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긋고 싶은데 펜은 어디에 - 두번째
<언더그라운드 2: 약속된 장소에서>
필요한 영양소를 계산하고, '이 정도면 문제없다'는 선에서 메뉴를 작성했지 싶어요. 맛이요? 외부에서 오신 분들에게도 가끔 대접했는데, 역시 다들 '담백하다'고 말씀하셨죠. 맛이 너무 좋으면 번뇌가 늘어날 염려가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적당히 맞추는 면도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미각에 현혹되지 않는 식사인 셈이죠.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살아가 고 활동하는 데 필요한 영양을 공급하는 게 우리 일의 근본 목적이었으니까요.
일단 이 한 문장을 인용한 후 이 책의 배경에 대해서 말씀드릴게요.
무라카미 하루키는 1995년 도쿄 지하철 사린 가스 테러 사건을 취재하여 원초적이고 객관적인 자료를 남기는 역할을 담당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미디어에서는 흥미로운 부분만 편집해서 마녀사냥처럼 목소리를 높여 시청률을 올리는데 그것은 정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기존의 언론과는 다르게 문예춘추 편집부와 협력해 여러가지 원칙을 정하고 이 사건의 가장 원초적인 증언들을 의견을 덧붙이지 않고 사료로 활용될 수 있는 기록을 남기려고 했던 산문집이 <언덕
라운드> 입니다.
1997년 3월 20일 사건 2주기에 맞춰 출간된 <언더그라운드>에서는 피해자의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그리부터 일년이 더 흐른 후 1998년 3월 20일에 <언덕
라운드 2: 약속된 장소에서> 라는 제목으로 옴진리교 신도들과의 인터뷰를 담은 산문집이 추가로 출간되었습니다.
저는 <언더그라운드>도 흥미롭게 읽었고 후속편인 <약속된 장소에서>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한가지 대단한 것은 하루키의 문장 교정 능력입니다. 이 인터뷰들은 대충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진행되었습니다.
1. 인터뷰에 응해줄 옴진리교 신자를 문예춘추 편집부를 통해 소개받는다.
2. 가능한 한 긴 시간을 들여 인터뷰한다. 이쪽에서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대해 원하는 만큼, 말하고 싶은만큼 대답하게 한다.
3. 대체로 3~4시간의 인터뷰 녹음을 속기 회사를 통해 문장으로 정리해서 인터뷰를 한 본인에게 읽히고 점검을 받는다. (구두로 말했던 내용을 읽기쉬운 문장으로 옮기는 일은 하루키 본인이 맡았다)
4. 발언의 자발성을 해칠까 우려되어 가능한 한 원고에 손을 대지 않지만, 사실과 다른 부분 혹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는 표현은 바로잡는다.
5. '아무래도 이 부분은 활자로 발표되면 곤란하다'는 부분은 삭제하고, '이건 중요한데 인터뷰 때 깜박 잊고 말을 못했다는 내용이 있으면 덧붙인다.
6. 그리고 말한 내용이 진실인가 아닌가 하는 검증은, 명백하게 사실과 모순된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외에는 기본적으로 하지 않는다.
사람의 말은 대체로 두서가 없고 말하는 호흡과 문장을 읽을 때의 호흡은 또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러한 부분의 전문가입니다. 그의 장편소설이 엄청난 가독력으로 책을 손에 놓지 못하게 하는 것처럼 <언더그라운드>에서 사람들의 인터뷰를 문장으로 옮겼을 때도 그 느낌이 계속됩니다. 어떻게 이렇게 가독성이 뛰어난 것일까? 그래서 마치 한편의 장편소설처럼 이 산문집을 읽게 되었지요.
또다른 밑줄을 그은 곳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고 남녀 간의 문제도 큰일이었습니다. 교단 안에서 남녀 사이가 너무 가까워져서 둘이 같이 도망쳐버리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기 때문에, 아사하라가 설법에서 "여성 사마나는 남성을 가까이하지 마라. 가까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미워하라"라는 말까지 한 겁니다. 그런 이유도 있어서 저 같은 경우는 심한 비 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아무튼 몹시 살벌한 공간이었죠.
취재하면서 느낀 점은, 어느 연령 이상이 되면 "옴진리교는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은 옴진리교를 "그놈들은 절대적인 악이다"라 고 판단합니다. 그런데 젊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요. 20대에서 30대에 걸쳐서는 "그 사람들 심정도 전혀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꽤 많았습니다. 물론 행위 자체에는 분노하지만, 동기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동정적이었습니다.
학교가 싫다, 회사가 싫다, 그건 당연합니다. 저도 싫었어요. 그러니 그런 곳에서 벗어나 정신적 영역을 깊이 추구하고자 하는 동기 자체는 잘못이 아니겠죠. 그렇기 때문에 '그런 건 집어치우고 학교에 가라. 회사에 가라. 그게 옳은 일이다' 라고는 저는 쉽게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런 부정적인 영역을 삼키는 더 큰 긍정적인 영역이 있다면 더 잘될 거라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야기를 수용하는 더 큰 이야기 말입니다. 결국 그것은 선악의 승부라기 보다는 스케일의 승부가 될 것 같기도 하군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중 이 책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하는 작가들을 본 적 있습니다. 한국에서 작가들은 실은 모두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들을 좋아하는데 공개적으로 도무지 말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애정입니다. 하지만 <언더그라운드>는 훌륭한 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양사나이가 나오고 밤의 원숭이, 공기번데기가 튀어나오는 자유분방한 사소설이나 쓰는 그런 작가를 좋아하는 게 아니구요. 저는 일본 사회에서 이런 큰 사건을 겪으며 침묵하지 않고 기록에 참여하는 그런 대작가로서의 사회적 기여에 박수를 보내는 거라구요.
공개석상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를 이야기하는 분들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을 안 할수 없었어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짝사랑같은 거죠. 내 사랑을 소리치고 외치고 싶지만 방법이 없었는데, <언더그라운드>로 가능해진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