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긋고 싶은데 펜은 어디에 - 세번째
2025년 제48회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구입했습니다.
책의 가격이 17,500원이라는데 좀 놀랐습니다. 10%의 할인을 받기전 정가. 요즘 책이 이렇게 비쌌나?
신국판 단행본의 적절한 가격은 얼마일까?
요즈음 직장인들 점심식사 비용과 비교하면 어떨까요.
내가 15년 전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를 구입했을때, 그 두꺼운 책이 14,800원이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그리 많이 오른 것 같진 않아요.
그래서 대충 조사해봤습니다.
15년전 직장인 점심 한끼 가격은 평균 5,300원이었습니다.
15년전 신국판 소설의 평균 가격이 12,800원이었습니다. (2.4배)
현재 2025년 기준 점심 한끼는 평균 9,500원입니다.
단행본가격은 17,500원입니다. (1.8배)
이렇게 보면 책값이 그렇게 많이 오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직장인 점심 두끼 정도의 가격이 책한권 가격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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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이상문학상은 문학상 주관사가 문학사상사로부터 다산북스로 이전한 첫 해의 결과물입니다.
예소연의 <그 개와 혁명>이 대상을 받았습니다.
재미있고 잘 쓴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심사가 있었을 2025년 연초, 비상계엄이라는 한국의 정치상황 속에서 더욱 돋보일 수 있는 소재였습니다. '혁명'이라는 소재, NL, PD 등의 용어의 사용이 이제는 전투적이지 않습니다. 심사를 맡은 최진영 작가는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작가는 과거 운동권의 'NL', 'PD', 현재의 '페미'와 '환경 운동', '고삼녀' 등을 나란히 언급하며 시대의 과제가 달라졌음을, 새로운 질문을 통과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맞아요. 잘 표현한 것 같습니다. 이제 시대의 과제가 달라졌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그 개가 수행하고 있는 파괴적이고 해학적이며 발랄하기 짝이 없는 혁명에 대한 지지'가 이번 이상 문학상의 새출발에 상징성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믿음'(은희경 님의 표현)으로, 제게 그런 시대적 소명을 정의할 권한이 있다면 다음과 정의하고 싶어요.
이제 이념의 시대는 지났어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실감하지 못하고 마음의 정리를 못하고 있지요. 그래서 우리에게는 장례식이 필요합니다. 올해 이상문학상에도 그런 의미가 컸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사상사가 이상문학상을 주관했던 시절에 대한 장례식입니다.
새로운 시대를 상징적으로 맞이하며 예소연 작가가 쓴 코믹한 장례식 풍경의 <그 개와 혁명>이 대상을 타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한국 순수문학의 소재가 늘 부모님 돌아가시기 전의 옥신각신, 그리고 그러고 있는 딸은 이혼녀, 자녀는 10살 언저리... 그런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여성의 사소설. 이 나이대에서는 다른 나이대와는 달리 관계가 가족중심이죠. 심지어 그 흔한 불륜도 요즘은 소재로 다루지 않아요. 따져보자면 뭔가 이유도 있겠지만 그런건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하고.
대상이 아닌 우수상 중 <일렉트릭 픽션>은 저의 이러한 갈증을 해소시켜주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일렉 기타로 인한 층간소음을 소재로 했다고 말하자면 너무 잘못 요약한 것 같고, 작은 공간에서 자신을 진정한 삶을 살아가는 이웃에 대한 공감이라고 한다면 그것마저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 것 같긴한데요.
현대 도시인으로서 공감이 되는 소재일 뿐만 아니라 재미있고, 문장이 유려하고, 가독성이 뛰어나고, 혁명도 등장합니다. 저도 그런 안내문을 붙여보고 싶어졌습니다. 기타를 연주라시는 분께. 아이가 있으니 좀 배려해주세요, 라는 메모가 있습니다. 그에 대한 답변과도 같은 안내문이 붙어있습니다.
저는 전기 기타를 좋아합니다. 가끔만 집에서 연주합니다. 9시 이후에는 안 하겠습니다. 불편함이 있으시면 505호에 메시지를 남겨주세요. 죄송합니다.
이 단편소설은 시점이 조금 까다롭습니다.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는데요. 이 빌라에 집을 구하게 된 서술자가 501호에 사는 것 같애요. 그리고 505호에 혼자 사는 소시민인 남성을 묘사합니다. 바깥 공간은 안에서의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견뎌야할 낮은 수준의 세상입니다. 일렉기타에 흥미를 가지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데 그 이야기를 너무 잘 썼습니다. 이 소설은
저도 전기 기타를 좋아합니다.
라고 종이의 여백에 적어놓는 귀여운 서술자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뛰어난 가독성, 유려한 문장. 밑줄을 긋고 싶은 위트있는 말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그런 단편적인 문장은 독서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가로막기도 하거든요. 작가는 세련되게 문장을 이어갑니다.
익명이 되려고 서로 최선을 다하는 이곳에서 자신이 505호, '여기'에 있다고 고백한 사람. 배려와 무례가 섞인 문장들이 아주 조금 열어놓은 문. 그 틈으로 나는 김수영처럼 "혁명은 안 되고 방만 바꾸"느라 가구를 끌어 옮겼던 이, 자우림처럼 "신도림 역 안에서 스트립쇼를"하는 기분으로 옷을 벗어 던지며 흥얼거린, 자신이 노래를 잘 부른다고 믿었던 이를 돌아본다.
……
내 이웃에도 이런 분들이 있죠. 누구나 그럴거에요. 나 역시 윗집의 어린 자녀 두 명이 몇년간 울고 웃고 뛰어다니는 소리를 들으며 한번도 싫었던 적이 없어요.
마찬가지로 아랫집에서도 내 피아노 소리를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 역시 가끔 연주할 뿐이고 반 8시 이후에는 하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이 건물 어딘가에 있을, 작고 까만 눈을 깜박거리다 잠에 빠지는 아기도 상상한다. 예전에 붙었던 메모를 나도 봤다. 그러나 그 녀석의 안에도 전기가 있다. 나는 아기가 울고 싶을 때 우렁차게 울기를 바란다. 머지않아 두 다리로 일어서서, 뛰고 싶을 때 쿵쾅쿵쾅 뛰기를 바란다. 낯선 세상과 마주해 부단히 전기신호를 생성할 녀석의 신경세포들이, 정적보다 먼저 배워야 할 것은 소란일지도 모른다.