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일어나기 싫은 계절이다. 오늘도 6시 반쯤 일어나 둘째 옆에서 15분, 셋째 옆에서 또 15분 꼭 껴안고 누워있는다. 뒤에서 꼭 껴안고서 아이들의 따끈따끈하고 고소한 정수리 냄새를 실컷 맡는다. 아이들은 어쩌면 이토록 무해할까. 어느덧 한해의 마지막 날이다. 7시쯤 겨우 고 말랑말랑한 것들 사이에서 나와 올해의 마지막 아침밥을 차린다.
영하 10도의 출근길, 바깥 신호등 앞에는 학교에 가려는 아이들로 바글바글하다. 하나같이 오늘 날씨를 염려해 누군가 마련해 주었을 두툼한 패딩을 걸쳐 입고서 친구와 깔깔대며 서 있다. 아이들의 곁을 스쳐지날 땐 그들이 받고 있는 사랑이 느껴진다. 아무리 우악스럽고 개구진 남자 아이라 하더라도 곁에서 포근한 섬유유연제 향기를 풍기며 지난다. 각자 받은 사랑의 증거를 품고서 차가운 공기를 뚫고 학교로 향하는 아이들을 보니 마냥 기특하다. 이유 없이 마음이 뿌듯해진다.
출근 후에는 판정실에서 갓 내려진 따뜻한 커피 한 잔을 가지고 내 자리에 앉아 텔레비전을 튼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울음소리, 악 지르는 소리에 소스라치지 않기 위해 가장 만만한 뉴스 채널을 틀어놓는다. 그 외에 사람들의 대화 소리, 어린이용 농구 골대에 골을 넣어보는 사람들의 소리와 부와앙하고 배기가스 검사를 위해 엔진에 부하를 거는 소리, 경음기 작동을 체크하기 위해 힘없이 빠아앙하고 이따금씩 울리는 클락션 소리가 있다.
삼삼오오 모여 앉은 지인들끼리 내는 큰 웃음소리를 듣는 것은 내 작은 기쁨이다. 버스 기사님들의 재치 넘치는 입담 섞인 대화와 호쾌한 웃음소리도, 친구들끼리 속삭이는 소리도 좋다. 베스트는 가족들이 함께 모여 웃는 소리다. 나는 그 소리를 가장 사랑한다. 오늘의 가족은 바둑판 앞에 모여 앉아 한참을 웃었다. 친한 친구들처럼 작은 것에서도 즐거움을 발견해 왁자지껄히 웃었다. 접수대 뒤에서 나는 기쁨과 질투를 동시에 느끼며 그들을 향해 선망의 귀를 열어두고 있었다. 검사가 끝나고 그들이 떠날 때에 나는 약간 쓸쓸했다.
점심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는 방학식을 끝내고 집에 일찍 돌아온 아이들이 전화를 걸어왔다. 씩씩하게 엄마 없이 자신들끼리도 밥을 먹을 수 있다는 말에 괜히 조금 더 쓸쓸해졌다. 하지만 이내 구석진 홀가분한 마음을 끄집어내 열심히 감자뼈를 바르며 남은 시간을 보냈다. 식사 후 남은 10분 중에 5분 정도는 잠시 햇살이 비치는 차에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고, 5분은 어김없이 찾아온 동네 강아지에게 미리 준비해 둔 간식을 하나 물려주고 추가 예약 체크리스트를 전달하며 오후 근무를 준비했다.
검사 소요 시간을 물어보고선 빨리 된다며 좋아하는 사람과 오래 걸린다고 찌푸리는 사람들, 수리를 기다리는 동안 다시 수다에 집중하는 사람들이나 언짢은 표정으로 왜 부적합인지 연거푸 묻는 사람들, 기다리는 동안 건네는 꿀물을 기쁘게 받는 사람들과 기쁘게 받아 들고선 떠날 때에 자리에 남겨두고 가는 사람들. 수화기 너머 급한 목소리, 친절한 목소리 또는 짜증 난 목소리와 화색이 도는 목소리들. 검사가 끝났다는 방송을 듣고 대기실을 떠나는 고객님들이 급하게 끼워 넣듯이 전하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들. 그 표정들과 목소리들이 남은 오후 근무를 채웠다.
책은 두 권을 팔았다. 한 권은 제님 작가의 [겨우 존재하는 아름다운 것들]. 좋아하는 작가냐는 나의 질문에 구매자는 제목이 흥미로워 골랐다고 답했다. 겨우 존재하는 것들을 발견하고, 쓰고, 그렇게 씌여진 책을 누군가는 구매하는 그 순환에 기쁘게 안도했다. 읽었던 책이기에 반 가격에 내어 드린다고 하니 횡재했네 하고 툭 건네온 한마디에 또 오늘의 피곤을 덜었다.
또 한 권은 [그래서 우리는 음악을 듣는다]. 구매 이유는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책방에 음악과 관련된 책이 [드뷔시의 파리:벨 에포크 시대의 초상]과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까지 총 3권이 있었는데 이틀 동안 모두 팔렸다. 음악과 뇌과학, 클래식, 영화음악과 뉴에이지까지 장르도 다양한 이 책들이 음악을 사랑하는 각자의 품으로 안겨갔다니. 엔진 굉음으로 가득 찬 검사소 일상에 작은 환희가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사업자에게 제공되는 무료 서비스라고 해서 동의를 했더니 매일 오늘의 책방 매출이 0원이라고 친절히 알려준다. 오늘의 판매는 더군다나 새해 첫날부터 그 굴욕을 겪지 않게 해 줄 작은 구원의 손길과도 같았다.
집에 돌아오니 아들이 얇은 간절기용 패딩에 조끼를 걸쳐 입은 모습으로 집에 들어온다. 화들짝 놀라 춥지 않았느냐고 채근하는 엄마에게 “엄청 따뜻했어!”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당당하게 외치는 아들이다. 다 헝클어지고 꽤 길어서 자꾸 눈까지 내려오는 파마머리를 손끝으로 휘리릭 넘기며 이내 바쁜 자신의 세상에 집중한다.
저녁과 가족과의 시간을 해치우고 이윽고 침대에 삐딱하게 앉아 스탠드 아래 노트북을 두드리며 오늘과 지나간 365일을 더듬어 본다. 나는 성실했고 때로 불성실했고, 호흡 가쁜 웃음을 터뜨렸고 때로 눈물로 눈이 퉁퉁 부었으며, 시작하는 기쁨으로 가득 차올랐다가 피시식 꺼져버리기도 했고, 아이들을 꼭 안아주어 사랑을 터뜨렸다가 화난 목소리로 그 사랑을 거두어 가기도 했다. 때론 우쭐했고, 때론 겨우 존재했다.
돌이켜보면 그 어떤 날들에도 잠들 무렵엔 늘 엄마 곁에 자고 싶어 눈치보며 다가오는 아이들이 있었다. 오늘도 자정이 가까운 시간까지 노트북을 껴안고 있는 내 곁에 와 번갈아 가며 만든 것을 자랑하다, 새로 알아낸 것을 얘기해주고, 그러다 서로 장난을 치다가 큰 소리를 내서 엄마에게 혼이 났다. 그래도 결국엔 졸린 눈을 비비며 옆에 다가와 발치에 누워 자는 나의 아이들에게서 저녁밥과 섬유유연제 섞인 고소한 냄새가 난다.
한결같은 고 고소함에 얼굴을 묻고 바란다. 올해가 그러했듯 새해에도 작고 아름다운, 소소해서 아름다운 것들을 수집하는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우리가 그것에 담겨있는 작은 행복들을 기어코 찾아내는 이들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