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기적

글을 여섯 짓다

by 프로기

제시어: 지진

제목: 잔인한 기적


“그럼, 박수로 모시겠습니다. 경주 대지진 사태에서 살아남은 기적의 생존자, 심연주 씨입니다.”


관객들의 환호 소리가 들렸다. 어서 빨리 나와서 기적을 얘기해달라는 재촉이다. 희망을 간절히 바라는 그들에게 밝은 미소로 화답하며 무대로 올라갔다. 나도 제법 이런 무대에 익숙해졌다. 대지진 당시에 처참히 죽어가던 희생자들 얘기를 하자 탄식이 흘러 나왔다. 가족의 죽음을 눈앞에서 봐야했던 대목에서 눈물을 훔치는 사람도 보였다. 시체들 사이에서 버틴 13일, 괴사한 오른손과 문드러진 머리, 변변찮은 인세로 먹고 사는 나. ‘여러분의 삶에도 크고 작은 재앙이 있겠지만, 저보다 나은 처지시잖아요. 저런 애도 잘 사는구나 하면서, 모두 희망을 갖고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큰 문제 없이 녹화를 마쳤다. 무대를 내려오는 길에 박수가 쏟아졌다.


“연주씨, 강연 잘 들었어요. 기획 회의 때보다 더 좋던데요. 저도 연주씨 덕분에 진짜 위로 많이 받았어요.”

“작가님이 잘 살려 주셔서 그렇죠. 감사합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쓰러졌다. 눈을 감으니 그 날이 펼쳐졌다. 콘크리트 벽은 과자처럼 바스라졌다. 내 위로 철근이 얽히고 설켰다. 기적처럼 그 사이에 살아남았다. 엄마의 손과 머리카락이 내 옆에 덩그러니 뜯겨 있었다. 비처럼 여기저기서 핏방울이 툭툭 떨어졌다. 핏물이 바닥에 흘러 넘쳤다. 누군가의 살점이 목 뒤에 여기저기 달라 붙었다. 그 쯤에 경주에 한창 지진이 잦았었다. 그리고 그 쯤에 부모님은 내 고등학교 입학에 맞춰 무리하게 집을 옮겼다. 싯가보다 저렴한 집이었다. 저렴한 데는 이유가 있으리라 짐작했지만 목숨값인 줄을 몰랐다. 강연을 하는 날이면 그 날이 더 생생히 떠오른다. 내게 일어난 기적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다.


일어나 노트북을 켰다. 빨리 다른 생각을 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우울한 기억을 파고 든다. 딱지를 일부러 떼서 피가 나는 상처를 뜨듯한 손으로 지지는 것처럼 가벼운 자학을 하게 된다. 그런데 오늘은 되는 게 없다. ‘기적의 생존자, 심연주.’ ‘대지진 속 살아남은 소녀의 13일’. 발 빠르게 홍보 기사가 쏟아졌다. 댓글도 꽤 달렸다. ‘저 언니보니 살 용기가 난다’, ‘그래 저 사람도 사는데 나도 살아야지’, ‘나같으면 ㅈㅅ했을 듯’. 비슷한 내용이다. 어쨌든 내 얘기를 당분간 더 팔 수 있겠구나 싶다. 쭉 내려보다 댓글 하나가 눈에 띄었다.


‘굳이 심연주를 불러내서 그 얘길 듣고 행복을 느껴야 하나. 너무 잔인하다, 사람들.’


울음이 터졌다. 고맙고도, 서글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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