안 쌓아온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저 스스로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참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제 손이 자꾸만 향하는 건, 매번 렌즈를 돌려 수동으로 초점을 맞춰야 하는 그 불편한 카메라니까요.


알아서 척척 찍어주는 자동 기능은 분명 편하지만, 너무 쉽게 얻어진 결과물에는 어쩐지 마음이 머물지 않습니다.


숨을 멈추고 뷰파인더 속 흐릿한 상이 선명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그 더딘 시간. 그 불편함을 감수할 때 비로소 피사체와 온전히 마주하게 됩니다. 사는 것도 그런 것 같습니다. 편하고 쉬운 길보다는, 조금 느리더라도 내 손으로 직접 초점을 맞추며 가는 길에 더 깊은 애정이 깃든다는 것을요.


그래서 저는 오늘 다시, 초점을 맞추며 그 불편한 카메라를 고쳐 듭니다.


신경숙 작가의 문장을 빌려, 저의 다짐을 적어봅니다.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사진을 찍고 싶은 건 누구나의 꿈이지요. 제 꿈도 그 근처에 머물고 있습니다."


저의 지난 시간도 그랬습니다. 누군가의 가슴에 잊히지 않을 희망을 심기 위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왔습니다. 비록 폭풍우가 지나간 자리라 할지라도, 그곳에 다시 진심을 심고 싶습니다.


나의 좌우명은 여전히 "진심, 마음을 다해"입니다. 화려한 기교보다 투박하더라도 꾹꾹 눌러 담은 진심이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 새로운 다이어리의 빈 줄을 채워나갈 날들은 누군가에게 증명하기 위한 날들이 아니라 온전히 나를 위한 날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폭풍우는 지나갔고, 제 꿈은 여전히 그 진심 근처에 머물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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