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괴롭혔던 문장들이 키보드 위의 손가락들을 끌어내린다. 정돈되지 않은, 식지 않은 감정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괴롭다. 아니 에르노처럼 평평한 글쓰기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설픈 글쓴이로서 소용돌이치며 제발 자신을 좀 봐달라고 소리 지르는 감정들 앞에서 할 수 있는 글쓰기는 두 가지뿐이다. 거대한 감정에 올가미를 씌워 타자로 욱여넣거나, 그 옆에 찌그러져버린 쌀알 같은 미미한 군소 감정과 생각들에 돋보기를 들이대고 애써 더듬어 보는 것이다. 방법은 두 가지여도 결론은 하나다. 이도저도 아닌 글이 씌여버린다.
[단순한 열정]에서 아니 에르노는 말했다. 알랭 들롱을 닮은 그 외국인 연인에 대한 감정들을 글로 써 보여낼 수 있는 이유는 그 사건에서 충분히 멀어졌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그녀는 그토록 세밀하면서도 덤덤하게, 마치 모든 살인사건이 종료된 후에 현장에 나타난 베테랑 탐정처럼 그 감정들을 글로 훑어낸다.
그에 반해 오늘의 감정이 내일의 감정이 되지 않길. 어제의 감정에 책임 지지 않은 채로 불확실한 미래의 개선된 상황만을 바라며 전전긍긍하는 나는 얼마나 초라한가. 또 고개를 푹 숙이고, 초코 비스킷을 입 속에 연속해서 밀어 넣으며, 다이어트에 대한 결심을 상기시키는 주변의 조언에는 코르티솔을 효율적으로 상쇄시키는 노력 중이라는 답을 죄의식 없이 붙이고, 혼자서 세상의 우울을 다 끌어안고 무의미하고 비효율적인 시간들을 채운다.
새해, 새 출발, 새 다짐, 새로운 그 모든 것이 시작되기 며칠 전, 오랜 시간에 걸쳐 가슴을 찌르고 있던 칼날 같은 말들을 모두 끄집어내어 내게 뱉은 이에게 내던져 보였다. 충격적 이게도 그 사람은 그런 말을 내게 했던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를 쿨하게 비웃고, 멋지고 행복한 일상을 공유한다. 그러면 모든 일이 없던 일이 될 것처럼. 둘 사이의 너무나 진부한 클리셰. 그걸 또다시 예측하지 못하고 눈물로 매달린 미련한 내게는 벌로 과다출혈만이 남았다. 산다는 건 정말이지 지독한 일이다.
엄마가 너무 불쌍해. 엄마 얼마나 힘들었어. 기어코 딸아이에게 동정을 받고야 만다. 사실 그건 내가 바라던 것이었을까. 볼썽사납고 못났고 흉하다. 그 가느다랗고 보드라운 관대한 팔 안에 안겨 이 순간만을 바랐던 것처럼 위로받고야 말았다. 정말 지독하다. 한해의 끝과 시작이.
달력을 뜯어내듯이 어리석은 굴레도 도끼로 찍어내 던져버릴 수만 있다면. 그러나 그런 어리석은 것들은 언제나 보란 듯이 씩씩하게 굴러간다. 행복하자 행복할 수 있어 행복할 자격이 있어 다정하게 외치는 모든 다정한 에세이들은 마음속에 결코 해내지 못할 밀린 숙제처럼 쌓여가고, 이제는 애써 그런 글들도 읽지 않으며 가망 없는 사회부적응자로 어서 확정 분류되기를 바라는 고집불통이 되어 간다. 작년의 마지막 글은 행복하자 그리고 느낌표. 올해의 첫 글은 행복은 가능한가 그리고 물음표. 어설프게 찍은 행복의 느낌표를 배신하며 작년의 나를 배반하며 올해의 글을 쓴다.
배반과 우울의 글을 쓸 때 샘솟는 에너지는 얼마나 강렬한지. 그것이 내 주식이고, 내 세상이고, 그래서 영영 이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도, 벗어나서도 안될 것 같은 기분에 도취된다. 행복에 대한 어설픈 가능성보다 불행의 확신이 나를 더 안도시킨다. [모순]에서 고난을 마주할 때마다 어머니가 뿜어내던 그 에너지는 얼마나 상쾌한지. 그래, 불행은 강한 중독성을 가지고 있지. 또 깨닫는다.
불성실히, 불온히, 불행히, 불완전히 새해를 시작한다. 미리 선포해 둔 불완전함의 근거를 한번 더 찾아내었을 때 나는 기뻐해야 하나 슬퍼해야 하나 하다 안도해버리고 말았다. 다수가 희망을 말할 때 그림자에 서서 소수의 뿌듯함을 느끼고 말았다. 행복에 대해서는 당당히 말할 수 없어도 우울에 대해서는 바빠지는 손 끝에 만족하고 말았다.
누군가는 이렇게 새해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