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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름 Feb 21. 2024

그래도 세모는 포옹을 좋아해

세모는 모난 내 마음이에요.


세모는 대체로 화가 났거나 못마땅한 모습이라 다가가기 무서웠다. 세모야 하고 불렀을 때 왜- 하고 퉁명스럽게 답해주면 다행인 편에 속했다. 세모는 대답보단 삐쭉이는 입을 하고 미간엔 잔뜩 힘이 들어간 날 선 모습으로 빤히 바라보기만 했었으니까. 그런 세모가 자주 하는 말은 ‘귀찮아, 짜증나, 싫어, 별로야’ 이 네 가지였다. 곁에서 가만히 세모의 말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복잡했다. 세모의 부정이 내게도 옮았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세모가 좋았다. 괜히 신경 쓰이고 한 번 더 시선이 갔다.


툴툴거리는 목소리는 작아서 세모의 말을 들으려면 가까이 다가가 집중해야 한다. 옆에 딱 붙어 들어본 사람들은 안다. 세모의 목소리에는 늘 울음이 걸려 있다는 걸.


세모의 머릿속은 조용할 날이 없다. 조그만 머리에 무슨 생각이 그리도 많은지. 무수한 걱정과 고민으로 엉킨 생각은 늘 세모의 머릿속을 뱅글뱅글 돌고 돈다. 생각을 견디는 것이 버거운 날이면 세모는 도망치듯 잠에 들었다. 잘 자라고 인사할 틈도 없이 잠 속으로 사라졌다. 세모가 잠들면 침대는 바닷속으로 잠기기 시작한다. 세모는 물에 가라앉으면서도 눈을 뜨지 않는다. 세모가 침대와 함께 사라지면 나는 조그마한 배를 타고 세모가 있었던 곳으로 향한다. 뱅글뱅글. 세모가 다시 위쪽으로 올라올 때까지 주위를 서성인다. 그러다 세모의 침대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 그제야 세모의 침대로 뛰어든다. 숨도 안 차는지 여전히 잠든 세모를 흔들어 깨운다. 눈을 찌푸리며 일어나자마자 왜 깨웠냐고 툴툴거리는 목소리엔 물기가 없다. 잠수를 끝낸 직후는 세모의 목소리가 유일하게 건조한 순간이다. 세모는 몰래 울고 오려고 바닷속으로 잠드는 것 같았다. 아는 척을 하면 세모가 부끄러울 테니 나는 모르는 척, 인사를 건넨다.


좋은 아침!


세모는 세모라서 뾰족했다. 처음 만난 날, 아무것도 모르고 세모의 손을 잡았던 날, 세모에게 찔린 손은 결국 피가 났다. 그날 세모는 온종일 화를 냈다. 따끔거리는 손가락에 맺힌 핏방울을 닦고 밴드를 붙이는 동안 세모는 그럴 줄 알았다며 꼴좋다며 미운 말만 골라했다. 그땐 세모가 좀 미웠다. 따끔거리는 손바닥도 서러운데 손 잡고 싶던 내 맘을 몰라주는 세모가 미워 더 서럽고 속상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그땐 세모는 상처를 받았던 것 같다. 뾰족한 감촉에 나는 놀라서 세모의 손을 뿌리치듯 놓았다. 어쩌면 찌른 건 나고 찔린 건 세모일지도 모른다. 밴드가 사라진 곳에 남은 흉터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세모는 내 손을 자주 확인했으니까.



지금은 세모의 손을 잡아도 피가 나지 않는다. 세모는 겁쟁이지만 강하다. 몸을 부풀리고 뾰족한 모서리를 날을 세워 찌르면 무적이다. 누구든 이길 것 같던 세모의 모서리가 언제부터 닳기 시작했을까? 언제부터 세모와 포옹을 할 수 있게 됐을까?


그런 물음도 잠시, 다가오는 세모의 그림자에 웃으며 고개를 든다. 앞에 서 있는 세모는 여전히 귀찮아. 짜증나. 싫어. 별로야. 툴툴툴. 못 들은 척 세모의 손을 잡는다. 세모는 못 이기는 척 가만히 있는다. 여전히 솔직하지 못한 세모다. 이번에는 세모를 꼭 안아준다. 뾰족이 찌르는 곳이 없다. 세모는 세모인데 마주 안아도 아프지 않다.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결국 묻는다. 세모야, 뾰족이 세모는 어디로 갔어?


내 물음에 세모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한다. 못 본 척 다시 뾰족이는 어디로 가고 둥글이가 남아있냐고 놀리듯 말하자, 세모는 안고 있던 나를 밀쳐냈다. 아이, 세모야. 장난이야 장난. 토라지기 전에 얼른 세모를 달래려는데 세모가 입을 열었다.


똑바로 봐.


제법 진지한 목소리에 세모를 마주 봤다. 그러자 세모는 모자를 벗고 손에 있던 장갑도 벗는다.



세모는 여전히 뾰족했다. 그런데 언제부터 쟤가 모자를 쓰고 있었지? 장갑은 또 언제부터 끼고 있었지? 늘 세모 곁에 있었는데 왜 몰랐지. 미간을 찌푸리며 열심히 기억을 되감아봐도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세모야, 세모는 늘 세모였구나.


세모는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 나를 한번 흘겨보더니 다시 모자를 쓰고 장갑을 꼈다. 뾰로통한 표정으로 서 있는 세모를 그대로 안는다. 세모를 껴안아도 아프지 않고 세모의 손을 잡아도 아프지 않다. 세모는 여전히 세모다. 오늘도 세모고 내일도 세모고 앞으로도 쭉 세모일 테지만, 모자를 쓰고 장갑을 낀다. 여름에도 털이 폭신폭실한 모자와 장갑을 낀 세모일 테지. 나는 망설임 없이 세모를 안고, 세모의 손을 잡고 걷는다.


세모는 세모다.

뾰족하고 뾰족하다.


그래도,

세모는 포옹을 좋아해.


그래서 세모는 모자를 쓰고 장갑을 꼈다.

멋쟁이 세모.

내 친구 세모는 멋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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