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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 Jul 02. 2024

#10 최애의 콘서트는 처음이라

별처럼 반짝이는 도전들에게

엄마, 나 비행기 표 끊었는데...


  "또 와? 왜 와?"

  5월 말 즈음, 한국행 비행기 표를 끊고 엄마에게 한국에 간다는 말을 전하니 엄마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 게, 1년에 한 번 한국에 갈까 말까 하던 딸이 갑자기 지난 연말 귀국 이후 5개월 만에 또 한국에 온다니 엄마로서는 얘가 왜 이러나 싶었겠지. 처음엔 남들 다 쉬는 황금연휴에 근무했고, 때문에 휴가가 많이 남아서 그런다며 거짓이 아닌 핑계를 대다 마지막에서야 진짜 이유를 실토했다.


  "I가 콘서트를 해, 그것도 무려 솔로 콘서트."


  여기저기서 짤로만 보던 '아이돌 팬의 연차 사유-정기후원 단체의 성과보고회 참석'이 내 이야기가 될 줄은 몰랐다.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알만하다는 듯 웃고는 서울에만 있지 말고 본가에도 들르라는 말을 남겼다. 에이- 엄마, 아무리 그래도 내가 한국까지 가는데 본가는 내려가지. 응, 아마도...




최애의 콘서트는 처음이라


  이전에도 한 번 말한 적 있었지만 지금까지 그렇다 할 덕질을 해 보지 않았던 나로서는 '최애의 콘서트'라는 이벤트가 생소하기 그지없었다. 콘서트가 처음은 아니었다. 소극장 라이브부터 도쿄돔 공연까지, 발라드 가수부터 아이돌까지 장르를 불문하고 수십 번은 다녀왔지만 티켓팅을 하기 전부터 이렇게 떨려본 적이 없었다. 정말 말 그대로 온몸이 떨리던 티켓팅을 이겨내고 어떻게 티켓은 구했지만 콘서트 장에는 몇 시간 전에 가야 하는지, 뭘 들고 가야 하는지, 스탠딩 공연은 여러모로 힘들다던데 괜찮을지, 아직 겪어보지도 못한 걱정거리가 산더미만큼 쌓였다. 그도 그럴게, 지금까지는 정말 몸만 갔던 나였다. 티켓, 지갑, 물, 초콜릿 몇 개 정도? 그런데 정신 차려보니 내 준비물 리스트에는 응원봉부터 슬로건까지 생전 처음 챙겨보는 물건들이 한가득이었다. 나, 이거 정말 다 들고 콘서트 볼 수 있는 것 맞나.


 그런데 그 모든 걱정이 나를 불안하지 않게 했던 건 어떤 기대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기 위한 새로운 도전의 시작으로 큰 결심을 했던 I가 지난 앨범으로 국내 쇼케이스를 하고, 다음 앨범으로 탄탄한 레퍼토리를 쌓아 세계를 무대로 투어를 시작하는 그 시작점에 함께할 수 있다는 기대감 말이다. 그리고 음원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과연 무대에서는 I를 통해 어떻게 표현될지 상상하면 할수록 여러 의미로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이 곡을 부르는 I의 표정은 어떨까, 어떤 퍼포먼스를 곁들일까, 어떤 곡 설명을 할까, 또 어떤 방식으로 본인의 성장을 내보일 준비를 했을까. 이 콘서트를 준비하며 스스로의 작업물들을 돌아봤을 I가 어떤 생각을 했을지 또한 궁금했다. 그룹으로 시작해 그 정체성을 지키는 동시에 스스로의 음악 또한 누구보다 나다운 음악을 하려 노력한 I라는 걸 알기에, 다가올 첫 솔로 월드 투어가 그에게 어떤 의미일지도 말이다.


  그러니 콘서트가 아직 조금은 먼 미래의 이야기일지언정, 나에게 그 콘서트는 이미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떨림과 기대, 약간의 벅차오름이 뒤섞인 감정과 함께.




또 다른 도전


  새로운 도전은 I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I가 속한 그룹 X의 리더, S도 같은 시기에 새로운 한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팬덤 내에서도 꽤나 충격이라면 충격이던 행보였던 것 같다. 뮤지컬이라니. 아이돌의 어떤 도전에 드리우는 여러 가지 편견들을 모르려야 모를 수 없었으니, 기대 반 걱정 반의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지만 뮤지컬이 어떤 무대인가. 그 어떤 카메라나 녹화 장비로 기록되지 않는 연기, 노래, 춤이 어울려 온전히 그 순간의 무대 위에서만 감동을 주고받을 수 있는 모든 예술의 집약체 아닌가. I의 콘서트와 S의 캐스팅 일정 상, 이번 한국행에서 두 공연을 모두 볼 수 있다는 걸 깨닫자마자 티켓을 구했다. 봐야만 했다, S가 내딛는 새로운 한 걸음도.


  나의 한국행 이전에 이미 여러 번의 공연을 끝낸 S였기에, 그 후기들이 심심찮게 들려왔다. 후기를 보면 볼수록 꼭 내 눈으로 무대 위의 S를 봐야만 하겠다는 마음이 드는 한편, 그 이면의 노력은 과연 어느 정도였을까 감히 짐작했다. 대중이 이미 가지고 있는 편견을 뛰어넘기 위한 특별한 노력도 물론 있었겠지만, 여느 때의 S처럼 무던하게, 그리고 묵묵히 주어진 일에 스스로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최선을 다하는 것이 그가 늘 말하던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이었을 것만 같아 괜히 마음이 이상했다.


뮤지컬 첫 도전이라 부족한 점도 많겠지만
열심히 연습해서 좋은 공연 보여드리도록 하겠다


  뮤지컬 캐스팅 기사에 실린 담담하지만 어딘가 단호함마저 느껴지던 S의 첫 인터뷰를 보고, 새로운 영역에 도전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지금까지 쌓아온 그 모든 것들을 발판 삼아 또 다른 도전의 한 발을 내딛고,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매일의 꾸준한 노력이 지금의 시작을 위한 기반이었음을. 또한 그 과정에서 마주할지 모를 스스로의 어떤 부족함과 마주할 용기 또한 있어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결과에 도달하기 위해 도중에 무너지지 않을 각오가 있어야 했다는 걸.




반짝이는 것


  무언가에 도전하여 그 성과를 이뤄낸 사람들을 눈앞에서 지켜본다는 건 정말 엄청난 일이었다.

  새로운 무대에 도전해 공연장을 꽉 채운 관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순간, 자신을 온전히 태워 만든 음악으로 스스로를 증명하는 누군가의 순간에 함께 했다는 감동 그 너머에는 어떤 벅차오름 같은 것이 있었다. 자신이 이뤄낸 무언가를 스스로가 자처한 심판대 위에 내세울 용기를 가진 사람들에게서는 박수받아 마땅할 만큼 반짝이는 빛이 났다. 마음 깊은 곳에 별이 뜨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해가 비추는 동안에도 당연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테지만, 어두워지면 더 반짝일 별이.


  어떤 마음으로 새 앨범을 준비했는지, 이 공연을 준비하면서 어땠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던 I에게서 그의 밤을 수없이 채웠을 고민을 보았다. 본인이 채울 무대와, 그 무대를 함께할 관객들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했겠지. 4,500여 명이 들어찬 관객석, 그리고 I와 열 명 남짓의 댄서, 밴드 세션이 자리한 무대가 그 밀도의 차이와 상관없이 하나로서 가득 채워진 건, I의 밤을 빼곡히 채웠을 고민의 실체였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곡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을지, 그 순간을 함께한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만족할 수 있을지, 어디 하나 고민이 묻어나지 않은 곳이 없었으니까. 어느 순간 비어있는 모든 공간을 빈틈없이 가득 채웠던 I를 닮은 향까지도 말이다.


  또 S의 뮤지컬을 2회 차 관람하며, 일주일 남짓의 텀이 있던 그 두 번의 공연들 사이에서조차 더 노련해지고 더 발전된 S의 연기와 노래에서 이미 막이 오른 공연과 공연의 사이에서도 끊임없이 고민을 거듭했을 S를 보았다. 단순히 새로운 영역에 발을 들였음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은 공연을 위해 마지막까지 노력하는 모습에는 무대를 대하는 그의 진중함이 있었다. 본업의 틀에서 벗어나 온전히 극 중 자아로서 살아가는 시간 동안 스스로 선택한 길에서 조금의 후회도 남기고 싶지 않은 마음 같은 것이었을까.


  이 모든 도전들에 함께하며 그 끝에는 어떤 다짐 같은 걸 했던 것 같다. 이들이 늘 이렇게 새로운 한 발자국을 내딛으며 계속 반짝였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그런 날들이 오래갈 수 있도록 해 주고 싶다는 다짐. 그 눈부심이 설령 애정에 기반한 어떤 콩깍지에서 오는 편향된 감정일지언정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감동을 전한다는 건 분명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어떤 순간에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


  지나온 나의 도전들에 대해 떠올렸다. 어땠더라.

  물론 누군가의 도전과 성과에 나의 그것을 가져다 대어 비교할 마음은 조금도 없다. 작열하는 더위와 거센 태풍을 이겨내고 한여름에 피어나는 능소화도, 가을바람과 함께 피어나는 코스모스도 각자의 계절에 피어나야 예쁜 꽃이지 않나. 크기나 색과 상관없이 꽃은 꽃인 대로 아름답듯, 나의 도전은 그것대로 반짝이고 있다. 모든 순간이라고 자신하긴 힘들지 몰라도 나의 도전들 또한 대체로 최선에 가까웠음을 알고, 그 순간들이 쌓여 만들어진 나의 지금은 여전히 애틋하니까. 기억에 남는 도전의 끝, 그 성취의 정도에 관계없이 내가 얻은 무언가가 있는 걸 보니 분명 아름다웠음이다.


  I와 S의 도전이 순수한 반짝임으로 남을 수 있게 된 데에는 또 다른 주인공들이 있었음도 안다. 각자의 무대에서 치열한 시간을 보내는 개개인들의 도전 또한 스포트라이트 아래에 선 그들 못지않게 빛나는 것이니까. 그래서 누군가의 도전에 종종 자리하고 싶다. 반짝이는 순간을 지켜주고 그 반짝임을 오래도록 마음속에 띄워놓고 싶다. 그렇게 나의 것이든, 다른 누군가의 것이든 기억 속에서 오래도록 반짝일 도전들을 하나 둘 차곡차곡 담아 별처럼 띄워 두면 가끔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망설여질 때 이정표가 되어주지 않을까. 어떨 땐 누군가의 향상심과 자신감이, 또 다른 순간에는 누군가의 무던함과 진중함이 새로운 길로 이끌지도 모르니까.


  별처럼 반짝이며 나의 마음에 남아 준 모든 도전들에게, 오늘에야 감사의 인사를. 또다시 스스로의 무대 위에 올라 치열하게 나아갈 모든 주인공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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