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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앞접시 Oct 30. 2022

엄마의 고집

언젠가부터 내가 본가에 내려가면 엄마는 아들 맞이 만찬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내가 주방을 서성이며 아 이런 거 좀 하지 말라니까~ 그냥 있는 거 대충 먹어요~ 라고 아무리 쫑알대봐도, 엄마는 정신 사나우니까 저리 좀 가 있어! 라며 날 거실로 쫓아버린다. 그리곤 만찬 준비를 이어간다.


대망의 식사 시간. 엄마의 야심작들이 식탁에 놓인다. 나는 냠냠 밥을 먹는다. 엄마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내가 밥 먹는 모습을 얼마간 지켜본다. 그러다 이윽고 엄마의 잔소리가 터져나온다. 예컨대, 너는 엄마가 애써서 맛있는 걸 해줘도 꼭 그렇게 맛없게 먹어! 그러니까 살이 안 붙지! 라든가, 다른 집 애들은 집밥 먹고 싶어서 난리라는데 어떻게 된 게 너는 해줘도 먹질 않니! 라거나, 니가 김치를 안 먹으니까 아직도 얼굴에 뭐가 나지! (그런가?) 또는, 니가 김치를 안 먹으니까 아빠가 엄마 말을 안 듣지! (글쎄..) 같은 말들. 들다 보면 언제나 비슷한 레퍼토리다.


나는 엄마와 티격태격대는 식사가 재밌긴 하지만, 본가에 내려갈 때마다 마주하게 되는 엄마의 고집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밥을 잘 안 먹는 건 세상에서 엄마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매번 제발 뭐 해놓지 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런데도 엄마는 굳이 이렇게나 음식을 잔뜩 차려놓고는 안 먹는다고 잔소리를 해댄다. 아니.. 안 해놓으면 둘 다 편할 텐데. 이쯤 되면 엄마는 내게 잔소리를 하고 싶어서 일부러 만찬을 준비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엄마의 잔소리는 식사 이후에도 끝날 듯 말 듯 이어진다. 나는 그릇들을 정리하고 식탁을 닦으며 내 의견을 꿍얼꿍얼 밝힌다(안 해놓으면 되잖아요). 그러면 엄마는 니가 김치를 안 먹으니까 엄마가 이런 거라도 해놔야 될 거 아니야! 니네 아빠랑 은지는 김치만 있어도 밥을 두 그릇씩 먹는데 너는 어릴 때부터 편식도 심하고 김치는 죽어도 안 먹고! 엄마도 이제 보람 없어서 아무것도 안 해놓을 거야! 라며 또 뭐라고 한다. 하지만 몇 달 뒤 본가에 돌아오면, 엄마는 또다시 주방에서 보글보글 분주하기만 했다.



내가 방송국에서 일하던 시절, 작은 캠코더를 챙겨다니던 때가 있었다. 눈 뜨면 출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자고 다시 눈 뜨면 출근하는 일상에 하루하루가 어디론가 증발해버리고 있다는 실감이었다. 그렇게 증발했던 나날들이 고시원 천장에 맺혀 있다가 한 달에 한 번 앙증맞은 월급의 형태로 똑 떨어졌다. 그 물(방울)벼락에 아 벌써 한 달이 지났구나, 하며 되돌아보면 하루하루가 정말 증류라도 되어버린 것처럼 딱히 기억나는 게 없었다. 뭔가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캠코더를 챙겨 다니며 그때그때 뭐라고 좀 찍어서 붙들어놓자는 작정이었다. 물론 내 핸드폰에도 카메라가 달려 있었다. 하지만 굳이 묵직한 캠코더를 같은 걸 지니고 다니면, 그 불편함이 느껴질 때마다 기왕 갖고 온 거, 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니까.


이런저런 이유로 직장을 그만둬버리고 자취방에서 뒹굴대던 어느 날, 잊고 있던 캠코더가 떠올랐다. 어딘가 박혀 있던 캠코더를 찾아내 컴퓨터를 켜고 메모리카드에 들어 있는 영상들을 차례차례 확인했다. 잡다한 영상들 중간에 본가에 내려갔을 때 찍어둔 영상들이 있었다. 시루(개) 영상이 많았다. 귀여웠다. 퇴근 시간에 맞춰 엄마를 마중 나갔던 영상도 있었다. 엄마는 뜬금없이 나타난 날 보고 놀라며 왜 왔냐고 뭐라고 했다. 엄마의 이런저런 잔소리를 들으며 함께 집으로 같이 걸었다. 다음 영상에선 엄마가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아 이런 거 만들지 말라니까~ 라고 칭얼대기도 하고 생활의 달인, 의 성우마냥 비법 소스엔 과연~? 마늘간장고추고춧가루양파~ 여기서 끝이 아니다~ 당귀미더덕후추~ 라고 내레이션을 깔아대기도 하다가 결국 주방에서 쫓겨났다. 거실에선 아빠가 시루에게 리모컨 가져오는 법을 훈련시키고 있었다. 그러다 직접 가지러 갔다.


캠코더가 티비 다이 위에 놓였다. 렌즈는 식탁에 앉아 있는 엄마 아빠를 풀샷으로 비췄다. 엄마가 뭐 이런 걸 찍어, 라고 말했다. 나는 그냥 찍어놓는 거예요, 라며 식사 자리에 합류했다. 그렇게 식사가 시작됐다. 엄마는 내 밥그릇에 자꾸 자신의 야심작들을 올려놓으며 왜 안 먹냐고 잔소리를 해댔다. 나는 내가 애냐고, 먹고 있다고, 그리고 이렇게 쉴 새도 없이 주면 어떻게 다 먹냐고 따졌다. 아빠는 나와 엄마의 티격태격에 허허 웃었다. 시루는 뭐라도 받아먹어보려고 식탁 주위를 분주히 돌아다녔다. 식사는 그런 식으로, 내가 몇 번이나 겪었던 방식으로 쭉 이어졌다.


나는 한동안 그 영상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그러다 불현듯 눈물이 맺혀서 흑흑댔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도 딱히 방법이 없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내 생각에 세상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 나를 가장 아끼는 사람에게 자신의 위기를 가장 먼저 알리는 인간. 그리고 그 사람에게만큼은 절대로 숨기려는 인간. 나는 아무래도 후자 쪽이었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나의 휘청임을 전부 다 알게 된대도, 엄마 아빠에게만큼은 들키고 싶지 않았다. 내가 집을 떠나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들은 지겨울 정도로 내게 물었다. 밥 먹었냐고, 별 일 없냐고, 그리고 엄마 아빠가 뭐 도와줄 거 없냐고. 나는 종종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여자애들이랑 말을 못 하겠다고, 여자친구가 생겼는데 용돈 좀 더 줄 수 있냐고 뭐 그런 것들. 하지만 언젠가부터 멈췄다. 아마 내 미래를 밝히던 조명들이 하나 둘 꺼져가고 있음을 알아차린 순간부터, 그러니까 그들이 나에게 기꺼이 내주는 것에 대한 나의 상환 능력이 턱없어질 거라는 걸 직감한 순간부터, 나는 엄마 아빠의 물음에 거짓말을 해댔다. 잘 살고 있어요, 돈 많아요, 과일 많이 사 먹고 있어요, 일 안 힘들어요. 어쩌면 엄마 아빠가 지금의 나를 가장 모르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들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나의 휘청임을 알아차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나의 휘청임을 알게 되는 즉시 달려와 나 대신 휘청이려 들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말도 없이 반찬이 가득 담긴 택배가 도착하면 때때로 그들에게 화를 내기도 했다. 고맙다고 잘 먹겠다고 말하면 또 택배를 보내올 것만 같았다. 그들에게 갚아야 할 빚이 늘어나는 게 싫었다. 나는 이미 원금은 커녕 이자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딱히 희망차진 않았다.


그러니까, 생각해보면 엄마는 별 다른 방법이 없었다. 어릴 때와는 달리 그들이 해결해줄 수 있는 나의 문제들이 거의 멸종해버리기도 했거니와, 나는 나대로 그들의 도움이라면 그게 뭐가 됐든 거부해내려 애쓰고 있었다. 엄마는 언젠가부터 내가 본가에 내려가면 음식들을 잔뜩 해댔다. 집에 있는 나를 시도때도 없이 식탁에 붙잡아놓곤 자꾸만 뭘 먹이려 들었다. 


식탁엔 매번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이 차려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 쪽에서 내가 좋아한다고 믿고 있는 음식들이었다. 내가 언젠가 밥 한 그릇을 다 비워냈을 때 때마침 상에 차려져 있었을 메뉴들. 엄마는 내가 하지 말라고 하는 것들은 맨날 까먹으면서도, 그런 메뉴들은 또 귀신같이 기억하고 있었다. 종종 틀리면 우겼다. 너 왜 간장게장은 안 먹어! 나 간장게장 싫어해요. 너 좋아하잖아! 좋아해본 적 없는데. 좋아했다니까!


본가에 내려갈 때면 꼭 캠코더를 챙긴다. 핸드폰의 통화 녹음은 항상 켜놓는다. 어느 날 내게 엄마가 없어져버린다면 나는 무엇을 가장 그리워하게 될까. 아마도 엄마가 기여코 차려내던 음식들. 그리고 끊이지 않던 엄마의 잔소리들.


내가 지금 그들에게 내뱉고 있는 거짓말들이 시간이 지나 그저 재밌는 에피소드가 되었으면 좋겠다. 어떤 상황을 웃으며 말할 수 있게 됐다는 건 결국 그곳에서 잘 빠져나왔다는 걸 테니까. 그리고 언젠가 나의 고백을 들은 엄마가 깜짝 놀랐으면 좋겠다. 너는 다 큰 애가 왜 거짓말을 하고 그랬냐고 잔소리를 해댔으면 좋겠다. 엄마가 놀라지 않는다면, 나는 많이 미안해질 것 같다.


열심히 해야지. 엄마를 얼른 은퇴시켜버려야지. 아빠한테 랜드로버를 뽑아줘야지. 이번에 내려가선 밥을 두 그릇 먹어버려야지. 갈비찜이 너무 맛있어서 서울로 돌아가기 싫다고 말해야지. 꼭 그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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