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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 Jul 27. 2024

#11 그녀에게도 최애가 있다

최애란 대체 뭘까

아이고, 예뻐라


  한국에 가면 늘 하는 일이 있다. 매번 아무거나 괜찮다고 하시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무엇이 드시고 싶은지 여쭤보고,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식당을 찾아 할머니를 모시고 점심이든 저녁이든 한 끼를 꼭 함께 먹는 것. 할머니와 나란히 택시 뒷자리에 앉아 손을 잡고 식당으로 가는 시간은 언제까지고 놓치고 싶지 않은 행복이기도 하고, 할머니 몰래 밥 값을 결제하고 할머니 반응을 지켜보는 게 생각보다 재밌기도 하고.


  작년 연말 즈음이었나. 그날도 할머니와 택시 뒷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밥을 먹으러 식당으로 향하던 길이었는데, 갑자기 할머니가 창밖을 가리키시며 "아이고, 여기도 있네. 예쁜 것도 걸어 놨다." 하시는 거다. 뭐가 그렇게 예쁘냐고 물어보니 돌아온 할머니의 대답.


  "저기 찬원이 안 보이나? 우째 저래 예쁘겠노~"




덕질도 유전인가요


  창 밖에 비친 '예쁜 것'은 가수 이찬원 님의 사진이었다. 이찬원 님의 콘서트가 열리는 공연장 옆 카페가 팬들을 위한 휴식처가 되어, 입구부터 창 한가득 이찬원 님의 사진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게 또 한 군데가 아니라, 식당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공연장 근처 카페 몇 군데가 온통 그랬다. 할머니는 창 밖을 스쳐가는 '찬원이'의 사진들을 보시며 끊임없이 찬원이가 언제는 이랬고, 저때는 저랬고... 지난 방송에서 이런 말을 했는데 애가 나이도 어린데 참 괜찮다는 둥, 노래는 또 어쩜 그렇게 잘하는지 하루종일 찬원이가 노래하는 방송을 틀어놔도 질리지 않는다는 둥, 신나게 말을 이어가셨다.


  얼마 전에는 고모와 함께 이찬원 님의 부모님께서 운영하시는 카페에도 다녀오시고, 이찬원 님이 출연한 방송에서 기획한 편의점 상품을 사다 드시기도 하셨단다. 어쩐지 평소에 드시지도 않던 삼각김밥을 드셨다고 했을 때 왜 갑자기 삼각김밥을 드시나 싶어 식사를 잘 챙겨드시지 왜 그런 걸로 끼니를 때우냐고 잔소리를 했었는데, 이젠 다 팔려서 못 사드신다고 했을 때 알아봤어야 했나. 삼촌이 핸드폰 통화 연결음을 바꿔드린 지는 꽤 됐고, 어디서 얻어오셨는지 거실에는 '찬원이' 사진까지 걸려 있다. 물론 예쁜 액자에 예쁘게 넣기까지 해서.


  아니, 할머니. 거실에 내 사진도 없으면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녀에게도 최애가 있다


  그런데 뭐지, 이 기시감. 이거 나잖아...?

  할머니와의 대화에서 순간 미시감을 느끼다 이내 기시감으로 바뀐 이유는 당연히도 그 이야기가 나에게서 또한 멀지 않은 이야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룹 X의 멤버들이 다녀갔다는 식당과 촬영지에 가보고, 최근에 추가한 플레이리스트의 음악들은 온통 그들의 곡들로 가득 차고, 내 방 벽에도 사진이 붙어있다는 사실에 잠깐 흠칫하다 이내 웃음이 터졌다. 아, 엄마가 그룹 X와 I의 이야기를 하는 날 볼 때 이것과 조금은 비슷한 마음이었나? 약간은 당황스럽다가, 이해를 위한 잠깐의 시간이 지나면 이내 묘하게 들떠 이야기하는 모습이 꽤나 즐거워 보여 웃음이 터지고 마는.


  아, 그렇다면 지금 나는 어쩌면 나는 할머니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 처음 알게 된 순간을 기록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건 뭔지 아는 게 없는 거다. 늘 좋아하는 음식을 물어도 아무거나 좋다고 하셨다. 뭐 필요한 게 있으신지, 아니면 일본에서 뭘 좀 사다 드릴까 물어도 드시던 약 이외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하시던 분이었는데 일본에 돌아오기 전 사드린 이찬원 님의 시즌그리팅은 하루가 멀다 하고 온 동네에 손녀가 사줬다며 자랑을 하고 다니셔서 왜인지 약간의 서운함과 배신감이 들 정도였으니까.


  아무튼 '찬원이'의 역사를 들으며 도착한 식당에서도 할머니의 이야기는 멈추지 않았다. 몇 번이고 반복되는 이야기에 대체로 그저 맞장구만 칠 뿐이었지만 어딘가 묘하게 들떠 말씀하시는 그 모습이 신기하게도 지겹지 않았다. 지금의 감정은 아마도 손주들이 줄 수 있는 즐거움과는 다른 결의 기쁨일 것이라는 생각에 잠깐 들었던 서운함마저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렇다, 할머니에게도 최애가 생긴 것이다. 나에게 I가 그렇듯, 할머니에게도 이찬원 님이라는 최애가.


  한참을 이찬원 님과 찬스 (이찬원 님 팬클럽 명)에 대해 이야기하다 '너도 이런 것들을 아느냐' 묻는 할머니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잠깐 머뭇거렸다. 이찬원 님의 시즌그리팅을 네가 어떻게 알고 사 왔냐고, 네가 만든 것이냐 물으시던 분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안다고 해야 하나... 잠깐 망설이다 '알지. 나도 최애가 있는데.' 하고 답하니, 돌아오는 할머니의 질문.


  "최애가 뭐꼬?"




나도 모르겠어


  그러게, 할머니. 최애는 대체 뭘까?

  언뜻 보면 그저 덕질 용어인가 싶은 이 '최애 (最愛)'라는 단어는 놀랍게도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실린 표준어 단어이다. '가장 사랑함', 뜻도 직관적이라 덕질에 한정되지 않고 여기저기 사용되는 단어라 잘 알고 있는 단어라 생각했는데, 막상 그게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받으니 뭐라 답해야 할지 말문이 턱 막혔다. '제일 좋아한다는 거지~'하고 대화를 마무리했지만,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왜인지 모르게 그 질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가장 사랑한다'는 말이 내가 만족할 설명이 되나?


  의미를 가지는 단어만큼 무게를 가지는 단어도 있음을 깨닫는다. 어쩌면 그 단어 뒤에 등호를 붙여 어떤 다른 단어를 설명하고자 할 때, 과연 그 두 단어가 같은 무게를 가지는 단어인가에 대해 고민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는 이미 '최애=I'의 공식이 성립되어 버렸기 때문일까. '최애'의 의미를 설명한다는 게 나에게 있어 I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일이라면 답이 망설여진 것도 이해가 된다. 그러니까, 감정이 가득 담긴 '최애'라는 주관적인 단어를 설명하기에 사전적 정의처럼 차갑기 그지없는 '가장 사랑함' 같은 말로는 만족이 안 되는 거야.




  가끔은 보기만 해도 한없이 벅차다가, 때로는 안쓰럽고, 어떨 땐 기특함 뿐이다가, 갑자기 애틋하기도 하고. 종종 이유 모르게 서운해하다가 어느 날의 웃음 한 번에 다시 그 모든 부정적인 감정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리는 이 복잡한 마음의 시작이 '최애'로 정의되는 누군가라는 게 아직도 생소하기 그지없다. 벌써- 아니, 고작 일 년이 지났을 뿐인데 그 일 년 동안 이 복잡한 마음으로 인해 생겨난 새로운 일들이 여전히 나를 놀라게 한다.


  할머니와의 대화 또한 그중 하나겠지. 할머니와 최애에 대해 이야기 한 그 순간은 올해 가장, 아니 내 인생에서 손꼽히는 놀라운 순간 중 하나일 것이다. 팬데믹 이후로 묘하게 기력도 없으시고 뭘 해도 재미가 없다고 하시던 분이 갑자기 유튜브를 배우시더니 나에게 링크를 보내며 이것 좀 보라고 하시고, 찬원이가 갔던 어디가 좋아 보인다며 먼저 어딘가에 가고 싶다고 하시고, 이제 공연도 가보고 싶다고 하신다. 누군가를 통해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진 분을 보고 있자니, 할머니의 최애가 되어준 이찬원 님에게 감사 인사로는 모자라고 밥이라도 사고 싶은 심정이다. 연락 주세요, 진심이니까.




'최애'에 대하여


  정말 최애란 대체 뭘까. 너는 대체 나에게 어디까지 의미를 가질 작정이길래 이렇게나 단순한 듯 늘 새로울까.

  가족이나 친구, 연인과는 그 모든 결을 달리하면서도 그 모든 관계에서 각각 느낄 수 있는 어떤 감정들을 알려주고, 모든 순간 매개체가 되어 나의 세상을 넓혀 내다 마침내 나의 동기가 되어 스스로 나아가게 하는 하나의 존재가 과연 또 있을까. 어떨 땐 내 인생에 떨어진 가장 아름다운 불행같다가, 나의 현실에 피어나는 고민들을 아무것도 아니게 만들어 버리는 파괴적인 행운같은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최애라 부를 수 있는 존재를 가진 나조차도 여전히 설명하기 힘들고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가득하지만 가끔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부터 새로운 세상을 만나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만나는 물음표들을 무언가로 바꿔가는 과정에서 조금은 자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니 한 번도 최애라 칭할 수 있는 존재를 가지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그 대상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관계없이 언젠가 그런 존재를 만나기를.


  그렇게 새로운 '나' 또한 발견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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