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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권고 정도의 삶

by 도라

삶에도 기준점이 명확히 있어 시정이 필요한 사항을 개개인에게 수치로 일러주는 세상이 있으면 어떨까. 어떤 것들이 검사 항목이 되고, 어느 정도가 검사의 기준치가 될까. 연락 가능한 친구 15명 미만 보유, 사회성 15% 미만, 유머 감각 2L 보충 필요, 불안 30% 과다, 열정 미점등으로 부적합 판정. 결과를 가지고 정비소로 간다. 정비공은 이것저것 들추어 보고 물어봐서 나를 수리한다. 다시 검사를 받는다. 합격한다.


나의 일터인 자동차 검사소에 오는 모든 차들은 검사가 끝나면 자동차 종합 기능 진단서라는 두장 짜리 종이를 건네받는다. 진단서에는 차의 어느 부분이 관리가 양호하고, 어느 부분은 수리가 필요한지 빽빽이 적혀있다. 모든 차는 적합, 부적합, 시정권고 셋 중 하나의 결과를 받아 든다. 적합 판정 진단서를 받은 차주는 시험에 합격한 것 같은 당당함과 미소로 검사소를 떠난다. 재검사 요망 도장이 찍혀 있는 부적합 판정 진단서를 받은 차주는 차를 수리해서 다시 검사소를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에 머쓱해하며 떠난다. 시정권고는 재검사까지 요할 사항은 아니지만 주의해야 하는 사항이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합격으로 분류된다.


자동차 검사의 명확성은 우습게도 가끔씩 내게 검사소를 찾는 차들을 질투하도록 만든다. 특히 생각이 복잡한 날에는 누군가 나를 탈탈 털어 문제점들을 수학 문제 채점하듯이 채점해 주었으면 좋겠다. 물론 고도로 정형화된 기준을 갖춘 사회는 여러모로 위험하다. 나처럼 겪어보지 못한 사회에 대해 터무니없는 기대와 환상을 품고 있을 사람들을 위해 올더스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를 보여주지 않았던가. 하지만 도무지 어떤 것도 갈피를 못 잡고 휘청휘청 거리는 날에 [멋진 신세계]를 읽는다면, 소마 한 알로 근심 걱정을 해치워 버리는 그 효율성에 분명 감탄하게 될 것이다. 이상주의자라는 말을 꽤 들으며 사는데, 누군들 알았겠는가. 너무 이상적인 것을 꿈꾸면 전체주의를 갈망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모든 질서에 죽음을!"


스테판은 셀로판지 바다 물결의 자연스러움을 손가락 끝으로 조정하며 말한다. 영화 [수면의 과학]의 주인공인 스테판은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는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비범한 상상력으로 나무가 심어진 헝겊 배와 1초 타임머신처럼 몽환적인 발명품과 이미지들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면 때문에 실생활에서 현실과 끊임없이 충돌한다. 스테판의 기발하고도 아름다운 상상력은 나의 20대에게 선망의 대상이었고 따가운 현실에 찔리고 도망치기를 반복하는 그의 불안함은 공감의 대상이었다. 어쩌면 모든 게 아슬아슬하고 불안하던 20대의 시기에 딱 맞아떨어졌던 영화여서 더 그랬겠다. 지금에 와서 그 아슬아슬함은 너무 아득하게 느껴져서 오히려 다시 갈망하게 될 정도다.


전형적인 피터팬 증후군을 사랑스럽게 연기해 낸 스테판 역의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도 매력적이지만, 상대역인 스테파니를 연기한 샤를로뜨 갱스부르의 매력은 완전히 나를 사로잡았다. 영화 속에서 스테판이 자신과 다르게 차분하고 현실적인 스테파니에게 빠지게 된 것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나 역시 스테파니처럼 고요하며 안정적인 사람들을 사랑한다. 손쓸 수 없이 사랑에 빠져버린다. 스스로에 대해 더 고백해 보자면 스테판의 정신을 가지고 스테파니로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왜 나야?"


자신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또 못되게 굴며 밀어내는 스테판에게 혼란스러운 스테파니가 묻는다. 스테판 역시 스스로에게 그 질문을 수도 없이 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렇지만 스테판이 상상하는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스테파니와 같지 않다고 해서 스테판의 세상이 빛을 잃진 않는다.


자동차가 자의식이 있다면 그 부분에서 인간에게 질투를 느끼게 될 것이다. 인간의 기준이란 무척 모호해서 한쪽에서 결함이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쪽의 넘치는 풍부함이 그 결함을 메꾸기도 하는 법이니까. 그때는 틀렸어도 지금은 맞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부적합인 인간이란 존재할 수 없다. 반대로 100% 적합한 인간도 존재할 수 없다. 다만 모두 때론 자신을 채근하고, 때론 자신을 칭찬하며 시정권고 정도의 삶을 살아간다. 나도 마찬가지다. 자동차를 향한 부질없는 나의 질투는 그렇게 상쇄되고, 스테판에 대한 동경과 나의 젊은 시절의 일부는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나를 달래고 다시 서랍 속으로 들어간다. 나의 시정권고는 미처 꺼내두지 못한 하잘 것 없는 조각들이 쌓여있는 그 낡은 서랍 속에 늘 신세를 지고 있다. 스테판과 스테파니가 공존하는 나만의 그 작고 작은 정비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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