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책방 탐방 : 취향의 섬 북앤띵즈(제주 서귀포시)
제주도의 남단, 서귀포에는 좋은 서점들이 여러 군데 있다.
이번 여행에서는 들를 수 있었던 서귀포 책방은 취향의 섬 북앤띵즈다.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다 멈춘 곳에서 거대한 나무들이 우거져 있는 입구를 만나볼 수 있는데, 책방으로 가는 길에 놓인 작고 귀여운 나무 안내판들 덕분에 동화 속 세계로 걸어 들어가는 듯했다.
책방에 들어서면 왼편의 귤밭 쪽으로 난 시원한 통창과 창가의 가득한 책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귤밭 뷰를 지닌 책방이라니. 정말 제주도스럽다.
귤이 노르스름하게 익어갈 즈음의 이곳을 상상하면 제주도에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이 새록새록 솟아난다.
곳곳에 사장님의 유쾌한 손글씨가 붙어 있는데 나와 글씨체가 비슷하셔서 깜짝 놀랐다.
아기자기한 장식들과 사장님의 애정 담긴 손글씨들이 모여서 조용히 스쳐 지나가는 나와 같은 내향형 방문객들은 혼자서 킥킥대며 한참 둘러볼 수 있게 안내한다.
지금은 주민등록증 발급을 위해 개명을 해서 사라진 글자이지만 내 이름에는 원래 '믜'라는 글자가 들어간다. 학창 시절 명찰이나 출석표를 만들 때 글자가 깨져버려서 선생님들을 곤란하게 했던 글자인데, 그 글자를 쓰고 있는 작가가 있어 반가워 데려왔다.
둘째 딸은 [나의 비거니즘 만화]라는 책을 구매했다.
두 권의 책에서 볼 수 있듯이 전체적인 큐레이션은 젊고 유쾌한 인상이다.
덤으로 받은 엽서와 책갈피 또한 소소한 기쁨이었다.
취향의 섬에는 책 말고도 여러 가지 굿즈를 판매하고 있다.
말린 고사리부터 마크라메 책 걸이, 제주도 관광상품도 판매하고 계신다.
마침 부모님과 함께 한 여행이었기에 아버지를 위한 카메라 스트랩과 어머니를 위한 화산석 팔찌를 선물로 구입했다.
마크라메 책걸이는 언젠가 꼭 모셔오리..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사장님은 자리를 비우셨고, 대신 사장님 아버님께서 능숙하게 계산을 도와주셨다.
책방의 2층은 민박집으로 되어 있는데 아버님께선 이 민박의 사장님이시다.
우리 집 막내는 제주도 도착해서부터 벼르고 벼르던 제주 화투를 여기서 구입했는데, 알고 보니 취향의 섬 사장님께서 직접 제작하신 거라고!
화투가 잘 되어 이곳저곳에서 유사품이 많이 만들어졌다고 하니 제주의 일러스트가 담긴 화투를 구입하고 싶은 이들이라면 이곳에서 사는 것을 권한다.
다녀온 뒤 나의 취향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내가 좋아하는 키워드들의 단순한 나열을 넘어서 나라는 사람은 어떤 취향을 품고 있나.
어떤 것이 '진정한 나'일까.
취향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
풀이를 보니 취향의 섬에서 보았던 전면책장 아래의 '제주도 특산물'이라고 적힌 스티로폼 뚜껑이 생각 났다.
의외의 조합에 현장에서 남편과 파하하~ 웃었는데 그 스티로폼 뚜껑으로부터 취향에 대한 산뜻한 답을 얻었다.
대개 모든 사람들은 여러 개의 자아를 가지고 살아간다.
어디서든 다름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직장인으로서, 자식으로서, 부모로서, 친구로서의 역할을 해낼 때의 모습을 각기 달리하여 살아간다.
자신도 모르게 여러 개의 부캐들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 부캐들이 모여 예상외의 매력을 만들어 내는데, 그것이 어떻게 보면 취향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때때로 지나치게 진지하고, 어떤 때는 한없이 가벼우며, 기분 좋을 땐 넓은 마음을 가진 것 같다가 한없이 쪼잔해지기도 하는 사람이다.
어쩔 수 없이 모든 게 나다.
다양한 자아를 미움 없이 차별 없이 너그럽게 품어 화초 키우듯이 골고루 건강하게 키워나갈 때, 비로소 취향이라는 정원이 가꿔지는 것이 아닐까.
새벽빛을 받아 깨어나는 중인, 안개가 자욱한, 짙은 초록의, 이슬에 젖은 풀 내음 가득한, 가만히 눈을 감고 홀로 침잠하게 되는 그런 정원.
그런 정원을 품은 이가, 그런 책방을 내어주는 이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