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었더니 절반을 가더라고요

침묵으로 버는 직장인의 기술

by 유영

가만히 있으면, 정말 절반은 간다.

아니, 가끔은 가만히 있는데 전부 갈 때도 있다. (정말이다. 하하.)


지난주엔 ‘같은 말이라도 어떻게 하느냐’에 대해 썼다.

그건 말할 필요가 있는 경우였고, 이번엔 아예 말을 꺼내지 않는 선택에 대해 고찰해보려 한다.

그렇다. 말하지 않음에도 힘이 있다. 심지어 강하다.




나는 내향형과 외향형의 경계를 오가는 사람이다.
사회초년생 시절엔 정말 밝은 외향형이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안녕하세요!”를 먼저 건네고, 퇴근 후에도 약속을 잡아 신나게 떠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에너지를 과소비했을까.


그 무렵 상사와 연이 닿았다.
이직을 준비하던 나에게, 당시 남자친구였던(사회생활 고수인, 지금의 남편)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다음 직장에선 말을 줄여봐. 훨씬 편해질 거야.”


‘말을 줄이는데 왜 편해?’
이해가 안 됐지만, 수용성이 좋은 나는 일단 시도했다.
인간이란 모름지기, 말로만 들어선 모른다.

해보고, 부딪히고, 아차 싶은 경험까지 해야 비로소 알게 되는 법.

새 직장에서 사람들과 빨리 친해져야 한다는 조바심이 들었지만 꾹 눌렀다.
그러다 문득, ‘이 압박감은 내가 만든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맞다. 우리는 친목회 하러 온 게 아니라, 일하러 온 거다.

필요한 말만 하자, 나의 세상은 고요해졌다.
말은 한 번 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기에, 내가 뱉은 말에 놀라고, 당황해서 수습하려고 덧붙이다 보면 오히려 또 이상한 말이 튀어나온다.

밤에 문득 누워서 떠오르는, 지우고 싶어도 지워지지 않아 괴로운 기억에 이불킥 하던 날들이 많았다.
말을 줄이니, 그러한 밤들이 줄었다.

(아무렴, 이불은 다소곳이 덮어야 제 역할을 다하기 마련이다.)




물론 나는 여전히 관계 맺기를 좋아한다.
말을 줄이니, 많이 말하는 대신, 많이 듣게 되었다.


소통은 쌍방의 교감이 중요하니까, 나는 리액션을 열심히 했다.
깔깔, 아 진짜 재밌네요., 아 진짜요?, 정말요?, 몰랐어요., 우와~, 아니 왜 그런데요.
이 정도면 충분하다. 정말로 충분했다.

들은 이야기는 잘 묻어두었다.

말을 줄여가니, 저절로 묻어두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믿음직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입을 닫을수록 귀로 들어오는 말이 늘어났다.

누군가에겐 대나무숲, 누군가에겐 상담사가 되며 그들의 이야기가 내 삶에 비료가 되어 스며들었다.

말수를 줄이자 일에 집중도 더 잘 되었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나를 ‘진중하고 묵묵하게 일하는 성실한 사람’이라고 했다.
“엥?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

나는 진심을 다해 손사래를 쳤다. 정말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이미 씌워진 프레임은 내가 벗기고 싶다고 벗겨지지 않더라.

잘됐지, 뭐.




나는 그저 가만히 있었다.


비가 오고, 구름이 끼고, 해가 뜨고
여름이 지나고, 가을과 겨울이 지나며
나는 그대로 있었는데, 절반 이상은 가 있었다.
사람들이 밀어주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떠밀려 가면서.

물론 가만히 있는 게 마냥 쉬운 건 아니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칠 때,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꽤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는 ‘후회할 일을 덜 만드는 것’이 최선이라는 걸 깨달았다.

가끔은 ‘어떻게 대하지?’ 고민하는 사이, 상대가 먼저 물러나기도 했다.

할 말을 고르느라 생긴, 내가 의도하지 않은 침묵이었는데. 오예.


그게 침묵이 주는 무게였다.
무언이 흩어지는 말과 문장을 이기는 순간이었다.


내 무게는 내가 만들어 가는 거였다.
이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지금이 훨씬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