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가 아니라, 유영
나는 다시 한번, 물 앞에 선다.
그래도 먹은 밥그릇수만큼
이번에는 마음이 밥값을 치른다.
도망치기보다 마주하기를 선택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2년 전 여행에서
처음으로 들어간 바다는
자신만만했던 나를 아주 납작하게 바싹 구웠다.
이제 무섭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몸이 굳은 그날로
이제는 굳이 다시 뛰어들어보려 한다.
특별한 기념일을 맞아
발리행 티켓을 끊었고,
그곳의 바다에 뛰어들기로 했다.
물 공포증을 극복하고 싶은 마음으로
수영장을 찾았던 것처럼,
깊은 물에 대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고 싶어
프리다이빙 원데이 클래스를 예약했다.
익숙했던 수영장이었지만,
다이빙풀은 입구가 다른 곳에 있었고
시설도 전혀 달랐다.
협소한 샤워장과 탈의실이 낯설었다.
추운 날이었기 때문에,
슈트를 입어야 했다.
남편의 도움 없이는 못 입었을 것 같다.
왜 이렇게 안 들어가는지
시작하기도 전에 힘이 쭉 다 빠졌다.
다이빙풀에서 다시 나는 왕초보로 돌아갔다.
어색한 마스크는 다행히 금방 적응되었고,
나는 스노클을 바보처럼 통째로 물었다.
히히. 그럴 수도 있지.
아니, 그럴 수는 없다.
결국 바다에서 또 바보처럼 물어서
짠 물이 입 한가득 들어왔다. 우엑.
호흡도 새로 배웠다.
자연스럽게 무의식적으로 하는 호흡이 아닌,
의식해서 다 뱉고, 차곡차곡 채우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그리고 오히려 꽉 채우고 있으니
뱉어버리고 싶었는데,
그제야 알았다.
우리는 평소에 그렇게 숨을 참고
살아본 적이 없다는 걸.
시간을 재며 숨 참기를 했다.
선생님은 아예 다른 생각을 한다고 했다.
오늘 끝나고 뭐 먹지? 같은.
처음이 무서운 게,
흰 도화지 상태로 시작해
처음 접한 것을 그대로 배우게 된다.
그래서 나는 지금 잠영할 때도
끝나고 뭐 먹지?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이제 데크를 떠날 시간이 됐다.
내가 간 곳은 수심이 5m였는데,
사진으로 보면 얕아 보이지만
왕초보의 시선에서는 아주 깊었다.
그래도 수영을 배워두길 잘했다고 생각한 게,
오리발이 마음에 안정을 가져다준다.
선생님 손을 잡고 물에서 서있는 연습을 했다.
조금 떨렸는데, 쉽게 성공했다!
역시 오리발 최고!
사실 프리다이빙 핀에 비하면
나의 롱핀은 숏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내게 롱핀은 롱핀이다.
5m 줄 잡고 내려가는 것도
내친김에 제일 먼저 해봤다.
나는 늘 보던 세상이 거꾸로 뒤집히면
아주 정신을 놓아버리는데,
(어린 시절 다람쥐통 탔다가 죽는 줄 알았다.)
그래서 쉽지 않았다.
그리고 괜히 내려갈수록
숨 막힐 것 같은,
하면 안 되는 생각이 떠오르는 걸
막지 못하고
포기하고 내가 올라오기를 선택했다.
휴.
참, 쉬운 게 없다.
그래도 정말 새로운 경험에
아주 재미있었다.
프리다이빙은 스포츠로서는
수영과는 전혀 다른 정적인 운동이었다.
내가 원하는 건 깊이가 아니라,
어디든 자유롭게 유영하는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