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일곱 짓다
제시어: 옆모습
제목: 비틀어 선 초상
“여러분들이 보시는 이 작품은 타신(他信) 이일도 선생의 것입니다. 조선시대 숨겨진 보물이라고 불리는 화가인데요. 특히 그가 그린 초상화는 최초로 인물들이 10 ~ 15도씩 틀어 앉아 있어 유명해졌습니다. 살짝 보이는 옆모습을 통해 인간미를 잘 그려낸다고 하여 당대에도 대단한 존망을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도슨트는 낭랑히 설명을 마쳤다. 타신 선생. 그는 우리 가문의 영원한 자랑이자 돈줄이다. 조선시대 화가라 하면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만 관심을 받고 초상화도 장경주나 이한철 정도만 대표적으로 알려져있을 뿐이었다. 그런 틈바구니에서 타신 선생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기 시작했다. 그즈음 아버지의 뜻대로 나는 미술사학자가 되었다.
타신 선생에 대한 평가는 이미 완성되었다. 미술평론가들은 정면을 살짝 비틀어 그린 타신을 극찬했다. 뺨의 도톰함, 입꼬리의 처짐, 눈의 주름살 등을 잘 잡았다며 구석구석 알은 체를 했다. 타신은 미술사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인조 때 인물인데, 그의 독특한 기법 덕분에 조선 중기 이후부터 초상화 구도가 다양해지게 된다는 얘기다. 한 가지, 타신 선생이 그 유명한 옆모습을 왜 그리기 시작했는지는 미스터리였다. 이것이 나의 과업이 되었다. 타신 선생의 영광을 완성하려면 빈틈없는 고증이 필요했다. 사료를 찾아서 헤매던 중, 증고조부의 동생의 두번째 부인의 막내딸이 갖고 있던 타신 선생의 일기를 발견했다. 다시 한 번 프로젝트에 박차를 가하게 할 귀한 자료였다. 공식적인 문서가 아닌 일기라니.
당장에 국어학자에게 일기를 맡겼다. 타신 선생의 내밀한 생각이 무엇일지. 잔뜩 기대가 되었다. 마침내 현대어 번역본을 받아들었다. 그런데 일기를 읽을수록 나는 의아해졌다. 그가 본격적으로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한 시점부터 일기엔 유달리 ‘싫다’는 말이 자주 등장했다. 싫다. 싫다. 부와 명예가 싫은 것은 분명히 아니었다. 그는 고급 비단에, 중국 술을 즐기던 풍류 예술가였다. 그렇다고 그림 그리는 일이 싫었다는 애잔한 얘기도 아닌 것 같았다.
“이게……. 쉽게 말하면 ‘꼴보기 싫다’입니다. 그대로 읽자면 ‘면상을 맞대고 있기조차 싫은 마음이 든다.’라고 풀어 말 할 수 있지요. 이게 누구의 고문입니까?”
꼴보기 싫다라. 국어학자가 풀어낸 일기와 날짜가 비교적 정확히 알려진 작품들을 대조해봤다. 맹수의 용맹한 기세를 담았다고 불려지는 운호(云乎) 브록허 선생의 초상화. 그 그림을 그린 날엔 <의금부에 수백 명과 관계맺은 브록허 선생은 통제가 안 되는 맹수로다. ‘꼴보기 싫다.’>라는 일기가 있었다. 또 다른 명작으로 꼽히는 조선시대 왕을 도와 치국평천하를 이뤘다는 최고의 영매 청와(淸訛) 최숨실 선생의 초상화. 그 그림을 그린 날엔 <배우고 익혀 노력으로 궁에 들어가는 자가 제일 어리석다. 서찰 한 통이면 되는 것을. 최숨실 선생의 말 참 명언이로다. 꼴보기 싫다.>라고 쓰여 있었다. 나머지 그림들과 일기도 얼추 짝이 맞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베테랑 고고학자를 다시 수소문했다. 고고학자의 해석도 같았다. 아니 오히려 더 신랄했다. <꼴보기 싫어서 돌려 앉혔더니. 돌려 앉혀 비범하다고 창산하는 꼴. 그 꼴도 아주 보기 싫다.> 일기장 귀퉁이까지 다 복원되었다. 그가 왜 자신의 호를 他信, 다를 타, 믿을 신으로 삼았는지 이해가 되는 대목이었다. 그의 비틀린 초상화 중, 가장 칭송을 받는 작품은 인조의 어진이다. 이 어진은 이례적으로 90도에 가깝게 인물이 돌아 앉아 있다. 인조는 조선 최악의 무능한 왕으로 꼽힌다.
나는 일기들을 정리해서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비틀어진 초상화가 고작 ‘꼴보기 싫어’ 그려졌다는 게 알려진다면 타신 선생의 명성이, 우리 가문의 명성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될 지도 모를 일이었다. 모르는 채로 있는 게 낫지. 나는 전시가 한창인 미술관으로 달려갔다. 타신의 초상화도 위풍당당히 날리고 있었다. 그의 눈길을 지나쳐 미술관 소각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의 일기를, 그의 속내를 남김 없이 모두 태워버렸다.
* 타신 이일도 선생은 허구의 인물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