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끈하고 얼큰한 감자탕 뼈를 집중해서 뜯는 동안, 눈은 어느새 차들이 속도를 늦춰야 할 정도로 소복히 쌓였다. 아이들은 이모와 영화처럼 펑펑 쏟아지는 눈을 맞으러 감자탕 집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나와 남편은 고작 내일 아침 공업사 마당과 검사소 입구로 올라가는 비탈길에 한가득 쌓여 있을 눈을 치울 걱정을 하고 있었지만, 아이들은 쏟아지는 눈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풍경과 가득 쌓인 눈을 온전히 기쁘게 즐겼다. 그 표정에서 쏟아지는 행복함이 평범한 저녁을 특별하게 바꾸어 주었다.
호주에서 사는 여동생네가 우리 집을 방문했다. 동생이 두 돌을 앞둔 어린 딸을 데리고, 둘째까지 임신한 몸으로 따뜻한 호주를 뒤로한 채 추운 한국을 찾은 데는 명확한 목적이 있었다. 한 번도 눈을 본 적이 없는 남편에게 눈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한국에 머무르는 3주간 눈이 오지 않아 못내 아쉬웠는데, 출국을 이틀 앞두고 기적처럼 눈이 내렸다.
눈은 저녁식사를 하러 나가는 길에 조금씩 흩날리더니 초심자에게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듯이 이내 함박눈이 되어 펑펑 쏟아졌다. 묵묵히 자리하고 있었던 모든 가로수들이 크리스마스트리로 변신하고, 눈이 담뿍 쌓여 환상적이 모습이 된 모든 사물들이 동생 가족을 축복했다. 어린 조카 역시 눈이 처음이긴 마찬가지여서 식당에 오기까지 자동차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던 렛잇스노우를 짧은 혀로 열심히 외치며 꼬막손이 새빨개지는 줄도 모르고 한참 신나게 눈을 쥐었다.
남편과 나에게는 눈이란 고된 노동의 예고장이다. 눈이 내린 다음 날엔 일찍 공장에 나가 마당에 쌓인 눈과의 싸움을 벌여야 하기 때문에 지금의 동네로 이사 온 후로 눈은 골칫거리였다. 운영시간 내내 눈이 쏟아지는 경우엔 중간중간 나가 눈을 치워야 해서, 그나마 간밤에 눈이 쌓이는 경우는 이제 상대적으로 가뿐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렇게 버겁게 느껴지던 눈이 동생가족에게 평생 잊지 못할 시간으로 자리 잡는 것을 보았다. 첫 경험과 그것을 지켜보는 순간은 얼마나 특별한지. 남편과 나 역시 아주 오랜만에 외투가 다 축축해지도록 즐겁게 눈을 맞았다.
어느새 우리 집 삼 남매는 꽤 자라서, 걸음마를 한다던지, 첫 이가 난다던지 혹은 빠진다던지 하는 인상적인 처음들이 잠잠해졌다. 출퇴근과 등하교, 그 후엔 각자의 숙제와 잔업을 하기에 각자 바빠서 함께하는 시간은 가파르게 줄어들어 왔다. 그러다 어린 조카와 환희 가득히 첫눈을 맞는 동생 부부의 모습은, 허리 굵은 모래시계처럼 정신없이 지나가는 우리 가족의 일상을 들여다보게 이끌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미처 주워 담지 못한 근래의 첫 순간들에 대해 생각이 미쳤다.
처음으로 떠오른 건 춤이다. 특출 난 춤꾼이 없는 우리 집에서 춤이란, 우악스런 몸짓으로 서로를 웃기기 위한 목적으로 주로 사용되곤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유난히 모두가 지쳐있던 그런 날, 누군가 우아한 클래식을 재생했고, 소파에 축 늘어져 있던 나는 벌떡 일어나 남편에게 처음으로 춤을 청했다. 운을 띄웠다시피 춤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우리는 그저 손을 맞잡고 마주 선 채 박자에 맞춰 뒤뚱뒤뚱 걸으며 빙글빙글 거실을 돌았다.
낯선 모습이 흥미로웠던지 둘째 셋째가 웃음을 터뜨리며 서로 춤을 추겠다고 앞다투어 줄을 섰다. 나는 순식간에 춤 상대를 셋이나 맞이한 인기 있는 사교계의 귀부인이 되어 10분이 넘도록 상대를 바꿔가며 뒤뚱뒤뚱과 빙글빙글을 반복했다. 이 우스꽝스러운 광경을 보고선 큰딸은 곧장 시니컬한 비웃음을 날렸지만 이내 우리의 댄스파티에 합류해 함께 빙글빙글 돌았다.
올해는 특히 아이들끼리만 처음으로 도전한 것들이 많은 해이기도 했다. 어느 날 큰아이가 일요일에 동생들을 데리고 대학로에 다녀오겠다고 선언했다. 학교에서 지하철을 타고 놀러 다녀온 대학로가 동생들도 놀기에 괜찮다 싶었는지 일요일 아침 일찍 둘을 데리고 집을 나섰다. 큰아이의 첫 도전의 수고로움을 거들기 위해 나는 둘째 셋째의 교통카드를 구입 충전해 주고, 다 같이 보기 좋은 뮤지컬을 예매해 주었다. 셋은 해가 지고 나서 한참 뒤에야 고되고도 신난 얼굴로 들어왔다. 큰 아이는 막내의 돌발행동 때문에 힘들었다며 투덜거리고선 그래도 나쁘진 않았다고 덧붙여, 가족 내에서 츤데레 캐릭터를 획득했다.
그 뒤로 자신감이 붙었는지 가끔씩 셋이서 롤러스케이트나 썰매를 타러 간다던지, 청소년 센터에 간다던지 하는 일들이 꽤 생겼다. 크리스마스트리도 처음으로 아이들끼리만 꾸몄으며, 남편과 내가 둘 다 저녁 스케줄이 있어 미처 저녁밥을 챙겨주지 못할 때엔 셋이 마라탕집에서 가서 꿔바로우까지 곁들여 저녁을 해결하는 것이 종종 돌아오는 운 좋은 날처럼 자리 잡기도 했다.
다음은 개인별 처음이다. 큰 아이는 처음으로 간장계란버터비빔밥을 요리해서 동생들에게 호평을 받았으며, 처음으로 예비중학생들을 상대로 학교 도서부 안내를 맡았고, 처음으로 친구들과 유튜브 계정을 만들었으며, 축제에서 플룻을 연주했다. 둘째는 배움에 도전하는 해였다. 세계사와 논술에 관심이 생겨 공부를 시작했고, 오답노트와 독서록 그리고 일기를 꾸준히 작성했으며, 영어책 읽기 챌린지에 도전했고, 그간 함께 시청했던 드라마와 영화 목록을 정리해 냈다. 셋째는 처음으로 두 발 자전거를 혼자 탈 수 있게 되었고, 볼더링 대회에 나가서 클라이밍 등급을 받았으며, 우봉고 대회를 위해 처음으로 서울대에 가보았고, 파자마 파티에 초대되어 처음으로 친구네 집에서 혼자 자고 왔다.
이 앞 문단은 아이들의 매우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 적었다. 저녁밥을 먹으면서 아이들에게 물었더니 상을 치우고서도 한참 후까지 수많은 처음의 목록들을 얘기해 주었다. 막내는 신나게 얘기를 하다가 문득 올해 처음으로 혼자 씻을 수 있게 되었다는 자랑스러운 사실을 발견하고선, 말없이 옷가지를 챙겨 씻으러 욕실로 향했다. 그렇게 막내는 처음으로 엄마의 잔소리 없이 스스로 씻는 업적을 세웠다. 그 사이 누나들은 연초에 평산책방에서 처음으로 전 대통령을 만났던 대단한 경험부터 방탈출카페에 처음으로 가본 일, 집에 책장을 새로 들이거나 액자를 새로 건 소소한 집안의 변화까지, 머리를 돌돌돌 부지런히 돌리며 꼼꼼하고 방대한 처음들로 오디오를 채웠다.
사실 이번 가을은 좀 힘들었다. 올 4월 초까지 완공을 계약했던 공업사 내 건물이 시공사의 무책임한 태도로 다시 약속한 기한조차 연거푸 넘겼다.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했던 가을까지도 10월까지도 기어코 넘겨버렸을 때, 나는 대부분의 에너지를 시공사를 미워하고 증오하기 위해 쓰게 되었다.
남편은 나날이 신경질적이 되어가는 내게 영상을 보냈다. 거실에서 손을 맞잡고 우스꽝스럽게 뒤뚱뒤뚱거리며 춤추고 있는 나와 아들의 영상이었다. 매일매일은 거센 물살을 헤쳐나가는 고난의 연속 같아 좌절할 때도 오지만, 뒤를 돌아보면 분명히 헤쳐온 길에는 자신이 두고 온 징검다리가 놓여있다고. 걸어온 길의 힘을 믿어보자고. 그는 그렇게 나를 위로했다.
아이들이 쏟아낸 수없는 올해의 첫 경험 들은 우리의 대화 속에서 모두 첫눈처럼 빛났다. 모든 것들을 어렵지 않게 회상해 내는 아이들의 목소리에는 자부심과 재현된 기쁨이 가득했다. 올 한 해 애써 쌓아 온 모두의 징검다리도 비쳤다. 아니, 앞다투어 나열하는 다급한 목소리들은 돌다리까지 쌓아 올릴 기세였다.
때때로 무심히 지나간 일들을 하나하나 공들여 세어보는 일은, 가로수에 크리스마스 전구를 두르는 일과 같다. 무심히 지나치던 길을 따스히 밝혀 매서운 겨울바람 속에서도 포근함을 전달한다. 나는 올 겨울 처음으로 그것을 배웠다. 겨울이란 어둡고 춥고 건조하며 빨래거리가 배로 늘어나는 귀찮은 계절이다. 그럼에도 매년 지나간 열두달을 알알이 전구로 꿰어 트리에 두른 후 점등하는 상상을 하고 있노라면, 앞으로 조금 더 겨울을 사랑해 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