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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앞접시 Jul 29. 2022

앞머리와 긴 머리


앞머리의 세계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많지 않다. 이마를 완전히 감췄다가.. 삼등분을 했다가.. 이마를 옅게 보였다가.. 요즘은 분홍색 뭔가를 말아서 살짝 띄운다, 정도의 시대적 흐름만을 간신히 알아차리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런 나로서도 앞머리를 가진다는 것은 꽤나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뭐, 아닐지도 모르지만.


언젠가 생생우동을 사들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저 멀리 맞은편에서 한 여학생이 한 손으로는 핸드폰을 손거울처럼 들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앞머리를 정돈하며 걸어오고 있었다. 불어오는 맞바람에 앞머리가 헝클어진 모양이었다. 한동안 두 손이 분주하던 그녀는 이내 만족스러워졌는지 이마에서 손을 내렸다. 그 순간 다시 바람이 불었다. 그녀는 내리던 손으로 재빨리 앞머리를 붙잡은 채 바람에 맞섰고, 바람이 멎자 다시금 앞머리를 매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다시, 또 다시,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그렇게 나를 지나쳐가는 순간까지도 그녀의 두 손은 이마 근처를 서성였다.


중학교 체력장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날은 50미터 달리기 기록을 측정하는 날이었다. 당시 좀 뛴다 하는 남자애들은 축구화니 맨발이니 손날로 공기를 가르니 하며 기록 단축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반면 앞머리를 낸 여자애들 중 몇몇은 멀쩡히 뛰어오다가도 어느 정도 결승선에 가까워 와서는 한 손으로 앞머리를 붙잡은 채 달렸다. 이거야 기록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동작이었다. 이에 나는 친한 여자애한테 다가가 내가 보기에 맨발로 뛰는 건 도움이 안 되며 지금은 앞머리가 중요한 게 아니니 결승선이 없다고 생각하고 뛰어라, 라는 내용을 전했는데,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별로 좋은 대답을 듣진 못했던 것 같다. 니가 뭘 아냐고 했던가 꺼지라고 했던가.


나는 고등학교 때 빡빡이가 된 후로 줄곧 이마가 보이는 헤어 스타일을 고수해왔다. 하여 앞머리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고충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들이 그 연약해 보이는 것을 지키기 위해 치러내는 대가들을 목격할 때면 앞머리가 어울리지 않는 인간으로 태어난 게 정말 천운이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흐트러짐에 취약한 것을 지니고 산다는 건 정말이지 신경 쓰이는 일이니까. 나는 이미 깃털처럼 가벼운 의지력과 흐트러질 기회만 엿보는 앉은 자세를 갖고 있는데, 이것들만 통제해내기에도 벅차 결국 게으른 거북목 인간이 되어버렸다. 거기다 앞머리까지 잘 어울려버렸다면.. 신경 쇠약에 걸리는 건 그야말로 시간문제였을 것이다.


앞머리에 이어서 머리 얘기를 좀 더 해보자면, 개인적으로는 단발 이상의 긴 머리를 갖고 사는 사람들에게도 대단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물론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계속 대단해.. 대단해.. 라고 중얼대는 건 아니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나는 대학생 때 단발을 목표로 기존 가르마펌에서 몇 달간 머리를 길러본 적이 있는데, 어느 정도 길이가 되고부터는 괴로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앞쪽 머리카락이 계속 시야를 가리고.. 그게 또 하루 종일 눈을 찔러대며.. 그 머리카락을 수시로 밀어내느라 손은 바쁜데.. 고개를 약간만 움직이면 다시 제자리로 쓱 돌아와 시야를 가리고.. 이거야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집에 머물 때야 문제의 머리카락을 잡아다 위로 묶어놓을 수 있으니 좀 나았지만, 알바나 약속에 나가선 그러지도 못했다. 예의 그 상방 묶음 머리로는 우금치 전투에 나갈 게 아니고서야 외출이 불가능했다. 안타깝게도 모자가 썩 어울리는 인간도 아니었다.


그때는 대체로 화가 나 있었다. 밥을 먹거나 책을 읽거나 알바를 하거나 뭐 기타 등등의, 아무튼 고개를 조금이라도 숙여야 할 때면 머리가 여지없이 쏟아져내렸으니까. 생활 속에서 그런 일이 요구되는 빈도상, 이거야 분노가 잦아들 틈이 없었던 것이다. 만약 내가 헐크였다면 지금 서울 집값이 이렇게 비싸지지도 않았을 텐데. 그때 내가 다 때려 부쉈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긴 머리의 소유자들을 떠올려보면 다들 머리를 귀 뒤로 넘겨 고정한 채 잘만 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짧은 것보다야 아무래도 불편하겠지만, 머리를 귀 뒤에 걸릴 만큼만 길러내면 지금보다는 훨씬 편해질 거란 희망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내 머리카락은 무럭무럭 자랐고 마침내 앞쪽 머리가 귀 뒤로 어느 정도 걸리게 됐을 무렵, 나는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시치미를 뚝 뗀 채 전진 또 전진했고, 시간이 지나 귀 뒤로 넘긴 머리가 턱으로 향할 때 즈음,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 이거 겨우 귀 정도로 고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었구나.


그동안은 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일상에서나 모니터 속에서나, 끊임없이 귀 뒤를 탈출해대는 머리카락과, 그걸 다시 끊임없이 귀 뒤로 돌려보내는 그들의 분주한 손이, 정말 그제서야 보였다. 귀를 이용한 안정적인 고정, 이란 건 그저 나의 바람과 무관심으로 조각된 허상이었던 것이다. 내가 직접 마주한 그것은 흡사 인형 뽑기 집게 수준의 고정력이었다고 할까.. 되나? 싶다가도 고개를 숙이거나 머리가 약간 흔들리면 여지없이 귀 뒤를 탈출해 스르륵 흘러내려버리고 말았다. 나는 긴 머리로 살아가는 지인들을 진심으로 다시 보게 됐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이렇게 한두 달 정도 더 길러서 펌도 넣고 이뻐진다고 치자. 그런데 내가 이 지극히 시지프스적인 생활을, 그러니까 끝도 없이 머리칼을 귀 뒤로 밀어내야 하는 생활을 견뎌낼 수 있을까? 나는 신을 농락한 적도 없는데.. 답은 명확해 보였지만 한동안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고민만 해댔다. 솔직히 그때까지 길러낸 게 아깝기도 했고, 여전히 희망을 버리지 못한 채 혹시 어깨에 걸릴 정도로 기르면 좀 편해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망설임은 지인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종말을 맞았다. 그녀의 용건은 바로,


오빠 내 친구랑 소개팅할래?


나는 호다닥 화장실 거울 앞에 섰다. 머리를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봤지만, 이따위 몰골로 소개팅에 나가는 건 아주 큰 실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내 생의 첫 소개팅이었다. 나는 그날로 미용실에 갔다. 머리를 이전의 길이로 자르고 미용실을 나오니, 두 손은 자유롭고 시야는 탁 트인 게, 이제야 비로소 살 만한 세상이었다.


그 소개팅에 대해 간단히 말하자면, 나는 최선을 다했고 멋진 분과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상대 쪽 입장은.. 모르겠다.


머리를 기르다 고정이 안 돼서 포기했단 얘기를 들은 지인은 그걸 왜 몰랐냐며 웃었다. 그것은 짧은 머리 세계의 내가 몸소 체험하여 취득한 전문 지식이었다. 하지만 긴 머리 세계의 그녀에게는 그저 상식이었다. 하긴 다른 세계의 실제를 파악하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니까. 이방인으로서 이건 이러이러하겠지? 라고 나름대로 상상을 해봐도, 실제로 겪어보지 않거나 때로는 완전 네이티브이지 않는 이상 그것을 정확히 짐작해내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내친김에 딴 얘기를 하나 더 해보자면, 그건 머리 공예, 의 세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중학교 때까지 남녀공학을 다녔다. 그래서 여자애들이 자신의 머리를 갖고 이것저것 해대는 것을 자주 목격했는데, 이거야 공예라고 불러도 될 만큼 신기했다.


예를 들어 똥머리(라고 했던가?)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 설명해보자면, 일단 머리끈을 쥐고 머리를 뒤로 모으는 준비 동작 후에, 흡사 닌자가 인을 맺듯 이런저런 현란한 손놀림이 펼쳐지고, 그렇게 눈 깜짝할 새 뒤통수에 동그란 계란 모양의 (이른바) 똥이 탄생한다. 동의를 받은 적도 있고 안 받은 적도 있지만, 그 똥이라는 것에 펜을 몇 개인가 꽂아본 결과 펜 세네 개 정도로는 꿈쩍도 안 할 만큼 완성도가 있었다. 이런 걸 눈으로 보지도 않고 만들어내다니 대단하다 싶었다.


머리 공예의 초식들 중 가장 신기했던 건 역시 머리를 땋아내는 일이었다. 그것은 눈 뜨고 당하는 마술처럼, 분명 똑똑히 지켜보고 있는데도 대체 일이 어떻게 진행되어가는지 알 수조차 없다. 그냥 두 손을 머리 뒤로 하고 손대중으로 머리카락을 몇 덩이로 나눠 이리저리 섞어댄다 그러면 갑자기 짠 하고 예쁜 밧줄 모양의 머리가 등장한다. 그건 뭐랄까.. 차라리 마법에 가까웠다.


중학생의 나는 궁금해졌다. 내 생각에 여자애들은 저런 걸 다 할 줄 아는 모양인데, 대체 어디서들 배워오는 걸까? 학교에서 방과 후에 걔네들만 따로 가르쳐줬을 리도 없고.


나는 그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고민해봤는데, 그 결과 역시 엄마거나 그게 여의치 않으면 할머니를 비롯한 주변 여자 어른들에게 배우게 될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분들이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며 적절한 때를 가늠해보고 있다가, 마침내 여자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쯤이 되면 이제 때가 됐다 하고 자신이 갖고 있는 기술들을 샤샤샥 전수해주기 시작하는 것이다.


중학교 시절의 궁금증은 그런 식으로 끝났다. 그냥 당연히 그게 정답일 거라고 생각했고, 사실 내게 딱히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 전문가에게 자문을 받아볼 마음까진 들지 않았다.


그러다 장성하여 대학을 다니던 어느 날, 수업 중 강의실 앞자리 여학생이 갑자기 손을 뒤로 해 밝은 갈색의 머리를 굵게 땋아댔고(그 머리카락이 내 책상 위를 휩쓸고 지나갔다), 바로 뒤에서 그 모습을 보게 된 내 머릿속엔 문득 예전의 그 궁금증이 떠올랐다. 강의가 끝나고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엄마도 머리 땋을 줄 알아요?


머리? 알지. 엄마가 은지(동생) 어릴 때 땋아주고 했는데.


그럼 엄마가 걔한테 땋는 거랑 알려주고 그랬어?


아니 가르쳐준 적은 없는 것 같은데.


그럼 엄마는 어디서 배웠는데요?


음.. 모르겠는데. 왜?


할 줄 아는 건 맞아요?


왜 엄마 바뻐.


알았어요. 이번 주에 내려갈게요.


어 그래. 아빠한테 꽃게 좀 사오라고 해야겠네.


하지 마. 나 꽃게 안 좋아해.


좋아하잖아.


아무것도 하지 마요. 하면 안 갈 거야. 끊어요.


내 추측은 빗나갔다. 엄마도 역시 기술 보유자이긴 했지만, 딸에게 자신의 기술을 전수해준 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배움터는 어디란 말인가.


나는 다음으로 어느 술자리였나, 아무튼 기회가 됐을 때 몇몇 친구들을 붙잡고선 혹시 너도 머리 땋을 줄 아냐고 물었다. 그들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는 두근대는 마음으로 그 기술을 어떻게 습득했는지 물었다. 그들은 잠시 기억을 되짚어보는가 싶더니, 이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마침내 머리 공예의 전승과 대중화 과정의 실상에 다가서는 순간이었다.


그들의 증언을 요약해보자면, 저학년 때는 엄마가 갖가지 형태로 머리를 묶어주긴 했지만 기술의 전승은 따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우리 엄마의 증언과 일치), 그런 기술들은 주로 친구들의 머리카락을 만지고 놀며 습득하게 된다고 했다. 나는 이 대목에서, 아니 왜 남의 머리카락을 만지고 놀아? 라고 물었다. 그들은 그냥 원래 그렇게 노는 것, 이라고 대답했다. 여고에서는 점심을 먹고 회전 초밥처럼 운동장을 빙글빙글 도는 풍습이 있다던데, 아마 그것과 비슷한 성격의 문화가 아닐까 싶었다. 그러니까, 그 안에 속해 있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데 밖에서 보면 어랍쇼? 하게 되는 종류의. 그나저나 전교생이 나와 운동장을 빙글빙글이라.. 점심시간이면 운동장에 네다섯 개의 축구공이 동시에 날아다니던 남고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아무튼 그들은 학창 시절에 종종 머리가 긴 친구를 둘러싸고 그녀의 머리카락을 만지작대며 시간을 보냈다는데, 그때 일찍이 머리 공예에 눈을 뜬 선구자가 자신의 기술들을 선보이고, 그것을 그들이 만지작대던 친구의 머리카락으로 수련하여, 결국엔 자신의 머리에 적용하는 식으로 기술의 전승이 진행된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설명을 듣고 보니 과연 그럴듯했다. 애초에 맞출 수가 없었구나, 싶으면서도 듣고 보니 왠지 교실에서 그런 장면을 본 것 같기도 하고.. 역시 다른 세계를 똑바로 짐작해내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먼 길을 돌아 다시 긴 머리 얘기로 돌아오자면, 긴 머리로 산다는 건 꽤나 힘든 일인 것 같다. 모자나 헤드폰을 썼다 벗어도 큰 타격이 없다는 것 등은 부럽지만(아닌가?), 머리를 계속 귀 뒤로 보내야 하는 거나, 머리 말리는 시간도 상당할 거고, 경험상 머리끈 없는 식사가 굉장히 불편한 것 등, 아무래도 짧은 것보다야 꽤 고난이도의 생활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치만 내 나름의 짐작들이란 사실 죄다 틀려먹은 것일지도 모른다. 역시 나와는 다른 세계의 일이니까. 귀 뒤로 넘긴 머리가 얌전히 고정되어 있을 수도, 혹은 쉽게 탈출하는 건 맞는데 그렇게 불편하진 않을 수도, 아니면 편해질 방법이 다 있는데 내가 그냥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 관계로 긴 머리의 당사자가 흥! 잘 알지도 못하면서 별꼴이야! 라고 한다면.. 미안합니다.


어쨌건 복지부 같은 데서 머리 정리용 로봇팔이라도 하나 달아주지 않는 이상 내가 다시 머리를 기를 일은 없을 것 같다. 하긴 로봇팔을 가질 수만 있다면야 뭔들 못 하겠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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