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이 들어서는 곳
어느 날 고객님이 내게 말했다.
"나가세요! 더 넓은 세상으로!"
우리는 2년 전 남양주 진접이라는 낯선 동네에 와서 자동차 공업사 겸 자동차 검사소를 운영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라는 건 남편과 나를 말한다.
남편은 자동차 검사와 수리를 하고, 나는 접수와 회계를 본다.
종종 접수대에 앉아 있는 내게 공업사 밖으로 나가볼 생각은 없냐고 묻는 고객님들이 있다.
아마 내 인상이 자동차와는 영 거리가 있어 보여 그런가 보다.
사실 그건 맞다. 적어도 2년 전까지는 그랬다.
15년 전 처음 우리가 만났을 때 남편은 시아버님 공업사에서 세차 일을 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 사실을 내게 밝힌 것은 아니었지만 만나다 보니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시아버님이 공업사를 인수하시고 힘들어하시자, 남편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아버님을 돕기 위해 세차부터 시작했다고 했다.
넥타이를 매고 데스크에 앉아 컴퓨터 앞에서 일하던 그는 여름에는 티셔츠에 소금이 맺히고 겨울에는 추위와 뜨거운 물 덕에 단단히 얼어있는 바지를 입고 일했다.
일이 끝난 후에는 대학생이던 내가 늦게까지 작업실에 남아 작업을 하고 있을 때마다 동기들과 함께 먹으라고
먹을거리를 잔뜩 사 오기도 했었다.
동기 중에 누군가는 나를 만나기 위해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서둘러 온 그의 지저분한 작업복을 보고 게임 속 npc 같다고 놀리기도 했다.
이상하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그때 나는 아무것도 창피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 중 우리의 결혼을 찬성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이듬해 우리는 결혼했고 아이 셋을 낳았고 15년째 부부로 평범하게 잘 산다.
로맨틱한 무드에도 꽝이고, 365일 크록스만을 고집하는 패션 테러범이지만, 그는 훌륭한 남편이다.
밤늦게 작업실에 찾아왔던 그때처럼 그는 언제나 나의 초강력 슈퍼파워 지지자, 동료, 팬, 연인이기 때문에.
10여 년 전 없는 살림에 작은도서관을 차리겠다고 했을 때에도, 코로나 이후 문을 닫게 되었을 때도 남편은 질책하지 않았다.
그때 남편이 쌓은 덕뿐인지 나 역시 이사 와서 생소한 자동차 용어들을 알아가며 자동차 정비와 검사에 대해 배우는 일이 즐거웠다.
작년엔 자동차 정비기능사 자격증을 따느라 시커먼 엔진오일로 뒤범벅된 손을 화장실에서 벅벅 닦으며, 늘 시커멓던 남편의 손톱 밑을 떠올리고선 코를 훌쩍이기도 했다.
2년쯤 지나 공업사가 제법 안정화가 되었고, 검사장을 찾는 손님들 중 카페를 묻는 분들 많아 카페 건물을 한편에 짓게 되었다.
검사장의 고객 대기실에도 이미 많은 책을 꽂아두었던 나는 자연스레 북카페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남편은 늘 그랬듯이 지지해 주었다.
그게 바로 책방에 대한 나의 오랜 로망을 실현하게 된 계기이자, 자동차공업사 안 책방이라는 낯선 조합이 탄생한 경위다.
상호명은 무화과 책방인데 인테리어는 인더스트리얼 무드로 진행하게 된 까닭이다.
책 도매 업체에 가입하면서 자동차공업사 안 책방이라고 하자 대뜸 묻는다.
"아.. 큐레이션은 가능하시겠어요?"
자동차 정비업에 대해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선입견에 대해서는 이미 결혼 생활하면서 익숙해졌다.
"네! 전에 작은도서관을 운영한 경험이 있어서 그건 자신 있습니다."
자신 있을 것까진 없는데 힘이 잔뜩 들어가게 말했다.
그 뒤로 승인 절차는 신속하게 진행됐다.
우리 공업사(검사소)가 워낙 외진 곳에 있는 데다 자동차검사나 정비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은 '누구나'이긴 하지만 책을 목적으로 오는 이들은 아니기에 책 판매가 활발할 거라는 기대는 없다.
수익이 생기더라도 대부분 책이 아닌 다른 영역들에서 생길 것이다.
다만 내가 사는 동네에도 좋은 책을 판매하고, 책과 관련된 강의를 여는 책방이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다.
참고로 자동차 용품도 판매할 예정이다!
사욕을 챙기는 느낌이긴 하지만 예쁘고 실용적인 자동차 용품들도 계속 찾아보고 있다.
무화과 관련된 서적만큼 자동차 관련된 서적들도 꽂아놓을 거다.
공대생과 미대생의 만남으로 시작한 남편과 나의 사이는 각각 자동차공업사와 책방 사장의 만남으로 진화했다.
우리가 얼마나 다르게 살아왔고, 현재에도 얼마나 다른지 생각하면 웃음부터 난다.
자동차공업사 안 무화과 책방도 그만큼 재밌을 거다.
오는 분들도 부디 즐거운 공간이 되도록 애써보겠다.
오늘의 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