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다녔던 직장에 나한테 총이랑 총알이 세 발 있잖아? 그럼 내 옆자리 선배한테 세 발 다 쏴버리고 총으로도 계속 팰 거야, 라고 말하던 지인이 있었다. 지금은 뭐 지인도 아니게 됐지만. 물론 정말 쏴버려서 그렇게 된 건 아니고 여러 사정이 있었다. 이건 좀 다른 얘기지만, 언젠가 그 선배가 정말 총에 맞는다면 용의선상을 좁히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어제 본 영화에서는 주인공의 손에 나쁜 놈들이 참 많이도 죽어나갔다. 총으로도 칼로도 맨손으로도 그냥 막 죽였다. 어떻게 사람을 죽일 수가 있어.. 라는 생각은 딱히 들지 않았다. 이미 영화 전반부에 걸쳐 주인공의 가슴 아픈 서사가 잔뜩 펼쳐진 후였다. 그러니까 주인공은, 충분히 그럴 만했다. 아니 저 자식을 저렇게 신사적으로 죽여준다고? 당신은 부처입니까? 더 고통스럽게 죽여! 저 놈은 니 모든 걸 빼앗아 갔다고! 나는 어느새 주인공의 살육을 열렬히 응원하고 있었다.
영화의 후반부, 주인공은 나쁜 놈의 본거지에 쳐들어갔다. 그곳에 있던 수많은 조무래기들이 화면에 잡혔다. 대부분 처음 등장하는 얼굴들이었다. 나는 그들에 대해 아는 게 없었지만, 뭐 놈들이 나쁜 놈과 한 패라는 건 확실해 보였다. 나는 곧바로 판결을 내렸다. 이 죽어 마땅한 놈들!
주인공과 녀석들의 혈투가 시작됐다. 주인공은 화려한 액션을 선보이며 나쁜 놈들을 쏘고 찌르고 팼다. 오직 주인공의 손에 죽기 위해 존재하는 녀석들이 프레임에 들어오자마자 쓰러져나갔다. 통쾌한 기분이 들었고 통쾌한 기분만 들었다. 패거리 중 한 놈이 비겁하게도 주인공의 뒷편에서 칼을 휘둘렀다. 놈의 칼부림에 주인공의 어깨가 얕게 베였다. 미친! 주인공이 곧바로 녀석을 붙잡아 여러 번 칼침을 놓았다. 얍삽한 놈의 최후로 딱 어울리는 죽음이었다. 이거야 통쾌했다.
수많은 죽음이 계속됐다. 너무 반복되는 죽음에 슬슬 지루해질 때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녀석들은 어쩌다 여기에 있게 된 걸까. 저 중에 무고한 사람이, 아니면 주인공처럼 삶의 풍파에 밀리고 밀려 할 수 없이 이곳에 합류하게 된 사람도 있으려나. 그러나 그들이 죽어 마땅함, 을 넘어설 일은 없었다. 그들에게 허락된 사연은 없었으니까.
나는 차례차례 죽어나가고 있는 녀석들에게 각자 이 지경에 이르게 된 사연을 붙여줘봤다. 최대한 안타깝고 어쩔 수 없었던 사연으로. 사실 이 조직에 잠입해 있던 경찰이었다든가, 용역 업체에서 하필 오늘 머릿수만 좀 채우라고 보낸 아저씨였다든가, 키우던 개가 나쁜 놈에게 붙잡혀 있는 상황이라든가, 어 쟤는 우리 반 반장이었던 용식이..? 용식이는 안 돼! 용식이는 진짜 착한 애라고! 음.. 이거야 주인공이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래도 사전 조사를 하고 나쁜 놈들만 죽여야지 그냥 여기 있다고 다 썰어대면 어떡하나.. 그러다 더 이상 붙여줄 사연이 생각나지 않아 그만뒀다. 그러자 녀석들은 다시 통쾌함만을 남긴 채 쓰러져갔다. 아무도 안타까워하지 못할 죽음들이었다.
*
헤어질 결심, 을 봤다. 서래와 해준의 사연을 두 시간가량 지켜보면서, 나는 제발 그들이 그냥 다시 만나 행복하게 살길 바랐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갔다. 감독이 몹시 미워졌다.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이야기를 영화가 아닌 뉴스 헤드라인으로 접했다면 어땠을까.
밀입국 조선족 여성, 한국인 남편 두 명 살해 후 잠적해. 살인 혐의 덮어준 경찰과 내연 관계 정황도.
사랑에 눈먼 민중의 지팡이. 한국인 남편 살해한 밀입국 조선족 여성 혐의 덮어줘.
아아, 이런 죽어 마땅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