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서
제목만 써두고 업로드하지 않은 몇 편의 글을 두고, 짤막하게 오늘의 감상을 적을까 한다.
오늘 두 달만인가. 라디오 녹음을 했다. 여행기자로 일하는 동안 우연한 기회로 라디오 출연을 시작했는데, 그게 이어져 3개의 방송국에 정기적, 비정기적으로 라디오 출연을 했다. 한 프로그램은 없어졌고, 한 프로그램은 퇴사하며 후배들에게 넘기고 왔다. 넘긴 프로그램은 전화연결로 하는 프로라서, 요즘은 돌아가며 후배들이 소개한다고 한다. 마지막 한 프로가 오늘 녹음한 프로다. 디제이도, 피디도 바뀌었는데 어찌어찌 나는 출연 중인 프로다.
보통 여름휴가 때 떠나기 좋은 여행지, 추석 연휴 동안 떠나면 좋을 여행지를 추천하고 지난번엔 구정 연휴 때 가보면 좋을 곳을 추천했고 오늘은 봄 나들이 가기 좋은 길들을 소개했다. 작년 걸었던 길 중 꽃구경하기 좋은 곳들을 소개했는데, 디제이 분께서 또 다른 여행 계획을 물어보았다.
여행 계획이 지금은 딱히 없었는데, 어찌어찌하다 보니 곧 다른 매체에 들어갈 것 같아 그전에 여행을 다녀올까 고민 중이긴 하다.
하지만 여행을 다녀오는 것도 일이라, 잔뜩 피곤한 느낌을 안고 이직하는 것도 좀 그렇지 않나 싶기도 하고, 주어진 기간이 그리 길진 않아서 선뜻 떠나야겠다는 결심이 안 선달까.
그런데도 어딜 가지 않으면 좀 ‘아깝다’라는 생각이 든다. 이 정도로 시간이 비는 경우는 사실 많지 않고, 또 어차피 어딜 안 가봐야 뭘 하겠는가. 집에서 빈둥빈둥 누워만 있겠지.
어쩌면 그런 식으로 우리 대부분은 감흥 없이 여행을 떠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내게 주어진 시간을 쓸 줄 몰라서.
뭔가 엄청난 건 생각나지 않고, 자기 계발을 하긴 귀찮고, 공부도 싫고, 취미에 그 며칠을 다 쏟아 붓기도 이상하고. 차라리 여행이나 다녀오면 여행을 다녀온 게 되니까(? 말이 좀 이상하지만 어쩐지 시간을 알차게 쓴 것까진 아니어도 뭐라도 했다는 확실한 결과물이 남는 것 같달까. (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이라고 말하는 건 이런 연장선상일까?)
나는 어떻게 시간을 써야 할지 몰라서 그간 여행을 갔던 걸까? 어떤 의무감 같은 걸로 피곤한 몸을 이끌고 뭐라도 하나 더 보고 와야겠다 생각했었나?
하지만 과거보다 미래를 생각하니 더 슬퍼졌다. 딱히 할 건 없고, 시간은 비고. 그럴 때 이것도 저것도 ‘할 게 없어서’ 여행을 간다는 게. 이러니 어떤 여행지를 가도 감흥이 덜할 수밖에 없었나 싶기도 하고 동시에 여행을 간다고 해도 그저 놀고 뒹굴고 그런 건데 집에 있는 것보단 ‘그래도’ 낫다고 생각하는 우위 개념이 있었던 건가 싶어 그것도 웃겼다. 대체 뭐가 나은 건지도 모르면서 그냥 하는 건 싫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여행도 그렇게 떠나고 있었구나.
여행 말고 나는 이제 좀 다른 것들도 하며 시간을 보내 보고 싶어 졌다. 그런데 그게 뭔지 몰라서, 또 여행을 갈 것만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