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드는 나
"안됩니다."
그리고
"안 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결론은 똑같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의 기분은 180도로 달라진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이 왔다 갔다 하고,
발이 없음에도 말은 천리만리를 가며,
오는 말이 고우면 보통 가는 말도 곱게 나간다.
말 한마디가 가진 힘에 대해서는 굳이 나 같은 애송이가 말하지 않아도 이미 인류 사회의 역사와 함께한 수많은 속담과 의무 교육과정을 통해 모두가 알고 있다.
없으면 살 수 없지만, 있는 것이 너무 당연해서 평소 그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는 산소처럼.
몇 년 전, 새로운 상사분이 우리 사무실로 발령받아 오셨다.
첫 출근 전부터 그분에 대한 무시무시한 소문이 일파만파 퍼졌다.
몇십 년 전, 그 시절엔 당연했을(사실은 아직도 잔존하는) 여성 차별에 대한 유리천장을 뚫고, 여기 오기까지 얼마나 험난한 시간을 이겨내셨을지 상상해 보면 대단하다는 감탄 밖에는 할 수 없는, 그래서 조금은 이해되기도 했던 불같은 분.
어쨌든, 그분에게 찍히면 끝장이라고 했다.
그분과 나 사이에는 무수한 세월과 사람들이 끼어있으므로 직접 닿을 일이 얼마나 있겠냐 싶었고, 나는 그냥 늘 그냥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는 파티션 같은 존재이고 싶었다.
하지만 알다시피 세상사 내 맘대로 되는 게 없다.
그분의 첫 출근 이후 며칠 지나지 않은 어느 오전,
매달 반복하는 업무를 기계적으로 결재 상신했다.
그리고 호출을 받았다.
"잠깐, 이리 와봐."
아찔해졌지만 그것을 느낄 새도 없이 달려갔다.
그분은 일부 문구의 수정을 요청하셨고,
나는 그 문장이 수정되면 안 될 이유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분의 태도가 아주 강경했고, 사실은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으셨고, 찍히면 끝장이라고 했기 때문에 작전상 후퇴했다.
"알겠습니다. 알아보고 수정하겠습니다."
자리로 돌아와 곧바로 직속상사께 보고했는데, 본인이 아닌 내가 직접 다시 설명하기를 원하시는 눈치였다. 이젠 정말 어쩔 수 없어져버렸다.
후퇴는 우선 했고, 이제 작전을 짜야지.
요즘 아침마다 가볍게 몇 문장씩 읽었던 책의 내용이 불현듯 떠올랐다.
너그러워지는 시간, 오후 2시
'그래, 2시에 가자!'
점심시간에 그분의 심경의 변화가 없었다는 소문까지 확인했다.
그래, 하늘도 이 정도는 나를 도와줘야지.
2시에 나는 조심스럽게 결재판을 끌어안고 그 안에 떨리는 마음도 부여잡고 전쟁터로 전진했다.
"오전에 말씀 주신 건에 대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 뭔데?"
확실히 그분의 말투가 부드러웠다.
"아까 말씀해 주신 대로 수정해보고자 했는데, 수정 전에 내용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보니 OOO이 아직 끝나지 않은 점을 발견했습니다. 수정하게 되면 해당 내용이 달라지게 되어 고민되어 찾아왔습니다."
"그래?"
두근.
뜻밖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 이렇게 알려주는 게 맞아. 이렇게 말해줘서 고맙다. 그렇다면 원안대로 가야지."
전쟁터에서 무사귀환한 팀원을 팀장님은 걱정스럽게 맞이했다.
"어떻게 됐어? 안된다지?"
"원안대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와, 정말? 바로 수용하셨어? 정말 의외다. 고생 많았어요."
그분은 임팩트가 아주 있으신 분이라 앞으로의 생존일기에 추가로 등장할 수밖에 없어서 다른 에피소드에서도 나오겠지만, 그 초반의 대화를 통해 나는 좋은 이미지로 시작할 수 있었다. 물론 당시의 상황이나 그분의 기분 뭐 그런 것들이 다 잘 맞아떨어져 준 덕분이지만 말이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찍히고 깨지는 동료들과 상사들도 많이 보았다.
호랑이 같은 그분의 성향 덕에 말 한마디를 꺼내는 그 순간이, 직장생활의 희비를 가르는 순간임을 적나라하게 목격할 수 있었다.
직책이 어떻고, 직급이 뭐고 간에 우선 우리는 모두 결국 '인간'이다.
상대가 나를 대하는 태도는 '말'에 묻어 나오기 마련이고, 아주 가벼운 한 마디의 말이라도 인간은 그것을 직감한다.
결국 말이라는 것은 일방적이 아닌 쌍방 소통의 매개체이고, 내 의도대로 상황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닿는 말하기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내가 던지는 말 한마디는 상대에 대한 내 호감도를 좌우하고, 그 호감도는 그 사람이 가지는 '나에 대한 프레임'을 만든다. 그리고 한번 만들어진 '프레임'은 바뀌기 어려우며, 스노볼이 되어 다른 모든 결정에도 영향을 끼친다.
나도 아직 갈 길이 구만리다. 특히 집에서는 남편에게 꺼내는 말을 신중하게 고르지 못해서 갈등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다. 계속 되뇌며 의식하고 생각하려고 노력해야지. 꼭 바깥에서 새로 배우는 것만이 배움은 아니니, 이래서 인간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고들 하나보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 갚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글들을 보았다.
'천냥 얼마'가 연관검색어로도 떴다.
그냥 검색했을 때는 5천만 원가량으로 나오는데, 말 한마디로 5천만 원 빚을 면제해 주는 경우가 어디 있냐는 거다.
누가 정말 빚을 면제해 주겠는가. 하지만 말 한마디에 그만큼의, 혹은 그 이상의 값어치가 오르내리는 경우를 우리는 주식 시장과 정치판, 여러 매체의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수없이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